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호 2008년 겨울 살림,살림

[ 권복기의 '살림의 창' ]

명상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글 권복기

 

명상은 쉼입니다. 몸은 물론이고 마음과 정신까지 쉬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닌 에너지는 몸을 움직일 때뿐 아니라 마음과 정신을 사용할 때도 쓰입니다. 그런 점에서 휴일이나 저녁 때 소파에 누워 리모콘을 들고 이 채널 저 채널 옮겨가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제대로 된 쉼이 아닙니다. 명상은 더더욱 아니지요. 명상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몸과 마음과 정신이 함께 쉬도록 하면 됩니다. 몸을 쉬는 것은 쉽습니다. 자신이 편안한 자세를 취하면 됩니다. 바닥에 앉아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거나, 편하다면 무릎을 꿇고 앉아도 됩니다. 의자에 앉거나 심지어 누워도 됩니다.

 

 

요가에서는 반듯이 누운 자세를 주요한 동작(아사나)의 하나로 보아 이를 ‘송장 아사나’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어떤 분들은 누구나 편해 하는 그 자세를 힘들어합니다. 몸이 좋지 않으면 그럴 수가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아니라면 몸을 쉬는 것은 말 그대로 쉽습니다.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으면 일단 명상에 들어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마음과 정신을 쉬게 하면 됩니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명상을 해보신 분들은 마음과 정신을 쉬는 어려움을 아실 겁니다. 고요히 앉아서 쉬고자 하면 정신과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 움직임은 한번 시작되면 겉잡을 수 없습니다.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일과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까지 정신과 마음이라는 놈은 다 관여합니다. 참 오지랖이 넓기도 하지요. 잃어버린 우산과 먹다 남긴 과자 조각까지 생각납니다. 머릿속에서 우주가 창조되기도 합니다. 정신이 그렇게 휘젓고 다닐 때마다 우리의 마음 에너지도 함께 쓰입니다. 정신이 만들어낸 상황에 따라 감정도 일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태는 명상이 아닙니다.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과 정신이 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명상을 할 때는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 마음과 정신을 붙잡아 두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씁니다. 경을 읽거나 옴마니밧메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등과 같은 주문을 외우는 게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화두를 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널리 쓰이는 방법은 숨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몸에 드나드는 숨에 의식을 집중함으로써 정신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부처님께서 「대안반수의경」과 「대념처경」에서 설하셨다고 하는 아나파나사티도 들숨과 날숨에 마음을 두는 것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특히 혼자서 명상을 하기에는 숨을 매개로 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부작용도 거의 없습니다. 한번 배워볼까요. 먼저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심호흡을 몇 차례 합니다. 날숨은 길고 편안하게 내쉬면서 그때 몸에 힘을 다 뺀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 몸에 긴장이 풀립니다. 다음으로 내쉬는 숨에만 마음을 둡니다. 숨이 들어올 때는 잡념이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들어오는 숨은 자연스럽게 두고 내쉴 때 길고 편안하게 내쉬면서 마음의 눈으로 꼬리뼈를 바라봅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꼬리뼈 앞쪽, 여성의 경우 자궁 자리이지만 쉽게 꼬리뼈를 바라본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숨이 가쁘거나 불규칙적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차츰 숨결이 고르게 됩니다. 잡념이 떠오르면 다시 날숨을 길고 편안하게 내쉬며 마음의 눈으로 꼬리뼈를 바라봅니다. 연습을 하다 보면 잡념이 차츰 사라짐을 알 수 있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거나 피로가 많이 쌓인 분들은 이렇게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집니다. 잠자리에 누워 이렇게 하면 숙면에 도움이 됩니다. 장거리 여행을 할 때에도 좌석에 앉아 이런 명상을 하면 피로가 덜 쌓입니다.

 

 

명상은 생활 속에서도 가능합니다. ‘생활명상’은 몸은 움직이되 마음과 정신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절 명상, 걷기 명상, 춤 명상 등이 그런 형태의 명상에 속합니다. 생활명상을 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마음을 모으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는 일에만 마음을 두고, 설거지를 할 때는 설거지에 마음을 두며, 걸을 때는 걷기에만, 누구와 대화를 나눌 때는 그 사람과의 대화에만 마음과 정신을 쏟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행동을 떠올리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에 들고 있을 때 옆에서 누가 뭐라 불러도, 심지어 불이 나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처럼 틈틈이 시간을 내어 몸과 마음과 정신을 쉬고 또 생활 속에서 명상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가슴속에서 행복감이 솟아나고 엉클어진 일을 헤쳐 나가는 지혜가 생기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명상은 평화로움과 행복감을 줍니다. 하지만 명상을 열심히 잘하는 사람들도 일상에 돌아가면 지옥을 경험합니다.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들과 싸우고 화내고 그들을 미워하게 됩니다. 명상을 할 때 경험한 평화로움 때문에 현실의 어려움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농담처럼 ‘산으로 가고 싶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옵니다.걱정하지 마세요. 그런 마음은 더 높은 단계의 명상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됐다는 신호입니다. 이때 큰마음을 내야 합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는 일입니다. 우리 자신의 참모습이라니 무슨 소리냐고요? 이때 필요한 것이 성자들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우리 안에 불성이 있고, 우리가 바로 부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동학에서는 우리 안에 한울님이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 하늘을 빼닮은 지고지선한 불멸의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그리스도, 불교에서는 불성, 동학에서는 한울이라고 합니다. 요가에서는 이를 진아라고 하고, 동양의 선도에서는 하늘사람, 진인, 금선 등으로 부릅니다. 모두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위대한 존재들입니다.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세상에서 겪는 일에 크게 집착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로, 부처로, 한울님으로, 하늘사람으로, 진인으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베풀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사는 일이지요. 이는 나보다 다른 사람이 더 잘되기를 바라고, 만나는 모든 존재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며, 우주의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을 지니고 살 때가 바로 최고의 명상을 하는 상태입니다. 내가 완전한 존재이니 근심걱정이 없고, 나보다 다른 존재를 앞세우니 늘 평화롭기만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훌륭한 명상은 없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이들, 그런 마음으로 명상을 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바로 이 땅이 천국이요 서방정토가 될 것입니다. 명상의 목적은 나뿐 아니라 모든 존재가 행복한 바로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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