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호 2008년 겨울 살림,살림

[ 땅땅거리며 살다 ]

나는야, 돈기호테 농부

글 윤선혜 사진 류관희

 

전라북도 부안에 자리한 ‘산들바다공동체’의 김수원 생산자. 수줍게 웃으면서 살짝 쳐다보는 그의 눈빛에서 왠지 모를 힘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저를 돈키호테라 불러요.” 실제로 그는 올바른 제언을 고집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뚝심으로 모든 것을 밀고 나가기 때문이다.

 

 

농업이 자꾸 위기를 맞는다고 하는 이 시대에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농부로 산다는 것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농사를 짓고, 공동체를 나와 우리를 생각하고,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행복하지요.” 농부란 그에게 있어 존재의 실현이다. 농사는 세상에 태어나 의미를 두고 힘써 할 수 있는 일이라 믿기에 열심을 낼 수밖에 없다. 농사는 바른 세상을 이 땅에서 이룩하는 것이요, 생각과 생활에서 한울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다.

 

 

제철 채소 가을냉이와 시금치

 

 

요즘 김수원 생산자의 집은 제철 채소인 가을냉이와 배추를 출하하느라 바쁘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작업하다가 학교에서 아이들이 오면 함께 거들어야 할 정도로 분주하다. 가을냉이는 12월 초부터 공급되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어렸을 적부터 먹던 거예요. 여긴 날씨가 따뜻하니까 가을 들녘에 자란 것을 뜯어다 무쳐 먹기도 하고 된장국도 끓였지.” 냉이를 손질하고 포장하던 분들의 얘기다.

 

가을냉이는 냉이국은 물론 무침, 샐러드, 생채, 튀김, 그리고 약간 고들빼기 같아서 김치로 담가 먹을 수도 있겠다. 남쪽인 이곳은 비닐하우스를 이용하지 않고 노지에서 가을냉이, 시금치, 양배추, 브로콜리, 배추 등을 농사짓는다. 봄냉이에 비해 향은 약간 떨어지나 가을냉이는 잎이 길고 뿌리가 연하며 은은한 향을 자랑한다. 가을냉이는 9월 말에 밭에 파종해 11월 말부터 수확한다. 밭에서 뿌리를 다치지 않게 캐어 흙을 털어 포장한 다음 물류창고로 보낸다. 가끔 아산 지역과 같은 친환경학교급식을 실행하는 곳에서 주문이 있다.

 

노지 생산인 경우, 작물은 자연조건에 민감하다. 제철 채소인 가을냉이는 아침엔 이슬이 있어 캐지 못해 저녁에 캔다. 또 비가 오면 작업을 못한다. 그런데 아무리 남도라 하더라도 밭에서 하루 종일 일하면 춥다. 그래서인지 모두들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있다.

 

김수원 생산자는 냉이 한 봉지를 담으며 ‘이 냉이를 누가 먹을까? 그 소비자는 이 작물을 키워낸 생산자를 생각해줄까? ’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먹는 사람의 생각과 얼굴까지 떠올리게 만드는 직거래의 매력이다.

 

생산지 분배와 선택을 위한 제안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을 위해 한살림사업연합에 건의한 결과 출하하게 된 시금치와 가을냉이. 처음 내는 작물이라 정성을 다해 키웠다. 그래서 소비자의 선호도가 중요하고 궁금하다. 그런데 새로운 물품 재배 건의를 하기가 참 어렵단다. 한살림 안에는 생산지 분배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시금치는 중부권 작물이잖아요. 우린 남부권이고. 시금치는 2009년 2월까지 하우스 재배작물이, 2009년 1월에서 3월까지 노지에서 키운 것이 공급돼요.” 그래서 재배 건의하기가 어려웠다고. 앞으로 이런 면을 고려해 지리적 조건과 기후 등을 생각한 생산지 분배가 이뤄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장기적 안목에서 세우는 물품정책이 필요하다. 이것은 ‘산들바다공동체’의 구성원과 김수원 생산자 그리고 많은 청년생산자들의 희망사항이다.

 

채소는 어떤 의미에서 구색을 갖춰야 하는 면도 있어 여러 작물을 함께 키운다. 브로콜리나 양배추는 벌레가 많아 유기비료 비용도 많이 든다. 생산규격도 지켜야 하고, 출하시기에도 시차를 둬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다. 그러다 보니 키워낸 작물에 대해서는 생산비를 보장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난 김장배추 출하 첫날, 갑자기 내린 눈은 20cm가 넘게 왔다. 내린 눈은 배추 위로 얼음처럼 쌓였다. “사실 겨울 눈은 채소의 이불이라는 말처럼 도움이 되긴 합니다. 그렇지만 다 키워 놓은 배추에 출하 직전 눈이 쌓였으니 애가 탔지요.” 그래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밤에 밭마다 불을 켰다. 불빛을 밝혀 20~30명씩 공동작업을 했다. “그래도 이 지역은 배추가 그렇게 얼지는 않았어요. 당진 지역은 다 키운 배추의 출하를 포기했잖아요.”

 

이처럼 노지재배 농작물은 기후 변화에 민감하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영농일지를 꼼꼼히 기록했다가 파종시기와 비료의 양 등 농사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근거로 활용하지만, 폭설이나 태풍 같은 기후 변화 앞에서만큼은 모두 속수무책이다. 다 키워 놓은 작물을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감내해야만 한다. 자연피해를 대비한 제도적 장치가 절실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수원 생산자는 한살림의 큰 물결 안에서 노지재배와 비닐 멀칭 하지 않은 작물에 대한 이해와 현실적 가격 안정이 이뤄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홍보매체를 통해 소비자의 이해를 높이고 올바른 한살림 정신을 구현해야 하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할 것이다.

 

 

새 세대를 준비하는 청년생산자연합회

 

 

한살림 청년생산자연합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수원 생산자는 청년생산자연합회원들과 한살림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함께 얘기한 여러 의견들을 ‘산들바다공동체’ 식구들은 물론 많은 생산자, 소비자와 나눈다. 사실 한살림은 이제 한 세대를 넘기고 있다. 시대를 앞서 한살림을 만들고 이끌어오던 분들은 어느새 세월의 무게를 안고 저만치 가고 있다. 그분들의 뜻을 받들어 40~50대의 청장년 생산자와 실무자가 뒤를 이어가고 있다.

 

“사실 모두 바쁘잖아요? 그래서 회의 때 관계자료를 제대로 읽고 올 시간이 없어요.” 효과 있는 회의와 실행을 위해서는 현실적인 활동비 책정과 활동을 뒷받침해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회의에서는 개인의 것이 아닌 공동체의 의견을 내야 한다. 그러려면 많은 생산자를 만나고 여러 의견들을 종합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운영시스템으로는 결국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수밖에 없다는 거다.

 

“농사꾼은 자신의 텃밭에 여러 가지 농산물을 키워 언제 소비자가 찾아오더라도 농작물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생산자 공동체별로 텃밭을 운영해야 합니다.” 이것은 청년회에서 나온 의견으로 적극적인 검토 및 발전이 필요하다.

 

한살림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그런 시각에서 기구 구조의 확대 재생산을 위해, 여러 제도들이 더욱 보완 발전되었으면 하는 것도 청년생산자들의 의견이다. 현재 1세대 한살림 생산자는 고령이 되어 가고 있다. 그들이 농사에서 손을 놓을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10년 안에 한살림 생산지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늘어날 겁니다.” 한살림은 그때를 대비해 중장년 생산자에 대한 투자와 구성원 확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래 한국 농업을 위한 투자, 그리고 생산자에 대한 배려 및 지원 육성이 시급하다는 것이 청년생산자연합회에서 나온 의견들이다.

 

한살림 생산자들은 사실 ‘유기농 결사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농산물 유통조직으로 정착돼 가는 한살림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생산자들은 “외롭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한살림 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고 싶어 한다.

 

 

 

 

 

 

생산지 방문과 지역을 위한 새로운 생각들

 

 

김수원 생산자는 ‘산들바다공동체’를 비롯한 여러 공동체와 함께 지역문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마을 개울 옆의 둔덕을 높이고 하천을 만들어 여러 종류의 야생화를 심었다. 문을 닫은 마을 초등학교는 문화공간으로 변신시켜 사진전시회, 풍물놀이터, 아이들 야외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래의 공동체는 마을, 생태공동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마을을 지켜내고 회복해 농촌문화를 발전시키고 싶어요.” 그러려면 도시와 농촌의 교류가 잘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귀향을 한 것이기도 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싶었습니다. 처음엔 갈등이 심했어요. 형님도 반대했지요. 지금은 가족 모두가 저를 자랑스러워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고향에서 하는 행복, 자신의 뿌리가 있는 곳이 점점 변하는 것을 보는 기쁨. 자신이 믿고, 실행하고 싶은 것을 고향사람들과 함께 이뤄나가는 과정이 그저 행복할 뿐이다. 그런 것들이 김수원 생산자가 마을 이장을 맡아 일을 하며 얻는 즐거움이다. 자신은 좋아서 하지만, 가족은 때로 힘들어 한다. 그래서 가끔 미안한 맘도 들지만 올바른 농사를 짓는 것이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을 이루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기에 그 생각을 가족이 서로 나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생산지 방문의 새로운 대안으로 실행해본 생산지 체험 ‘1박 2일’. 결과는 대만족이란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의 삶을 알아가고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그저 좋다. ‘전 생산자의 일터를, 전 소비자의 쉼터로’가 김수원 생산자가 생각하고 있는 핵심이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 전국에 콘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기쁘잖아요?” 사실 이 프로그램의 도입을 두고 걱정하는 시선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하룻밤 함께 먹고 자면 나쁜 일이 뭐 있겠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지금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나의 작물은 나의 영혼

 

 

김수원 생산자에게 자신이 키운 농산물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했다. “그것은 나의 생존수단이며 영혼이라 할 수 있어요.” 농산물은 그에게 극과 극을 조화롭게 형성해주는 것이며 자신이 생태운동을 할 수 있도록 의미와 동력을 주는 행복함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존재하게 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는 순하다. 그래서 그가 키운 농작물들도 순하고 구수하게 맑고 맛있다. “우리 배추는 속이 좀 성글고 벌레도 많아요. 그렇지만 그것이 내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키운 결과입니다.”

 

자신을 잘 따라주는 아내는 그저 고마운 존재다. ‘산들바다공동체’ 구성원들은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며 친구처럼 키운다. 그는 아이들이 예의를 갖춘 사람으로 크기를 희망한다. 때로 아이들이 아빠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그렇지만 김수원 생산자는 자신이 믿는 바대로 살아가려 한다. 순진한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돌진했던 것처럼, 자신을 믿는 사람을 위해 그저 앞으로 갔던 것처럼, 그도 간다. 앞을 향해서. 마을을 지켜내고 농촌문화를 살려내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도시와 농촌의 진정한 교류를 이뤄내기 위해. 그리고 함께 사는 올바른 세상, 한살림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산들바다공동체’ 가족과 한살림 생산자, 소비자와 함께. 누구도 부러뜨리지 못할 강함을 저 부드러운 눈빛 속에 담고 간다.

 

 

 

* <산들바다공동체>는 1990년대 구성된 ‘한울공동체’를 바탕으로 2004년 1월에 재결성되었다. 친환경유기농업의 조직화 필요성과 지역 유기농업 활성화를 목표로 갖고 있다. 현지 분들과 귀농한 분들로 이뤄진 구성원은 15명.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청년생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 변산 지역에 위치해 소비자와의 도시, 농촌 교류 행사 때에는 농촌 체험과 갯벌 체험을 함께 진행할 수 있는 지리적 혜택을 갖고 있다. 다품종 소량 생산원칙을 갖고 있는 공동체의 농작물은 매벼, 녹미, 건고추, 시금치, 단호박, 마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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