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호 2017년 1월호 살림,살림

[ 책으로 떠나는 인문학 여행-새로운 민주주의 ]

탄핵 이후, 한국 사회는 어디로?

글 하승우

‘이게 나라인가’
지난해 12월 9일 국회는 국회의원 총 300명 중 234명의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탄핵소추의 이유는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이었다. 한국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04년 3월 12일에도 국회는 193명의 찬성으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그때는 탄핵 이유가 대통령의 ‘정치적 중립성 위반’이었는데, 같은 해 5월 14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총 9명 중 6명의 반대로 탄핵 심판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앞두고 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건도 사건이지만 이번 일로 드러난 점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말 무기력하고 대의정치제도가 부패했다는 사실이다. 몇몇 사람이 최고 권력을 좌우하고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가진 자들의 결탁이 노골적으로 이루어졌다. 재벌들은 노동자나 중소기업을 가족이라 말만 할 뿐 그들에게 돌아갈 몫을 최대한 줄여서 권력에게 뇌물로 바쳤다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촛불집회에 등장한 구호처럼 ‘이게 나라인가’. 이민을 떠날 게 아니라면 정치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대안은 이미 많다
이진순 등이 쓴 《듣도 보도 못한 정치》(문학동네 2016)는 다른 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민주주의 실험들을 소개한다. 고대 아테네 광장의 민주주의만 ‘배워 온’ 우리에게 이 책은 21세기 민주주의와 정당이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례가 디지털 민주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책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정치 활동이 다음 세 가지 원칙을 충족하는 A.R.T.정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22~23쪽)

 

A: Accountable 약속한 바를 엄격하게 이행하는 책임정치
R: Responsive 시민의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소통정치
T: Transparent 재정과 의사결정 과정을 빠짐없이 공개하는 투명정치

 

맞는 이야기다. 공약은 안 지키고 시민의 요구를 무시하며 밀실 협상과 야합이 난무하는 한국 정치에도 꼭 필요한 원칙이다. 정치가 이 원칙을 지키려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이 책은 새로운 시민 주도형 정당들의 공통점을 시민의 토론과 표결을 통한 정책과 공약 수립, 후보자 선출, 그리고 직업정치인의 특권 폐지, 투명한 정보공개를 통한 부패 방지를 꼽는다. 하지만 원칙을 세운다고 민주주의가 곧바로 실현되지는 않을 터, 다른 나라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이 책은 정치 게임의 룰을 실제로 바꾼 사례로 스페인의 정당 포데모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 아이슬란드 해적당을 소개한다.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15M운동’(5월 15일 마드리드 도심 점거운동)에서 분출된 광장의 열기를 상향식 의사결정체계와 다양한 시민들의 수평적인 연대를 보장하는 정당운동으로 전환시켰다.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은 공공수도, 지속가능한 교통수단, 지속가능한 개발, 인터넷 접속권, 생태주의를 내세운 온라인 정치운동으로 젊
고 강한 정당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이슬란드 해적당은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와 이용, 주 35시간 노동제, 시민 발의 제도화, 반기득권을 내세우며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좌파녹색당과 함께 아이슬란드의 제2당이 되었다. 이 사례들은 모두 부패와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정치운동으로 조직했다.
더불어 이 책은 이런 정당들이 활용하는 의사결정 플랫폼이나 시민 참여 어플리케이션 등을 소개한다. ‘찬성, 보류, 반대, 차단’이라는 4개 입장 표시로 토론하고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인 루미오, 의견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함께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브리게이드, 스페인 마드리드 시의 시민 참여 시스템 디사이드 마드리드 등 다양한 디지털 민주주의 도구들이 이미 존재한다.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서 우리도 당장 쓸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한 정치운동 또는 정치조직이다.
정치 개혁이 활발하게 진행 중인 나라와 한국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은 바로 선거제도다. 앞서 언급한 스페인,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모두 비례대표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정치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의 유쾌한 실험
이진순 외 지음|문학동네 펴냄|2016년

 

 

기득권 정치를 무너뜨릴 선거제도 개혁
하승수는 《삶을 위한 정치혁명》(한티재 2016)에서 정당이 얻은 득표수에 따라 공평하게 의석을 배분해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제도가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라고 주장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란 지금처럼 지역구별로 선거를 진행하고 유권자가 지역 후보에 1표, 정당에 1표를 행사하되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고 그 의석수와 지역구 당선자 수의 차이만큼 비례대표를 채우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지금 국회의원 총원이 300명인데, 한 당이 정당 득표율 30%를 얻으면 일단 90석을 확보하고, 지역구 당선자 수가 70명이면 나머지 20명을 비례대표로 채우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면 득표율과 의석수가 최대한 일치되어 민의를 잘 반영할 수 있다고 하승수는 주장한다.
그런데 선거제도를 바꾼다고 정말 정치가 바뀔까? 하승수는 ‘대통령제냐 내각책임제냐’보다 중요한 질문이 ‘어떤 선거제도이냐’이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통해 다당제를 실현하면 양당으로 고착된 기득권 정치 구조를 깰 수 있다고 강조한다. 다당제가 되면 “정치 혐오나 정치 무관심이 줄어들고 투표율이 올라”갈 뿐 아니라 “다양한 가치와 정책을 가진 정당들이 존재하므로 ‘찍을 데가 없어서 찍지 않는’ 현상이 줄어들 수 있”다.(46쪽) 그래서 지금처럼 소수가 정치·경제적 권력을 독점·행사하는 체제를 깨고 민주주의로 가자고 하승수는 주장한다. 대통령을 누구로 선출할지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시스템의 규칙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야 국민이 더는 개돼지 취급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촛불집회 이후, 탄핵 이후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에서 많이 한다. 그러나 무엇에, 어떻게 초점을 맞출지, 어떻게 한국 사회를 개혁할지 분명한 방법이나 좌표를 이야기하는 목소리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 책들이 그 방법이나 좌표를 잡는 지침이 되리라 믿는다.

 


삶을 위한 정치혁명
시스템의 노예에서 시스템의 주인으로
하승수 지음|한티재 펴냄|2016년

 

 

↘ 하승우 님은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으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자치와 공생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회의 모순과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 날카롭고 까칠해야 하지만 삶의 방향은 우정을 향해야 한다고 믿는 ‘까칠한 로맨티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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