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3호 2008년 겨울 [특집] 살림의 경제

[ 창업자금 지원으로 희망실현 첫걸음 내디딘 ]

행복을 파는 과일가게

글 우미숙

 

 

무보증 무담보 대출, 물에 빠진 내겐 큰 장대와 같아

 

 

강남구 일원동 영희초등학교 앞,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길모퉁이에 ‘행복을 파는 과일가게’가 자리 잡은 것은 지난해 12월 9일이다. 10평 남짓한 소박한 가게에 80가지가 넘는 과일로 꽉 차 있다. 간판부터 여느 과일가게와 달라 보인다. ‘희망실현창구 1호점’. 남한테 행복을 주고 맛있는 과일도 판다는 뜻을 담은 ‘행복을 파는 과일가게’는 그 시작이 남달랐다.

 

이 가게는 강남구청이 시작한 무담보 소액대출사업인 ‘희망실현창구’의 첫 결실이다. 기술과 경험은 있지만 신용이나 담보문제로 사업자금을 마련할 수 없는 저소득층 주민에게 2천만 원에서 최고 5천만 원까지 무담보 저금리로 자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다. 3단계의 까다로운 심사와 9:1의 경쟁을 뚫고 창업을 이루어낸 이준용 씨는 그간 실직으로 인한 불안정한 생활을 접고 새 생활을 시작했다.

 

“과일가게는 제 꿈이었어요. 거기다가 제가 제일 잘 알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 자신감이 생겼어요.”

과일만은 세상 무엇보다 잘 안다는 그는 2년간의 건설노동자 생활 이전에 과일과 관련한 일을 오랫동안 해왔다. 우연히 집 앞 게시판에서 ‘창업지원제도’의 공고문을 본 순간 떠오른 것도 ‘과일가게’였다.

 

 

 

 

 

 

20여년 과일과의 인연이 희망의 싹이 되어

 

그는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하여 5년간 번듯한 직장생활을 했다. 그가 과일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직장을 퇴직하고부터다. 가락동 청과 도매상, 과일경매보조, 백화점 대형마트 청과팀장 등 줄곧 과일과 함께 살아왔다. 대형마트 청과팀장을 2년 전에 퇴직하고 나서는 일용직 건설노동자 생활을 해왔다.

 

40대에 들어서면 일자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넘어가고 그들에게 밀려나온 세상에서는 돈이 없으면 일거리 하나 내 것으로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이준용 씨도 그랬다. 갈만한 곳은 건설현장 일용노동자뿐이었다. 건설경기가 나빠지면서 그 마저도 일하는 날보다 허탕 치는 날이 많았다. 실직 상태의 어려움뿐 아니라 결혼 초부터 함께 살아온 장모가 뇌출혈로 쓰러져 치료비를 마련해야 하는 사정도 겹쳤다. 둘이 보태도 생활의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주고 싶고 어머니에게도 잘 해드리고 싶었던 그는 현재의 굴레를 벗어나는 게 가장 중요했다.

 

희망과 절망은 항상 서로 번갈아가며 온다더니 그가 우연히 길을 걷다 발견한 게시판의 공고가 지금의 굴레를 벗어나는 희망의 시작이었다. 20여년의 과일과의 인연이 헛된 것이 아니었는지 예전부터 ‘내 가게’ 하나 갖는 꿈이 이렇게 실현되었다. 지난해 9월에 지원신청을 한 그는 자기소개서와 사업계획서를 심사하는 1단계를 무난히 지나고 실무능력을 보는 2차 심사도 거뜬히 통과했다. 2차 심사준비를 위해 보름간 시장조사를 했다. 시간대별 이동인구, 점포 위치 등 오래 꿈꾸어왔던 일이라 오히려 시장환경조사가 어렵지 않았다. 마지막 단계는 심층면접이다. 5명 중 4명이 선정됐다. 기존의 가게를 인수하거나 미용실 리뉴얼로 매출신장을 해보려는 경우였다. 새롭게 가게를 내는 창업점은 그가 처음이었다.

 

지원경쟁이 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돈이 없어서 뭔가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자금지원 조건이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5천만 원을 지원받으면 3천만 원은 채권담보로 5년 후에 일시불로 갚거나 연장할 수 있다. 2천만 원은 운전자금이다. 3개월 거치 5년 동안 갚아가는 것이다. 4개월 이후부터 매달 34만 원씩 갚아 가면 5년 후 자신의 돈이 되는 거다. 이준용씨는 지원금 5천만 원에 자신의 돈1천만 원, 누님으로부터 도움 받은 1천5백만 원을 보태 7천5백만 원으로 새 길을 텄다.

 

 

꿈은 이루었는데 잠을 이룰 수 없네요

 

 

가슴에 품어왔던 꿈이 실현되어 지금이 진짜인지 의심이 간다는 그는 벅찬 가슴에 잠까지 설친다. 하지만 그보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가게 일을 보고 일주일에 세 번 새벽 3시에 과일도매시장에 나가는 일로 항시 잠이 부족하다. 안 바쁜 시간인 낮 1시에 집에 잠깐 들러 쪽잠을 자기도 한다. 그나마 부부가 함께 일을 해 훨씬 수월하다. 부인은 진열 담당, 이준용 씨는 오후에 밀린 배달을 도맡는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일요일에도 오후 2시에 문을 연다. 하루가 지나면 상하는 과일이 많아 교회에 양해를 구하고 11시 예배를 마치고 얼른 달려온다.

  

 

이 모두가 그에겐 행복한 비명이라며 이렇게 열심히 살 수 있는 터전이 있어서 마음 한구석이 든든하단다. 특히 아이들 셋 모두 공부를 아주 잘 해 모자란 잠을 보충할 만큼 기운이 생긴다. 초등 1학년 아들과 4학년 딸, 중1 큰아들까지 세 아이들이 부족한 실력을 채워줄 학원도 다니지 못하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정직하게 자라고 있어 부모에겐 큰 힘이 된다.

 

 

 

 

 

 

 

 

 

과일가게 창업 돕고싶어요

 

과일가게를 찾는 손님은 가까운 이웃뿐 아니라 멀리 청담동과 압구정동에서도 온다.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면서. “내가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며 묻는 이도 더러 있다.

 

“어느 정도 알고 해야 해요. 성실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물건을 사오면서 값을 얼마로 매겨야 할지, 하루 얼마를 팔아야 수익이 남는지 판단해야 하거든요.”

 

과일은 구매가 중요하다. 맛과 신선함을 갖춘 물건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집, 과일 참 맛있다.’는 입소문은 구매에서 90% 이상 결정된다. 이 일을 하면서 그는 자신이 뭘 해야 할지 한 가지 생각해냈다. 과일가게를 낼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보태주고 싶은 것이다. 과일 고르는 비법에서부터 가게 인테리어까지 일체 서비스가 가능하단다. 그의 희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욕심을 조금 더 부려 2호, 3호 분점을 꿈꾼다. 5년 후 지금의 과일가게가 그의 것으로 온전히 돌아올 때 즈음이면 곳곳에서 ‘행복을 파는 과일가게’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을 파는 과일가게’는 건물 모퉁이의 작은 가게지만 그에게는 대형마트 과일점이다. 이젠 팀장이 아니라 사장이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내 가게’다. 모자란 잠에 고된 가게일이 오히려 기쁨이고 행복이다. 그런 주인이 파는 과일을 먹는 손님은 과일 하나에 행복 하나를 덤으로 얻는 셈이다.

 

오후 4시. 과일가게가 북적이기 시작한다. 가게 이름이 새겨진 빨간 조끼를 입은 이준용 씨 부부는 “어서 오십시오”하는 큰 목소리로 손님을 맞는다. 이 시간부터 밤까지 가장 붐빈다. 방송과 신문에 잘 알려진 탓인지 가게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잘 알고 찾아온다. 자칭 과일박사인 그는 손님들에게 과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말하는 대로 골라 먹으면 정말 맛있다며 손님들이 이것저것 자주 묻는다. 손님들의 발걸음이 계속되어 행복한 비명을 질러대는 주인은 정말 행복한 얼굴이다.

 

 

 

 

희망실현창구란?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 Credit)는 기술과 경험은 있지만 신용이나 담보 문제로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저소득 주민들에게 무담보, 무보증으로 소액자금을 대출해주는 제도다. 1976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이 대표적인 예다.

 

강남구는 2008년 4월17일, 사회연대은행과 희망실현창구 설치운영협약을 체결하고 주민, 기업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모금과 구 예산을 합해 총 12억1천만 원의 기금을 만들었다. 앞으로 모금활동을 통해 20억 원 규모로 기금을 확대하려고 한다.

 

 

 

그라민 은행이란?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가 시작한 무담보 무보증 소액신용대출(Micro Credit) 은행이다. 치타공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있던 무하마드 유누스가 1973년 20여 달러 때문에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던 빈민들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준 것이 시작이 되어 1976년부터 자신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더 많은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소액신용대출을 하는 ‘그라민 은행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 다카(Dhaka)에 본사를 두고 1983년에 독립 은행이 되었으며, 나라 전역에 걸쳐 2,200개 이상의 지점을 가지고 있다. 그라민 은행 모델은 영세민들에게 스스로 자기 자신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영세민들을 돕는 효율적인 기관의 상징이 되었다. 그라민 은행의 대출 수혜자들의 97% 이상이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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