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호 2008년 겨울 [특집] 살림의 경제

[ 함께 키우는 아이들 ]

가슴에 무럭무럭 이야기가 자란다

글/사진 권옥자

 

“시험 못 본 아이, 위로해줘요!”

마침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고 만나는 첫 모임인지라, “시험 잘 본 애 칭찬해줄까? 아님 시험 못 본 애 위로해줄까?” 하며 넌지시 던진 한 엄마의 물음에 즉각적으로 돌아온 답이다. 거침없이 자기 의견을 말할 줄 알고, 잘한 사람보다 못한 사람을 챙길 줄 아는 해띠아이들의 마음씀씀이가 참으로 예쁘다.

 

 

 

 

오늘은 수현이네 집에서 맛있는 쿠키를 굽는 날. 시험 치르느라 애쓴 아이들을 생각해 비교적 여유있게 놀이삼아 할 수 있는 활동을 잡았다고 김혜주 엄마선생님이 말한다. 2시 30분 즈음, 우당탕탕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넘친다. 거실 탁자 위에는 카드 만들기에 필요한 재료들이 얌전히 놓여 있고, 부엌에는 오늘의 요리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나현, 재경, 승희, 아현, 하연, 수현. 이 6명은 모두 같은 동네에서 같은 학교를 다니는 초등학교 4학년생이다. 자주 보는 얼굴이지만 매주 화요일만 되면 더욱 즐겁다. 같이 모여 놀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의 놀이는 여러 가지다. 요리, 역사체험, 나들이, 만들기, 과학실험 등. 때에 따라 같이 시험공부를 하기도 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자연스럽게 탁자에 둘러앉아 카드를 만들며 이런 저런 얘기하기에 바쁘다. 다른 아이들이 들어올 때마다 모두 큰소리로 반겨주는 모습이 정겹다. 아이들은 마냥 신나 하면서 카드를 만들더니, 이어서 맛있는 간식 만들기에 돌입한다. 엄마선생님이 만들어 놓은 반죽과 모양내기 재료를 이용해 과자를 만들면서 재잘재잘 끝없이 이야기꽃을 피운다. 여섯 아이가 빚은 과자는 모두 그 모양이 다르다. 손놀림 솜씨가 이만저만 좋은게 아니다. 그동안 해온 활동이 있어서인지 대수롭지 않은 듯 쓱쓱 손을 움직이더니 예쁘고도 번듯한 과자를 빚는다.

 

다음은 드디어 자기의 과자를 오븐에 굽는 차례. 너나 할 것 없이 우르르 부엌으로 몰려가 과자를 굽는다. 마치 가마에서 구운 도자기를 기다리는 옹기장이처럼 자신들의 과자를 작품 살피듯 한다. 이어서 다 같이 둘러앉아 맛있게 냠냠. 손수 구운 과자를 먹는 얼굴에는 행복이 퍼진다. 먹으면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늘은 시험에 관한 이야기도 자연스레 화제로 떠오른다. 마지막 정리시간까지 재밌게 놀다가 저녁 6시 즈음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네 살부터 시작한 한동네 공동육아

 

 

매주 화요일에 만나는 아이들은 스스로 ‘해띠’라는 모임이름을 붙였다. 해야, 띠앗(형제나 자매의 우애를 뜻하는 순우리말)의 첫 글자를 땄다. ‘기적의 품앗이 학습법’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던 해띠 품앗이 공동체의 시작은 지금 4학년 아이들이 네 살 어린아이이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품앗이 학습을 처음 시작한 황영단 씨는 공동육아에 관심을 두었으나 거리와 비용의 한계를 느껴 고민하던 중 품앗이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가까운 동네에서 함께 할 사람들을 찾았는데 역시 육아에 대한 관심은 높아, 쉽게 엄마들이 모였다. 물론 그들의 목표는 ‘아이들답게 기르자’였다. 네 살부터 시작된 품앗이는 주 3회로 이루어졌고, 친구들과 만나 주로 오감을 살리는 놀이를 중심으로 꾸려나갔다.

 

유치원에 가면서부터는 주 2회로 줄이고, 유치원에서 못 다하는 부분을 채워나갔다. 역시 몸으로 노는 놀이 중심으로 야외활동이 주를 이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도 학교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체험 중심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것을 즐거워했고, 자연스럽게 기초적인 학습을 위한 활동도 잘 따라했다. 초등학교 중간학년에 들어서면서는 주 1회로 줄였다. 그리고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자리로 조금 물러나 앉았다. 학습 환경을 조성하고 장소와 간식을 제공하는 정도로 엄마들의 역할반경을 줄이고 있다.

 

처음에는 열정 그 하나로 뭉쳐 교안을 작성하고 매일 날적이를 적는가 하면 진행과정을 일일이 자료집으로까지 만들어 카페에 올려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 지금은 꼭 필요하거나 원하는 사람만 한다. 비교적 쉽고 편안해야 오래 지속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만큼 안목과 관록이 생겼다는 뜻일 것이다.

 

사교육 없이도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들

 

 

해띠아이들은 학교에서 놓치는 부분들을 오히려 심도 있게 놀이삼아 배우고 있다. 언제나 그랬다. 제도권 교육에 반하기보다는 균형을 잡아나가는 활동으로 이끌었다. 엄마들이 모여 교과서 들여다보기를 한 것도 학교를 대신해 가르치려 함이 아닌, 내 아이가 어떤 내용으로 공부하는지를 알아 그 눈높이를 맞추려고 한 활동이다. 그런 생각들은 옳았던 것 같다. 1주일에 한 번으로 그 횟수를 조절한 것도 품앗이 학습이 교육의 완전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해띠아이들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TV를 덜 보고, 컴퓨터 게임도 덜 한다. 다른 아이들 다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가지지 않고도 잘 지낸다. 낮에 잘 논 덕분에 저녁에 각자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 모두가 품앗이 엄마들이 지혜를 모아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조성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교육의 원인은 다른 사람은 다 하는데 나만 하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뚜렷한 중심 없이 시작되는 사교육은 하면 할수록 의존도만 높아진다. 엄마가 중심을 세우는 데는 누구와 하느냐가 참으로 중요하다. 품앗이 엄마들은 서로에게 세상에 대한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는 존재로 선다. 불안감이 가라앉고 느긋한 마음이 된다. 해띠라고 하여 사교육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다. 영어나 수학 등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줏대 있게 고를 수 있는 관점이 서 있으니 불필요한 불안감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방학기간을 이용해 공부를 위한 품앗이를 하기도 한다. 영어, 수학, 독서지도 등. 물론 이 경우에는 자발적인 참여를 원칙으로 한다.

 

가슴에 이야기가 넘치는 아이들

 

 

해띠아이들도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아이들이다. 품앗이를 한다고 인성이 저절로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의견이 달라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한다. 마음의 어려움이 클 경우는 품앗이를 떠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은 남의 입장을 고려하게 되며,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해 자기회복력이 좋아진다. 자기중심적이 돼버린 요즘 아이들에 비해 해띠아이들은 경쟁적이기보다는 평안한 관계를 유지할 줄 안다. 남과 함께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편이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다. 학원 다니지 않는다는 말을 믿어주지 않을 만큼.

 

 

 

“직접 가사 쓰고, 곡 붙여 노래 만들었을 때가 참 재미있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승희의 대답은 친구들까지 “맞아,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타임캡슐 만들기, 케이크만들기, 야외캠프 야영, 함께한 시험준비…. 아이들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했다. 앞으로는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는 나현이의 대답에 다른 아이들도 공감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제일 좋은 것은 노는 것이란다. 아이들다웠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은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을 세 가지로 든다. 바르게 먹는 것, 부모의 사랑, 가슴에 남는 좋은 이야기를 갖는 것. 해띠아이들의 가슴에는 이야기가 넘친다. 품앗이를 통해 만났던 많은 이야기는 아이들 가슴에서 잘 자라 항상 따뜻한 기운을 돌게 할 밑거름이다. 모처럼 놀 줄 아는 아이들을 만난 기분이다. 우리 자랄 적 골목길의 풍경이 살아난다고 해야 할까. 놀이도 공부도 자기 주도적으로 해나가기를 바라는 엄마들은 봉사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이 맞는다면 나중도 옳을 것이다!” 말하는 엄마들의 목소리에서 그간의 정성을 통해 얻은 신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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