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2호 2008년 가을 [특집] 물이야기

[ 물 맛의 비밀 ]

전통식품의 色색/香향/美미를 살리다

글 박현숙

 

 

장이 우리네 밥상에서 든든한 기본으로 자리매김해 왔다면 술은 흥취와 신명의 예술과 대동의 마당에 빠지지 않았고, 차는 담박한 사교와 명상의 자리를 만들었다. 이들 전통식품의 깊은 색, 향, 미를 살려주는 것이 바로 물이다. 하여 전통식품의 면면을 기록한 고서에서는 물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으뜸으로 꼽는 것은 땅속에서 솟아오르는 샘물이다. 샘물은 바위 사이로 흘러나오는 것을 좋은 물로 쳤는데 산맥이 구불구불하고 그 맥이 끊이지 않아서 물이 곧게 흐르지 않고 흘러서 바위 사이를 돌아 돌 사이에서 솟아 나와야만 한다고 했다. 그 다음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우물물로서 장수촌에서는 으레 좋은 우물물을 만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우물가에 향기로운 나무나 약이 되는 나무를 심어 그 액이 물에 스미도록 함으로써 물을 관리했다.

 

음식맛은 장맛, 장맛은 물맛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전통 장은 자연과 인간의 합작품이다. 콩, 물, 소금, 숯, 항아리, 햇빛 등에 사람의 정성이 조화를 이룰 때 장은 완성된다. ‘음식맛은 장맛’이라는 말처럼 장은 음식의 맛을 제대로 살려주는데 그 옛날 가정에서는 ‘장이 달면 집안에 복이 든다’, ‘장맛이 변하면 집안에 흉조가 든다’고 할 정도로 장 담그기에 신중을 기했다. 장의 주재료는 메주, 소금, 물인데 물은 메주와 소금이 잘 어우러져 발효하는 것을 돕는다. 물속의 용존 산소량과 각종 미네랄은 발효균이 성장하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조선 초 성현이 지은 「용재총화」에는 이행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물맛을 잘 분별하기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이행은 충주의 달천수(達川水)를 으뜸으로 삼고 금강산에서 나와 한강으로 흐르는 우중수(牛重水)를 두 번째로 삼았으며 속리산의 삼타수(三陀水)를 세 번째로 삼았다. 이 가운데 속리산 샘물은 세조가 피부병을 다스리기 위해 머물렀던 것으로도 유명한데 충북 보은 보성 선씨 영흥공파 21대 종부 김정옥(52세) 씨는 이곳에서 발원하는 지하수로 지금도 해마다 장을 담근다. 이는 대를 이어온 방법이며 선대 종부의 대물림 손맛을 이어받은 그의 장은 깊은 맛과 향으로 이름이 높다. 그는 “우리 집 지하수는 아무리 가문 해에도 마른 적이 없으며 수질조사를 해보면 1급수로 판명됩니다. 맛이 달고 시원해요. 속리산이 품고 정제한 물은 장맛을 완성하지요”라고 말한다.

 

예부터 장을 담그는 아낙들은 좋은 물을 가려 썼는데 그 문화는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장 담그는 물은 감천(甘泉), 곧 샘물이나 강심(江心, 강의 중심)의 물을 큰 솥에 받은 후 맑은 윗물을 사용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삼성리에 있는 수진원(修眞園) 농장의 정연수(57세) 씨는 지하 200m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로 장을 담근다. 좋은 물에 직접 재배한 국산 콩, 3년 이상 묵혀 간수를 완전히 뺀 천일염으로 만드니 장맛이 빼어나다. 궁중요리 연구가 고 황혜성 씨가 이곳에 장독을 놓아 달라고 하기도 했다.

 

물은 장을 만드는 직접적인 재료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장을 담는 숨 쉬는 그릇, 옹기의 미세한 공기구멍을 관리하는 구실도 한다.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장독이 더러우면 장이 사나우니 하루 두 번씩 독을 냉수로 정히 씻기되 독전에 물기가 들어가면 벌레가 나기 쉬우니 조심하여라’라고 쓰여 있다. 우리 어머니들은 매일 아침 맑은 샘물을 길어 장독대에 가서 장독을 닦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깨끗이 독을 닦아 이른 아침에 내리는 이슬을 맞도록 했으며 낮 동안에는 장독뚜껑을 열어 햇볕을 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장맛에 기울이는 정성은 이렇듯 지극했다.

 

 

 

 

 

 

차의 몸이라 일컫는 물, 비움의 덕을 갖춰야

 

차를 끓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물이다. 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차라도 물이 좋으면 어느 정도 맛이 좋다. 초의선사는 「다신전(茶神傳)」에서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체(體)이나 진수(眞水)가 아니면 그 신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여 예부터 다인들은 좋은 물을 구하기 위해 많은 노력과 경비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다면 초의선사가 말하는 차를 위한 진수는 무엇일까. 뭔가 좋은 것이 듬뿍 담기고 독특한 맛이 있을 것 같은데 차를 위한 최고의 물은 정작, 맛과 향기가 없는 것이다.

 

방대한 차의 세계에서 그 맛을 보고 감별해내는 일을 하는 품명가 손성구(46세) 씨는 찻잎의 냄새와 차가 발산하는 차기(茶氣)만으로도 원산지를 알아맞히는 실력으로 이름이 높다. “좋은 차는 물과 같습니다. 차에서 물맛은 차맛을 좌우하는데 방아다리약수나 초정약수처럼 강한 물은 차맛을 해칩니다. 천연 탄산가스 등 약 성분이 들어있는 약수는 오래 마시면 병을 낫게 하기도 하지만 차를 끓이기에는 적당하지 않아요. 태백 검용소 물처럼 특징이 없어야 해요.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남을 드러내는 물의 덕을 갖추어야 차맛을 한층 높여줍니다.” 손성구 씨는 차맛을 살려주는 물을 찾기 위해 전국을 찾아 헤맸는데 그가 맛본 경험에 의하면 경기도 양주군 운길산 수종사(水鍾寺)의 석간수, 지리산 칠불사(七佛寺)의 물, 경남 창원 우곡사(牛谷寺)의 물, 강진 다산초당 옆의 샘물, 전주 송광사(松廣寺)의 물이 좋았다고 한다. 아쉬운 것은 송광사 물은 하늘의 은택으로 내린 샘물이란 뜻으로 명산이나 대찰에 드물게 있는 ‘영천(靈泉)’이었는데 근래 누가 수맥을 건드렸는지 물이 안 좋아졌다고 한다.

 

좋은 물을 구하지 못하였어도 양수(養水)를 하면 차맛을 낼 수가 있다. 옹기 독을 두 개 준비해서 각각에 깨끗한 왕모래와 작은 자갈, 숯을 넣고 첫 번째 항아리에 물을 부어 침전시키면 물이 맑아지고 맛도 좋아진다. 이 물을 흔들지 않고 가만가만 퍼서 두 번째 항아리에 옮겨 침전시킨다. 첫 번째 항아리 속 모래와 자갈, 숯을 꺼내 깨끗이 씻어서 다시 넣고 두 번째 항아리에 있는 물을 다시 첫 번째 항아리로 옮겨 침전시킨다. 이렇게 번갈아 서너 번 하면 찻물로 적합하다. 황톳물을 가라앉혀 만드는 지장수도 찻물로 괜찮다.

 

 

물맛 좋은 곳이 술맛도 좋더라

 

영남 일대에서 손꼽히는 대지주 집안인 최부잣집. 이 집안에서 수대에 걸쳐 빚어온 술이 명주로 꼽히는 경주 교동 법주(法酒)이다. 조선 숙종 때 궁중음식을 관장하는 사옹원의 참봉으로서 임금의 수라상을 관리하는 실무를 했던 최국준이 낙향하여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법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바로 지금도 집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우물물이다. 이 우물물은 예부터 물맛이 좋기로 이름이 나 찹쌀과 누룩 외에 다른 부재료나 첨가물을 전혀 넣지 않은 순곡주를 명주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조선 중엽부터 만들기 시작한 서울 송설주(松節酒)는 지하수에 소나무 순과 마디 등을 넣고 끓여서 식힌 후 물만 걸러서 담근다. 멥쌀, 찹쌀, 누룩에 당귀, 진달래꽃, 국화, 유자껍질, 솔잎이 들어가 송설주의 향기는 그윽하게 가슴을 채운다.

 

평양 근처에서 빚어왔다는 문배주는 은은한 황갈색의 문배 향기가 나는 소주이다. 특이한 것은 문배를 전혀 넣지 않지만 문배 향기가 난다는 것이다. 찐 좁쌀에 누룩, 수수밥으로 만드는데 해방 전에는 대동강 유역의 석회암 층에서 솟아나는 지하수를 사용했다고 한다.

 

진달래꽃을 넣은 두견주(杜鵑酒)는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이 원인 모를 병에 걸리자 딸이 백일기도를 드려 신선으로부터 제조법을 얻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아미산 두견화와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의 물로 빚어 100일이 지난 다음 마시라’는 신선의 예시에서 술을 빚을 때 물을 귀히 여겼음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조용헌 저 「방외지사」, 석용운 저 「차생활 입문」, 한복진 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이성우 저 「한국식품문화사」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