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호 2017년 1월호 [특집] 특집-살리는 말

[ 의사와 교사의 말하기 ]

전문가의 삶과 말

글 구현지 편집부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은 흔히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전문성을 권력화한다는 비판을 듣고는 한다. 우리가 생활하면서 꼭 만나게 되는 전문가들, 특히 매일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직업인 의사와 교사를 만나 말과 삶이 서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각자의 직업상 말하기 원칙은 무엇인지 들었다.

 

 

동네 주치의로 질병 치료뿐 아니라 마을의 삶을 함께
경기 안산의 새안산상록의원은 2000년 안산의료생협으로 출발한 안산복지사회적협동조합(안산의료사협)의 제2진료소로 2015년 3월 문을 열었다. 원장인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철환 씨는 의과대학에 다닐 때 매주 ‘달동네 의료봉사’를 하며 ‘민중의료’에 눈떴고 1988년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된 뒤 대학병원에서 의사이자 교수로 쭉 일했다. 그러다 2015년 안산의료사협에서 제2진료소를 낸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하여 의료생협의 ‘동네 주치의’라는 꿈을 실현하게 되었다.
“최근 ‘헬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져서, 의과대학에서도 별도로 과정을 두고 가르칠 정도입니다. 특히 가정의학과와 같은 1차 진료에서 개인, 가족, 지역사회와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요.”
의사는 늘 환자에게 말을 한다. 동네 주치의는 치료뿐 아니라 질병 예방과 건강관리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지역주민과 만나고 의사소통해야 한다. 다만 대화 태도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김철환 씨는 이제 의사가 일방적으로 의료 정보를 가이드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요즘은 건강보험공단의 의료인(hi.nhis.or.kr) 등 공공기관이나 대학병원 등에서 객관적이고 상세한 인터넷 의료정보 사이트를 운영하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최신 의료정보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가끔은 의사인 저도 미처 자세히 모르는 최신 의료 소식을 물어보는 환자들도 있어요. 그럴 때 저는 ‘같이 알아봅시다’라고 합니다.”
새안산상록의원에서는 조합원에게 월 1회 건강강좌를 한다. 요가·걷기·풍물·그림 등 조합원이 스스로 꾸린 건강과 취미 소모임도 많이 있다. 다양한 조합원들의 삶을 보며 의사 자신의 경험도 폭넓어진다. “진료실 안에서의 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병에 대한 대화 외에도 환자들의 삶을 다각도로 알아야만 해요. 그러려면 의사가 삶의 다양한 면에 관심을 갖고 풍부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곳 조합원들도 처음에
는 서먹하다가 2년째에 접어들어 비로소 서로 신뢰하고 가까워지는 게 눈에 보였다고 한다.
김철환 씨는 말하기의 시작은 ‘진심’이라고 꼽는다. 자기 스스로 착각하는 진심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 이를 위해 마음 수련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다음이 ‘훈련’이다. 마흔 살 때 ‘비폭력 대화’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이십 대에 이런 책을 읽었으면 삶이 훨씬 달라졌겠다고 생각했다. 말하는 기술과 방법은 익히고 연습해야 한다. 김철환 씨는 오랜 경력의 의사이지만 늘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
“내 삶에는 가족의 말이 큰 영향을 미쳐 왔어요. 특히 아내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이기적으로 살자’라고 했는데, 그게 제가 대학병원 대신 의료사협에 뛰어들게 한 힘이 되었습니다.”

 

 

“주치의는 진료실 안에서 질병만 주제로 환자에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삶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상적인 건강관리, 예방 의료를 해야 합니다.”

 

 

개개인의 발달단계에 따라 변하는 말하기
서울 송파초등학교 교사 채은경 씨는 올해로 교사가 된 지 19년째를 맞았다. 학급 담임교사와 영어과 전담교사를 몇 년씩 번갈아 경험하고 지난해부터 서울교육청 정책으로 초등학교에 담임교사의 잡무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별도의 업무전담팀이 생기면서 그 팀에서 일하고 있다.
“학교에서 교사는 학생, 부모님, 교사라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는데, 상대에 따라 말하는 내용과 방법을 적절하게 달리하게 되어요. 그래도 말하기의 90% 이상은 학생들을 향하지만요.”
학생들에게 말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발달단계에 따라 적절한 어휘와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 나이에 따라 평균적인 발달단계가 있지만 그건 참고가 될 뿐 아이들 하나하나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개인적인 발달 정도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들은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요. 교사의 한마디가 미래를 바꿀 수 있겠죠. 그 점을 늘 염두에 두고, ‘너는 이런 사람이야’ 하는 식으로 ‘선언적’으로 말하면 절대로 안 돼요. 자칫 그렇게 되어 버릴 수 있으니까요. 현재의 행동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그쳐야지 미래를 단언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교실에서 교사는 독립적인 결정권을 갖는 편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평가하고 지시하는 말하기 태도에 젖기 쉽다고. 채은경 씨는 그 점을 늘 경계한다. 말은 조직문화와 상호작용한다.
“수평적인 조직에서 평등한 언어문화가 나타나고 동시에 평등한 언어습관이 조직을 더욱 수평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학교도 마찬가지예요. 학교 조직문화도 더 평등하고 개방적이려면 한살림생협과 같은 협동조합의 수평적인 언어를 배우고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채은경 씨는 동료 교사들과 대화하면서 가정·교육·종교 등 개인적인 성장 환경이 언어습관과 소통방식에 미치는 영향력을 실감한다. 그래서 교사로서 학생에게 교과서의 지식만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다양한 문화적인 자극을 전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부터 더 풍부한 경험을 쌓자고 생각하며 실천하고 있다.
“아이들은 결국은 스스로 자랍니다. 그래도 어느날 아이의 변화를 깨닫고 여기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내가 영향을 미쳤겠지 생각하면 보람과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이 제게는 신호등과 같아요. 저 자신이 그래도 꽤 선량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아이들과 함께한 덕분에 지금보다 더 나쁜 사람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는 해요.”

 

 

“교실에서 학생에게 건네는 한마디 말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미래의 모습을 단정하는 선언적 말하기는 절대 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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