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호 2017년 4월호 [특집] 특집-삶은 곧 이야기입니다

[ 탈핵과 에너지 수급의 민주화 ]

원자력 발전, 쉼표와 마침표 사이

글 김현우

《살림이야기》 2011년 여름 호의 특집 제목은 ‘원자력, 쉼표가 필요해’였다. 여름 호 발행 직전에 터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를 계기로 환기된 원자력 발전의 문제를 다루면서, 연속되는 재난의 시대에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쉼’의 필요라는 문제를 나란히 배치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제 두 개를 묶은 구성이었지만, 나는 이를 “원자력에게 이제는 쉼표가 필요해”라고 읽었고, 나만 그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후쿠시마 이후 핵발전의 본성을 숙고한 특집 기사
‘원자력’ 특집은 조성수 님의 사진글 <흔들리는 대지, 불안한 미래>와 세 편의 글로 꾸며졌다. 불과 그 몇 달 전이 후쿠시마 사고였지만, 특집의 글들은 핵발전의 본성을 숙고하는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았다. 황도근 님은 <고삐 풀린 욕망이 예고한 파국, 후쿠시마>에서 핵에너지 개발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된 물리학자들의 고뇌를 떠올리며, 핵발전소 사고는 단기적 비용 절감을 좇는 자본주의적 경영 논리가 만들어 낸 인재임을 지적했다. 마침 일본에서 연구 활동을 하던 박희숙 님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지탱되는 불편한 일상>에서, 일본의 ‘핵마피아’에 해당하는 ‘원자력촌’의 폐쇄 구조가 지닌 문제와 함께 핵발전소 노동자와 지역 주민들의 숙명적인 희생의 현실에 눈길을 줄 것을 요청했다. 직업환경의학계에 종사하는 임종한 님은 <방사능 물질, 무해한 노출 기준은 없다>라는 글을 통해 방사능의 유해성에는 ‘역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그래서 방사선에 대한 정보 공개와 함께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세 글 모두 후쿠시마 사고 이후 수년간 제기될 핵발전과 방사능 위험에 관한 여러 쟁점을 앞서서 던져 주었고, 핵발전의 문제는 기술 발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형태를 바꾸고 지혜를 나눔으로써 풀어 갈 수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개발과 성장에 대해 반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공감대
《살림이야기》가 이후 마련한 연속 기획인 ‘핵 없는 세상을 위해’에는 2011년에 던졌던 문제의식이 매 시기의 다양한 이슈를 통해 깊이와 넓이를 더했다. 고리1호기와 월성1호기의 수명연장 논란에서 노후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짚었고, 밀양과 청도의 고압송전탑 반대 싸움은 핵발전으로 인한 지역의 일방적 희생을 생생히 드러냈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 높았던 식품 방사능에 대한 우려는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집단소송과 기장 해수담수화 수돗물 공급 반대 운동으로 이어졌다. 삼척과 영덕의 주민들은 정부의 일방적 핵발전소 부지 지정 고시에 맞서 자발적 주민투표로 압도적인 반대 의사를 표현했다. 그리고 2016년 9월에 발생한 경주 지진 그리고 때마침 개봉한 영화 <판도라>는 지진과 핵발전소 사고 위험에서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라는 대중적 인식을 크게 높였다.
2016년 가을부터 이어진 촛불 정국의 한편에서는 “박정희가 시작한 핵발전소 박근혜와 함께 끝장내자!”라는 구
호가 등장했고, 이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과 함께 “탄핵 다음은 탈핵”이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한국의 핵발전이 박정희 시대 개발주의의 중요한 수단이었고, 안정적이고 저렴한 공급 중심의 에너지 정책이나 전원 개발에 관한 법률, 원자력문화재단 같은 기구들이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아직은 조금 낯설더라도 본질을 짚은 구호임이 분명하다.
최근 조기대선에 나선 주요 출마자들도 핵발전 정책에 관해 구체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런 모습도 과거의 총선이나 대선과는 다른 모습임이 분명하다. 후쿠시마의 충격, 밀양의 교훈, 경주 지진의 여파 등이 그동안 탈핵운동이 펼쳐 온 활동과 주장 들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만든 배경이 되기도 했거니와, 이제는 핵발전이 묻지마 식 개발과 성장에 대한 전반적 반성과 함께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이 형성된 덕분일 것이다.

 

 

주요 대선 출마자들의 핵에너지 관련 발언(2월 26일 기준)

 

 

출처: <탈핵신문> 제50호(nonukesnews.kr/956)

 

 

핵발전과 에너지 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며
지금 유력 대선 출마자들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 추진 중단과 백지화,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 원칙 확립, 에너지 전환 로드맵 수립과 관련 법 제정, 발전 차액 지원 제도 재도입 등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확대,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선로 건설 시 주민 의견 수렴 의무화, 원자력안전위원회 개편과 독립성 강화, 핵폐기물 관리와 처분 방식에 대한 재검토 등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건설을 중단할 신규 핵발전소의 기준이나 에너지 산업과 시장의 구조 개편 같은 각론에서는 다른 의견들이 나오겠지만, 큰 틀이 핵발전소로부터의 탈출과 에너지 수급의 민주화라는 방향으로 잡히고 있는 것은 커다란 진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핵발전 탈출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이 누구에게나 좋고 편한 것일 수는 없다는 점에서,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향한 분명한 정책의지와 보다 넓은 경제정책 구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결국 이러한 공약과 정책의 진정성과 구체성은 대선 이후 수립될 예정인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다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사용후핵연료 처분 공론화 과정 등의 계기들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물론 여기에 에너지 전환을 염원하는 에너지 시민과 탈핵운동이 해야 할 몫이 있다.
그동안 원하지 않은 혹사를 당해 온 한국의 핵발전소들뿐 아니라 핵발전으로 희생당하고 고통을 받아 온 이들도 이제는 쉼이 필요하다. 그런데 핵발전의 안식과 안전은 ‘마침’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핵발전의 마침표를 위한 쉼의 배치, 쉼의 확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살림이야기》가 쌓아 오고 풀어 온 이야기들이 이 마침을 앞당기는 거름이 되어 이미 탈핵의 풀나무를 키우고 있을 것이다.

 

 

↘ 김현우 님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입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활동했고, 에너지 전환, 도시정치, 대중교통, 거버넌스의 민주화 등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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