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호 2017년 2월호 살림,살림

[ 2월의 문화 나들이 ]

진실에 직면할 때

글 안태호 편집위원

동양의 햄릿이 펼치는 지독한 복수극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서양에 <햄릿>이 있다면, 동양에는 <조씨고아>가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 수록된 중국 춘추시대의 역사적 사건을 원나라 작가 기군상이 재구성한 작품으로, 18세기 유럽에 소개되어 ‘동양의 햄릿’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볼테르가 각색한 《중국 고아》가 특히 유명하다.
장군 ‘도안고’는 권력에 눈이 멀어 왕의 총애를 받는 ‘조순’에게 반란죄를 씌워 조씨 가문을 멸살한다. 시골 의원 ‘정영’은 조씨 가문의 마지막 핏줄인 ‘고아’를 자신의 아들 ‘정발’로 키우고, 도안고는 그의 정체를 모른 채 고아를 양아들 삼는다. 고아가 장성하자 정영은 모든 사실을 알려 주고 양아버지 도안고에게 복수할 것을 당부한다. 2015년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과 대한민국연극대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3 등 국내 연극상을 휩쓸었고, 지난해에는 중국 베이징 공연으로 본토에서도 호평받았다.
작품은 기구한 운명과 쓰라린 복수 이야기를 다룬다. 공교롭게도 연출가 고선웅도 기구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고선웅은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역작 <푸르른 날에>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으로 박근혜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그런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관람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작품성에 반해 청와대와 국정원에 건의해 그를 블랙리스트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2월 1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17일과 18일에는 충남 천안예술의전당, 3월 24일과 25일에는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문의 1644-2003(서울), 1566-0155(천안), 1544-1556(대전)

 

이미지 제공: 국립극단

 


무엇이 우리를 망치고 있는가?
전시 <세 개의 쉬운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
장영혜중공업. 얼핏 철강이나 기계를 다루는 회사처럼 들리지만, 한국인 장영혜와 중국계 미국인 마크 번주가 구성한 세계적인 웹 아티스트 그룹의 이름이다. 이들은 웹페이지를 통해 주로 재즈풍의 음악에 명멸하는 글자를 결합한 사회 비판적인 텍스트 애니메이션을 발표해 왔다. 국내 전시가 유독 드물었는데 7년 만에 전시를 열었다.
아트선재센터 3층 전관을 활용한 전시에서는 한국어와 영어로 이루어진 2채널 비디오가 ‘가정’, ‘경제’, ‘정치’를 주제로 상영된다. 1층의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는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를 비틀었다. 평화롭게 식사하다 육두문자를 남발하는 가족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가족이 처한 상황을 묻고 있다. 2층에 전시된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에서는 대기업에 종속된 삶의 풍경을 들춰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삼성의 제품과 서비스에 둘러싸여 사는 생을 구성해 놓은 텍스트와 영상에서 “아유, 삼성 없는 삶은 외롭습니다”라는 말에 이르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3층에 선보인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 무엇을 감추나?’는 정치인들의 위선과 기만을 머리를 물들이는 행위에 비유하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치에 독설을 날린다.

이번 전시는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건물 외벽 배너로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낳기도 했다. 주민들 사이에 “아트선재센터가 경영난으로 삼성에 넘어갔다”느니, “시국이 어수선한 틈을 타고 반기업단체가 아트선재센터를 점거 농성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오해 아닌 오해지만, 홍보 효과는 톡톡히 봤다는 후문이다.
3월 12일까지, 서울 아트선재센터, 문의 02-733-8949

 

 이미지 제공: 아트선재센터

 

 

↘ 안태호 님은 문화정책과 기획 영역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삶과 예술이 만나 섞여 드는 과정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협동조합 이사를 맡고 있으며,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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