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호 2017년 3월호 살림,살림

[ 지리산 동네부엌-톳밥·톳국·냉이바지락무침 ]

톡톡 터질 봄기운

글 고은정 _ 사진 류관희

 

 

귀하디귀한 톳을 만난 날
강원 춘천의 오지 산골에서 나고 자란 내가 서울로 이사하기 전에 접해 본 해산물은 열 손가락으로 세어도 한참이 남을 만큼 극히 적었다. 몇 날을 밖에서 굴려도 상하지 않을 정도로 소금에 전 고등어자반과, 겨울에 반짝 만날 수 있는 양미리, 그리고 식구들 생일에 만나는 미역이나 김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내가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이사했는데, 그때 만난 풍경 중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몇 가지가 있다. 그 하나가 리어카 윗면에 깐 베니어합판에 송곳처럼 편 옷핀이 쭉 꽂혀 있고 그 앞에 해삼이 엎드려 있는 모습이다. 값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서민들이 오다가다 사 먹을 수 있는 가벼운 값이 아니었을까 짐작은 한다. 오가는 사람이 주문을 하면 즉석에서 해삼을 손질해 손바닥만 한 접시에 담아 초고추장을 뿌려 주었다. 사람들은 베니어합판에 꽂혀 있는 옷핀 하나를 뽑아 고추장 옷을 입은 해삼을 찍어 먹으면 되었다. 손님이 해삼을 먹는 동안 주인장은 해삼 손질 뒤 남은 잔해를 물 한 바가지 끼얹어 해결하는, 어찌 보면 참 비위생적인 거리 음식이었는데 다들 맛있게 사 먹고 탈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아마 그런 낯선 느낌이었을 것이다. 30년도 더 전, 결혼을 하려고 시부모님을 만나러 간 곳에서 만난 톳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딱 그랬다.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나와는 정반대로, 완도라는 본섬에서 한참을 떨어져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작은 섬이다. 시어머니가 차려 주신 밥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톳나물이 올라 있었다. 초고추장에 무친 새콤달콤한 나물이었다. 씹을 때마다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이 맛보다 더 좋았다. 그 섬에서는 굉장히 귀한 몸이라는 남편의 설명이 뒤따랐다. 일본으로 수출하기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를 하니 개인적으로는 채취해다 먹기 어려운 것이라 했다. 그 귀한 것을 밥상에 올렸으니 너는 우리에게 그만큼 귀한 사람이라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묵은 김치로 비비면 이상할 만큼 맛있는 톳밥
우리에게 톳밥은 일본 사람들 밥으로 인식돼 일본 가정식처럼 다루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괜한 생각 말고 우리에게 전해 오는 여러 밥 중 나물밥의 하나로 톳밥을 분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제로 해안가나 섬에 사는 사람들이 쉽게 해 먹기도 하는 밥이다. 나물로 해 먹고, 나물을 밥에 넣어 비벼 먹고, 그러다 아예 쌀과 함께 밥으로 지어 먹는 형태로 변화한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재료의 이어달리기’ 속에서 밥도 다양하게 지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탄생한 밥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톳은 엄청난 양의 식이섬유, 칼슘, 철분, 요오드 등 미네랄이 풍부한 식재료지만 상대적으로 단백질 함량은 아주 낮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들은 질 좋은 단백질의 보고인 두부와 함께 톳을 나물로 해 먹는다. 밥도 마찬가지라, 쌀에 부족하고 톳에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고 고소한 맛도 배가하는 두부를 넣고 밥을 하면 맛으로나 영양으로나 부족함이 없어 좋다.
톳밥을 더 맛있게 먹는 비법 중 하나는 묵은 김치에 있다. 대부분의 나물밥은 간장으로 비벼 먹는다. 톳밥도 다른 나물밥처럼 간장으로 비비면 아주 맛나다. 그렇게 맛나게 먹다가 정월대보름이 지나고부터 묵은내를 풍기는 김장 김치를 송송 썰어 간장 대신 넣고 비비면 오히려 상큼하다 느껴지며 이상할 만큼 맛있다.

 

 


후루룩 꿀꺽 넘어간다 톳국
지리산의 동네부엌에선 매달 몇몇이 모여 음식 하는 법을 배우고 직접 해서는 같이 나눠 먹고 헤어진다. 이들 중 누구는 서울의 가장 번화한 곳에 살면서 일을 하는 사람이고, 또 어떤 이는 나처럼 산골에 살면서 농산물을 가공해 판매하는 일을 하며 사는 이다. 또 이중엔 해안 도시에 살아 넘쳐나는 해산물을 먹으며 사는 사람도 있고, 어린 시절을 그런 곳에서 보내 이제는 안 계시는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들이 이 깊은 산골까지 찾아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뭔가 그럴듯한 음식을 해야겠다는 절박함에 늘 쫓기는 심정인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이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것이 화려하지 않고 일상에서 늘 만날 수 있어야 하는 제철 음식이어야 해서 더 그렇다. 이런 고민 덕에 떠올려 낸 것 중 하나가 톳국이다.

톳을 손질할 때는 길이로 긴 톳을 거꾸로 잡고 손으로 훑으면 거친 줄기만 남고 알갱이가 주르륵 떨어진다. 이 알갱이들에 된장을 넣고 바락바락 무친 다음 마련해 둔 맛국물과 함께 끓인다. 산골에서 나오는 나물들로 국을 끓일 때 미리 된장이나 간장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 밑간을 한 뒤 끓이는 방법이 종종 쓰이는데 어디서나 음식을 하는 기본은 같은 것이라 여겨진다.
톳국은 맛국물을 아무리 잘 내어 끓여도 톳이 지닌 찝찔한 짠맛이, 된장으로 한 국의 간하고는 별도로 이상하게 도드라진다. 이 도드라지는 맛을 다른 맛과 부드럽게 하나로 묶어 주는 매파가 바로 두부다. 두부를 대충 으깨서 같이 넣고 끓이면 도드라지던 톳의 짠맛이 싫지 않게 숨을 죽이고 두부의 고소함과 어우러져 먹기에 좋다. 한술 떠서 입에 넣으면 씹을 사이도 없이 후루룩 꿀꺽하고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톳밥을 말아 먹어도 그렇게 넘어간다.

 

드디어 봄의 향연, 냉이바지락무침
봄의 전령사인 냉이의 뿌리에 스프링 눌리듯 눌려 있던 봄기운이 잎으로 튀어나올 때면 바지락 살에도 맛이 오를 대로 오른다. 이때는 살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뚝배기를 꺼내고 된장을 풀어 냉이와 바지락을 넣고 찌개를 끓일 생각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바빠진다. 껍데기째 들어간 바지락이 입을 벌리고 냉이의 향긋한 향이 된장과 어우러져 코를 자극하면 부엌에서 서서라도 밥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밥상을 차리는 주부로 내 생각은 늘 거기까지가 다였다. 어쩌면 안일하다고 할 수도 있게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해 먹어 오던 조리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게만 밥상을 차렸던 것 같다. 하지만 음식을 해 먹는 주부로서의 일상이 일이 되면서 나는 늘 새로운 음식에 대한 갈망이 있었나 보다. 된장찌개에서 냉이와 바지락 살을 같이 꺼내 입에 넣고 씹다가 문득 이 조합을 나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해서, 감칠맛이 입안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바지락과 냉이나물이 만나게 되었다.
음식이 입에 착착 감길 정도로 맛있기를 누구나 바란다. 그래서 그런 음식을 만들고자 애쓰고, 스스로 하지 못하
는 사람은 그런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는다. 원재료의 맛으로 최고의 맛을 내야 하는 수고가 싫거나 원가에 끌려 다니는 업주 처지에서는 손쉽게 인공 조미료와 타협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질 좋은 음식을 더 맛나게 먹을 방법이 가까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런 가르침을 냉이와 바지락에게서 얻는다. 냉이와 바지락이 맛있는 봄이라 좋다.

 

 

톳밥
재료

쌀 2컵, 손질한 생톳 200g, 당근 50g, 두부 1/2모, 명란 50g, 물 2컵, 청주 2큰술, 들기름 1큰술
만드는 법
1 쌀을 씻어 건져 30분간 불린다.
2 손질한 톳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뺀다.
3 명란에서 껍질을 분리하고 알만 꺼내 두부와 같이 으깬다.
4 당근은 톳과 비슷한 굵기로 채를 썬다.
5 압력솥에 불린 쌀을 넣고 밥물을 붓는다.
6 으깬 두부와 명란을 쌀 위에 올린다.
7 톳과 당근 채도 올리고 청주와 들기름을 넣는다.
8 센불로 끓이다가 압력솥 추가 흔들리면 1분 뒤 불을 끈다.
9 김이 저절로 빠지면 뚜껑을 열고 밥을 고루 섞어 푼다.
10 송송 썬 신 김치나 무생채를 넣어 비벼 먹는다.

 

 

톳국
재료

손질한 생톳 200g, 두부 1모, 된장 2큰술, 다진 마늘 1큰술, 대파 1뿌리, 해물 맛국물 6컵, 소금 약간
만드는 법
1 해물 맛국물을 낸다.
2 손질한 톳을 깨끗이 씻고 된장, 마늘을 넣어 조물조물 무친다.
3 무친 톳에 두부를 넣고 으깨면서 무친다.
4 냄비에 맛국물을 넣고 끓기 시작하면 무쳐 놓은 톳을 넣고 끓인다.
5 대파를 어슷하게 썰어 넣고 불을 끈다.
6 모자라는 간은 소금으로 해서 담아낸다.

 

 

 

 

냉이바지락무침
재료

냉이 100g, 된장 1큰술, 국간장 1작은술, 들기름 1큰술, 다진 파 1작은술, 볶은 통깨 약간, 소금 약간, 바지락 200g, 물 1컵, 청주 1큰술
만드는 법
1 냉이는 깨끗하게 다듬어 여러 번 씻는다.
2 손질한 냉이를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친 뒤 찬물에 헹궈 꼭 짠다.
3 바지락은 어두운 곳에 두고 해감한다.
4 냄비에 물 1컵과 바지락, 청주를 넣고 끓인다.
5 바지락 입이 벌어지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끈다.
6 바지락은 껍데기에서 살을 분리하고, 바지락 국물은 고운체에 받쳐 거른다.
7 바지락 살을 거른 국물에 담가 둔다.
8 냉이를 국간장과 들기름에 먼저 무친다.
9 냉이에 된장과 다진 파를 넣고 다시 한 번 무친다.
(냉이 향을 죽이는 마늘은 쓰지 않는 것이 좋고 대파를 빼도 좋다.)
10 바지락 살만 건져 무친 냉이에 넣고 다시 한 번 살살 무친다.
11 통깨를 뿌려 마무리한다.

 

 

↘ 고은정 님은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로, 식생활 교육에 힘쓰는 음식문화운동가입니다. 《장 나와라 뚝딱》과 《집 주변에서 찾는 음식보약》, 《반찬이 필요 없는 밥 한 그릇》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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