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호 2016년 12월호 [특집] 특집-한살림 30주년 새로운 모색

[ 영덕군수의 ‘핵발전소 건설 관련 업무 중단’ 발표를 보며 ]

영덕이 또 바뀌고 있다

글_사진 안재훈

지난 11월 7일에는 영덕군수가 “영덕 핵발전소 건설을 지질조사 등을 실시해 안전성이 확보되기 전에는 추진을 중단해야 하며, 그에 따른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잇따른 지진 소식 때문에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해 지역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가장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영덕의 소식을 들어본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 반대 주민투표 어느덧 1년
지난 11월 11일 영덕군청 마당에서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1주년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핵발전소 유치 신청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사를 묻기 위해 영덕군 전체 군민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2015년의 주민투표를 기념하고, 그때 투표 결과에서 나타난 주민들의 의사를 수용하라고 정부에 다시 한번 촉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2015년 영덕 주민투표는 주민의 생명과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핵발전소 건설 부지를 정부가 주민의 의사를 제대로 묻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선정한 데서 촉발되었다. 영덕군민들은 주민의 의사를 제대로 물을 수 있는 주민투표를 실시해 달라고 중앙정부와 군수에 요구했지만, “핵발전소 건설은 고유의 국가 사무”라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결국 영덕군민들은 민간 주도로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주민투표를 실시하였다.
2015년 11월 11~12일 실시된 주민투표에 투표인명부 1만 8천581명 중 60.3%인 1만 1천209명이 투표에 참여해 그중 91.7%인 1만 274명이 유치 반대 의사를 밝혔다. 주민투표를 준비하는 동안 정부에서는 주민투표가 ‘불법’이며 ‘효력 없다’고 매도하며 산업통상자원부와 행정자치부 장관들이 공문, 서신 등을 보내고 이장들이 협조를 못 하게 하는 등 방해를 했다. 하지만 영덕군민들은 굴하지 않고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투표에 참여했다.
그때 주민투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백운해 목사는 “심한 방해 공작 때문에 참여가 저조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영덕군민 1만 1천209명이 투표에 참여했다”고 경과를 보고했다. 백 위원장은 “투표 당일 3천 명이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이것은 주민투표사의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불상사 하나 없이 아름답게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이 주민의 뜻이란 것을 알게 됐고, 주민의 허락 없이 핵발전소는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지진 위험 지대, 영덕군수의 핵발전소 업무 중단 선언
그러나 주민투표 이후에도 정부와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러한 영덕군민들의 의견을 수용하거나 정책에 반영하지 않았다. 영덕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난 9월 12일 영덕과 가까운 경북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주민투표 1주년 행사에 참여한 한 어민은 “저는 어업을 하고 있는데, 지진 이후에 물고기가 확 줄어 버렸습니다. 무슨 사달이 난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요? 고기를 잡은들 어디다 팔 것이고요. 그러니 핵발전소는 안 됩니다”라며 지진은 물론 핵발전소에 대한 불안과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러한 영덕군민들의 민심을 반영하듯 이희진 영덕군수를 비롯한 영덕군 기관·사회단체장들은 지난 11월 7일 “군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라며, “영덕 핵발전소 건설을 지질조사 등을 실시해 안전성이 확보되기 전에는 추진을 중단해야 하며, 그에 따른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주민투표 결과에도 입장을 밝히지 않던 영덕군수가 나서서 핵발전소 업무 중단을 선언하는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영덕군수의 이러한 입장 발표에 영덕 핵발전소에 맞서 싸워 온 영덕군민들은 물론 탈핵운동 진영도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한반도 동남부에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이 많이 존재하고, 그동안 지진이 과소평가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영덕 핵발전소 부지 인근에 지난 9월 경주 지진을 일으킨 활성단층인 양산단층이 지나고 있다고 밝혀지면서 영덕군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소방방재청의 <활성단층지도 및 지진위험지도 제작 보고>(2012)에 따르면 영덕 핵발전소 부지에 인접해서 자부터단층, 덕곡단층 등 양산단층에 딸린 활성단층들이 존재함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에 관해 더 자세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의 1주년 행사를 앞두고, 영덕군수가 영덕 핵발전소 건설과 관련한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최근 경북 경주에서 지진이 잇따르며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결과다.

 

 

핵발전소 선택하지 않을 권리 주민에게 있다
정부에서 핵발전소 유치 등의 문제가 고유의 국가사무라며 주민투표를 거부해 왔지만, 법원에서 주민투표 사안임을 확인하는 판결이 최근 이어지고 있다. 영덕보다 앞서 2014년 10월 9일에 실시된 ‘삼척 핵발전소 찬반 주민투표’ 과정에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기소된 김양호 삼척시장에게 지난 2016년 10월 6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 시장은 ‘핵발전소 백지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삼척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고, 주민투표를 시행했다. 그런데 검찰은 핵발전소 유치 여부 등이 국가사무라며 김 시장이 관련 법령을 위반하고 직권을 남용했다고 기소했던 것. 재판부는 김 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삼척 원전 건설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치 신청 철회 여부를 결정하고 철회 의사표시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주민투표를 진행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속한다”라고 판결했다.
부산 기장 해수담수화 주민투표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9월 8일 부산지방법원 행정1부에서 “식수 등 생활용수로 사용되는 수돗물의 공급에 관한 사항은 주민의 건강과 위생에 직결된 문제로서 담수화 수돗물 공급 사업은 ‘주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담수화 수돗물 공급 사업은 주민투표의 대상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판결들은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역시 정당하며,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물어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노진철 경북대 교수는 “핵발전소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주민의 의견을 묻는 것”이라며 “중앙정부가 저지른 공공성 훼손에 대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실현시키고자 분연히 투표에 참여했던 1만 1천209명의 영덕군민들이 몸소 행동으로서, 민주주의는 중앙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 자신이 자신의 삶을 구속하는 결정에 직접 참여해 실천하는 것”임을 보여 주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헌법적 가치를 파괴한 국정농단을 보면서, 영덕군민들이 스스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삶의 공간과 미래를 선택하기 위해 나섰던 주민투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정부가 국민의 의사를 묻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준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국민의 의사를 묻고 그에 따라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제 정부가 영덕군민의 뜻을 반영해 핵발전소 부지 선정을 철회하는 것이 남았다.

 

 

↘ 안재훈 님은 환경운동연합 탈핵팀장으로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에 실무 및 자원봉사 활동 조직을 지원했고, 핵발전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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