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호 2017년 1월호 살림,살림

[ 아빠의 수다-삶의 중심이 바뀐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

아이가 태어났다

글 _ 사진 하만조

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은 ‘아빠’에게 어떤 의미일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육아에 대해 ‘엄마’에게 더 큰 책임과 부담을 지우지만, 그 속에서 부모와 사회가 함께하는 육아를 고민하는 아빠의 속내를 3회에 걸쳐 들어 본다.

 

 

어떻게 하면 아이와 즐겁게 보낼까 골몰하며 휴일마다 가까운 박물관이나 공원을 모두 섭렵하고 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너무 멀리 외출하기 어려워졌다.

 

 

익숙한 집안일 분담, 아이가 생기니 혼란
한국 사회는 가사노동의 대부분을 여성이 담당한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남성은 집안일을 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53분이지만 여성은 238분으로 4배 이상 길다. 사랑해서 결혼하는데 왜 가사노동은 불평등하게 배분될까? 굳이 통계를 들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그 차이는 크게 줄어들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것은 결혼 전 내가 가진 생각이었다. 그래서 결혼식 다음 날부터 우리 부부에게 가사 분담은 전혀 갈등 요소가 아니었다. 문서로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부엌일과 정리 정돈, 아내는 청소와 가계부 정리 등 각자의 강점이 자연스레 집안에서의 자기 역할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아이를 갖게 되었다. 출산과 관련한 자료를 뒤적이며 아이는 되도록 자연분만으로 낳자고 의견을 모았다. 비가 오고 천둥이 치던 어느 밤, 아내는 갑작스레 진통을 느꼈고 우린 택시를 타고 조산원으로 갔다. 산통이 이어지는 동안 내게는 작은 역할이 주어졌다. 산모가 힘들어할 때마다 등을 쓸어내려 주고 출산이 임박하면 호흡을 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잡아 주라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시늉만 낸 것 같다. 그래도 나중에 아내에게 도움이 되었단 얘길 듣고 내심 기쁘기는 했다. 아이는 탯줄을 자르자마자 바로 내 품에 안겼다. 겨우 눈만 뜬 아이가 입을 꼬물거리는 모습을 보며 ‘아빠’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아이가 태어나자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전보다 늘었다. 이전처럼 역할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은 이제 쉽지 않아 보였다.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모유 수유는 엄마와 아이를 24시간 결속시켰다. 그런데 모유는 처음부터 펑펑 나오지 않았다. 아내는 모유가 적게 나와 아이가 배고파하는 것에 힘들어했고 때론 아이가 서툴게 젖을 빨면서 생겨난 상처에 아파했다. 아내와 아이를 수발하는 일이 내 몫이 되었지만 나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이유식을 먹게 되면 다시 육아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원자 역할이 계속되었다. 요리와 청소를 하고 아이 기저귀를 갈고 목욕을 시켜도 결국 아이가 깨서 칭얼거릴 때 진정시킬 수 있는 건 엄마였다. 새벽에 몇 번씩 깨서 앉아 젖을 먹이는 아내를 보며 한편 미안하고 안쓰러웠지만 나는 내 일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았다. 때로 일이 늦어지거나 약속이 잡히는 날엔 눈치도 보였다.
집안일은 아이의 일상을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바깥일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귀여운 아이와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이 아쉬웠지만 일상의 반복 속에서 감정은 조금씩 무뎌져 갔고 자연스레 아이는 업무 다음 순위를 차지했다. 나중에 아내가 일터로 돌아간 뒤에도 아이가 아내의 직장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육아는 계속해서
엄마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슈퍼맨이 될 순 없고
아침에 일터로 출근하고 저녁에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각종 모임에 참석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전화요금은 기본료를 넘지 않게 되었다. 그나마도 시간이 흐르자 아내 외에는 업무 관련 전화로만 한정되었다. 사회적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던 나로선 상실감이 컸지만 아이를 재우고 난 밤 10시 이후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히 일터에서는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많이 배려해 주었지만 여전히 가사와 육아 지원에 남은 시간을 써야 하는 현실은 답답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자아실현에 대한 욕구불만도 있었다. 육아가 아니더라도 야근으로 주중을 온통 회사에 바치는 평균적인 한국의 직장인들에게 자아실현은 낯선 단어일 수 있다. 그래도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신의 업무 분야에서 깊이와 넓이를 더하고 인정받으며 성취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존재한다. 그런데 현실은 무언가 새로 배우고 익혀야 할 시간을 육아와 가사로 대체한다.

특히 여성에게 그 부담은 가혹할 만큼 크다. 국가와 시장의 보육 시스템이 작동하지만 부모를 다 같이 일터로 몰아내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꿈을 꿔 본다. 업무 시간에 자기 계발 시간도 있으면 어떨까? 혹은 모두가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아이를 돌보는 데 시간을 쓸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어떨까? 경쟁하며 일하는 것보다 돌봄의 시간이 늘어나면 더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아이가 잠들면 우리 부부에게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다만 그 시간이 너무 짧을 뿐.

 

 

영원한 청년이란 착각에서 벗어나
밤중 수유로 편히 못 자는 아내와 달리 안정된 수면 시간을 보장받은 나는 한편으로 꾀도 났다. 내 잠을 줄여 아이가 잠든 이후부터 2~3시간은 뭘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아이를 재우는 동안에 불을 다 꺼야 했고 애를 재우다가 일어나려니 몸이 너무 무거웠다. 그나마 아이가 일찍 잠들면 다행이지만 대개는 아이를 안고 달래며 좁은 집 안을 서성거려야 했다.
아이는 무엇이 불편한지 젖을 먹여도 기저귀를 갈아 줘도 자세를 바꿔 봐도 계속 칭얼거렸다. 안아 주는 시간도 5분에서 10분, 그리고 20분 이상씩 넘어갔고 나의 부실한 체력에도 한계가 왔다. 엄마와 함께 아이를 교대로 달래는 동안 밤은 깊어 갔고 겨우 아이가 잠들 무렵엔 우리도 지쳤다.
쳇바퀴 같은 일상이어도 즐거움과 배움이 없지는 않았다. 아이는 웃음을 배웠고 난데없는 즐거움을 종종 가져다줬으며 우리도 점점 육아에 익숙해져 갔다. 내가 아니면 누가 돌보랴 하는 책임감도 조금씩 커졌고, 육아를 소재로 하는 대화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그 무렵 떠오른 경기 화성의 어느 공동체에서 들은 경험담도 큰 힘이 되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라는 미션을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했다는 이야기다. 한데 어울려 살다보면 부딪히는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동체에 필요한 과제가 부여되면 무조건 하면서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아이와 함께 살면서 이제 나도 그런 미션을 수행할 때가 된 것인가 싶었다. 매사를 선택하며 살며 그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지만 때로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마음이 조금씩 커졌다. 나는 영원한 청년이라는 착각도 조금씩 놓게 되었고 일을 벌이는 것도 줄어 들었다. 대신 효율성과 효과성을 고민하게 되었다. 어떡하면 일과 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아이와 함께 살면서 무언가 하나둘 비우는 동안 새롭게 채워 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 하만조 님은 4살 아들과 70일 된 딸을 키우는 두 아이의 아빠이며, 모심과살림연구소에서 한살림운동을 확산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