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2호 2008년 가을 [특집] 물이야기

[ 모두의 물 1 ]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지방의 가뭄 현장을 가다

글/사진 임마루

요하네스와 친구들이 심은 나무들. 새로 심은 나무 주변에는 쇠 울타리를 세워서 소들이 와서 먹지 못하게 했다.

 

버스를 탔다. 그런데 자꾸 잠이 온다. 세 시간째 같은 풍경이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 어쩌다가 나무가 보이고, 나무보다 많은 소떼와 양떼가 보인다. 몸을 숨길 숲이 없는 캥거루들은 질주하는 차들을 보고 어쩔 줄 몰라 이리 저리 뛴다. 깜박 졸았다가 눈을 떠 봐도 계속 같은 풍경이다.

 

뉴 사우스 웨일즈(New South Wales). 호주 남동부에 있는 주다. 시드니가 바로 이곳의 중심도시다. 1770년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이 이 지역을 탐험하고 영국령을 선포하면서 영국의 지명을 따서 뉴 사우스 웨일즈로 부르기 시작했다. 영국의 웨일즈도 이곳처럼 척박할까? 이 지역은 일 년 내내 햇빛이 아주 강하고 비가 잘 오지 않는다. 어쩌다가 비가 내려도 땅에 물을 담아두는 역할을 해줄 나무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모두 흘러내려가 버린다. 이렇게 나무들이 많지 않은 이유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이 땅에 정착해온 사람들이 개간을 하기 위해 숲을 불태우고 나무들을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시절 호주 정부는 전장에서 돌아온 군인들에게 보상으로 땅을 나눠주면서 개간을 하지 않으면 땅을 다시 반납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결국 땅이 필요했던 퇴역군인들은 일단 나무들을 베어 버렸다.

 

지난 8월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호주 뉴 사우스 웨일즈 북쪽의 인버럴 지역을 방문했다. 도착 첫날부터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물이 귀하다는 것이다. 친구 집의 수도꼭지에는 대부분 ‘마시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 저장된 빗물이 나오는 수도꼭지 한 곳에서만 물을 마실 수 있었다. 물이 귀하다는 얘기는 전에도 들었지만 이렇게 심각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친구들을 통해 가뭄의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 사라져버린 물줄기의 행방을 더듬어 봤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건 도박이야”

 

가뭄과 물 부족의 심각성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곳은 목장이다. 소를 키우는 친구 요하네스는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여섯 달 동안 내린 비가 고작 7.6cm밖에 안 돼. 비가 오면 뭐해, 다 흘러내려가 버리는데. 풀이 말라버려서 먹이가 없어지니까 소 몸무게도 5kg씩 줄었어.”

 

소를 놓아 키우는 초지는 짙은 갈색이다. 햇빛이 강한 호주는 겨울에도 물만 충분하면 풀과 나무들이 초록색을 유지할 수 있다. 어떤 농부들은 급수 장비를 사서 땅속이나 공공 저수지에 있는 물을 끌어다가 쓰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풀들이 모두 말라버렸기 때문에 연한 풀을 찾을 수 없는 소들은 풀뿌리 쪽을 향해 혀를 내밀었다. 풀이 없으면 건초 더미를 사서 먹이면 되지만 한국 돈으로 2만 원 정도 하는 건초더미의 값이 가뭄 때는 두 배, 세 배로 뛰어버린다. 기름값 폭등으로 사료 구입을 포기한 지는 이미 오래다.

 

가뭄이 심하다 보니 그걸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전국을 돌며 문 닫기 직전인 목장을 찾아가 소를 헐값에 사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다. 어떤 사람은 파산 직전의 목장에서 소 수백 마리를 한 마리당 1만원에 사와서 키운 다음 그보다 훨씬 높은 값에 되팔았다. 아주 약해진 소들이 운송 중에 죽기도 했지만 그래도 손해를 보지는 않았다.

 

도시도 물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인버럴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세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탬워스에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비교적 큰 저수지에서 물을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조심해야 한다. 시 당국에서는 아예 물 사용 규정을 만들어서 물 부족 정도에 따라 상황 등급을 매기고 물의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만약 이 규정을 어기면 회사는 2백만 원, 개인은 2십만 원 정도의 벌금을 내야 한다.

 

친구 스티브의 텃밭. 지붕에 떨어진 빗물은 파이프를 통해 빗물 탱크에 담기게 된다. 스티브는 이 물을 하루에 한 번씩 텃밭에 준다.

 

인버럴 시내에 사는 친구 스티브의 집에는 빗물 탱크가 세 개 있다. 빗물 탱크는 지붕에 파이프로 연결돼 있어서 지붕에 내린 빗물이 저절로 탱크에 모인다. 농촌 지역에서는 공기가 깨끗해서 빗물을 마실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몸을 씻거나 텃밭에 물을 주는 데 사용한다. 가뭄 때문에 채소가 너무 비싸서 스티브는 양파, 파, 당근, 상추, 콩 등을 텃밭에서 직접 길러 먹고 있다.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맛보여 주기 위해서 호주의 유명한 할인 마트인 콜즈(Colse)에 갔더니 오이 한 개의 가격이 무려 2,300원이다. 시드니 같은 대도시에서 빗물을 사용한다면 집 앞에 ‘빗물 사용 중’이라고 적어 놔야 한다. 그래야 물을 함부로 쓴다고 고발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비가 왔어!”

 

가뭄은 땅을 마르게 하고, 가축을 마르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도 마르게 한다. 2006년 세계의 언론들은 심한 가뭄 때문에 인도와 호주에서 자살을 하는 농부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가뭄으로 수십 년 동안 일궈온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부들 중에는 가족 해체, 알코올 중독, 그리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다. 이웃이 있어야 위로라도 받을 텐데 차를 타고 10분 이상 가야 집 한 채를 만날 수 있는 넒은 땅덩어리에서 이웃과 마주하는 것은 비를 맞을 기회만큼이나 뜸하다.

 

그나마 인버럴에서는 지역 주민들과 라이온스 클럽 같은 민간단체들 그리고 지역 정부가 전직 농부를 포함한 퇴직자들과 일을 하며 이웃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8월 16일에는 멘스 쉐드(Men’s Shed)가 문을 열기도 했다. 쉐드(Shed)는 보통 가축 우리나 창고를 뜻하는 말인데 목축을 많이 하는 호주 사람들에게는 아주 친근한 말이다. 멘스 쉐드는 주로 남성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다. 특별히 남자들을 위한 공간을 연 이유는 여자들은 뜨개질 모임같이 참여할 수 있는 취미 모임이 많지만 남자들은 별로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옛날에 양털을 가공하던 건물을 수공 작업장으로 개조한 멘스 쉐드에서는 누구든지 와서 이미 준비된 도구와 장비를 이용해 간단한 가구나 공예품 등을 만들 수 있고, 사람들과 편하게 어울릴 수 있다. 멘스 쉐드가 처음 문을 연 날 찾아온 할아버지들은 모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목장에서 보호하는 땅. 쇠 울타리 오른쪽에는 앞으로 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나무를 심고, 풀들이 자라게 해서 비가 오면 물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했다.

 

지독한 가뭄 앞에서 호주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채소 씻은 물을 다시 쓰고 설거지물을 아낄 수는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비가 오는 것일 거다. 그래서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비를 부르고 빗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길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요하네스와 친구들은 작년에 냇물 주변에 나무를 심고, 돌과 나뭇가지를 가져다 놓았다. 척박한 땅을 기름진 땅으로 바꾼 것으로 유명한 호주 농부 피터 앤드류의 충고를 따른 것이다. 그렇게 하면 물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것을 막고, 주변에 습지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냇물 주변에 쇠 울타리를 쳐서 소들이 들어가 풀을 먹거나 오염시킬 수 없게 했다. 냇물 주변만이 아니라 목장 땅 몇 곳에 쇠 울타리를 쳐서 소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나무를 심었다. 요하네스가 살고 있는 지역의 사람들은 함께 힘을 모아서 작년에 3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올해 비가 오면 5만 그루의 나무를 더 심을 계획이다. 요하네스의 말을 들어보니 비구름은 나무가 많은 곳에서 잘 만들어지고, 지나가던 구름이 비를 떨어뜨릴 확률도 나무가 없는 곳보다 70% 이상 높다고 한다. 이런 노력들은 물론 최소한 십 년 이상 지나야 효과를 조금씩 볼 수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9월 초, 인버럴에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비가 왔어!”

“그래? 잘됐다! 얼마나 왔어?”

“응, 9㎜ 정도 왔어… 그래도 많이 온 거야.”

 

전화를 끊고 잠시 생각을 해봤다. 호주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서 좀 씁쓸했다. 숲은 계속 파괴되고 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농법보다는 자연을 정복하는 농법이 더 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땅과 가축, 사람들이 메말라 버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는 걸 막기 위해 작은 둔덕들을 만든 목장의 언덕.

 

멘스 쉐드 개소식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