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호 2017년 2월호 살림,살림

[ 살림 생각-삶의 현장에서 '정치적 냉소주의'를 넘어 ]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이에게

글 김민하

요즘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게 너무 힘들다. 무슨 말을 하든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세태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된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누가 “구속영장이 왜 기각됐느냐”고 묻는다면 장문의 글을 써 제출할 수 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나름의 짚어 볼 법적 쟁점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태에서 그건 다 영장을 기각한 법원과 이재용 부회장 측을 옹호하기 위한 술수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실제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기각 결정의 맥락을 설명하는 기사에 그런 댓글이 달린다. ‘법원과 이재용에 비판적인 사람’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선 그 판사가 삼성 장학생이고, 아들이 삼성에 취업할 예정이라는 등의 사실 확인이 거의 불가능한 설명을 반드시 곁들여야 한다. 그제야 사람들은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여준다.
오해 마시라. 그런 일이 세상에 없다는 게 아니다.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에서 보듯, ‘찌라시’가 ‘현실’로 확인되는 게 이 정권의 작동 원리이니 말이다. 다만 우리가 매번 ‘누가 나쁜 놈’인지 따지는 데만 매몰되는 것은 결국 문제의 근본적 차원을 외면하는 길이 될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재벌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알려진 김상조 교수가 법원의 결정 이전에 경향신문에 칼럼을 썼다. 특검 의 구속영장 청구 논리가 빈약하다는 취지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최대 걸림돌이 되는 사모펀드 앨리엇매니지먼트가 나타나기 전에 이미 삼성은 최순실 씨를 관리하고 있었고,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독대가 성사된 것은 합병 이후이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최순실 씨 일가에 대한 지원 사이에는 대가성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김상조 교수는 ‘배신자’인가? 그렇지 않다. 요컨대 삼성의 로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문제만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삼성의 ‘큰 그림’은 단건을 처리하기 위해 로비를 하자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적·제도적 조건을 형성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상시적 정경유착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 바로 이 점에 주목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재벌을 중심으로 짜인 한국 경제 그 자체를 상대로 놓고 싸울 때야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상대의 마음이 떠나가는 게 느껴진다. 현대의 한국인들이 생각하기에 ‘복잡한 얘기’는 나를 속이기 위한 술수일 따름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 일이 아니라면 그 사안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 자체를 거부한다. 알기는 싫고, 욕은 하고 싶다. 정치가 겉으로는 명분과 당위를 말하면서 뒤로는 사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믿는 ‘정치적 냉소주의’는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다.
한국 경제 자체를 상대로 놓고 싸운다는 것은 새로운 정치의 힘을 빌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본을 외면하는 정치적 냉소주의의 영향력 아래서는 새로운 정치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 상품’을 구매하고 실망한 후에 다시 불매하는 악순환을 벗어나 정치 그 자체를 우리 손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바로 그 현장에서부터 정치가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 김민하 님은 매체 비평지 <미디어스>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 진보정당 운동에 참여했고, 《냉소 사회》, 《돼지의 왕》,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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