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호 2016년 12월호 살림,살림

[ 12월의 문화 나들이 ]

이토록 싸늘한 겨울에 어울리는

글 안태호 편집위원

외면할 수 없는 서늘한 매력
전시 <그림자를 삼키다>

허무가 뚝뚝 묻어나는 얼굴, 몽환적인 어둠을 담아내는 상처 입은 형상. 천성명의 작품을 처음 본 사람은 어딘가 으스스한 기분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냉랭 버전이라고 하면 비슷할까. 무채색의 인물과 조각상은 특유의 무표정으로 알 수 없는 슬픔과 서늘한 공포를 자아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기괴하고 섬뜩한 정서는 외면할 수 없는 매력으로 관람자를 잡아끈다.
<그림자를 삼키다>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는 2007년부터 10년 동안 진행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이다. 정오에서 출발해 밤과 새벽을 지나 아침부터 다시 정오까지 하루 동안의 이야기로 작업의 얼개가 짜여 있다. 2007년과 2008년에 정오에서 밤까지 가는 작업이 완성되었고, 이번 전시에서는 새벽 부분이 진행된다. ‘이름 없는 숲’을 배경으로 ‘사내’로 불리는 주인공, 안내자 역할의 여자, 숲속의 사건들을 관찰하는 새 형상의 인물과 그들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분열과 상실, 유혹과 욕망하는 과정이 조각을 중심으로 사진, 회화, 음향, 이야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감각을 자극하며 관람객과 대화를 나눈다.
12월 23일까지, 대구 우손갤러리, 문의 053-427-7736

 

 

이미지 제공: 우손갤러리

 

 

외롭고 높고 쓸쓸한, 백석의 삶과 고뇌
연극 <백석우화 -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중략)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은 한국어로 쓰인 서정시의 한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다.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라곤 하지만,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는 걸 알고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는 그의 고백은 ‘북에서는 쓰기를 거부당하고 남에서는 읽기를 거부당한’ 천재 시인의 자리를 잘 보여 준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일보에서 근무하다 친일 문학 단체 설립에 실망하여 만주로 갔고, 해방 후 다시 고향 함경도로 이주하였으나 체제에 대한 찬양을 강요받아 좌절한 끝에 결국 창작을 놓아 버린다. 최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연출가 이윤택이 시와 시집은 남았으나 북에서의 행적을 알 수 없었던 시인의 삶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서사극으로 살려 내, 격동의 시기를 살아야 했던 시인의 고단함과 예술적 고뇌를 고스란히 담았다. 남한의 수많은 시인들을 질투에 휩싸이게 했다는, 연극의 부제로 쓰인 시의 풍경은 어떤 소개 글보다 작품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전략)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12월 18일까지 금요일 포함 주말만 공연, 서울 대학로 30스튜디오, 문의 1899-4368

 

 

 

↘ 안태호 님은 문화정책과 기획 영역에서 활동해 왔습니다. 삶과 예술이 만나 섞여 드는 과정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술과도시사회연구소협동조합 이사를 맡고 있으며, 만화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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