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 2017년 3월호 살림,살림

[ 협동의 힘-농촌 사회서비스형 유통사업단 ‘동락점빵 사회적협동조합 ]

어르신 집 앞까지 점빵이 간다

글 _ 사진 우미숙 편집위원

 

 

젊은 사람보다 노인이 더 많이 사는 시골에 두부나 콩나물은 말할 것도 없고, 막걸리 한 병, 담배 한 갑 살 곳이 없다. 사람들이 떠나니 이발소와 목욕탕, 그나마 꼬박꼬박 아침저녁 문을 열어 온 구멍가게까지 사라졌다. 남는 게 없어서다. 여기에 남을 게 없는 장사를 하겠다고 문을 연 ‘점빵’이 있다. 협동조합으로 조그마한 가게와 이동 점방을 함께 운영하는 동락점빵 사회적협동조합이다.

 

 

 

구멍가게마저 떠난 시골 마을
전남 영광군 묘량면. 동락점빵 사회적협동조합이 조그마한 구멍가게와 이동 점방을 운영하는 지역이다. 리(里) 8개와 마을 42개, 주민 2천 명 정도가 있는 오래된 농촌이다. 65살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40% 가까이 될 정도로 노령화의 그늘이 깊다.
노환으로 세상을 뜨거나 건강이 좋지 않아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모셔가곤 하니 마을 사람 수는 점점 줄어든다. 마을 사람이 줄어드니 그나마 몇 푼이라도 남겨 생활을 이어 가던 이발소나 양조장, 구멍가게 들이 하나둘 장사를 접고 떠나 버렸다. 어르신들은 담배 한 갑, 허리에 붙일 파스 한 장 사러 멀리 읍내까지 가야 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동락점빵은 구급용 가게였다. 남는 게 없다고 떠나 버린 구멍가게 대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을, 그것도 매주 한 번 대문 앞까지 와서 전해 주니 답답했던 속이 뚫리는 듯했을 것이다.
동락점빵이 마을에 들어선 것은 2011년 8월. 행복한 농촌생활을 만들어 보겠다고 귀촌인 몇몇이 나서서 만든 ‘여민동락공동체’가 마을기업 지원금으로 묘량면 노인복지센터 한편에 작은 가게를 꾸몄다. 농촌 어르신들에게는 생필품을, 그들이 생산한 쌀과 농산물은 도시 사람들에게 공급하는 일을 한다. 아이들이 주로 찾는 아이스크림과 과자, 막걸리와 안주거리, 두부·콩나물 같은 반찬거리와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 간단한 생필품들을 갖췄다.
먼 길 찾아오기 힘든 어르신들을 위해 그해 11월, 중고 1톤 트럭을 구해 ‘트럭 이동 점방’을 꾸몄다. 초기에는 매주 토요일에 마을 42곳을 돌며 생필품을 팔고, 필요한 것을 주문받아 다음 방문 때 전해 주었다. 처음엔 큰 호응이 없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을 비싸지 않게 살 수 있고 멀리 읍내에 나가지 않아도 되니 이용하는 사람이 점점 늘었다. 지금은 마을을 나눠 목요일과 금요일, 일주일에 두 번 마을을 돈다. 트럭에 실린 생필품은 지역 생산물을 포함해 생선과 해산물도 있다. 어르신들이 원하는 막걸리와 사이다는 물론, 형광등 같은 생활 전기 제품, 파스와 소화제 같은 상비약도 구비돼 있다. 작은 가
게와 1톤밖에 되지 않는 이동 점방으로 한 해에 올리는 매출은 1억 5천만원. 지난해 말 결산해 보니 당기순이익이 2천400만 원에 달했다. 공공기업의 의무구매를 포함하면 매출액이 5억 원에 이른다. 지역 어르신들이 적극적으로 이용했고, 동락점빵에서는 유통비를 줄여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공급하기 위해 물류조합을 활용한 덕분이다.
동락점빵은 2011년 행정안전부(현행정자치부)의 마을기업 사업으로 시작해 2012년부터 외부 지원 없이 자립 운영했다.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동락점빵도 마을 사람들이 협동의 힘으로 만들어 운영해 보자는 의미에서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2014년 4월 15일 동락점빵 사회적협동조합은 주민 160명에게 설립 동의를 이끌어내 창립대회를 열었다. 현재 조합원은 331명. 마을 사람들은 출자금 1만원을 내고 개별적으로 가입하기도 하고 마을 전체가 마을 조합원으로 가입하기도 했다.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어르신들에게 출자금 1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런데 200명이 넘게 모여 총회를 치른 뒤, 어르신들은 “우리가 먹은 밥값이 얼만데 1만 원 갖고 되겠어? 이왕 하려면 점빵도 늘리고 이동 점방 차도 커야 되지 않아?” 하면서 5만 원, 10만 원을 출자금으로 내놓기도 했다. 남는 장사가 아니어도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기에 시작한 동락점빵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용자 수도 늘고 물품 수도 늘어 조금씩 남는 장사가 됐다. 잉여는 마을기금으로 돌리며, 농촌공동체를 살리는 데 보탠다.

 

 

(왼쪽)어르신이 많고 마을 사람 수가 줄어드는 시골 마을, 이문이 남지 않아 구멍가게들조차 장사를 접고 떠나 버린 곳에 동락점빵이 문을 열었다. (오른쪽)동락점빵은 직원 3명이 꾸려 가고 있는데, 트럭 이동 점방 운영은 이은경 씨(사진)가 맡고 다른 2명이 묘량면 노인복지센터의 가게와 협동조합 사무를 함께 본다.

 

 

생필품 팔면서 사람들의 관계 엮어
“전깃불 나간 집에 형광등 갈아 드리고, 은행 가서 통장에 들어온 돈도 찾아 드리는 온갖 심부름 택배 노릇을 다 해요.”
이동 점방을 도맡아 온 이은경 사무국장은 생필품을 팔러 가서 마을 사람들의 생활을 돌보는 일까지 한다. 트럭 운영비나 인건비를 계산하면 남는 게 얼마나 있겠나. 하지만 매주 이동 점방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이 마을을 살 만한 곳으로 여기도록 관계망을 만드는 게 동락점빵이 하고 싶었던 일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협동조합에 관해 따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남의 장사가 아니라 우리의 장사’라고 느끼고 총회에도 꼬박꼬박 참여한다. 마을별로 조합원 모임도 해 보자고 하면서 “협동조합이 이런 거구나” 한다. 어느 마을에서는 조합원들이 모여 간담회를 하던 중 마을 곳곳에 버려진 빈 병을 모아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빈 병 수거는 협동조합 직원 활동가가 맡았다. 두 세 달에 한 번 하루 종일 마을을 돌며 빈 병을 모으면 트럭 두 대분이 나올 정도였다. 빈 병 값은 원가 그대로 어르신들에게 돌려드렸다. 어느 마을에서는 어르신들이 각자 집에 있는 빈 병을 마을회관에 가져와 직원에게 전달하고 빈 병 값을 마을회관 운영비로 활용하기도 했다. 협동조합 활동가들의 수고가 지역 어르신들의 의식을 바꿔 놓았다.
사회적협동조합은 돈 벌자고 하는 일이 아니고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자고 하는 일이라 트럭 이동 점방이 가능했다. 구멍가게는 꼭 고정된 장소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동락점빵은 보여 주었다.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한 2016년 동락점빵 사회적협동조합 송년회. 사진 동락점빵

 

 

↘ 우미숙 님은 한살림성남용인생협에서 활동했고 현재 사회적경제 공부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만은 알고 먹자》, 《협동조합 도시, 볼로냐를 가다》(공저), 《공동체도시》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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