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호 2017년 4월호 [특집] 특집-삶은 곧 이야기입니다

[ 수입 먹거리의 복잡한 이면 ]

명태와 설탕, 너는 어디에서 왔니?

글 손순향

《살림이야기》 2010년 여름 호의 특집 ‘설탕, 그 달콤하고 씁쓸함에 대하여’와 2011년 겨울 호의 특집 ‘명태, 밥상 위의 바다’는 수입 먹거리를 다루었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당시 수입 먹거리를 원칙적으로 취급하지 않는 한살림에서 취급 여부를 토론에 부쳤을 만큼 명태와 설탕은 우리 식탁에서 아주 요긴하고 익숙하다. 전 세계에서 온갖 먹거리들이 그때보다 더 많이 수입되어 들어오고, 특히 수입농산물로 인해 우리 농업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요즈음, 이 특집 기사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기후변화로 사라진 국내산 먹거리
명태는 오랜 세월 우리 식탁에 자주 올랐던 생선이다. 우리 바다에서 흔히 잡히던 명태는 생태, 황태, 북어, 노가리 등 부르는 이름도 여럿이고, 요리법도 다양하다. 특집 ‘명태, 밥상 위의 바다’는 겨울철 서민 밥상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명태에 관해 역사와 문화, 요리법, 잡고 가공하는 사람들, 기후변화의 영향 등 다각도에서 바라본 이야기들을 싣고 있다.
명태는 우리 곁에 늘 있었기에 먹거리로서만이 아니라 신에게 바쳐 ‘액막이’라는 주술적인 제물로도 쓰였다. 그러고 보면 집을 새로 지어 대들보를 올리거나 가게를 새로 열 때 액운을 막아 달라고 북어를 무명실에 묶어 걸어 놓은 걸 자주 보았다. 늘 변함없이 우리 식탁에 함께하리라 믿었던 ‘우리 먹거리’ 명태는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동해 수온이 높아져 어느 순간 우리 바다에서 더는 잡히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우리 동해를 떠난 명태를 쫓아 러시아 오호츠크 해나 베링 해까지 가서야 잡을 수 있다.
다른 수입 먹거리와 달리 오래 먹어 오다 우리 바다에서 사라졌기에, 고민 지점도 좀 다르다. 국내산 먹거리만 취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한살림에서도 제사상에도 오를 만큼 우리 삶에서 빠질 수 없는 이 생선을 어떻게 할지 무려 2년 동안이나 논쟁을 거듭했다. 명태 특집 기사는 먹거리 문제가 환경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우리 땅, 바다에서 아예 사라져 버리는 먹거리들, 우리 음식문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던 먹거리를 외국산이냐 국내산이냐를 선택할 수 없이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 어찌 보면 단순한 생선 한 마리가 환경 파괴와 수입 먹거리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였고, 이는 지금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어쩌면 명태 외에도 우리는 계속 우리 먹거리를 잃게 되어 갈지도 모른다.

 

우리도, 사탕수수 재배지에서도 고민하는 식량 자급
설탕은 사탕수수나 사탕무에서 얻은 원당을 공장에서 정제 가공하여 만드는 천연 감미료이니, 애초에 원산지가 우리 땅이 아니다. 설탕이 사회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그 유해성 탓이 크다. 2010년 여름 호 특집은 ‘설탕, 그 달콤하고 씁쓸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우리가 단맛을 내기 위해 음식에 더하는 설탕의 씁쓸한 이면에 관해 조명했다. 설탕은 치아와 뼈를 손상하며, 당뇨의 금기 식품이자 유발 식품으로 알려졌다. 황성수 님의 <설탕, 건강을 해치는 치명적인 유혹>은 설탕이 “사탕무나 사탕수수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단백질, 지방, 섬유질, 비타민은 모두 없어지고 칼슘과 철은 크게 줄어”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김현경 님의 <설탕 끊고 한 달 살아보기>는 직접 체험하며 쓴 글이어서 흥미로웠다. 우리 주위의 모든 간식류와 음료, 식사용 음식에까지 설탕이 빠진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단것을 먹었다는 인식 없이 하루에 먹는 설탕이 얼마나 많은지!
윤은정 님은 <피와 눈물로 점철된 슈거로드>에서 설탕이 지금처럼 전 세계 누구나 쉽게 접하는 감미료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 시작점에 “카리브 해와 중남미 지역의 원주민 절멸과 아프리카에서 사냥당한 흑인 노예들의 피땀과 목숨”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설탕 산업이 이런 과거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까? 다국적 식품 대기업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제3세계 국가의 생산지들은 대규모 단일 작물 재배로 인한 자연 파괴와 노동력 착취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설탕은 커피와 함께 공정무역의 대표 품목이 되었다. 생산지가 좀 더 친환경적으로 관리되고 사탕수수 재배 농민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소비자의 윤리적 소비를 강조한다. 그래, 기왕 먹을 거라면 공정무역 설탕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설탕 소비로만 끝날 문제일까? 편집부의 <공정무역 설탕은 왜 등장했나>를 보면 공정무역 단체들은 대규모 사탕수수 단작 재배가 불러오는 삼림 파괴와 수자원 고갈을 막고 그 지역의 식량 자급을 위해 다양한 작물과 과일 등을 재배할 수 있게 농업체계를 바꾸는 역할까지 해내려 하며, 지금까지 그 노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진정한 윤리적 소비는 제 땅에서 재생 순환되는 것으로 자급하는 자급자족 소비”라는 말에 공감했다. 우리도, 사탕수수 재배지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의 밥상은 어떤 모습일까
두 특집을 지금 다시 읽으며, 현재 우리 밥상을 돌아본다. 우리 주위에는 지금 너무나 많은 수입 먹거리가 쏟아져 나와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지도 볼 수도 없었던 과일들, 텃밭에서 길러 먹던 온갖 채소들도 수입되어 밥상에 올라온다. 또 누가 어떻게 무엇을 먹여 길렀는지도 모를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까지, 이미 우리 밥상은 수입 밥상이다. 많은 사람이 먹고 있으니까, 나라에서 다 알아서 검증하고 들였겠지 하며 무심코 먹는다.
아이들은 사과와 배가 우리 과일이란 걸 알까? 마트에서 너무 익숙한 칠레산 포도나 필리핀산 바나나가 우리 고유의 과일이라고 알지는 않을까?
다양하고 맛난 먹거리를 먹는 것은 정말 놓칠 수 없는 행복이다. 이 행복을 무시하자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과자의 포장지를 보며 첨가물을 따지듯, 그리 먼 나라에서 돌아 돌아왔는데도 생생한 수입 과일이나 채소를 보면, 누가 어떻게 재배했고, 어떤 처리를 거쳐 들어왔는지, 또 운송 수단의 연료로 인한 오염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한 번쯤 따져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생활에 너무나 친숙한 명태 한 마리도 먼 거리를 돌아오는 걸 꼭 수입해서 먹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한동안 많은 의견을 나누었다. 또 지금은 설탕을 그래도 먹어야 한다면 그나마 직거래로, 실제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는 공정무역으로 들여와야 할지 어떨지 계속 의견을 나누고 있다. 이처럼 다른 외국산 먹거리에 대해서도 고민을 놓지 않고 같이 의견을 나누어 보고, 나와 가족, 우리 아이들 세대의 미래를 위해서 대안 찾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바람이다.

 

 

↘ 손순향 님은 한살림연합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파트단지에 한살림 물품을 공급하러 온 공급차에서 유정란을 사면서 한살림을 처음 알았고, 10가구의 공동체 대표로 살림을 꾸리면서 조합원 활동을 시작해 20년 넘게 한살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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