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살림,살림

[ 살림의 밥상 | 살림농산의 참기름과 들기름 ]

진짜를 만드는 사람에게 진짜가 보인다

글 정은미

 

화룡점정, 용을 그리고 난 후에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려 넣었더니 그 용이 실제 용이 되어 홀연히 구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이 말을 음식에 적용한다면? 한국 음식에서 용의 눈동자에 해당하는 것을 꼽는다면 단연코 참기름, 들기름이 그 주인공이 될 것이다. 음식에 풍미를 더하고 맛을 결정하는 마침표 격인 참기름과 들기름은 한 방울 떨어지는 것으로써, 마치 입 속에서 용이 비천하는 듯한 맛을 선사한다.


아직 손맛이 생기지 않던 새댁시절, 엄마가 만들어주던 반찬이 먹고 싶다는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조물조물 무쳐진 엄마표 반찬 꾸러미가 당장 내일이면 도착할 것이란 기대를 가득 안고서 말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야야, 그런 걸 어떻게 보내노? 그런 반찬은 국물도 새고, 요즘 같은 때는 날이 따뜻해서 가는 동안 다 상한다 아이가. 그냥 니가 만들어 묵어래이.” 하는 엄마의 답변만이 수화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닌가. 섭섭한 마음으로 통화를 마친 후로도 한참동안 제대로 된 반찬을 상에 올리지 못하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택배 물건이 왔다. 엄마가 보낸 것은 신문지에 둘둘 말려 얌전히 누워 있는 참기름 한 병과 들기름 한 병. 그리고 짧은 편지였다.


“이건 진짜 참기름하고 들기름이다. 엄마가 시장가서 국산 참깨하고 들깨 사서 깨끗이 씻고, 들들 볶아 갖고 방앗간 가서 짜는 거 옆에서 다 지켜보고 만든 것이니까 안심하고 맛있게 먹어라. 헤프게 먹지 말고. 사랑한데이.”
반찬거리를 걱정하는 딸을 위해 엄마가 보낸 것은 다름 아닌 참기름과 들기름. 엄마에게 진짜 기름은 손수 만든 반찬에 버금가는 소중한 음식이었던 것이다.

 

참기름은 ‘참’ 기름이 아니다?


대형 마트에 가면 손쉽게 기름을 구할 수 있는데도 엄마가 손수 깨를 사고, 기름 짜는 것을 지켜본 후 한 병의 기름을 딸에게 쥐어준 것은 시중에서는 진짜 기름을 찾기가 어렵다는 불신 때문이다. 이는 비단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부분의 공통된 생각이기도 하다.
 

각종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라는 것이 먹을거리에 대한 충격적이고 끔찍한 실태들뿐 아닌가. 질 낮은 중국산 원료에 제조업체의 위생 상태도 못 미더운데다 유해 첨가물까지. 게다가 몇 년 전에는 참기름에서 암을 유발하는 ‘벤조피렌’이 검출됐다고 보도되어 또 한 번 주부들의 속을 발칵 뒤집어 놓지 않았던가. 사태가 이러하니 진짜 참기름, 들기름이라고 떡하니 쓰여 있어도 왠지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여기에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하는 건 불량 기름을 만들어 내는 제조업자들의 몹쓸 항변이다. 벤조피렌 사태가 일어났을 당시, TV고발프로그램의 추적망에 걸린 생산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이지 가관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지금 국내에서 유통되는 참기름 중에 진짜 참기름은 하나도 없어요. 수지가 안 맞는데 어떻게 진짜 참기름을 만들어요. 다 가짜야, 가짜.”라고 거칠게 내뱉는 그의 이야기는 참기름이 진짜 참기름이 아닌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투였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진짜 참기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불량 업자의 말만 좇아 진짜 참기름을 찾을 수 없다는 믿음(?)으로 살기에는 세상살이가 너무 팍팍하지 않은가.   
알고 보면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진짜 기름이라고 불리는 참기름과 들기름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비록 조금 비싼 값을 치르긴 하지만 그들의 말은 한결같다. ‘생산자가 진짜라고 하니까 진짜라고 믿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이런 믿음을 가지는 착한 소비자의 말처럼 진짜 기름을 판매한다는 업체가 ‘진실로’ 진짜 기름을 짜내는지 추적해보는 것이 좋겠다.


강원도 원주에 자리 잡은 ‘살림농산’. 이곳에서는 국내산 참깨와 들깨를 이용해 20년이 넘도록 진짜 참기름과 들기름만을 생산해오고 있다고 한다. 과연 사실일까? 살림농산의 구본우 상무는 대답한다.

 

 

“진짜 기름을 만드는 데에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최상의 원재료이고, 둘째는 볶는 기술력,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정입니다.”
기름은 원재료가 가장 중요한데 살림농산에서 쓰는 참깨는 주로 전라도의 임자농협에서 들여온다고 했다.


“참깨는 특성상 거름이 많은 땅보다 물이 잘 빠지는 땅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섬에서 나는 것이 좋아요. 들깨는 강원도 산을 많이 씁니다.”


다음으로 깨를 볶는 과정이 기름의 맛과 품질을 좌우하는 중요한 항목이라고 했다.
“참기름은 160℃ 이하로 볶습니다. 그래야 맛과 향이 살아있거든요. 덕분에 참깨를 볶을 때 발생하는 벤조피렌의 함량이 식약청 기준인 2ppb 보다도 훨씬 낮은 0.13ppb로 미미한 양입니다. 지금도 6개월에 한 번씩 연구소에 의뢰해 벤조피렌 함량을 검사하고요.”


시중에는 참기름을 180℃ 이상 고온에서 생산하는 업체가 많은데 이것은 기름을 더 많이 짜내기 위한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온도가 높으면 기름은 많이 나올지 몰라도 맛과 향이 떨어지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좋은 기름을 만드는 데 중요한 것이라고 꼽은 ‘사람의 정’은 기름을 만드는 사람의 ‘정신’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와 더불어 이웃까지 내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겁니다. 일례로 우리 살림농산은 먼지를 잡아주는 집진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공장에서 나오는 먼지 때문에 이웃이 피해를 보면 안 되니까요.”
집진시설은 장비가 고가인데다가, 필수 설치항목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갖추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살림농산에서는 기름의 상태와, 생산자의 건강 그리고 주변 환경까지 생각하는 올곧은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중에서 진짜 참기름을 찾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저는 사람을 믿는 편입니다. 만드는 사람이 신뢰할 만한 사람이고, 그가 진짜라고 하면 그게 바로 진짜인 것입니다. 참깨라는 게 작황에 따라 가마당 30~40만 원까지 차이가 날 때가 많아요. 워낙 참깨 값이 비싼데다가 다음 해에 나올 가격을 예상하기가 쉽지 않아 계약재배가 어렵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산 참깨가 더욱 귀해지는 거죠. 중국산이 국내산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요즘에는 중국산보다 가격이 더 저렴한 인도산이 중국산으로 둔갑하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진짜 참기름 찾기가 어렵다고들 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좋은 참기름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그렇게 만드는 사람은 많이 있다고 했다. 일단 만드는 사람이 믿을 만하면 그 제품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우리가 만드는 기름이 국내 최고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 말고도 좋은 원료와 제조방식으로 진짜 기름을 만들어 내는 데도 많이 있어요. 동네 방앗간이나 잘 알려진 동종 업계에서도 좋은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량참기름을 만드는 사람은 ‘대한민국에는 진짜 참기름이 없다’고 말하는 반면, 진짜 참기름을 만드는 생산자는 ‘시중에 잘 알려진 유통업체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구석구석에는 진짜 참기름을 만드는 곳이 많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실하지 않는 자에게는 진실이 보이지 않아, 진실을 좇지 않게 되고, 진실한 자는 진실을 보고, 그 진실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기름 한 병을 통해 이런 심오한 깨달음을 얻게 될 줄이야.

 

직접 짜서 만든 기름으로 요리하라


이제 ‘참’기름에 대한 신뢰를 찾았으니, 맛있게 먹는 일만 남았다. 참기름과 들기름은 원재료의 맛을 한층 살리는 기능과 더불어 영양학적으로도 유익한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참깨를 두고 ‘신체를 튼튼하게 하며 늙는 것을 방지해 준다’며 노래했다던가. 고대 그리스에서는 참깨가 적은 양으로도 에너지를 내게 한다는 이유로 전투식량으로 사용했고,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무덤에 같이 묻을 정도로 참깨를 귀히 여겼다고 한다.


실제로 참기름에는 오메가 9인 올레산이 30.7%, 오메가 6인 리놀레산이 44.4%나 함유되어 있다. 또, 들기름에는 올레산과 리놀레산이 참기름보다 적은 반면 참기름에는 부족한 리놀렌산(오메가 3지방산)이 60%나 함유되어 있다. 두 기름 모두 고도의 불포화산으로 영양학적으로 필수지방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는 질이 좋은 기름이다. 이것이 몸속에 들어가면 나쁜 콜레스테롤인 LDL은 낮춰주고 좋은 콜레스테롤인 HDL은 높여 줘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데, 특히 리놀렌산은 체내에서는 생성되지 않아 음식을 통해서만 섭취해야 한다.


참기름은 항산화제가 많아 노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피부미용에도 그만이다. 반면 오메가 3가 풍부한 들기름은 머리를 좋아지게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인식능력의 발달과 뇌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한창 학구열을 불태우는 아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더불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커지고 있는 성조숙증을 개선하는 데도 식용유를 사용한 기름지고 튀긴 음식보다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처럼 짜서 만든 기름이 이롭다고 한다.
 

그런데 짜서 만든 기름일지라도 요리를 할 때 사용하는 용도는 각각 다르다. 참기름은 고소한 향을 살리는 데 좋기 때문에 온도가 낮은 생채요리에 좋다. 특히 고추장이 들어간 요리에 넣으면 맛이 한층 살아난다. 들기름은 향이 날아가지 않고, 발연점이 높아 온도가 높은 요리에도 어울린다. 이름 그대로 들들 볶아 사용하면 그 맛이 일품이다. 단 들기름은 변하기 쉬우므로 보관 시에는 어둡고 서늘한 곳에 두고, 개봉 후 1달 내에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요즘, 봄의 기운을 가득 담은 유채나물에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생강을 넣고 국간장으로 간을 한 뒤 마지막으로 참기름으로 맛을 낸 아삭하고도 고소한 유채나물로 식탁 가득 봄을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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