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2호 2008년 가을 살림,살림

[ 가까운 먹을거리가 우리를 살린다 2 ]

뽕나무와 두더지의 협동농장이야기

글/사진 김현경

 

 도메니코 젤시 씨 가족.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은 자신이 먹는 농산물 그대로 이탈리아 내의 도시 소비자에게 보낸다.

 

지난 6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았던 시칠리아에 하루 종일 보슬비가 내렸다. 한국에서처럼 농사를 짓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비가 큰 보탬이 됐기를 희망하며 ‘젤시와 딸파(I Gelsi & la Talpa)’라는 이름의 농장으로 향했다. 젤시와 딸파는 이 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뽕나무와 두더지라는 뜻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날 만났던 이들은 농장을 처음 시작한 도메니코 젤시(Domenico Gelsi) 씨의 가족. 비포장도로의 산길을 한참 달려 집 앞에 도착하니 젤시 씨의 막내딸이 가장 먼저 반갑게 달려 나온다.

 

“올리브, 멜론, 수박, 토마토, 포도, 선인장열매, 오렌지, 호두, 뽕나무, 피스타치오, 까르초포, 와인, 포도농축액 등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전부 유기농입니다. 이탈리아에서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기는 하지만 바로 우리 집 앞에서 키워 내가 먹을 건데 어떻게 농약을 쓰나요?”

 

그래도 농약의 유혹을 받지 않느냐고 젤시 씨에게 물어보니 너무 당연하단 듯이 얘기해서 오히려 무안해졌다. 결혼과 동시에 23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는 젤시 씨에게 농사는 일이라기보다는 그저 편안한 하루의 일상에 가까워보였다. 계절의 변화를 포함해 여러 가지 자연 환경에 순응하며 농사를 짓기 때문에 억지로 더 힘을 쓸 것도, 노력할 것도 없이 자연이 허락하는 것만을 감사히 수확할 따름이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비닐이 아닌 잡초와 짚을 이용한 멀칭(바닥 덮기)을 처음 볼 수 있었다.

 

포도나무 사이에 올리브 나무를 심는 등 다양한 작물을 함께 어울려 자라게 하여 병충해를 막고 있다.

 

 

“잡초를 뽑아 잘 말려두었다가 이렇게 토마토 가지 사이사이에 잘 깔아 두는 겁니다. 그러면 수분이 덜 날아가서 땅이 이렇게 촉촉합니다. 잡초도 덜 나죠.”

 

 

포도나무 사이로 웃자란 올리브 나무

 

 

그는 비닐하우스도 반대한다. 예전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제철에 맞는 농작물만을 재배하고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있는데 소비자들은 이 농장에서 사계절 내내 제철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이 농장의 또 다른 특징 중에 하나는 여러 종류의 과실과 채소가 드문드문 한 데 어울려 심어져 있다는 것. 유기농업을 위해서는 한 종류의 작물을 밀집해서 심지 않고 다양한 품종을 곁들여 재배함으로써 자연적으로 지력을 키우고 병충해를 막을 수 있다는 원칙에 충실하고 있다. 포도나무 사이로 웃자란 올리브 나무가 더욱 빛나 보이는 이유다.

 

“‘젤시와 딸파’의 이름으로 열다섯 농가가 협동조합을 결성해 함께 하고 있습니다. 각 농가마다 작물 종류가 조금씩 다른데, 그렇기 때문에 각 농가들은 자신이 키우고 있는 작물에만 정성을 들여 특화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언제라도 본인들이 원하는 다양한 제철 농작물을 먹을 수 있는 겁니다.”

 

도메니코 젤시 씨는 협동 농장을 결성해 유기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에게 직접 보내주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한살림의 도농 공동체 운영방식과 비슷한 면이 많다.

“우리가 재배하는 유기농산물들은 가족들이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시칠리아가 아니라 모데냐, 밀라노, 토스카나 등 북쪽 지역의 도시에서 모두 소비됩니다. 유기농 인증을 받은 농산물은 생산단가가 높아 소비자 가격이 20% 정도 비싼 이유도 있지만 시칠리아는 전통적인 농업 지역으로 많은 주민들이 조금이라도 농사를 직접 짓기 때문도 있습니다.”

 

도시 소비자들도 역시 그들만의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으로 농장의 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다. 이렇게 생산자 협동조합과 소비자 협동조합이 결성되어 운영된 지는 20년째. 처음에는 지역 농산물이나 유기농에 대한 인식도 별로 없어서 도시의 친구나 친척들에게만 조금씩 올려 보내던 것이 이제는 고정적인 도시 소비자가 2천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협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것은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많은 것들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다른 농가와 함께 유기 농산물 재배와 판매 등을 터놓고 협의할 수 있다는 게 힘이 되고, 또 고정적인 소비자를 통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도 일반 시중보다 훨씬 저렴하게 유기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지요. 무엇보다 가장 보람된 것은 농장을 중심으로 모두가 친구가 되어 정을 나눌 수 있으니 더 없이 즐겁습니다.”

 

토마토와 올리브가 함께 어울려 자라면서 토양의 비옥도를 높인다.

 

이 농장에도 우리나라의 한살림이나 다른 생활협동조합들처럼 소비자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을 위해 ‘젤시와 딸파’에 소속된 농가들은 도시 소비자들이 묵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농장 곳곳을 둘러보고 함께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신선하고 맑은 시골 생활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생산자와 직접 어울릴 수 있어 호응이 좋다고 한다.

 

‘젤시와 딸파’ 농장의 경우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도농 공동체를 형성해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 공급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탈리아도 예전보다 지금이 더 농사짓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튀니지산 올리브를 먹는 이탈리아

 

“그걸 먹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는데요, 요즘은 이탈리아도 농산물을 많이 수입합니다. 오렌지는 이스라엘이나 모로코에서, 레몬은 아르헨티나, 올리브는 튀니지에서 수입되지요. 이런 작물은 이탈리아에서 제철이 아닐 때 주로 수입되는데 문제는 이런 농산물을 먹는 사람들이 자신이 먹고 있는 그 농산물에 대해 잘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원칙적으로 국가 간의 교역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당장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보다 자신이 무엇을 먹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먹을거리가 먼 거리를 이동해 오게 되면 그 과정에서 그 음식이 갖고 있는 본래의 성질을 잃거나 그 성질을 잃기 않기 위해 방부제 등 많은 인위적인 처리를 해야 한다. 그 외에도 멀리서 오기 위해 기름을 태우며 배를 타는 등 엄청난 에너지 소모와 공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탈리아에서 컵을 만드는 공장이 중국으로 이전하면 그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은 일자리를 잃고 그 컵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중국 공장에서 새로이 일하게 된 중국 사람은 그 컵을 살 수 있을까요? 그 컵을 살 수 없을 정도의 적은 임금을 받고 엄청난 노동에 시달리기 일쑤일겁니다.”

 

젤시 씨는 음식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자신이 먹는 먹을거리가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일 때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사회를 살려 결국 자신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것. 지역의 먹을거리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인 가치 외에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데도 있다. 일단 가까운 거리에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는 더 신선하고, 인위적인 처리 과정도 덜 필요하고, 오염 발생도 적다.

 

“이런 문제는 주로 저개발 국가인 농산물 수출국에서 해결할 사안이 아닙니다. 이들 나라에서는 노동자가 절대 약자지요. 먹을거리의 장거리 이동에 따르는 손실은 이를 수입하고 있는 소위 선진국에서 더 잘 알고 있어요. 다만 정치적인 이유로, 혹은 거대해진 유통업자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을 뿐입니다.”

 

 

 

 

농민과 친구가 되세요

 

이럴 때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젤시 씨는 직거래를 말한다.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이웃이 생산한 음식을 구입해 함께 나눠먹었는데 지금은 음식이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양산하는 하나의 산업이 되면서 이동거리도 길어지고 복잡한 유통과정이 생겨났다는 것.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크지만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행동 변화가 더욱 중요하다고 한다.

 

“일단 최대한 유통 과정이 짧은 음식을 선택해야겠습니다. 우리 농장이나, 또는 한살림과 같이 직거래를 하는 농민들로부터 먹을거리를 직접 구입하면서 농민들과 끊임없이 교류한다면 소비자를 친구로 생각하는 농민들이 절대로 먹을거리를 가지고 배신하지는 않을 겁니다. 또 교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본인이 먹게 되는 먹을거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산되어 당장 오늘 저녁 식탁에 오르는지 직접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중요한 것은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의 제철 음식을 이용하라는 것. 맛도 좋고 영양상태도 최고인 제철 음식을 외면한다면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더 많은 수입 농산물을 들여오거나, 더 많은 화학적 농법을 도입할 수밖에 없다.

마을 곳곳의 상점에서는 지역에서 수확되는 신선한 농산물이 활발히 판매되고 있다. 대형 마트도 있지만 많은 이들이 작은 상점이나 노점상을 통해 장을 보고 있다.

 

 

“이 농장을 운영하면서 앞으로 더 큰 목적은 없습니다. 제가 지금 부자는 아니지만 거의 자급자족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별히 돈을 쓸 데도 없습니다. 또, 저와 제 가족이 모두 건강하고 주변의 친구들과 언제든지 함께 얘기 나눌 수 있는 지금,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대규모의 농업을 비롯, 대기업 중심 체제의 경제 구조를 반대한다는 그는 그의 평온한 얼굴처럼 정말 모든 것을 가진 것 같다. 스트레스 없이 그야말로 오로지 자연 속에서 농사를 즐기고 있고, 본인 스스로가 그 생산물의 소비자이기도 하면서 도시의 많은 친구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나누고 있으며, 가족 모두가 건강하게 이 자연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또 다른 목표가 있을 리가 없겠다.

 

젤시 씨는 그와는 달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 농토를 지키고 있는 한국의 농부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본인이 자신감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다면 그 지역에서 알리는 데 힘쓰십시오. 일단 지역의 경제가 활성화되면 내가 만들어낸 경제 가치는 계속 지역에서 순환되어 내게도 다시 돌아옵니다. 소비자분들도 농업이 단순히 먹을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농업은 그 자체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로 큰 녹지를 형성하면서 지구 생태계를 떠받들고 있습니다. 이 하나만으로도 내가 있는 지역에서 농업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가 충분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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