제02호 2008년 가을 살림,살림

[ 독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

7일간의 나홀로 자전거여행

글/사진 박제성

 

스물한 살에 떠났던 자전거여행의 흔적을 가끔 뒤적이는 습관이 있다. 길 위의 풍경과 추억을 담은 사진, 땀과 비로 얼룩진 전국지도, 졸린 눈 비벼가며 적었던 여행일지. 서울에서 목포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해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다시 배를 타고 부산에서 강릉, 그리고 다시 서울까지 이어졌던 14일간의 기록은 뜨거웠던 스물한 살의 뿌듯한 추억으로 내내 남아 있다.

 

 

가는 곳곳의 풍경과 하나가 되는 자전거 여행

 

 

지난여름 내게 한 달의 안식휴가가 주어졌다. 7년을 일하고 얻은 이 귀한 시간을 위해 이런저런 계획을 구상해보았지만 고심한 끝에 내린 결론은 나 홀로 자전거여행. 하지만 결정은 쉽지 않았다. 좁은 국도에서 자전거 하나를 사고로 박살내고도 기어이 국토대장정을 끝마쳤던 그 때와는 달리 17년이 지나 바닥을 기고 있는 지금의 체력과 몸 상태가 우선 발목을 붙들었다. 도보여행을 해볼까? 아니면 산속에 들어가 그동안 밀렸던 독서를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가져볼까? 이런저런 별별 그림들을 다 그려보았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을 조금씩 움직인 것은 역시 자전거였다.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석유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고, 내가 돌아다니는 곳곳의 풍경과 하나가 되어 자연을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자전거의 유혹은 역시나 뿌리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 자전거, 헬멧, 고글, 속도거리계, 안장가방(힙백), 장갑, 펑크공구와 드라이버

렌턴, 자물쇠, 끈, 배낭(레인커버), 빨래집게, 다용도칼(일명 맥가이버칼)

- 바지 2벌, 상의 3벌, 속옷 2벌, 양발 2켤레, 지퍼백(비닐), 옷핀

- 수건 2장, 세면도구, 손수건 3장

- 구급약, 디지털카메라, 충전기, 리더기, 핸드폰, 지갑

- 지도(전국지도 1장, 경로별 25만분의 1 지도 복사본), 노트, 필기도구, 엽서, 읽을 책

 

 

자전거여행의 준비는 코스 선택과 숙소 마련, 자전거 정비와 그에 따르는 준비물을 챙기는 일이 우선이다. 코스는 목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을 택했다. 서해안의 낙조를 바라볼 수 있고 지형 역시 비교적 평탄해서 여유로운 여행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숙소는 적은 경비로 최대의 만족을 누릴 수 있는 찜질방을 선택하고, 괜찮은 중고 MTB(산악자전거)도 15만 원을 주고 손에 넣었다. 나머지는 소지품. 장시간 주행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는 짐을 최대한 가볍게 해서 자전거와 몸에 실리는 하중을 덜어야 한다. 등산용 배낭 대신 평소 메고 다니던 작은 배낭에 꼭 필요한 물건만 챙겨 넣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목포행 고속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4시간 20분을 달려오니 벌써 도착이다. 이 시간과 거리를 이제는 자전거를 타고 일주일 동안 분할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4시간 20분과 일주일. 이러한 속도의 차이는 사람 사는 진솔한 풍경과 혼자만의 사유를 통해 진한 가르침을 주리라!

 

목포의 아침이 밝았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 전국에 유례없는 폭염이 예상된다는 뉴스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오니 역시나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아스팔트는 벌써 달구어져 있다. 목포를 빠져나와 무안으로 향하는 1번 국도를 타고 영광으로 향한다. 폭염을 뚫고 본격적인 주행에 나섰지만 길 위엔 차도 사람도 드물다. 저녁 7시쯤 드디어 영광에 도착해 시장 골목을 지나는데 좌판을 하고 계신 할머니 한 분이 나를 기어코 불러 세운다. “학생, 여행하는 거여? 어디 살어?” “서울이요!” “우리 아들도 서울서 대학 당겨. 힘들자? 여행한다니 엄마가 돈 좀 줬어? 오늘 우리 집서 잘까?” 어쩌다 보니 20대 중반의 대학생이 되어 할머니 옆에 앉아 말벗이 되어 드린다. 인사드리며 드링크 한 박스를 놓고 가려는데 내 손을 막무가내로 잡으시며 “니 하나 먹어!” 하신다.

 

 

여행 중 하루 여관 신세를 진 곳이 부안이다. 3일간 밀린 빨래를 처리하고 하루쯤 좀 편히 쉬고 싶은 마음에 터미널 부근을 뒤져 가장 방값이 싼 곳을 찾았다. 백제장. 2만 5천원. 특급잠자리가 따로 없다.

 

다음날 아침 부안터미널 뒤편 골목을 나서는데 반가운 현수막이 이곳저곳에 보인다. “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 과천에서 시작한 이 현수막이 부안에까지 왔다. 그것도 쇠고기를 파는 일반 정육점에 달린 현수막! 정말 반갑다. 역시 부안이다. 4년 전 핵 없는 세상, 평화로운 부안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부안 사람들이다. 아마도 그 촛불의 생명이 일상을 살아가는 진솔한 삶의 현장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길 위에서 만나는 생명들

 

 

거의 쉼 없이 페달을 밟아 나가면서 수없는 로드킬(동물이 도로에 나왔다가 자동차 등에 치여 사망하는 것)을 목격했다. 새와 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는 수많은 야생동물들의 사체를 피해 달린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대지에 줄그어진 직선의 차도는 이 땅에 거주하는 수많은 생명들과의 단절을 선언한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나 같은 인간도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에 위협당하며 주위를 살피는데 야생의 동물들은 어떨지.

 

 

달려도 달려도 하루 종일 쨍쨍한 폭염이다. 갈수록 주행시간은 짧아지고 쉬는 시간이 늘어간다. 높고 긴 언덕이 나올 때마다 드는 생각. 저 언덕을 넘으면 제발 길고 긴 내리막길이 나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언덕을 오른다. 하지만 항상 그 만큼의 오름과 내림이 있을 뿐이고 끊임없이 쉬지 않고 페달을 밟아야 나아갈 수 있는 길. 그것이 진리였다.

 

군산을 출발해 보령을 지나 홍성으로 가는 길. 길은 멀었는데 찌는 더위와 지친 몸은 길 위에 자꾸 주저앉게 만든다. 그렇게 잠시 앉아있는데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국토순례 하나봐요, 힘들죠?” 하시면서 친정어머니가 시골에서 직접 농사지어 보내준 것이라며 복숭아와 자두, 얼린 음료수를 봉지에 담아 건네주신다. 그 자리에서 바로 자두 하나와 복숭아 두 개를 우적우적… 길 위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또 다시 길을 떠나게 된다.

 

지난 7일 동안, 길 위에서 만났던 수많은 생명들. 시원한 바람을 가르고,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느꼈던 그 눈물 나도록 아름다웠던 풍경과 풀 냄새, 그리고 초록들. 내가 살아 숨 쉰다는 것을 새삼 가르쳐주었던 모든 것들을 기억하며 이번 여행의 마지막 흔적을 남긴다. 홀로 7일간의 자전거여행을 가능하게 했던, 그리고 더 없는 기쁨과 행복의 여정을 만들어 주었던 가족과 벗들 그리고 하늘과 초록과 바람에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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