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 2017년 3월호 살림,살림

[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생태적으로 사는 가장 좋은 방법 ]

땅에 뿌리 내린 밥상, 채식

글 _ 사진 김미수

우리 부부 중 채식을 먼저 시작한 남편은 생태적이고 윤리적인 이유로 고등학생 때부터 일반 채식을 했다. 동물성 식품을 아예 먹지 않는 비건 채식을 하고 싶었지만, 밥상 주도권을 쥔 엄마를 꺾기에는 역부족이라 차려 주시는 대로 먹고 살았단다. 그 뒤 대학 진학으로 독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비건 채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종교인 외에 다른 이유로 채식하는 이를 본 적이 없던 나는 당시 막 20대에 접어든 남편의 얘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마침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1997)를 읽고 니어링 부부의 삶과 철학에 감화를 받아 ‘땅에 뿌리 내린 삶’을 꿈꾸던 시기였다. 당장 일상을 180° 바꿔 환경운동에 뛰어들지는 못하지만 내 삶을 조금이나마 생태적으로 바꿔 나가고자 2001년 가을부터 비건 채식을 시작했고, 운 좋게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우리 집 밥상을 책임지는 식재료들. 각종 콩류는 대부분의 필수아미노산을 포함하고 있어 달걀이나 우유 못지않은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이다. 식물성 식품만으로도 충분히 맛 좋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다.

 

 

독일 전체 인구의 10%가 채식
잊을 만하면 돌림노래처럼 돌아오는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광우병 등 가축전염병과 ‘썩은 고기 스캔들’(2000년대 독일에서 썩은 고기를 식품에 사용했다가 적발된 사례들)이 발생할 때마다 채식이 유행처럼 번졌다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점점 더 높아지는 건강과 환경에 대한 관심에 비례해 독일 내 채식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독일채식연합(VEBU)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독일 전체 인구 중 채식인의 비율은 10%로 네덜란드 4.5%, 프랑스 2%(2013년 기준) 등 인근 국가에 비해 비교적 높다. 그중 식물성 식품만을 섭취하는 완전 채식인 비건 채식인은 1.1% 정도이다.

육류와 어류는 먹지 않지만 유제품은 먹는 일반 채식은 개인의 선택으로 여겨 그나마 인정하는 것과 달리 비건 채식은 까다롭고 극단적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선도 있어, 독일에서 10년 넘게 비건 채식인으로 살아오면서 은근한 배제와 편견을 느껴 왔다. 그러나 채식은 자기 삶의 가치와 철학을 실천하는 개인의 생활 방식이지 결코 까탈스러운 편식으로 매도될 거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어떻게 채식을 할지 역시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받아야 할 부분이다.
최근 2~3년 사이 독일에서는 비건 채식에 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비건 채식 제품 개발과 판매가 급증하고, 마트에서 새로운 마케팅 전략으로 비건 채식을 내세우며, 비건 잡지와 요리책 같은 간행물 수도 늘어났다.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이로 인해 시민들의 환경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인 걸까. 실제로 할레 대학에서 독일 식생활의 환경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토니 마이어에 따르면 가장 생태적인 식생활은 비건 채식이라고 한다. 토니 마이어는 2006년 독일의 일반적인 식생활, 독일영양학회에서 권장하는 식생활, 달걀과 유제품을 먹는 채식, 비건 채식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했다. 그 결과 비건 채식이 다른 비교군에 비해 1차 에너지 사용량, 농약 사용량, 물 필요량, 대기오염 정도, 온실가스 배출 가능성 등 환경에 끼치는 부담이 절반 이하로 현저히 낮았다. 이런 결과가 나온 주요 이유는 1kcal의 동물성 식품을 생산하는 데 같은 열량의 식물성 식품보다 최소 7배 이상 에너지가 더 필요하고, 환경오염도 더 심하기 때문이다.

 

 

 

식물성 음식만 먹는다고 다가 아니야
보통 사람들이 채식을 시작할 때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 영양 불균형, 그중에서도 동물성 식품 배제로 인한 단백질 부족일 테다. 나도 처음엔 ‘유제품까지 안 먹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여기저기서 걱정을 많이 샀다. 하지만 《생명을 살리는 미래 영양학》(2012)을 펴낸 약사이자 식생활 전문가인 김수현과 현미 채식으로 환자를 고쳐 온 의사 황성수에 따르면 우리 몸은 현대 영양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많은 양의 단백질이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단백질 과잉이 문제라는데, 특히 동물성 단백질을 과다하게 섭취하면 소화 과정에서 위와 췌장에 부담이 되고 소화 시 배설되는 노폐물은 신장에 부담을 준다. 또 섬유질 부족에 따른 대장 내 유해균 증식과 유해가스 생성으로 대장 질환과 알레르기 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식물성 식품만으로도 우리 몸에 필요한 단백질과 꼭 음식으로 섭취해야만 한다는 필수아미노산을 충분히 공급 받을 수 있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2001)에 따르면 채소는 평균 3%, 견과류는 15%, 씨앗류는 20%가 단백질이라고 한다. 콩과 버섯도 단백질이 풍부한 식품이다. 특히 퀴노아·아마란스·메밀·치아 씨·스피룰리나(해조류)·대두는 대부분의 필수아미노산을 상당량 포함하고 있어 완전식품이라 불리는 달걀 못지않은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이다.
채식 위주의 식생활이 건강에 유익한 점이 많다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감자튀김, 콜라, 냉동피자, 푸딩 같은 가공된 완제품만으로 밥상을 채운다면?
배우이자 작가, 채식 요리 연구가인 바바라 뤼팅은 가공식품으로 연명하는 채식 생활을 이른바 ‘푸딩 채식’이라 이름 붙였다. 육식을 배제하니 분명 채식의 범주에 들긴
할 테지만, 매끼 각종 쓰레기가 나오는 건 물론이고 장기간 지속할 경우 복부비만과 당뇨 등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오로지 건강에만 초점을 맞춰 더 영양가 높은 요리를 위해 온갖 이국적인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채식의 의미를 빛바래게 할 수 있다. 지역에서 나지 않는 아보카도며 바나나 같은 수입 식재료를 쓰면 보기에 근사하고 색다른 요리를 만들 수 있으니 거리낌 없이 먹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도 가끔씩은 유기농 공정무역 수입 식품을 사 먹기도 한다. 하지만 식재료의 생태성을 생각한다면 이들은 어쩌다 한 번 먹는 특별식품이 되어야지 일상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열대 과일은 몸을 서늘하게 한다니 맛있다고 즐겨 먹을 것만은 아닌 듯하다.

 

 

내가 주로 해 먹는 채식 메뉴를 소개한다. ➊ 토마토, 허브, 식용 꽃을 채운 통곡물 빵. ➋ 통곡물 도우에 토마토, 애호박 등 텃밭 채소를 토핑으로 올려 만든 채식 피자. ➌ 치즈 대신 얇게 저민 두부를 올린 파스타. ➍ 통곡물 잡곡밥을 채운 주키니호박 구이. ➎ 한국에서 엄마가 보내 준 현미 떡과 순두부로 끓인 떡국. 버섯과 채소만으로도 깊은 국물 맛을 낼 수 있다.

 

 

나물로, 장아찌로 생태적인 밥상을 차리자
요즘 독일에서는 일반 마트에서도 밀단백 고기나 콩 고기, 두부 베이스로 만든 소시지 등 질감이며 맛이 육고기 못지않은 다양한 고기 대체 식품들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채식을 하지만 고기 맛을 잊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이런 식품이 한동안 굉장히 유용할 것이다. 나도 두부 소시지를 먹어 보고 참 맛있어서 가끔씩 장바구니에 담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들 유기농 비건 가공식품은 매끼 양껏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내 입의 욕구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국적인 먹을거리를 자주 찾거나 동물성 재료를 식물성으로만 바꿔서는 아무리 유기농으로 차려 내더라도 생태 밥상의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제철 지역 산물 위주로 소박하지만 재료 본연의 맛을 십분 활용하는 음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의 식문화 안에서는 사시사철 나는 나물과 셀 수 없이 다양한 김치·장아찌, 콩을 원료로 한 각종 발효식품과 두부 등으로 다양하게 생태적인 채식 밥상을 차릴 수 있다.
건강을 위해서나 환경을 위해서 ‘진짜 생태적인 채식 밥상’을 차리고 싶다면, 고기나 달걀을 대체할 식품을 찾느라 골머리를 앓거나 돈을 많이 쓰지 말고 주변에 흔한 제철 재료를 쓰자. 이런 재료로 국 끓이고 나물 한두 가지 하면 수라상 부럽지 않은, 그야말로 이상적이고 균형이 잘 잡힌 채식 밥상을 뚝딱 차릴 수 있다.

 

 

유기농 가게에 진열된 순식물성 고기 대체 식품들. 몇 년 전부터 비건 채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두부나 밀단백질을 이용한 다양한 고기 대체 식품을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 《살림이야기》에 지면 관계상 싣지 못한 참고 자료 목록을 누리집에 추가로 게재합니다.

〈Anzahl der Vegetarier in Deutschland〉, (VEBU, vebu.de, 2016.1.5)
Umweltwirkungen der Ernährung auf Basis nationaler Ernährungserhebungen und ausgewählter Umweltindikatoren〉 (Toni Meier, Uni Halle, 2013)
황성수 힐링스쿨〉(healingschool.kr , 2015.10.26)
생명을 살리는 미래 영양학》(김수현, 2012)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헬렌 니어링, 공경희 역, 2001)
USDA Food search〉(USDA, ndb.nal.usda.gov , 검색일 2015.4.15)
 


↘ 김미수 님은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냉장고 없는 저에너지 부엌을 시작으로 실내 퇴비 화장실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먹을거리를 직접 가꾸는 등 좀 더 지속가능하고, 좀 덜 의존적인 생태 순환의 삶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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