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2호 2008년 가을 살림,살림

[ 살림의 밥상 ]

황금비율로 만나는 젓갈과 김치

글 우미숙

 

먹을거리 추억을 떠올리면 먼저 김치 생각이 난다. 특히 겨울맞이 김장 풍경. 우리 집 마당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배추가 2백 포기는 넘어보였다. 그 옆에는 늦가을에 갓 잡아 꾸덕꾸덕 말려놓은 명태가 대야에 한가득 담겨 있다. 강원도 아래쪽 지방에서는 생태를 김치 사이에 켜켜이 넣는다. 김장한 지 한 달 정도 지나면 생태에서 우러나온 국물이 김칫국물과 어울려 시원한 맛을 내는데 그 맛이 기가 막히다.

 

어린 시절, 김치 사이에 켜켜이 들어 있는 발그스름한 명태 살이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익히지도 않은 생선을 채소와 버무려놓는 게 도대체 어울리지 않아보였다. 금방 상해서 못 먹을 것 같은 느낌. 이제야 알겠다. 상하는 게 곧 ‘삭는 것’이고 발효인 것을.

 

강원도 김치 맛에 길들여진 내가 전라도 시댁과 만나 가장 먼저 접한 것은 바로 전라도식 김치. 뻘건 양념투성이의 배추김치는 기본, 뻣뻣하고 검푸른 빛의 갓김치와 김치라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파김치였다.

 

 

“아야, 갓지가 마치 좋게 익었다~잉.”

전라도식 김치는 ‘~지’라고 부른다. 시모는 무거운 김치 보따리를 풀며 그중 내 눈에 시커멓게 생긴 갓김치 한 줄기를 손가락으로 말아 먹어보라고 건네주신다. 순간 갑자기 풍겨오는 구린내에 그만 헛구역질을 해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구린내가 갓김치의 깊은 맛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강원도와 전라도의 경계선은 다름 아닌 김치였다. 하지만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면서 시모의 김치가 내 입에 맞기 시작했다. 내가 전라도 김치에 적응하지 못한 원인은 바로 젓갈 때문이었다. 전라도에선 물김치나 동치미, 사찰김치를 빼놓고 모든 김치에 젓갈이 필수다. 단, 김치마다 넣는 젓갈이 다르고 젓갈에 따라 김치 맛이 달라진다.

 

 

젓갈 맛 기행을 떠나다

 

 

11월 김장 때가 다가오면 김치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젓갈을 준비하려고 젓갈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젓갈시장은 여섯 군데가 있다.

 

서산 간월도는 어리굴젓으로 유명하다. 짜지 않게 담근 굴젓이라는 뜻을 가진 어리굴젓은 남해안의 1~2년산보다 이곳의 3~4년산을 최고로 친다. 충남 홍성군의 광천읍은 토굴 새우젓으로 유명하다. 땅속 온도를 13~16℃로 자연스럽게 유지시키는 데 맛의 비결이 있다. 이곳의 새우젓 가게들은 저마다 토굴을 보유하고 있으며 1년 이상 숙성시켜 시장에 내놓는다.

 

변산반도의 채석강 주변을 돌고 나서 사람들이 꼭 들르는 곳이 곰소항 젓갈시장이다. 이곳의 젓갈이 맛있다고 소문난 이유는 천일염에 있다. 값싼 중국산 돌소금으로 만든 것은 쓴맛이 나지만, 햇볕을 쬐며 제대로 만들어진 천일염을 사용하면 젓갈의 구수한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주의 영산포는 토하젓으로 유명하다. 청정 하천이나 논도랑에서 서식하는 민물새우 중에서 또랑새우와 보리새우(줄무늬새우)를 원료로 담근다. 토하젓은 김치 담글 때 넣기보다는 삭힌 홍어회나 돼지삼겹살을 찍어 먹는 용도로 애용된다. 맨밥에 비벼먹어도 일품이다. 강화 외포리 역시 새우젓으로 유명한데 강화산 밴댕이도 꽤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곳의 새우젓은 대부분 추젓이다. 토굴에 들어가지 않고 야외에서 숙성된다. 인천의 소래포구도 김장철에 붐비는 곳이다. 소래로 들어오는 어패류들은 부평과 안양의 동굴로 옮겨져 1년 동안 숙성되었다가 소래포구로 다시 와 팔린다. 이렇게 발품을 팔며 교통비를 들여가며 젓갈사냥에 나서는 이유는 김치를 제대로 담그는 데 젓갈의 위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김치 맛, 젓갈의 궁합에 달려 있다

 

 

160여 가지의 젓갈 중에 김치에 넣는 젓갈은 열 가지 안팎이다. 그 중에서도 익숙하게 잘 알려진 것은 새우젓이나 멸치젓, 까나리젓, 밴댕이젓, 갈치젓, 황석어젓.

 

새우젓은 다른 젓갈과 함께 모든 김치에 조금씩 들어가 시원한 맛을 내며, 배추김치와 깍두기에 주로 사용된다. 잘 알려진 것으로는 5월에 담근 오젓과 6월에 담근 육젓, 가을에 담근 추젓이 있다. 육젓은 색깔이 희고 살이 통통해 고소한 맛이 나는데 새우젓 중에 가장 맛있는 것으로 알려져 값도 가장 비싸다. 젊은 새댁들은 오젓과 육젓의 모양뿐 아니라 그 맛을 구분하지 못해 양이 많고 값이 싼 오젓을 사다 넣을 때가 많다. 하지만 김치 맛에 까다로운 어르신들은 반드시 육젓을 고집한다.

 

새우젓만큼 많이 사용되는 게 멸치젓이다. 대개 4~5월에 잡히는 멸치로 젓을 담그는데 추자도에서 잡힌 멸치로 담근 추자젓을 멸치젓 중에 으뜸으로 여긴다. 멸치젓 위로 뜬 맑은 국물은 짜지 않으며 달고 구수하다. 이게 멸치액젓이다. 배추김치, 갓김치, 부추김치, 파김치, 고들빼기김치에 넣으면 깊은 맛이 난다. 멸치액젓을 따라내고 남은 건더기는 멸치생젓이라 하여 갈아서 쓰거나 한 번 끓여 그 국물을 걸러 쓴다. 시지 않으면서 푹 익어 진짜 김치 맛이라는 탄성이 나올 정도로 맛을 내는 전라도식 김치에는 멸치생젓이 들어가야 제격이다. 익을수록 깊은 맛이 나는 돌산갓, 쪽파, 무청, 풋마늘, 고들빼기, 총각무에 주로 넣는다.

 

서해안의 황석어로 담근 젓갈은 서울식 배추포기김치에 주로 넣는다.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둥그런 모양의 것이 좋으며 노랗게 잘 삭은 게 맛있다. 황석어가 잘 잡히지 않는 요즘, 젓갈 시장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다.

 

기름기가 없어 맛이 깔끔한 밴댕이젓은 청어과의 바닷고기로 담근 것으로 전남과 평북지방에서 멸치젓 대신 많이 이용한다. 담백하게 담그는 김치에 주로 사용되며 그냥 양념하여 반찬으로 먹기도 한다.

 

갈치를 3년 이상 삭힌 갈치속젓은 건더기째 갈거나 다져서 김치에 넣는다. 비린내가 전혀 없이 구수한 맛을 낸다. 멸치젓과 번갈아 넣기도 하는데 전라도식 김치를 담글 때 많이 넣는다. 강원도에서 명태를 김치에 넣듯이 경상도 해안지역에서는 생갈치를 넣기도 한다.

 

새우라고 하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아 곤쟁이라 이름붙인 곤쟁이젓. 몸길이가 1cm 이하의 아주 작은 바다새우다. 충남 광천의 새우젓을 곤쟁이젓이라고 할 만큼 그 지역에서 유명하다. 독특한 향이 있어 특유의 맛을 낸다. 궁중김치로 알려져 있는 감동젓무라는 무김치에 반드시 곤쟁이젓을 넣었다.

 

멸치젓과 함께 가장 널리 사용하는 젓갈로 까나리젓이 있다. 서해안에서 잡히는 까나리를 원료로 한다. 시원한 맛을 내는, 국물이 많은 김치에 주로 사용된다.

 

 

젓갈 따라 지역 따라 색다른 김치 맛

 

 

태어나 오랜 기간 먹어온 맛, 항상 밥상 중간에 자리하고 있는 김치는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시원한 명태가 들어가 있는 강원도 김치가 그리운 사람, 젓갈이 듬뿍 들어간 걸쭉한 양념으로 버무린 전라도 갓김치가 먹고픈 사람……. 살아온 지역마다 그 맛이 달랐던 김치 탓이다. 크지도 않은 땅덩어리지만 기온과 젓갈의 원료 차이로 김치의 맛이 곳에 따라 다르다.

 

서울과 경기도는 전국 모든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으로 사실은 그 특색이 없어진 지 오래다. 하지만 서울 경기 토박이들 사이에 이어져 오는 김치 맛은 간이 적당하며 색깔도 연하고 젓갈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배추와 무를 함께 넣어 담그는 섞박지와 보쌈김치, 총각김치와 깍두기가 유명하다. 이들 김치에는 새우젓이나 황석어젓과 같이 담백한 맛을 내는 젓갈을 주로 사용한다.

 

충청도는 양념을 많이 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새우젓과 조기젓, 황석어젓을 주로 사용해 시원한 김치 맛을 낸다.

 

강원도는 동해 해산물인 생태와 오징어를 소에 버무려 넣는 게 특징이다. 젓국을 많이 넣지 않으며 새우젓을 주로 넣는다. 강원도 김치의 시원하고 상큼한 맛은 생태와 오징어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경상도 김치는 높은 기온 때문에 빨리 시는 것을 막으려고 젓갈과 마늘,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 맵고 짜다. 젓갈을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멸치젓이 유명하다. 텁텁한 멸치젓보다 맑은 간장 같은 액젓을 주로 사용한다. 갈치속젓이나 생갈치를 넣기도 한다.

 

전라도 김장김치는 양념이 절반이 될 정도로 양념 범벅이다. 걸쭉한 양념의 얼큰한 맛, 전라도 김치만의 매력이다. 총각김치와 파김치, 갓김치, 고들빼기김치를 많이 담근다. 붉은색이 유난히 짙은 전라도 김치는 고춧가루도 많이 넣지만 붉은 고추를 갈아서 넣는다. 젓갈은 조기젓이나 새우젓과 함께 멸치젓을 많이 쓴다. 생젓을 넣기도 하고 끓여서 진한 국물을 걸러내어 넣기도 한다.

 

북쪽지방은 기온이 낮아 남쪽의 김치 맛과 조금 차이가 있다. 황해도는 지역의 위치상 서울 경기 충청도와 비슷하다. 평안도 김치는 국물이 많고 싱거운 편이며, 고춧가루를 많이 넣지 않는다. 냉면 동치미와 백김치가 유명하다. 서해안을 끼고 있어 조기젓이나 새우젓을 넣는 편이나 남쪽 지방보다 사용하는 양이 적다. 함경도 김치는 매운 반면 짜지 않다. 젓갈을 안 쓰고 생태나 생가자미를 썰어 고춧가루로 버무려서 배추 사이사이에 넣는다.

 

 

맛있는 김치 맛, 손끝으로 이뤄내는 배합의 힘

 

아무리 많은 재료와 양념을 넣어도 그 맛에 반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익숙해진 입맛에 맞아야 하는 법. 시원한 무 맛이 좋은 강원도 김장김치가 최고라고 손꼽았던 사람이 전라도 사람을 만나 전라도 김치를 먹더니 어느새 뻘겋고 구린내 나는 걸쭉한 전라도김치가 제대로 된 김치라고 치켜세운다. 맛있는 김치 담그는 비법이 어디 따로 있겠나 싶다.

 

하지만 맛있는 김치를 담그는 비법이 있기는 하다. 농약과 화학비료 없이 꿋꿋하게 잘 자라난 김칫거리와 천일염으로 버무려 잘 숙성된 젓갈, 화학조미료 대신 구수한 양념 맛을 내는 멸치와 표고버섯가루, 싱싱한 해물이 있다면 어떤 김치가 맛이 없겠나. 단 어떤 비율로 잘 맞추어 버무리는가는 담그는 사람의 손끝에 달려 있다.

 

 

최고의 발효식품인 김치. 그 발효를 제대로 시키는 게 젓갈의 힘이다. 젓갈과 김치. 이 둘은 황금비율로 맺어질 때 최고의 맛을 내는 사이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