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호 2008년 겨울 [특집] 살림의 경제

[ 살맛 나는 공동체 마을 안남면 구경 ]

살맛 나는 마을, 안남면으로 오세요

글 문영애, 사진 류관희

 

‘배움 필요하면 학교 만들면 되고, 목욕탕 없으면 찜질방 만들면 되고, 아이들 책 사주기 어려우면 작은 도서관을 만들면 되~고.’ 지난해(2008년) 최고의 CM송으로 불린 ‘되고송’을 ‘안남면’ 버전으로 만들어봤다. 학교, 찜질방, 작은 도서관… 공공의 그 무엇이 꼭 필요하다 생각되면 그것을 함께 일궈낸 특별한 마을이 바로 안남면이다.

‘대한민국 자치 1번지’로 불리는 충북 옥천군 안남면. 옥천군에서 가장 작은 면적의 이곳이 지난 몇 년간 일궈놓은 성과는 화려하다. 그 시작은 일흔 넘은 어르신부터 일곱살 꼬맹이까지 모두를 하나로 묶어준 ‘공동체’라는 믿음과 신뢰부터였다. 지금부터 살맛 나는 공동체마을 안남면 구경에 나서보자.

 

 

 

 

젊은 목사 선생님과 평균나이 70세 여학생들 ‘안남어머니학교’

 

 

“울퉁불퉁 멋진 몸에 빨간 옷을 입고, 새콤달콤 향기풍기는 멋쟁이 토마토. 나는야 주스될 거야(꿀꺽)~ 나는야 케찹될 거야(찍) ~ 나는야 춤을 출 거야(헤이) ~ 뽐내는 토마토”

 

오전 10시30분. 안남면 면사무소 일대에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런데 어째 노래가 독특하다. 동요의 트로트 버전이랄까? 노랫소리를 따라가니, 웬걸 족히 평균나이 70대의 할머니들이 책상에 앉아 노래를 부른다. 그 표정들이 자못 심각하다.

 

곧 저만치 앞에 서 있던 선생님으로부터 ‘호된’ 지적소리가 들려온다. “자! 자! 어머님들, 노래할 때는 어떻게? 그렇죠! 관광버스에 온 것처럼 신나게! 자연스럽게 불러주세요.”

 

그 유명한 안남어머니학교의 수업 장면이다. 선생님은 안남면 주민이자 자원봉사자인 이승용 목사, 학생은 안남면의 어머니들이시다. 학생 평균나이는 70세이지만, 시어머니부터 며느리까지 가릴 것도 없다. 행복반, 사랑반, 국화반 총 3반으로 구성된 안남어머니학교는 2003년 2월25일 주민자치센터의 첫 작품으로 개교한 이래, 옥천군 일대에 어머니학교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교실을 둘러보니 여느 초등학교 교실과 다름없다. 나이 먹으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벽면에 빼곡히 붙여진 직접 그린 자화상 속 얼굴이 알록달록 천진난만 그 자체다. 일주일에 두 번만 등교한다는 사실만 빼면 4월 봄소풍, 8월 여름방학, 11월 학습발표회, 12월 겨울방학으로 이어지는 학사일정도 여느 초등학교와 비슷하다. 다만 ‘입학’은 있고 ‘졸업’은 없다는 학생들의 우스갯소리처럼, 이 평생학교에서 배움은 곧 또 다른 일상이라 할 수 있다.

 

일명 6학년반으로 불리는 국화반 신종례(79세) 학생의 이야기다. “공부 때를 놓쳤더니 느져. 매일 배우면 뭘햐. 뒤돌아서면 깨먹는 걸.(웃음). 그랴도 안다녔음 클 날뻔했재!” 안길자(70세) 학생은 7년 전 함께 입학식을 치렀던 손녀딸은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해 중학교에 입학했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한평생 어렵기만 했던 차타는 법, 계산하는 법도 배웠으니 이만하면 성공적이라 자평한다.

 

오늘은 여자의 날, ‘연주1리 찜질방’

 

 

이번엔 안남의 명물 찜질방을 찾아가보자. 현재 안남면의 찜질방은 두 곳. 현재 공사중인 곳까지 더하면 총 세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안남면 자치의 시작이라 불리는 ‘연주1리 찜질방’이겠다. 2000년 군농업기술센터 ‘농업인 찜질방 설치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된 이 찜질방은 100% 주민자치로 지어지고, 운영되는 곳이다. 말이 찜질방이지 다방 하나 없는 안남면에서 농한기 친목도모 공간으로 톡톡한 역할을 해낸다.

 

미닫이 문을 슬쩍 열어보니, 동네 아주머니들께서 속옷 바람으로 앉아있다 화들짝 놀라신다. 살펴보니 막 찜질방서 뜨거운 김 팍팍 쐬고 샤워까지 마치고 나와, 지난 추석 때 갈무리해둔 송편과 이제사 맛이 제대로 오른 동치미를 꺼내놓고 새참을 즐기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흔히 찜질방이라 하면 남녀노소 공동 사용이 기본이건만, 두눈 씻고 찾아봐도 남자는 없다. 20평 규모로 아담하게 짓다보니 도출된 결과다. 이리하여 한자리 수가 1ㆍ3ㆍ6ㆍ9일은 남자의 날, 2ㆍ4ㆍ5ㆍ7일은 여자의 날이란다. 바로 오늘이 여자의 날이다. 이리하여 관리를 맡은 연주1리 노인회에서 격주로 남자 두 명, 여자 두 명씩 당번을 정해 찜질방 손님을 받는단다. 요금은 우리 동네(연주1리) 사람은 1,000원, 다른 동네 사람은 1,500원. 이렇게 모인 요금으로 찜질방을 돌릴 기름값을 충당한다.

 

오늘의 당번은 서정순(72세) 할머니다. 짝궁 당번은 잠시 옥천면으로 출타 중. 오전 8시30분에 나와 찜질방 문을 열고, 손님들에게 이용 요금을 받고, 저녁 7시에 정리 후 문을 닫는 게 당번의 업무다. 말이 당번이지, 사실 문만 열어두면 당번 없이도 문제없이 돌아간다. 거울 앞에 큼직히 붙여진 ‘혹시 당번이 없더라도 성함 적으시고 목욕비는 지갑에 넣어주세요’라고 쓰여있는 종이가 그 증거다. 아니나다를까. 정수기 수리서비스(A/S)가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당번인 서정순 할머니마저 집으로 냅다 뛰어나간다. 찜질방은 저녁 7시에 문을 닫지만, 해떨어진 뒤 들어오면 동네 어르신들(당번)에게 혼난다는 게 송편 앞에 둘러앉은 주민들의 이야기다.

 

 

 

안남초등학교 전교생이 단골손님,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

 

 

원목으로 지어진 아늑한 분위기의 이곳은 안남면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휴식공간이자 배움의 터이다. 도서관 바로 옆에 위치한 안남초등학교 전교생 57명이 이곳의 단골손님들. 열두개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이곳에 모여 숙제도 하고, 책도 읽고, 또 즐겁게 놀다가 돌아간다.

 

현재 안남의 교육시설은 초등학교 한곳이 전부로 중학교는 옆마을 안내면으로 가야하고, 고등학교는 옥천군으로 나서야 한다. 1960년대 인구의 10% 수준으로 인구감소가 뚜렷한 안남면에서 결국 이 57명의 어린이는 그야말로 귀중한 새싹이다. 이 아이들을 위해 지어진 곳이 바로 지난해 문을 연 ‘안남배바우작은도서관’이다. 더불어 안남면의 열두 개 마을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만든 의미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애초 안남면은 상수원보호구역에 해당되는 지리적 여건으로 국가에서 매년 5억 원의 주민지원사업비를 받아왔는데, 2006년 10월부터는 그중 30%를 덜어 장기적인 계획 하에 ‘공공의 관심’에 사용하자는 뜻을 모아 ‘지역발전위원회’라는 틀이 만들어졌다. 그간 도로포장, 농기계, 찜질방 보수 등 마을별 현실적 현안에 100% 사용했던 것과는 달리 안남면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나선 것이다. 곧 지역발전위원회에서는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물었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일손이 바쁜 농촌마을에서 아이들을 보살펴줄 도서관이다. 그래서인지 명칭은 도서관이지만,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거의 문화센터에 가깝다.

 

이곳에서 사서로 일하는 공은경(29세) 씨는 “도서 대출은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며, “수요일은 명상, 목요일은 종이접기, 금요일은 서예, 토요일은 논술지도를 한다”고 설명한다. 요리실습, 워드프로세서, 천연화장품 만들기도 인기를 모았던 프로그램들. 선생님들은 자원봉사자들이 주를 이룬다. 프로그램 시작도 대부분 아이들 특활이 끝나는 오후 서너시부터다. 저녁에는 이웃마을로 학교를 다녀온 중학생들까지 가세하니, 도서관 폐관시간은 밤 10시로 늦다.

 

특히 토요일이면 멀리 옥천읍에서까지 찾아온 가족들로 북적인다. 현재 소장한 책은 약 3천5백 ~ 4천 권 사이로, 대여는 기본 1주일이지만 말만 잘하면 2주까지 눈감아 준단다.

 

 

마을순환버스, 주말장터, 급식단지 조성까지

원하는 게 있으면 생각대로 하면 되고!

 

 

어머니학교부터 찜질방, 도서관까지… 공공의 삶을 위해 하나둘씩 행복을 설계하고 있는 안남면 사람들. 하지만 아직 이뤄야할 것이 많이 남았단다. 지역발전위원회의 주교종 위원장은 “지금껏 사람 사는 맛을 높였다면 이제는 우리 모두의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할 때”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안남면은 지난해부터 3년간에 걸쳐 ㈜이장과 지역농민 네트워크를 통해 컨설팅을 받고 있다. 안남면의 안정적인 경제생활의 틀을 다지기 위함이다. 안남의 경우 인구 60%가 60세 이상의 고령인데다 경지면적도 좁은 게 현실이다. 옥수수, 콩, 토마토, 보리, 밀, 깻잎, 애호박, 인삼 등 조금씩 경작하는 작물은 다양하지만, 뚜렷한 특산품도 없다. 결국 다양한 안남표 경작물로 이뤄진 ‘안남서 받은 선물 꾸러미’처럼 일상적 주식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곳을 찾는 게 급선무다.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찾은 그 해답은 바로 금강(대청댐)의 물을 함께 마시고 있는 지역권이다. 가까운 보은부터 금산, 무주, 대전 등이 안남면과 함께 할 유역공동체. 그 시작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옥천 군청마당서 직거래 장터를 열어볼 계획이다. 이를 발판으로, 이후에는 친환경 농법을 기본으로 위 지역들의 학교급식 생활단지로까지 확대할 생각이다. 로컬푸드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안남면을 자리매김한다는 게 장기적인 바람이다.

 

경제적 활동 외에도, 지속적인 인구감소를 막기 위한 외부인들의 발길을 이끌겠다는 각오도 있다. 현재 안남의 인구는 1,623명. 1960년대 인구의 10%에 머무는 수준이다. 이를 위해 안남에 생태습지공원을 만들어 가족단위 방문객을 늘릴 생각이다. 외부의 프로그램을 가져와 만들기보다는 안남면민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게 그 각오다.

 

실제 안남면에서는 공장 하나, 굴뚝 하나 찾아볼 수 없다. 그 흔한 가내수공업도 하지 않는다. 대신 유유히 흐르는 강과 야트막한 산과 들판이 가득하다. 이를 그대로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생태마을공동체를 꿈꾸는 안남의 선택이다. 그 첫걸음으로 올해(2009년)에는 열두 개 마을에서 꽃길 가꾸기 사업을 펼쳐나갈 참이다.

 

더불어 31.78㎢에 흩어져있는 열두개 마을을 하나로 이어줄 도서관 셔틀버스도 올 한해 동안 반드시 이뤄내야할 숙원사업이다. 그 작은 버스엔 어머니학교를 찾는 일흔 살의 할머니와 작은 도서관을 향하는 일곱 살 손자가 함께 손을 잡고 오를 것이다.

 

2002년 주민자치센터 시범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불기 시작한 안남의 변화의 바람은 거세다. 그 중심에는 마을 이기주의 대신 공동의 행복한 미래 설계를 약속한 남다른 선택이 있었다. ‘나’에서 벗어나 ‘우리’를 외치는 그들이 생각대로 못해낼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살맛나는 지역공동체의 모습, 이것이 안남이 외치는 안남만의 경쟁력이다.

 

 

 

 

 

 

2006년 열두개 마을에서 두 명씩의 대표단으로 구성된 지역발전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면사무소 앞에 세워진 돌탑. 열두 개 마을의 주춧돌을 의미하는 열두 개 기단석을 놓고, 주민들이 하나씩 돌을 놓고 힘을 합쳐 완성했다. 매년 정월 열사흘날이면 이곳에서 ‘안남면민 안녕기원제’가 치러진다.

 

  

 

 

‘제3회 덩더쿵 한마당축제’를 준비 중인 안남면 도덕2리 덕실마을 사람들. 다음날 치러질 축제를 위해 마을사람들이 일찌감치 80세 어르신부터 할머니 등에 업힌 돌쟁이까지 한데 모여 두부를 만들고, 함께 나눠먹으며 친목을 다졌다. 축제에서는 두부만들기, 강정만들기, 쥐불놀이 등 다양한 공동체놀이가 펼쳐진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