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2호 2008년 가을 [특집] 물이야기

[ 물 오염의 주범 ]

공장식 양식과 축산이 물을 흐린다

글 엄은희

 

얼마 전 아이와 함께 찾은 극장에서 ‘지구(Earth)’라는 영화를 봤다. 다큐멘터리계의 스필버그라고 찬사를 받는 알래스테어 포더길 감독의 작품답게 북극에서 남극까지 오랜 기간 공들여 촬영한 아름다운 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졌고, 더불어 그 자연 세계가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음도 명징하게 보여졌다. 영화의 첫 장면은 우주에서 촬영된 지구였는데 말 그대로 푸른 보석(Blue Marble)인 지구 너머로 태양이 솟아오르며 지구의 환한 면적이 점점 넓어지는 것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지구가 우주 공간에서 눈에 띄는 푸른 보석으로 빛날 수 있는 것은 지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물의 존재 덕분일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목숨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불가결하게 물이 필요하다. ‘돈을 물 쓰듯 한다’는 표현도 있듯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는 아주 손쉽게 물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편의점 냉장고 선반에서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를 사 마시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더 나아가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네’, ‘해양심층수네’, ‘미네랄이 살아있네’ 하며 최고의 모델을 내세운 물 광고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은 현대인들을 유혹하고 있는 지경이다.

 

수돗물을 믿지 못하고 나아가 브랜드 생수를 구매함으로써 ‘구별짓기’를 추구하는 이면에는 물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이 숨어있다. 여기에는 정수시설을 통과하며 투여되는 각종 화학물질들에 대한 불신도 존재하지만, 그 근원에는 가장 낮은 곳을 흐르는 물에 온갖 종류의 오염물질이 녹아들었을 것이라는 불안도 존재하는 듯하다.

 

 

쇠고기는 단지 소비되는 상품에 불과하다?

 

지난봄 한국 사회에는 온통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논란이 가득했다. 대부분의 논란은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인 결과 발생한 인수공통전염병인 광우병에 한국인의 식탁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열린 촛불집회에 대해서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추구하는 ‘중산층 담론’의 덫에 갇혀 더 이상의 이슈 확산이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토로 되기도 했다. 오늘은 좀 더 구조적인 문제로 들어가 공장식 축산과 양식업에 대한 문제를 살펴보고 더불어 이것이 생명의 근원인 물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지난번 큰 논란이 일었던 광우병도 문제지만 한국인들은 매해 봄마다 조류독감으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고, 여름이면 바닷물 온도 상승과 적조현상으로 인해 양식어류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도 종종 접하게 된다. 이런 뉴스를 접할 당시에는 시장에서 해당 물품을 구매하는 것이 꺼려지기는 하지만, ‘설마 나에게…’ 하는 심리는 까마귀고기 먹듯 두려움을 망각의 늪으로 밀어버리고 습관적인 구매행태를 지속하게 만든다. 이미 산지에서 식탁에 이르는 길은 한없이 멀어지고 추상화되어 버려서, 손질되어 작은 포장용기에 들어있는 상품과 살아있는 소, 돼지, 닭, 물고기를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까닭이다. 우리는 이미 집 마당에서 소, 돼지, 닭, 염소 몇 마리를 키우고 세월과 함께 고기를 낚는 어부가 있는 과거의 목가적인 풍경을 오래전에 잃어버렸고, 우리가 섭취하는 고기의 대부분은 공장이나 다름없는 축사와 양식장 에서 처음부터 상품으로 키워지고 있다.

 

공장식 축사와 양식장이 가져오는 환경적 위해는 다양하다. 우선 공장식 축산이 불러오는 환경문제는 메탄가스의 방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분뇨로 인한 수질 오염, 사육동물의 증가로 인한 자연 생태계 축소, 막대한 곡물 소모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가축의 대량 사육으로 생기는 분뇨는 하천과 호수의 수질오염의 주범인 ‘빅쓰리(공장, 가정, 축산 폐수)’ 가운데 하나로 지목될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에 기여하는 탄산가스의 가장 큰 생성원이라고 한다. 가축은 인류의 10배 정도의 분뇨를 만들어내는데, 미국에서 한 해 동안 배출된 가축의 총 분뇨량은 20억 인구의 한 해 배출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러한 분뇨는 또한 물을 과잉영양화시키는 질산성 질소(NOX-N)의 주요 배출원으로, 가축을 가둬 기르는 집약식 사육방법과 기업농은 이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미 세계 여러 나라의 목장 부근 지하수와 지표수가 심하게 오염돼 있다.

 

내륙의 호수와 연안 바닷가에서 성업 중인 수산양식업도 마찬가지이다. 2004년 쓰나미 참사로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20만 명에 달하는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었을 때에도 새우양식을 위해 해안 망그로브를 제거한 곳의 피해가 더욱 심각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새우의 상당수가 일본, 한국, 홍콩 등 동아시아의 비교적 잘사는 나라들로 수출된다는 것은 일부러 모른척하는 것 마냥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양식장의 새우나 물고기 생산량 관리를 위해 엄청난 양의 항생제와 살균제를 사용함으로써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태계와 더불어 사는 친환경 웰빙이 진짜 웰빙

 

지난 촛불정국 중에 ‘미친소’라는 표현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소가 미친 것이 아니라 소를 그렇게 만드는 공장식 축산이, 나아가 인간의 탐욕이 미친 것이라 지적하는 것인데, 매우 타당하고 여러 모로 생각해야 할 바가 아닐까 싶다. 소나 돼지, 닭이나 물고기들이 처음부터 그런 삶을 선택했을 리는 만무하니 인간사회가 구조적으로 그런 삶을 뭇 생명에게 강요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찰은 안중에도 없이 내 몸과 내 가족의 건강만을 소중히 여겨 값비싼 생수와 유기농 식품만을 탐닉하는 것은 쉽게 깨질 수 있는 유리병 안의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먹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고 에너지를 확보하는 행위가 아니라 나의 물질적 존재와 정신적·사회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행위이며, 대단히 복잡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생태적 관계망 속에 스스로를 정치시키는 행위이다. 정말로 의식 있는 소비자라면 내 가족의 건강 챙기기에 급급한 ‘속 좁은 웰빙’ 말고, 생태계와 물의 건강을 자신의 건강과 연계시켜 사고할 수 있는 ‘더불어 웰빙하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죽이기 전에 동정을(Compassion Over Killing :COK)’

 1995년 동물권리 운동가 폴 샤피르(Paul Shapiro)와 박미연 씨는 공장식 농장에서 고통받는 닭들을 탈출시키는 활동을 시작합니다. 이름하여 ‘암탉 일병 구하기’. 미국의 주요 신문에서 이 단체를 널리 알리게 됩니다. A4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닭들은 오로지 달걀을 생산하는 기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미국식 농업 산업화(공장농업)는 이미 실패했습니다. 미국으로부터 교훈을 삼아야 합니다. 동물들이 먹어대는 엄청난 사료(일부만 써도 굶어 죽어 가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와 수질오염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문제점이 너무 많습니다.

 

 

 

 

 

 COK에서 발행하는 잡지들(www.cok.net)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