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호 2008년 겨울 살림,살림

[ 마음으로 읽는 이야기 ]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글 이철환 일러스트 강신영

 

새해가 되면 생각나는 곳이 있다. 여러 해 전, 설날 저녁에 아내와 딸아이와 함께 갔던 난곡동 달동네 풍경은 지금도 내 가슴에 선연하게 남아 있다.

 

 

난곡동은 서울에 있는 달동네였다. 성냥갑만한 달동네 집들은 비바람에 뽑히지 않으려고 낮게, 아주 낮게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때로는 인생의 사막이나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이 난곡동에 모여 살았다. 난곡동은 시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1970년대와 2000년대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 살았던 달동네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산동네로 오르는 입구에 슈퍼마켓 하나가 있었다. 참치 캔, 김, 사과, 귤, 음료수, 과자, 사탕, 초콜릿…… 커다란 봉지로 여섯 봉지를 샀다. 내가 두 봉지를 들고 아내가 두 봉지를 들었다. 가벼운 두 봉지는 딸아이가 양쪽 손에 들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20분이 넘도록 걸었다. 아내와 나는 입속으로 콧속으로 훅훅 숨을 고르며 언덕길을 올랐다.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고 칭얼대는 딸아이에게 다 왔다고 다 왔다고,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거짓말도 했다. 술 취한 아저씨가 유행가 가락을 구성지게 부르며 달빛 쏟아지는 언덕을 비틀비틀 오르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함께 쓰는 공동변소가 여기저기 보였다. 옹색한 전파사 안에는 먼지 앉은 고물 TV가 가득했고 때 묻은 마네킹이 서늘한 얼굴로 서 있는 허름한 양품점도 있었다. 삼천리 연탄, 대성 연탄이라고 써 붙인 연탄집도 있었다. 고샅고샅 낮은 창가에는 백열등 불빛이 호박꽃처럼 환했다. 고단한 삶도, 심연도, 뼈아픔도, 쓰라림도 모두가 노란 불빛이었다. 그 조그만 불빛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의 비바람과 싸워야 하는 사람들의 비의가 나를 숙연하게 했다. 우리가 가려고 했던 성막교회는 산동네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성막교회 지붕에는 십자가가 없었다. 미닫이 유리문에 십자가가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유리문을 다르르 열고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목사님, 저희 왔습니다.”

“연락도 없이 늦은 저녁에 웬일이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방문 앞에 쪼그려 앉아 구두를 닦고 있던 목사님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방으로 들어갔다. 붉게 녹슨 난로 위에 보리차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순례자처럼 서 있는 낡은 냉장고는 윙윙윙 고추잠자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 커피, 설탕이 방 한쪽에 꼬마병정처럼 서 있었다. 방이 부엌이었고 부엌이 방이었다. 방이 예배당이었고 예배당이 방이었다. 옆에 딸려 있는 조그만 방에서 어린아이들 웃음소리가 까르르까르르 뒹굴고 있었다. 목사님 아이들과 그 동네에 사는 어린아이들이 함께 놀고 있었다. 엄마는 없고 아빠는 지방으로 일을 나가 혼자 지낼 수밖에 없는 아이들도 있었고,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산나물 같은 웃음을 지으며 사모님이 커피를 내오셨다.

 

“죄송해서 어쩌죠? 갑자기 오셔서 드릴 게 커피밖에 없어요.”

미안해하시는 사모님 때문에 커피를 꿀떡꿀떡 마셨다.

 

“설날 선물을 잔뜩 들고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밤 10시가 지날 무렵 성막교회를 나왔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산동네 위에 나있는 도로로 올라갔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백열등 환한 포장마차가 있었다.

 

“배고프다. 그치?”

도깨비 방망이를 두드리며 아내와 나는 여기저기 주머니를 뒤졌다. 천 원짜리 몇 장이 해죽해죽 웃으며 주머니 밖으로 나왔다. 포장마차로 들어갔다. 우동 하나를 시켰다.

 

“오뎅 먹고 싶은데…… 오뎅 먹고 싶은데…….”

어린 딸아이가 눈치도 없이 자꾸만 오뎅을 사달라고 졸랐다. 후덕하게 생긴 아주머니는 막대기 오뎅 하나를 딸아이에게 주었다.

 

“밤이 늦었으니까 꼭꼭 씹어 먹어라. 설날 선물이다.”

아주머니는 따스한 눈빛으로 어린 딸아이를 쓰다듬어 주었다.

 

버스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딸아이는 ‘클레멘타인’을 부르다 내 품에서 잠들었다. 어두운 차창 밖으로 지나온 시간이 불꽃처럼 지나갔다. 두 시간을 덜컹대고 나서 집에 도착했다. 잠자리에 들었지만 말똥말똥 잠이 오지 않았다. 늦은 커피를 마신 탓이었다. 잠자리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았다. 함박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눈물이 나왔다. 삶의 켜켜마다 불었던 바람 때문이었다. 달개비꽃처럼 멍든 마음 때문이었다. 가난하고 비루했던 삶이 내 가슴에 만들어 놓은 비밀 때문이었다.

 

 

 

글을 쓴 이철환 님은 쌍문동에 자리한 <풀무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작품으로는 『연탄길』, 『행복한 고물상』, 『곰보빵』등과 어린이 그림 동화책 『송이의 노란 우산』, 『낙타 할아버지는 어디로 갔을까』, 『할아버지의 등대』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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