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2호 2008년 가을 [특집] 물이야기

[ 물의 위기 ]

물, 우리 모두의 물

글 정규호

물은 생명의 기원이자 생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다.

우리 몸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1~2%만 부족해도 심한 갈증을 느끼고 5%가 부족하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10% 이상 부족하면 생명을 잃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생명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상 변화와 기후 유지, 그리고 식량 생산에 있어서도 물은 필수적인 요소다. 인류의 고대 문명들이 공통적으로 거대한 강을 중심으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나, 외계에서 생명의 존재를 찾을 때 우선적으로 물의 흔적을 탐사한다는 점을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물은 생명이다.

 물에 대한 국가 권력의 개입

 

물 부족에 따른 위기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물의 행성’이라는 지구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생뚱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구 전체의 물 중에서 인간을 포함한 육지 생물들이 이용 가능한 물은 1%에도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물은 필요한 시점에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양만큼 깨끗한 상태로 공평하게 제공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물이 시공간적으로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은 결국 물을 차지하고 이용하는 과정에 현실을 지배하려는 힘의 논리가 치열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옛말에도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고 했다. 인류 문명사에서 물은 일찍부터 단순한 자연 자원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자원이자 정치·경제적 자원으로 활용되어 왔다. 전통 농업 사회에서 물 관리는 통치의 핵심 영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근대 국가의 형성과 도시화, 산업화 과정에서도 물의 관리(생산, 분배, 이용)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제였다.

 

우리나라 역시 1960년대부터 근대국가의 발전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시키면서 국가 권력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물 관리 체제를 만들어나갔다. 대규모 다목적 댐 건설은 국가 권력과 과학기술의 결합을 통한 근대화 프로젝트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도시화와 산업화를 뒷받침하는 식수와 산업용수를 확보하고 에너지를 생산해냈다. 이 과정에서 공권력을 앞세운 ‘국책사업’으로 순식간에 삶터를 잃어버린 수몰민들의 처지나 대규모의 생태계 파괴에 대한 고려는 ‘국익 우선’ 논리 앞에 거론조차 어려웠다.

 

우리는 이러한 희생을 대가로 지난 세기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을 해왔으며, 이것을 소위 ‘한강의 기적’으로 부른다. 하지만 성장의 빛이 화려했던 만큼 이로 인한 그늘도 짙을 수밖에 없었다. 인공적으로 물길을 가두고 돌리고 메워가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성장 방식의 부작용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표면화되었다. 물이 오염되면서 땅도 먹을거리도 오염되기 시작했다. 1970년대 말부터 한강에 등이 굽은 물고기가 출현하는 등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초부터는 낙동강 페놀오염 사고와 수돗물 오염물질 검출 사고가 연이어 나타나는 등 먹는 물 오염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게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연간 수조 원의 예산을 들여 물관리를 위한 종합대책을 세워서 담당 기관과 부서 조직들을 확대·성장시켰지만 실질적인 개선 효과는 미미했다. 따라서 물 문제에 높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시민사회 영역과 정부는 곳곳에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국가 중심의 기존 물 관리 체제에 균열이 나타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도시화, 산업화를 앞장서서 추진해온 국가들의 공통 현상이기도 했다.

 

 

물 부족 시대의 등장

 

21세기를 맞아 인류는 ‘물의 오염’이라는 질적 차원의 문제를 채 해결하기도 전에 ‘물 부족’이라는 양적 차원의 거대한 문제도 맞닥뜨리게 되었다. 물 부족에 따른 복합적인 위기 상황의 등장은 지속가능한 인류의 미래에 중대한 위협 요소가 되고있다.

  

현재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된 데는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현상에 영향 받은 바 크다. 지속적인 인구 증가와 도시화, 산업화로 사용량은 급증하고 있으나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상 체계의 변동으로 물의 순환체계가 교란되면서 공급은 오히려 더 불안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유엔에서는 향후 20년간 세계의 물 소비가 두 배가량 늘어나는 반면 1인당 평균 물 공급량은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세계수자원위원회는 향후 25년 내에 식수난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재앙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미 세계에서 하루 5천 명 이상이 물부족으로 숨지고 있는데, 이는 승객을 가득 태운 여객기 12대가 매일 추락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극단적인 비유까지 하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물의 위기 상황에 있어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연평균 강수량이 세계 평균보다 조금 높지만 강우량이 계절별로 편중되어 있고, 1인당 강수량은 세계 평균의 약 12%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물 소비는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소비와 생산 양식의 변화

 이러한 물 부족 사태가 일어나게 된 데는 인구의 양적 증가 외에도 도시 소비자들의 생활양식과 농촌 생산자들의 생산양식의 변화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도시 중산층의 식생활 패턴 변화로 육류 소비가 늘어나면서 축산업을 뒷받침하기 위한 물 소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다 최근에는 석유 자원의 고갈에 따른 대체에너지로 바이오연료가 주목받으면서 연료작물 생산을 위한 물소비량도 급증하고 있다. 세계 물 사용량 중 70%가 농업용수라는 점에서 물의 과용과 남용을 부추기는 대규모 산업농의 등장은 물 위기의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연 상태의 강우에 의존하던 농업방식에서 벗어나 생산성 증대를 위해 관개와 지하수 개발, 품종개량, 농기계 사용 등이 크게 늘어나면서 물의 순환체계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물 부족 사태가 현대인들의 일상적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생태학적 테러’의 결과물이라는 반다나 시바의 지적이 설득력을 가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물은 석유와 달리 대체재나 보완재가 없어 부족 사태가 가져다 줄 충격과 파장은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 20세기에 국제 간 분쟁의 원인이 석유에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물에 있을 것이라고 세계경제포럼이 경고하고 나설 정도다. 더구나 물이 가진 특성을 고려할 때 절대적 부족 상황이 오기 전부터 상대적 부족으로 인한 긴장과 갈등, 충돌이 더욱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세계 가용 수자원의 약 60%가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의 10여 개 국가에 몰려 있으며, 전 세계 300여 개가 넘는 강이 두 개 이상 국가의 국경을 넘어 흐르고 있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편중되어 있는데다 길을 따라 흐르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물을 누가 관리하고 이용하느냐를 둘러싸고 치열한 힘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시리아·팔레스타인 3국의 수원인 요르단강의 경우 일찍이 수원지 확보를 둘러싸고 1967년 중동전쟁이 발발했던 곳으로, 물 문제가 중동 지역을 또 다른 화약고로 만들어가고 있다. 터키·이라크·시리아가 공유하고 있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이집트·수단·우간다 등 아프리카 동북부를 흐르는 나일강 유역 역시 물을 둘러싼 국가간 긴장이 상당하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등 12개국 이상 영토를 관통하는 다뉴브강이나 인도·방글라데시 접경의 갠지스강 역시 마찬가지다.

 

물 이용을 둘러싼 갈등은 지역 차원에서도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팔당 상수원 지역과 수도권 지역, 위천공단 조성을 둘러싼 대구와 부산 지역 간 갈등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시민사회 간에도 물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동강 영월댐 건설과 한탄강댐 건설을 둘러싼 갈등에서부터 최근의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둘러싼 갈등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토목사업을 통해 공급주의 방식으로 물관리를 하려는 정부 측과 그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민사회 영역이 계속 충돌하고 있다.

 

 

블루 골드의 출현

 

기술 관료와 토목 건설업체들이 주도하는 대규모 댐 건설과 광역 상수도망을 통한 물 공급체계는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에 밀착하게 된다. 그만큼 시민들의 물에 대한 접근성과 자율적 관리 역량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에는 국가 주도 물관리 조직의 비대화, 권력화, 비효율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장의 논리가 깊숙이 개입해 들어오고 있다. 국가 차원의 물관리 정책의 실패와 시민들의 불신이 물의 시장화를 향한 길을 터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의 경우만 보더라도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물관리 정책을 펼쳤으나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시민들이 1%에 불과할 정도로 불신이 높고, 연간 30% 이상 폭발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정수기 시장과 샘물 시장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한때 공경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물은 공권력에 기반한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가 이제는 시장 속에서 경제적 가치로 거래되는 상품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물 관련 상품을 취급하는 다국적 기업에 투자하는 물 펀드가 등장하여 운용규모가 세계적으로 50억 달러에 이르는가 하면, 호주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권처럼 물 사용권을 시장 속에서 거래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네슬레와 같은 세계적인 생수업체들은 물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을 대상으로 물 시장 개척에 몰두하고 있으며, 코카콜라나 펩시 같은 다국적 음료회사 역시 생수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미 세계에서 물 기업을 통해 급수를 받는 인구가 6억 8천만 명에 이른다.

 

이처럼 지구적인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는 물 부족 사태에 직면하여 나타나고 있는 물의 시장화는 물과 권력의 관계에서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물이 상품화된 소위 ‘블루 골드’ 시대가 등장하게 되면 결국 물의 공공성은 상실되고 가격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물 이용으로부터 구조적으로 배제될 수 있다. 따라서 물을 독점하거나 사유화하는 행위는 자연에 대한 약탈일 뿐만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물과 민주주의

 

물은 통치 권력이 독점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며 이윤 추구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물은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지키고 보호해야 할 공동의 자산으로, 물의 이용은 신분과 계급,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할 인간의 기본 권리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라는 점에서 물이 순리대로 흐르지 않고 돈과 권력을 따라 거꾸로 흐른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다. 따라서 자연적인 물의 흐름과 생태적 특성을 고려하면서 민주적이고 분권화된 물관리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근래에 들어 국가와 시장을 넘어 공유 자원인 물을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공동관리(co-management) 하는 방안이 생태학적으로나 민주주의적으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마을’ 단위 별로 ‘공동의 물’을 자율적으로 관리해 오던 방식들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새롭게 복원하려는 노력들이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의 위기 시대를 맞아 이제는 바쁜 걸음을 멈추고 경쟁을 통한 생태학적 파국과 공멸의 길에서 벗어나 공존과 상생의 새로운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만큼 자연과 접하는 생산 현장에서 그리고 살림살이 생활 현장에서 물 부족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들부터 문제 해결의 주체로 적극 나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 측면에서 물이 권력에 줄 수 있는 교훈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물은 흐르다 산을 만나면 휘감아 돌고 벼랑을 만나면 폭포가 되어 흐른다. 물은 흐르다 빈 곳을 만나면 채워 나가고 가두면 넘쳐 흐르면서 없는 길도 새로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물이 가지는 유연하고 창조적인 힘이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세상에 어떤 것도 물보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없지만, 단단하고 센 것을 뚫는 데 물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고 했다.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민들로부터의 요구를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합리화한다면, 또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사회적 자원을 지속적으로 낭비한다면 문제해결의 적정 시기는 결국 물 건너갈 수 있다. 물은 권력 가진 자에게 겸손의 리더십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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