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호 2017년 2월호 살림,살림

[ 세계의 전환마을-에콰도르의 ‘수막 카우사이’와 먹거리 주권 운동 ]

음식의 맛과 향을 살려 내는 공동체

글 _ 사진 현경

남아메리카 원주민인 케추아의 말로 ‘수막 카우사이’는 좋은 삶, 아름다운 삶, 잘 살기라는 의미다. 에콰도르에서 수막 카우사이의 가치를 바탕으로 먹거리 주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실험 농장 공동체를 찾아갔다.

 

 

먹거리 주권 운동을 펼치는 에콰도르의 유기농부들. 사진 출처: groundswellinternational.org

 

 

새 헌법에 ‘자연의 권리’ 조항을 넣은 에콰도르
에콰도르는 2008년 사회운동가 출신의 코레아 대통령의 주도로 새 헌법을 제정했다. 그 헌법에 에콰도르는 ‘자연의 권리’라는 조항을 새롭게 만든다. 인권이 중요한 만큼 지구, 자연의 존엄성도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속 깊은 발상은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오래된 가치, 수막 카우사이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수막 카우사이를 삶의 목적으로 지켜 왔다. 500년간 서구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도 사라지지 않은 진리, 그들 삶의 뼛속 깊이 체화된 이 가치는 무엇일까?
에콰도르에 7년째 사는 모니카 박사가 라틴아메리카의 에코페미니즘과 수막 카우사이를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공부해 보자고 제안했고, 나는 대학원생 9명과 함께 열흘 동안 남아메리카로 여행 세미나를 떠났다. 수막 카우사이라는 개념에 대해 모니카에게 들은 날로부터 그 말은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국어의 ‘살림’이 내게는 만트라(진리의 말)와 같은 말인데 수막 카우사이도 이제 내게 새로운 만트라가 될 듯한 예감이 들었다. 속으로 수막 카우사이를 반복할 때마다 힘이 솟는 느낌이었다.

 

명상 안내자 친구와의 약속
에콰도르는 내가 죽기 전에 꼭 가야 할 나라였다. 내 젊은 날, 내 몸과 영혼이 무너지고 있을 때 나는 삶을 견뎌 내고 지키기 위해 찾아간 미국 보스턴의 한 명상센터에서 이반이라는 에콰도르 출신의 명상 안내자를 만났다. 숭산 스님의 제자인 이반은 내게 불교 명상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아픈 사람에게 가장 잘 듣는 마음의 약, 친절함과 연민을 필요할 때마다 아낌없이 주었다. 나보다 8살이나 연하지만, 그는 천 년도 넘는 오래된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너무 아파 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날들. 이반은 나를 차에 태우고 바다를 보여 주겠다며 보스턴 근교의 항구로 향했다. 오랜 침묵 끝에 이반이 입을 열었다. “현경, 나무들을 봐. 그들은 힘이 있어. 별들을 봐. 그들은 힘이 있어. 그리고 너를 봐. 너는 힘이 있어. 나는 너의 힘이 결국은 너를 치유할 것을 믿어. 그러니 너 자신을 믿어 봐.”
나는 1년 넘게 이반의 따뜻한 배려를 흠뻑 받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반은 가끔 내게 ‘위문편지’를 보냈다. 이런 내용도 있었다. “나는 40살까지만 미국에서 일하고 모국인 에콰도르로 돌아갈 거야. 그리고 바닷가에 이층
집을 짓고 매일 바다를 보고 살 거야. 2층에 네가 언제든지 와서 글을 쓸 수 있는 너의 방을 만들어 놓을게. 항상 너를 기쁘게 맞을 친구가 이 지구상에 있음을 기억하고 힘내.”
그해 크리스마스 즈음, 이반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받았다. 이반이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에콰도르에 왔다가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고. 이반의 일기장을 보니 너는 내 아들에게 참 소중한 친구였고, 이반이 떠났어도 그 약속한 네 방이 에콰도르에 있음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오라고. 그 편지를 받고 꼭 에콰도르에 가서 이반의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는 나무를 심겠다고 다짐했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이반이 다른 세상으로 간 지 20년도 훌쩍 넘은 시간, 나는 이제야 에콰도르로 간다. 수막 카우사이, 아름다운 삶, 좋은 삶을 찾아서.

 

 

 

수막 카우사이의 핵심 가치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는 적도와 가깝지만, 해발고도가 높아서인지 아침저녁으로는 스웨터를 챙겨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했다. 그러나 1년 내내 봄날 같은 기후 덕분인지 산과 들은 온통 녹색이다. 세계에서 일조시간이 가장 길어 크고 빛과 향기가 아름다운 장미 생산국으로도 유명하다. 아기 머리만큼 큰 장미가 24송이에 2달러(약 2천300원). 그 장미를 학생 9명의 방과 우리가 세미나를 할 수도원의 큰 방과 식당에 나누어 꽂았다. 이제 열흘 동안 수막 카우사이의 깊은 뜻을 에콰도르의 원주민, 학자, 운동가 들에게 배울 것이다.
처음 우리를 수막 카우사이로 인도한 사람은 키토 사회과학대학 교수인 주디스 살가도 박사였다. 그는 수막 카우사이를 ‘풍성한 삶’이라고 정의했다. 이 가치는 서양의 세계관과 단절을 요구한다. 서양의 세계관과 달리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지 않고 자연 일부이다. 인간은 자연과 분리되어 문명을 만들어 가지 않는다. 자연, 파차마마(Pachamama, 남아메리카의 지구 여신) 안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다. 수막 카우사이에는 4가지 핵심 가치가 있다. 관계성, 상호성, 호혜성, 그리고 상징성이다. 첫째,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분리된 자율성은 없다. 둘째, 모든 것은 상호 협조적인 이원성이 있다. 밤과 낮, 남성성과 여성성. 그러나 이것은 이원론이 아니다. 반대도 아니다. 창조적 긴장 관계이다. 셋째, 모든 것은 호혜적이다. 주고받는다. 넷째, 우리는 상징적인 공간, 제례가 필요하다. 이러한 공간을 통해 우리는 지구와 모든 존재와의 연결성을 깨닫고 기억하고 체화할 수 있다.
에콰도르가 이 가치를 헌법에 명시한 것은 역사적인 일이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이것을 개발 논리와 연결해 수막 카우사이의 원래 뜻을 왜곡하고 있다고 살가도 박사는 비판했다.
원주민 운동가인 베로니카 구아얀도 비슷한 비판을 한다. 코레아 대통령은 “책임 있는 광산업”이란 말을 쓰며 아마존 원주민 지역에서 주민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공격적인 채굴을 하고 있다. 또 미국 제국주의의 GMO가 아니라 에콰도르의 GMO를 쓰면 식량문제를 해결하며 “좋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정치 선전을 한다. 그리고 원주민 환경운동가들을 체포해 감옥에 가두고 있다는 소
식도 들린다. 많은 환경운동가는 수막 카우사이가 코레아 정권에 납치되어 정치 선전으로 이용되고 왜곡되고 있다고 한탄한다. 또 다른 운동가들은 지금 에콰도르 정부가 중국의 막대한 원조를 받고 상환하지 못해 갈라파고스 섬 입장료를 중국이 가져가고 있다며 중국 제국주의의 진출을 우려했다. 또 그들은 코레아 대통령이 자신의 여동생을 통해 청정 지역인 갈라파고스 섬에 5성급 호텔을 지으려 한다고 분노했다.

 

실존의 패러다임에 따른 먹거리 주권 운동
이러한 와중에서도 수막 카우사이를 실현하며 살려는 작은 공동체 운동이 에콰도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감명 깊은 운동은 ‘먹거리 주권 운동’이다. 그들은 작은 실험 농장과 공동체를 만들고 먹거리를 통해 사회운동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스테판 셔우드와 미리암 파레데스 부부의 실험 농장 공동체에 가서 많은 것을 배웠다. 두 사람은 모두 키토 사회과학대학의 교수이다. 그들은 코레아 대통령이 수막 카우사이에 근거한 헌법을 만들 때 참여했다가 지금은 그의 정치 노선에 실망하여 관계를 끊고 농장 일에 전념하고 있다. 농장에서 토종씨앗을 보호하고 안데스의 약용식물과 전통 먹거리를 재배하며 기니피그, 토종닭 등을 키운다. 그리고 빗물을 받아 최소의 물로 농사를 짓는 방법도 실천한다. 그들은 유기농 곡물과 채소를 길러 키토의 유명 요리사들과 음식축제를 열고, 서로 적대적인 그룹들이 전통음식을 나누며 만남을 이루는 평화운동도 한다. ‘25만 가족 캠페인’을 통해 먹거리 주권 운동을 문화운동, 공동체운동, 삶의 철학 운동으로 확장한다.
스테판과 미리암은 이제 저항의 패러다임에서 실존의 패러다임으로 운동의 방향을 전환하자고 제안한다. 수막 카우사이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먹거리 운동이 투쟁을 넘어 음식의 ‘맛과 향’을 살려 내는, 매일의 삶의 질을 상승시키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맛과 향에는 우리 공동체의 기억과 미학, 그리고 체화된 철학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농장에는 학생, 운동가, 학자, 요리사, 예술가 들이 항상 찾아와 함께 노동하고 농사짓고 담론을 만들어 내고 운동의 전략과 축제를 꾸며 나간다. 그들의 멘토는 90살이 되어 가는 원주민 어머니다. 꼬부랑 할머니 어머니는 300마리가 넘는 기니피그 하나하나를 다 친밀하게 알고 그들과 매일 대화한다.

 

 

 

미래가 아니라 지금
수막 카우사이를 정치제도화하려 했던 시민운동의 노력을 정부에서 가로챈 것에 분노와 절망을 느끼지 않느냐는 나의 질문에 스테판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헌법위원회에 들어가 헌법을 함께 만들 때 꿈꿨던 현실 정치 개혁에는 실망하여 위원회를 떠났지만, 나는 작은 공동체들이 가진 변화의 힘을 확신한다”고 했다. 부패한 정부에 저항하고 싸우느라고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보다는 지금 여기서 수막 카우사이를 실존으로 살아 내는 사람들, 운동들, 공동체들이 많아질 때 그 점들이 연결되어 우주와 사회의 놀라운 변화가 아래로부터 서서히 일어날 거라고 스테판은 믿었다. 그 변화는 끊임없는 과정이고 그 과정을 우리는 수막 카우사이, 아름다운 삶, 좋은 삶, 풍성한 삶으로 지금 여기서 경험하는 것, 실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스테판의 말은 체화된 말이라 힘이 있었다.
농장에서 유기농 채소와 허브, 신선한 달걀을 학생들에게 주려고 사 오며 참 행복했다. 이런 사람들의 공동체가 전환마을이고 새 지구 문명을 만들어 가는 ‘통함 공동체(breakthrough community)’다.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신이 나고 삶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 주는 이 사람들이 고맙다. 나는 그들을 ‘명예 살림이스트’로 추대하고 싶다.
농장에서 내려오는데 키토의 저녁노을이 찬란하다. 이반이 주고 간 전화번호를 돌리니 수화기 저편에서 이반의 가족은 15년 전에 그 집을 떠났고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반의 무덤에 아름다운 꽃나무는 이제 어떻게 심어야 하나? 망연하다. 일단 그 나무를 내 가슴속에 심고 에콰도르를 떠난다. 이반이 어디에 있든, 조상의 지혜인 수막 카우사이,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기를 기도하며.

 

 

↘ 현경 님은 스스로 ‘살림이스트’라고 칭하는 여성·환경·평화운동가입니다. 미국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7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