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호 2008년 겨울 [특집] 살림의 경제

[ 재활용의 터전 포이동 넝마공동체 ]

헌옷 다오~ 희망줄게

글 강성봉, 사진 류관희

 “우린 당신들의 이웃이다.” “우린 ‘도와줘야 할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사라지면 당신들 쓰레기는 누가 치우나? 당신의 벤츠로 당신이 직접 치울 텐가?” “우리는 지난 22년, 여기 이 자리에서 당신이 쓰고 버린 그것을 재활용하여 수출하고 자립하며 살아 왔다.”

강남구 포이동 영동5교 밑, 300여 평의 땅에는 울긋불긋한 6개의 컨테이너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외벽마다 호소하는 듯한 문구들이 쓰여 있다. 낡은 소파와 박스들을 버려둔 입구를 지나 컨테이너 사이로 들어가면 한쪽 공터에는 가방과 옷가지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이곳을 사람들은 흔히 ‘넝마공동체’라고 부르지만, 여기 주민들은 ‘재활용의 터전’이라 자랑스럽게 여긴다.

 

다리 밑에 모여 사는 사람들 (넝마공동체의 성립 배경)

 넝마공동체는 현재 이름다운가게 공동대표를 맡은 윤팔병 씨가 1986년에 넝마주이들과 함께 만든 생활자립 공동체이다. 영동5교 밑에서 처음 시작하였고, IMF의 한파가 밀려왔던 1998년,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1천여 평의 체비지에 실직자, 노숙자, 장애인, 고아 등 오갈 데 없는 6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2005년 11월 새벽, 강남구청에서는 용역업체 직원 수백 명과 중장비, 소방차 등을 동원하여 그들이 살고 있던 컨테이너들을 기습 철거해버렸다. 넝마공동체의 이준형(45세) 사무국장은 당시의 심경을 이렇게 전한다.

 “우리는 아무런 저항도 안했습니다. 저항하면 자칫 누군가 다칠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그저 멀거니 눈앞에서 우리들의 살림살이와 컨테이너가 해체되고 실려 나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쳐다보아야만 했습니다. 엄연히 피땀 흘려 한푼 두푼 모은 우리 재산은 그렇게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렸어요. 모두 합하면 1억 원이 넘습니다만, 그것들은 단순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우리의 분신이었고, 우리의 생명이었고, 무엇보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유일한 희망의 근거였습니다.”

1986년부터 넝마주이들과 함께 생활자립 공동체를 일궈온 윤팔병 대표

 

현재 포이동 266번지는 아스팔트가 깔리고 철제 울타리가 둘러쳐진 공용주차장으로 바뀌어 있다. 보금자리를 잃은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10명 남짓한 사람들만이 영동5교 밑으로 다시 돌아와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넝마공동체에 살고 있는 사람은 25명. 기초생활수급자, 지체2급 장애인, 자식에게 버림받은 노모, 폭력 전과로 8년 만기 출소한 젊은이부터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형제들에게 버림 받은 뇌병변 3급의 여성까지, 모두 제도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거주 환경도 열악하기 짝이 없다. 컨테이너 외벽에 쓰여 있는 ‘대한민국 마지막 다리 밑 거지. 수돗물도 마실 수 없고, 똥도 마음 놓고 쌀 수 없는 곳, 22년이란 긴 세월을 우리는 묵묵히 일만 해왔다’는 문구처럼, 이곳에는 수도와 화장실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일주일에 한 번 수도사업장에서 물을 길어 먹고, 한전의 묵인 하에 전기를 빌려 쓰는 열악한 형편이다.

“이 땅은 국가의 소유인데 법률상 땅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전기와 상하수도가 설치 되거든요. 그래도 조례에 20세대 이상이면 공동급수시설을 설치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사람이 물은 먹고 살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수도를 놔주면 우리를 인정 해주는 셈이 되기 때문에 구청에서 반대를 하는 거죠.”

 

버리면 쓰레기, 다시 쓰면 재활용 (공동체의 작업 현장)

월요일 아침부터 넝마공동체 거주민들이 옷더미 한가운데에 모여 앉아 새로 들어온 옷을 분류한다. 스타킹, 속옷, 이불 등은 따로 한구석에 쌓아놓고 구두, 가방, 모자, 옷, 장신구 등은 각자 나눠 갖는다. 오랫동안 이 일을 해온 윤팔병 대표는 능숙한 솜씨로 좋은 옷과 나쁜 옷을 나눈다. 만 원 이상 호가하는 옷은 따로 마련된 창고에 넣어 보관했다가 금요일에 공평하게 이곳 식구들에게 분배한다. 분배되고 남은 옷은 2, 3천 벌씩 모아서 다른 곳에 기증하기도 한다.

넝마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의 보조를 받지 않는 자활공동체’라는 점이다. 공동체에선 이곳을 찾아온 사람에겐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일터를 마련해준다. 처음 들어온 사람에겐 6개월 동안 적응기간을 주고, 일할 의욕이 생겼을 때에만 공동작업에 참여시킨다. 평일에는 젊은이들이 아파트에 가서 재활용 옷을 수거해 오고, 주말에는 벼룩시장에 옷을 내다팔면서 돈을 벌고 있다.

 

이곳에 모인 옷들은 대부분 강남 일대 아파트에서 수거해 온 재활용 옷들이다. 옷을 수거해오는 일을 이들은 옷을 ‘털러’ 간다고 말한다. 월요일은 압구정동과 신사동과 방배동, 화요일은 잠실, 수요일은 반포와 분당, 토요일은 대치동에서 옷을 ‘털어’ 온다. 아파트의 부녀회나 입주자 대표회의와 계약을 맺고 재활용 의류 수거함을 비워오는데, 보통 아파트마다 한 세대당 200원에서 250원씩 1년 단위로 계약하고 있다. 이준형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요즘엔 두 배 이상 단가가 올랐다고 한다.

 “주민이 버리는 옷들을 우리와 계약할 때는 엄청난 돈을 요구하죠.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같은 경우에는 7년 동안 연 7백만 원을 주고 우리와 계약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작년부터 그 액수가 1억을 넘어가더니 올해부턴 2억 2천으로 올랐어요. 좋은 옷이 나온다고 터무니없이 가격을 올리는 거죠. 근데 이게 공개 입찰이라, 업자들은 많은 돈을 줘서라도 따내려고 애를 써요. 아파트 측에선 돈을 받고 쓰레기 버리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겁니다.”

수거해 온 옷 중에는 떨어져서 버린 옷은 거의 없다. 유행이 지나 버리는 헌옷들이 대부분이다. 베르사체 셔츠, 버버리 스카프, 리바이스 청바지, 나이키 신발, 소위 명품으로 불리는 물건들도 더러 보인다. 90%가 강남에서 버려진 옷이라는데, 강북이나 지방 물건은 구제 옷 상점 업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한다.

“멀쩡한 옷을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부익부 빈익빈을 많이 느낍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런 옷이 많이 나오면 값을 적당히 매겨 팔수 있으니 기분이 좋지만요. 그런 이중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죠. 어쨌든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재활용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요즘은 막말로 음식점도 매출을 올리기가 쉽지가 않거든요. 알고 보면, 재활용 사업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와도 같은 것입니다.” 옷을 고르던 한 공동체 거주자의 말이다.

 

멀쩡한 옷, 2천 원에 팝니다 (서초벼룩시장 재활용 옷 판매)

매주 토요일마다 양재역 서초구청 골목에서는 재활용 물건을 파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아침 9시부터 바닥에는 옷, 책, 라디오, 장난감, 낚싯대, 장신구, 밥솥, 저금통 등 갖가지 물건들이 깔려 있고, 물건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그 일대는 북새통을 이룬다.

“골라 2천. 무작정 2천.” “장사를 하려면 말부터 할 줄 알아야지. 무작정이 아니라 무조건이지!” “아니야. 난 그래도 아무 작정 없이 2천이야!” 재활용 옷을 팔기 위해 넝마공동체에서 나온 윤숙경(64세) 씨가 옆 자리의 숙련된 장사꾼과 이야기를 나눈다. 윤 씨는 옷 50여 벌을 들고 새벽 4시에 이곳으로 나왔다. 해가 뜨기 전 ‘낮가마’라고 불리는 도매업자들에게 옷을 팔고 난 뒤, 아침 8시가 되자 구청의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주는 자리표를 뽑아온다. 오늘 뽑은 번호는 47번. 윤 씨는 지정된 구역으로 이동해 청바지와 겨울 외투를 꺼내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한 달 전 넝마공동체에 들어온 그는 고작 두 번째 옷을 팔러 나온 초보 장사꾼이다. 남자 옷과 여자 옷을 가리는 데 서툴고, 치수를 확인하기 어려운 옷을 팔 때도 난감하다. 지난 토요일에는 2만 2천 원밖에 벌지 못했다. 물론 옷값이 턱없이 싼 이유도 있다. 겨울 코트와 파카는 5천 원, 스웨터와 청바지는 2천 원. 요즘 경제 형편이 어려워져 소비자들이 잔뜩 움츠러든 터라 오후가 지나면 옷 가격은 반값으로 내려간다.

한참 동안 코트에 묻은 얼룩을 보고 구입을 주저하던 아줌마에게 윤 씨는 말한다. “흠이 있으니까 싸지. 커피 쏟은 거야, 커피. 내 말대로 미지근한 물에 세제를 풀고 가만히 담가 둬. 안 빠지면 다음 토요일 날 가져오셔. 나 여기 계속 나올 거니까.”

윤 씨는 용인에서 열네 채의 빌라를 지을 만큼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고 한다. 준공식을 올린 지 3개월 만에 IMF가 터지지만 않았더라면 지금 벼룩시장에서 옷을 팔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불행히도 사업이 풀리지 않는 바람에 재산을 전부 몰수당했고,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오갈 곳 없는 그가 넝마공동체를 처음 찾은 것은 3년 전이었다. 처음엔 그곳 생활이 마땅치 않아 다단계를 쫓아다닌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한 푼도 벌지 못하고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힘들어서 혼자 살면 이젠 안 되겠어. 요즘 같은 세상에 나이 먹은 사람이 맨몸으로 뭘 해서 돈을 벌겠어. 그러니 즐거운 마음으로 장사를 하는 거지. 백 사람이 만져보고 가도 옷에는 임자가 다 있기 마련이니, 아무 걱정 없어. 다 헤집어 놓아도 한 벌씩만 사가면 난 땡이니까!”

넝마공동체에서는 매주 열다섯 명이 옷을 들고 나와 장사를 한다.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서초벼룩시장에서 옷을 팔고, 그 후에는 뚝섬으로 이동한다. 일요일에는 황학동 시장에서 좌판을 깐다. 옷의 가격은 보통 2천 원에서 5천 원 사이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의 50%는 옷을 판 사람이 가져가고, 나머지 50%는 기금으로 모아 공동체 생활비로 쓰인다. 6개월 동안 계속 일해 온 사람에겐 20만 원씩 월급도 지급된다. 의욕만 갖고 있다면 또 그만큼 벌 수 있는 것이 넝마공동체의 장점이다.

더러 구성원 간에도 수입의 차이가 나기도 한다. 유명 상표가 달린 옷, 모양이 예쁘고 상태가 멀쩡한 옷을 골라오기에 따라, 또 이들의 말처럼 ‘고객의 니드’에 맞게 진열하고, 흥정할 때에 장사 수완을 발휘하기에 따라 같은 시간 동안 20만 원 어치를 파는 사람도 생기고, 2만 원어치도 못 파는 사람도 생긴다. 한 달 평균 백만 원을 넘게 버는 사람이 있는 반면 2, 30만 원을 벌기가 버거운 사람도 있다.

공동체에 온 지 3년이 넘은 정진숙 씨는 이번 벼룩시장에서 요령 있게 겨울옷만 골라나와 수입이 쏠쏠한 편이다. 윤 씨가 4만 원어치의 옷을 팔 동안, 그는 10만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자신이 입고 나온 밍크코트까지 5만 원에 팔았다고 좋아한다.

“찢어져서 그렇지 원래는 백만 원이 넘는 옷이야. 근데 누가 수선해서 쓸라는지, 아니면 쪼가리로 모자를 만들려는지 자꾸 팔라잖아. 그래서 얼른 팔았지. 일부러 입고 나오길 잘했어. 사람들이 눈은 있어서 내가 입은 건 꼭 팔라고 하더라고!”

 

 

경제가 어려워도 우리는 자립한다 (숭인동 알뜰살뜰 장터)

 

 

주말마다 서초벼룩시장, 뚝섬, 황학동 시장을 떠돌아다니던 넝마공동체 사람들에게도 희소식이 찾아왔다. 지난달 초, 동대문구 숭인동에 낡은 창고를 개조하여 넝마공동체의 1호점인 ‘알뜰살뜰 구매 장터’를 열게 된 것이다. 갓 올린 간판에는 ‘서민경제 극복 프로젝트,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庶民不死)’라고 투박하게 쓰여 있고, 평일에도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공동체 사람들은 한껏 들떠 있다.

“당연히 전보다 나아지겠지. 매주 물건을 옮길 필요도 없고, 비가 와도 장사를 할 수 있잖아. 내가 황학동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하면서 건너편 새 옷 파는 좌판 장사꾼이랑 한바탕 싸웠거든. 그래서 지금 그 아저씨 두고 보고 있어. 우린 가게가 있으니까, 너희들은 비 오면 걷어! 그렇게 말해 주려고.”

가게의 보증금은 5백만 원에 월세 50만 원이다.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2, 30만 원씩 십시일반으로 모았다. 계약금에 돈을 보탠 사람들은 가게의 수익금에서 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투자한 만큼 나눠 갖게 된다. 가령, 50만 원을 투자한 사람은 수익금의 10분의 1을 갖게 되는 것이다.

포이동 266번지에서 쫓겨나고, 다리 밑에서 생활하던 그들이 스스로 힘을 모아 번듯한 가게를 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제 이들은 안정된 일터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에도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이들도 이들을 넝마주이라고 섣불리 폄하하지 못할 것이다. 넝마공동체의 윤팔병(68세) 대표는 자신 있게 말한다.

“나는 공짜라면 양잿물을 먹어도 탈 안 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누가 나를 도와주겠다는 말을 들으면 욕부터 나와요. 누가 누구를 도와준다는 말이 아니라, 서로 나눠야 한다는 말을 쓰고 싶습니다. 요즘 정부에서 노숙자들을 돕기 위해 여러 정책을 쓴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자투리땅만 줘 봐요. 그러면 내가 노숙자 1백만 명은 자립해서 먹고 살게 할 테니!”

흔히들 고물상은 불황을 타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파트의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나오는 종이의 가격은 턱없이 싸다. 1kg당 백지는 300원, 신문은 200원, 박스 및 잡종이는 120원가량인데, 현재도 그 값이 폭락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원자재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요즘엔 몇몇 특수재를 제외한 고철 가격도 내려가는 추세다. 그나마 가격이 내려가지 않은 유일한 품목은 의류라고 한다.

당장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옷이 넝마공동체 사람들의 손을 통해 새로운 주인들을 찾아가고, 팔지 못한 옷들은 수출업자들에게 넘어간다. 가방이나 커튼은 1kg에 1,500원, 신발은 600원. 옷은 550원. 그중 겨울옷은 중국으로, 여름옷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지로 수출된다. 넝마공동체가 수출업자에게 넘기는 옷은 일주일에 10여 톤에 이른다고 한다.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일 뿐만 아니라, 자원을 아끼고 재활용하는 측면에서, 그 효용도 크다.

“남이 버린 쓰레기 주워다 파는 넝마주이라는 말에 안 좋은 인식을 가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조그만 옷이라도 모아서 팔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 또 열려 있는 것 아닙니까. 국가나 외부에서 지원을 받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됩니다. 저희도 기부를 받는 것은 철저히 거부하고 있어요. 우리 스스로 자존감을 갖고 홀로 설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준형 사무국장의 말처럼 넝마공동체의 컨테이너에는 이런 문구가 자랑스럽게 쓰여 있다.

 

“그동안 우리는 월평균 40톤의 넝마를 수집했으며

그중 80퍼센트의 넝마가 동남아시아 등지로 수출되었으며

2여 톤의 넝마가 국내에서 소비되었다.

또한 월 800여 벌의 옷을 어려운 다른 이웃들에게 기증하였으며

7000여 벌의 옷을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주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모든 일은 현재 ‘아름다운 가게’와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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