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호 2016년 12월호 살림,살림

[ 놀며 자라며-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이들의 한 방식 ]

끝까지 역시 꿀맛으로

글 _ 사진 김연경

경기 양평의 골짜기 속 작은 학교인 ‘나무숲세움터’ 아이들이 계절에 맞게 뛰놀며 자라는 모습을 다달이 담는다.
이번은 그 마지막으로, 여전히 아이들은 놀이가 성장의 힘임을 보여 준다.

 

 

잣알 빼 먹기에 푹 빠진 아이들. 시커먼 손끝으로 온 신경이 집중된다.

 

 

눈 대신 잣알이 투두둑
큰 눈이 온다는 대설(12월 7일)이다. 하지만 중국 화북 지방을 기준으로 한 절기라서 실제로 이때 우리나라에 큰 눈은 잘 오지 않는다. 산과 들이 큰 눈을 기다리는 절기 같다고 할까.
이때가 되면 나무숲세움터에서는 아침마다 불을 피운다. 큰 아이들은 불 피울 장소를 마련하려고 둥그렇게 땅을 파고 동생들은 불쏘시개를 모아 온다. 가으내 밤알은 빼 먹고 모아 놓았던 밤송이와 마른 나뭇잎이 좋은 불쏘시개다. 불쏘시개를 다 모으면 다음은 잔가지를 모으고, 굵은 나무들도 여럿이서 기차놀이를 하며 끌고 와서는 한데 모아 놓는다.
준비가 끝나면 나무를 우물 정 자 모양으로 잘 쌓은 뒤 그 가운데에 불을 붙인다. 불을 본 아이들은 이내 신이 난다. 땔감을 모아 오느라 지쳤을 법도 한데 마냥 즐거워만 한다. 불이 안정적으로 붙으면 어디선가 잣송이가 담긴 바구니를 들고 오는 아이가 있다. 잣을 구워 먹고 싶어서다. 잘 마른 잣송이가 불 속으로 쏙쏙 들어간다.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잣 향이 세움터 앞마당을 가득 메운다.
잠시 뒤 겉보기엔 다 타 버렸을 것 같은 잣송이를 꺼내 조금 식힌 다음 바구니에 대고 장갑 낀 손으로 잣송이를 털면 잣알들이 투두둑 떨어진다. 단단한 껍데기가 잣 알맹이를 안아 주듯 보호하고 있다가 아이들에게 맛있게 구워진 간식을 선물해 준다. 아이들은 굽는 과정을 숨죽이며 바라보고 있다가, 껍데기 속에서 잣알들이 나오는 순간 얼굴이 환해진다. 알맹이까지 다 타 버렸을까 봐 걱정했던 모양이다. 잣알은 노랗게 구워지니 고소한 맛이 더 진하다. 추운 겨울이 와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기만 하는 자연이 고맙기만 하다.

 

 

나무를 나르느라 겨울에도 땀이 뻘뻘. 찡그린 표정에도 즐거움이 담겼다.

 

 

둥지에서 움집까지 신나게 뚝딱뚝딱
받기만 하니 너무 미안해서일까? 세움터 초등 과정인 소나무반 아이들이 ‘숲과 생명’ 시간에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날씨가 추워지니 새들을 위해 둥지를 만들어 주기로 한 것이다.
계획을 세우자 여러 의견이 나왔다. 아이들은 둥지를 어떻게 만들고 어디에 두어야 새들이 포근하게 잘 지낼지 한참을 이야기 나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숲 깊은 곳에 만들어 주기로 한다. 그리고 너무 자주 찾아가면 사람들이 있는 줄 알고 새들이 오지 않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만 가서 살펴봐 주기로 한다. 그러면서 동물들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나는지 또다시 이야기에 빠져든다. 날씨가 추워지니 숲속 동물들이 걱정되는가 보다. 숲속 동물들이 어느새 아이들의 가족이 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다 우리들의 집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신석기시대에 짓고 살았던 움집을 만들자고 한다. 겨울에 바깥 놀이를
하다가 추우면 그 집에 들어가서 놀자고 한다. 그렇게 움집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마침 산에 벌목해 놓은 나무들이 있어서 아이들은 톱을 하나씩 들고 산에 올라 뼈대로 세울 나무들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끌고 내려온다. 아이들의 온몸이 땀으로 범벅되고 나뭇가지에 긁혔는지 상처가 나 있다. 그런데도 얼굴엔 웃음이 한가득이다.
며칠에 걸쳐 뼈대를 세우자 볏짚을 엮어 덮을 차례가 되었다. 그래서 근처 농부를 찾아가 볏단을 얻고 새끼 꼬기와 이엉 엮기를 배운다. 눈썰미 좋은 아이들은 몇 번 보고 바로 따라 한다. 아이들은 손으로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계속 새끼를 꼰다. 그렇게 몸으로 익힌 배움을 가지고 세움터로 돌아와 동생들에게 가르쳐 주기도 하고, 길게 꼰 새끼로 줄넘기도 하며 한바탕 신나게 논다.
하지만 실제로 볏짚을 엮는 과정은 쉽지 않다. 호호 불어도 손이 굳을 때가 많고, 이엉 엮는 일이 아이들 힘으로는 어렵다. 그래도 올해가 가기 전에 마무리하고 싶어 열심을 내 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움집이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신나서 환호성을 지르고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며 ‘내가 해냈구나’ 하는 표정으로 한참을 둘러보고 만져 본다. 움집은 곧바로 놀이터로 변신한다. 움집 바닥에 남은 볏짚을 깔고 눕기도 하고, 바깥에는 신발장도 만드는 등 새로운 놀이가 이어지자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아이들을 석기시대로 보낸 듯한 움집. ‘들어갔다 나왔다’가 무한 반복된다.

 

 

새알심이 동동, 나누는 마음도 둥둥
움집을 만드느라 동지(12월 21일)가 다가온 줄도 몰랐다. 냇물은 어느새 빙판이 되어 있다. 아이들은 산에 오르자마자 온몸을 언 냇물에 던진다. 올해 처음 하는 빙판 놀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줄 서서 멀리 미끄러지기 놀이를 하다가 모두 함께 손을 잡고 미끄러지기 놀이를 한다. 또 빙판 위에 누워서는 스스로 팽이가 되어 빙글빙글 돌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얼음을 깬다. 깬 얼음을 거울이라며 얼굴을 비추고 화장하는 흉내를 내는 아이, 아이스크림이라고 먹는 아이도 있다. 배 아플까 봐 먹지 말라고 해도 어느새 슬쩍 입에 넣고 아작아작 깨물어 먹는다. 그러곤 맛있는지 생긋 웃는다.
동지 하면 동지팥죽을 빼놓을 수 없다. 아이들은 동지와 관련된 옛이야기를 듣다가 대뜸 동지팥죽을 만들어 먹자고 한다. 그리고 마을 어른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움집 옆에 작은 아궁이를 만들었다. 땅을 조금 파고 둘레에 돌을 쌓아 냄비를 올려 보면서 아궁이의 적당한 높이를 맞추어 본다. 냄비를 안정적으로 올릴 수 있게 되자 미리 준비한 팥물을 붓고 끊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불 피우는 일에 아주 익숙하다.
마당에서 불을 조절하며 타지 않게 팥물을 끊이는 사이, 안에서는 찹쌀가루를 익반죽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새알심을 만든다. 끊는 팥물에 고사리 손으로 만든 새알심을 넣고 끊인다. 그러면 새알심이 하나씩 동동 떠오른다. 아이들은 벌써 군침을 흘린다. 그래도 얼른 먹고 싶은 마음을 참고 어른들에게 먼저 대접하기로 한다. 옆집 사는 노부부, 세움터 건물을 지어 주느라 고생한 삼촌들, 윗집 사는 이모네 등으로 배달을 시작한다. 나누는 즐거움에 아이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배달하고 돌아온 아이들은 이제 자기네도 먹고 싶다고 난리다. 우리는 뜨거운 팥죽을 후후 불어 가며 한 그릇씩 뚝딱 먹어 치운다. 정말 꿀맛이다. 이렇게 나눔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니 더 보람 있고 즐겁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신나는 놀이가 새해에도 끊이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꽝꽝 얼어도 상관없다. 냇물은 역시 뛰어들어야 제맛.

 

 

※ 이번 호로 ‘놀며 자라며’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써 주신 필자와 사랑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 김연경 님은 나무숲세움터에서 초등 과정을 맡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네 아이의 엄마로, 세움터에서는 도토리 이모로 아이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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