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살림,살림

[ 이탈리아 마리스코 농장의 올리브 이야기 ]

먹고 산다는 것은 관계 맺기의 연속이다

글 김현경

 

멀리 지중해 인근에서나 먹는 줄로만 알았던 올리브 기름이 이제는 동네 구멍가게 선반 위에도 빼곡하게 올라가 있고, 뽀모도로 소스가 뿌려진 스파게티가 아니라 매콤한 김치볶음밥을 할 때도 넉넉하게 뿌려진다. 유리병에 담겨있는 연푸른 기름이 어느새 이렇게 콩기름, 참기름보다 더 후한 인심으로 음식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맛을 더하고 있는데 정작 올리브라는 열매는 그저 멋들어진 잡지나 광고에서 접할 수 있을 뿐, 어떤 놈인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뜻한 햇살이 내려쬐던 오후, 시칠리아 시골 마을의 마리스코 농장 입구에 들어섰을 때는 사방에 뿌리박혀 있는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먼저 눈에 띄었다.


“평균 나무 나이가 70살 정도 됩니다.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농사를 지었어요. 처음에는 취미로 텃밭이나 가꿀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넓어졌네요.”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한 번도 섬을 떠나본 적이 없다는 까를로 바르지오네(51세) 씨는 가지에서 벌레 먹은 올리브를 하나 따서 건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얘기를 계속 이어간다.


“올리브 과육을 아주 좋아하는 파리 녀석 짓입니다. 껍질을 뚫고 알까지 까놓는데, 생명력이 아주 질겨요. 이놈들 때문에 적잖은 올리브를 그냥 버려야하는 사정이 있어요. 농약이요? 그 까짓 벌레 몇 마리 잡자고 이런 아름다운 고목에다 독을 뿌리는 바보짓을 할 수야 없지요. 그나마 고지대라서 해충 피해가 덜한 편이에요.”


현재 바르지오네 씨가 경작하고 있는 농장의 규모는 전체 18ha, 즉 18만㎡ 정도. 우리나라 보통 농가의 규모가 1만㎡ 내외인 점을 감안해 볼 때 엄청난 규모다. 짧은 시간 머릿속에서 계산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가 먼저 깔끔하게 정리를 해준다.


“이 밭에서 일 년에 기름이 3,000리터가 나와요. 한 병에 7유로 정도 받는데, 시중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거죠. 더군다나 기름을 포함해 모든 작물과 제품들이 유기농이고요.”
인건비며 농자재 등 여러 가지 비용을 제하고 나면 1년에 3천만 원이 나오기도 힘든 구조다. 우리네 보통 농가의 18배 규모인 점을 생각하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소출이 아닐 수 없다.  


“괜찮습니다. 2년 전쯤 현직에서 퇴직했는데, 전 이 농장을 이 고장에서 제대로 된 농업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실험 무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칠리아는 전통적인 농업 지역으로 어릴 때부터 늘 농업에 대한 관심을 애정을 갖고 있었어요. 제 아내도 지금 시칠리아 주정부에서 지역의 농업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데, 가장 가까운 동지인 셈이죠.”


알고 보니 이 두 사람 모두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박사 부부. 농업에 대한 애정을 기본으로 지식과 사회적 지위, 경제력까지 두루 갖추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큰돈을 벌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 보다는 고향땅을 지키면서 조금은 느리지만 여유로운 삶을 일구는 쪽을 선택했다. 마리스코 농장에서 생산되는 작물은 올리브를 중심으로 포도, 토마토, 호박, 가지, 레몬, 오렌지, 호두, 수박, 각종 허브 등 수십 종류가 되고, 이를 이용해 기름이나 잼, 양념 등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올리브나 토마토 등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텃밭 수준으로 집 주위에서 조금씩 재배하고 있어 상업적 목적으로 판매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산 토마토가 메이드인 EU가 되다


“친척과 친구들한테 이렇게 싸서 보낼 때 제일 뿌듯하죠.”
바르지오네 씨의 부인 세티나 스코체리(50세) 씨가 큰 비닐 봉투에 피망과 호박, 라벤다, 호두, 수박, 레몬잼 등을 가득히 담으며 말한다. 집 주변을 몇 발자국 거닐어보니 사방에 널린 것이 모두 먹을거리다. 워낙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하고 있어 애쓰지 않아도 윤작이 되어 땅을 기름지게 하고, 그저 눈으로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저희 집 작물과 제품들은 모두 도시 사람들과 직거래를 통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입소문으로 조금씩 판매하고 있는데, 이들 소비자들과 단순히 사고파는 상거래만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녕을 묻는 친구가 되고 있습니다.”
스코체리 씨는 농사를 통해서 얻는 것이 단순히 수확물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과의 관계도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제 도시 사람들이 편하게 묵을 수 있는 숙박시설도 운영할 계획이에요. 예전에 쓰던 마구간을 개조한 건데, 한번에 50명 이상이 숙식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어그리 투어’인데요, 몸과 마음에 두루 좋은 음식도 먹고, 신선한 공기도 마음껏 들이마시고, 아무 걱정 없이 농장 이곳저곳을 거닐 수도 있지요. 빠르게 돌아가는 도시의 가뿐 삶을 벗어나 잠시나마 이런 곳에서 머물 수 있다면 많은 에너지를 얻고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이들 부부의 외동딸인 라우라 바르지오네(21세) 씨가 농장의 행정 업무를 맡고 있는데,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면서도 농장 업무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다. 워낙 촌동네인지라 다른 젊은이들은 더 큰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하지만, 현재는 전공으로 하고 있는 디자인 부문도, 일을 돕고 있는 농사에도 모두 애착이 가서 가능하면 두 분야를 살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손님이 묵을 수 있는 숙박 시설도 그녀의 미적 감각이 더해져서 현대적이면서도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우리식으로 하자면 농촌 체험인 셈인데, 일반 농가에서 이런 시설을 마련할 경우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도시인들이 시골로 찾아가도록 돕고 있어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았다고 한다.


“소비자들도 단순히 소비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비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어디를 가나 생산과 소비가 단절되어 있고, 이 때문에 밀접한 서로 간의 관계를 잘 모릅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먹고 있는 것의 정체도 잘 모르는 게 일쑤입니다. 이탈리아에서 토마토는 주요 식량인데요, 멀리 중국에서 재배된 정체불명의 값싼 토마토가 동네 수퍼마켓의 진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그게 중국산 토마토인지 알 길이 없어요. 장거리와 장시간을 거쳐 중국의 토마토 통조림이 모로코로 보내졌다가 이탈리아와 같은 EU권인 스페인으로 들어가고, 다시 이탈리아로 들어오면 그저 ‘메이드인 EU’가 되는 겁니다. 경제적인 이유가 주가 되어 유럽이 단일권으로 통폐합되었고 이를 통해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전되었지만 개개인의 삶에서는 잃어버린 것들이 더 많습니다.”


바르지오네 씨는 EU 체제에서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시스템 안에서는 소비자 입장에서 제대로 된 먹을거리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는 단순히 무조건 자국의 먹을거리만을 고집하는 입장은 아니다. 다른 나라의 다양한 음식과 그 문화를 열린 자세로 체험하는 것도 필요하고, 다만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곳의 음식 문화에 무게 중심을 두면 된다고 한다. 먹을거리는 씨앗을 맺어 땅에 뿌려지고, 자라는 동안 태양, 물, 지형, 환경, 사람 등 그 지역의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가 만약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아무리 향수병에 걸려도 피자와 파스타 같은 이탈리아 음식을 먹지는 않을 겁니다. 한국에서는 그 지역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최고이기 때문이죠. 또 그 음식을 통해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죠. 이탈리아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추운 북부에서는 뽈렌따(옥수수묵)를 먹고, 시칠리아에서는 스핀초네(멸치젓이 가미된 시칠리아식 피자)를 먹죠. 추운 지방에서는 한대성 작물을 먹는 게 이치고, 남쪽에서는 난대성 작물을 먹는 게 이치인 것과 같습니다.”


바르지오네 씨는 겨울철에 남반구나 열대에서 자라는 포도, 오렌지, 파인애플을 가져다가 먹는 것도 음식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여기서 나지도 않는 열대과일을 먹어서 우리가 필리핀이나 태국을 맛볼 수 있나요? 그런 것들이 수만 킬로미터의 대륙과 대양 횡단을 마쳤을 때는 그저 혀끝을 자극하는 단맛만 남아있고, 오히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가까운 먹을거리에는 위협적인 존재가 될 뿐입니다.”


시칠리아 지역에서 이런 가까운 먹을거리를 지키고 농업을 더욱 육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산자들 간의 협동이 더 필요하다고 바르지오네 씨는 말한다. 워낙 시칠리아가 지방색이 강하고 보수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개별 농가들이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강한데 이들이 조금씩만 양보해서 함께 힘을 더하고 보태면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축적할 수 있다는 지론이다.  


끝으로 바르지오네 씨에게 ‘어떤 음식이 좋은 음식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을 던졌을 때 짧지만 메시지가 분명한 답변이 돌아왔다. 
“음식 안에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수히 많은 관계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습니다. 음식을 먹었을 때 우리 몸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살려내어 그 안에 깃든 관계들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면 좋은 음식입니다.”


바르지오네 씨는 말을 마치며 등 뒤에 있던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슬며시 건네줬다. 익을 대로 익어 껍질까지 터져버린, 달디 단 무화과를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시칠리아의 경이롭도록 풍요로운 땅과 티끌하나 없이 푸른 하늘, 순박한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그동안 ‘가까운 먹을거리’ 특집으로 소개된 시칠리아 섬의 땅과, 먹을거리, 사람들 이야기는 04호를 끝으로 마칩니다. 05호부터는 새로운 내용으로 가까운 먹을거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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