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호 2016년 10월호 살림,살림

[ 지리산 동네부엌-소고기우엉밥·미역된장국·표고버섯장아찌·도라지배청 ]

건조한 찬바람에 뿌리부터 든든히

글 고은정 _ 사진 류관희

넉넉하여 맛있는 10

지리산의 산골 마을에도 10월에는 거두어들이는 것이 제법 많다. 집집의 곳간마다 넉넉하므로 사람도 같이 넉넉해져 이웃과 나누는 것도 가장 많은 때다. 이때는 농사가 없는 우리 집에도 사람이 없는 시간에 농사를 하는 이웃들이 평상에 가져다 놓은 농산물이 자주 눈에 띈다. 농산물뿐 아니라 산에서 채취한 버섯이나 열매 들도 있어 더욱 풍요롭다.

마을 사람들은 봄부터 여름내 농사로 고단했던 일상을 뒤로하고 각자 추수한 것들로 음식을 만들어 나누는 작은 파티도 자주 연다. 귀농이나 귀촌을 한 사람이 전국에서 가장 많은 마을이라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기도 하지만, 10월의 지리산 골짜기 산내마을은 흥청거린다고까지 표현하기는 애매해도 곳간이 넉넉하여 입도 같이 벌어지고 즐거워지는 때임에는 틀림이 없다.

 

가을 우엉 껍질째 소고기우엉밥

가을 장터에 나가면 내 눈을 잡아끄는 농산물 중 으뜸은 당연히 뿌리채소다. 특히 가을에 만나는 뿌리채소는 수렴하는 계절에 맞게 지상부의 삶을 접고 땅속뿌리에 생명의 기운을 모두 저장하기 때문에 사람이 먹으면 사람도 뿌리의 힘이 튼튼해지므로 가을과 겨울에는 자주 먹고 많이 먹으면 좋다.

가을 뿌리채소 중 으뜸은 땅속으로 1m 이상 뿌리를 뻗는 우엉이나 마다. 둘 모두 기를 보하는 최고의 식재료인 소고기와 궁합이 좋다. 하지만 밥으로 하기에는 우엉이 조금 더 좋기로 우엉과 소고기를 비슷한 크기로 얇게 썰어 밥을 한다. 들기름과 간장으로 밑간을 조금 하면 밥만 먹어도 맛있다.

우엉으로 음식을 할 때 껍질을 벗기고는 갈변하는 걸 막겠다고 식초 물에 담그는 어리석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식초 물에 우엉을 담그면 갈변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 물에 우엉의 갈색이 다 빠지며 우엉 고유의 맛과 향이 모두 달아난다. 그러므로 우엉은 껍질째 씻어 그냥 쓰면 된다. 수확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가을 우엉은 껍질도 얇아 썰면서 하나씩 집어 먹으면 아삭하고 향이 좋아 음식 만드는 일이 노동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것 같아 좋다. 우엉 껍질을 벗기지 않고 넣어 지은 밥의 밥솥 뚜껑을 열 때 솥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면 밥에 고스란히 담긴 우엉 향이 코로 들어오고 그 밥을 입에 넣으면 향이 맛으로 바뀌어 행복해진다. 먹다 남은 소고기 한 줌 있다면 오늘 저녁은 우엉밥으로 차려야 한다.

 

 

전복의 유일한 먹이 미역으로 끓이는 된장국

오늘이 동네부엌에서 같이 일하는 선생님의 생일이라 미역국을 끓였다. 잘 먹지 못하던 시절에는 소고기를 넣고 미역국을 끓여 주면 최고의 밥상이었기에 늘 생일에는 소고기를 한칼 끊어다 미역국을 끓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소고기로 국물을 냈으니 맛이야 좋지만 생일마다 늘 먹으니 맛에 대한 큰 감동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것도 습관이 되는 듯하다. 그래서 된장을 풀고 기력을 보하는 마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끓인다. 구수한 된장과 달착지근한 마가 미역과 잘 어우러져 맛있다.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음식 중 흰밥이니 콩밥이니 나물밥이니 하면서 해 먹는 밥을 제외하면 한 가지 식재료를 가지고 한 가지 이름으로 해 먹는 음식에 미역국과 대적할 만한 게 없다고 깨닫게 된다. 지역마다 끓여 먹는 방식이나 들어가는 부재료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인 곳에서는 만만한 것이 들깨라 들깨를 갈아 넣어 끓이고, 바다로 둘러싸인 해안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 흔한 해산물을 넣고 끓인다. 맑게 끓이기도 하고 뽀얗게 끓이기도 하고 된장을 풀어 끓이기도 하니 이 모든 조합을 다 맞춰 생일마다 끓여 먹고자 하면 아마 죽을 때까지도 다 못 먹을 수 있겠다.

시댁 집안 어른 중에 전복을 양식하는 분이 있는데 가끔 집으로 살아 있는 전복을 보내 주신다. 그때마다 바로 채취한 미역 위에 전복을 얹어 보내시는데, 전복은 오로지 신선한 미역만 먹으면서 자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가 고급 음식의 재료로 생각하고 몸을 보하기 위해 먹는 전복의 유일한 먹이가 미역이라는 이야기는 그만큼 미역이 생명을 키우고 살리는 데 좋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역을 많이 먹으면 전복을 많이 먹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도 틀리지 않겠다.

미역은 전복, 소라의 중요한 먹이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지에서만 식용한다. 고려 인종 때(1123)에 송나라 사신 서긍이 편찬한 고려도경에는 미역은 귀천 없이 즐겨 먹고 있다. 그 맛은 짜고 비린내가 나지만 오랫동안 먹으면 그저 먹을 만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조선 문종 때(1451) 완성된 고려사에는 미역을 따는 곽전에 관한 기록이 있으니 미역이 예로부터 귀족이나 서민을 가리지 않고 널리 사랑받으며 식용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민간에서는 산모에게 첫국밥이라 하여 미역국을 끓여 먹이는데 이때 미역은 해산미역이라 하여 자르지 않은 길고 넓은 것을 값도 깎지 않고 사서 끓인다. 미역국은 산모의 출산 후 자궁을 수축시켜 줌은 물론 젖 분비를 돕기 때문에 산후선약(産後仙藥)’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나 미역은 성질이 약간 차가우므로 평소에 몸이 차거나 피곤하면서 몸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에는 적게 먹는 것이 좋다. 갑상선 기능에 이상이 있는 사람도 주의해서 먹어야 하며, 일반인도 미역을 지나치게 오래 많이 먹으면 몸이 마르므로 조심해야 한다.

 

입맛 없어도 밥 한 그릇 뚝딱 표고버섯장아찌

표고버섯은 어느 집에나 늘 떨어지지 않고 있는 식재료 중 하나다. 맛국물을 낼 때 2~3개쯤 넣기도 하고 전을 부치기도 하고 불렸다가 볶기도 하는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다양하게 먹지만 끼니에 닥쳐서 뭔가 반찬으로 만들려면 불리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표고버섯을 좀 넉넉히 마련해 장아찌로 만들어 두면 든든한 밑반찬이 되어 갑자기 들이닥친 손님의 상에 내기도 좋고 입맛이 없을 때 한 개만 꺼내 먹어도 밥 한 그릇쯤 거뜬하게 비울 수 있다.

표고버섯장아찌는 만드는 방법도 지나치게 간단하다. 표고버섯을 냄비에 담고 자박하게 물을 부어 불에 올리고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바로 불을 끄고 그대로 식히면서 불린다. 표고버섯이 다 불면 물기 없게 꼭 짜서 장아찌용 용기에 담고 집에서 담근 간장을 부어 놓기만 하면 된다. 바로 먹을 적은 양을 만들 거라면 물을 끓여서 불릴 필요도 없다. 미지근한 물에 바로 불려서 써도 무방하다.

하루 이틀 지나면 표고버섯의 속까지 간장이 고루 배어 짭짤하니 밥반찬으로 좋다. 그러니 간장 속 표고버섯을 꺼내 간장이 최대한 많이 빠지게 꼭 짜서 한 번 먹을 만큼 냉동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서 먹는다. 요즘 우리가 흔히 장아찌라면서 만들어 먹는 채소 초절임들은 시간이 지나면 색이 변하고 무르기도 하여 냉장고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다 버려지기 십상이다. 거기다 그 채소들이 잠겨 있던 초간장 물은 쓸모가 없어 버리게 된다. 그러나 간장만 부어 두는 표고버섯장아찌의 간장은 표고의 향이 배고 표고에서 감칠맛을 담당하는 구아닌산이 듬뿍 들어 있어 감칠맛 또한 올라가므로 프리미엄급 간장이 된다. 국의 간을 할 때나 다른 음식을 할 때 쓰면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집에 자고 가는 손님이 왔을 때 가끔 아침상으로 죽을 끓여 내거나 누룽지를 구수하게 끓여 낼 때가 있다. 이때 표고버섯장아찌는 또 진가를 발휘한다. 흰죽 한 숟가락에 참기름 한 방울과 깨소금 양념에 버무린 표고버섯장아찌 한 젓가락을 올린 그림만 상상해도 입맛이 도는 아침이다.

 

내 목이 소중하다면 도라지배청

수렴하는 계절이라 외기가 건조한 가을은 폐의 계절이라 이른다. 폐는 너무 건조하거나 너무 습한 걸 싫어하므로 가을에는 폐와 가까운 목이나 코, 귀 등에 이상이 생기게 마련이다.

자연뿐 아니라 인체도 활동을 줄이고 겨울을 준비하면서 안으로 수렴을 해야 하는 계절이지만, 사람살이가 그렇지 않으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기침을 하거나 목이 따갑고 아픈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는다. 그러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식재료가 도라지다. 폐의 기운을 좋게 하는 도라지는 가을에 먹기 좋은 식재료이기 때문이다.

도라지는 폐의 기운이 부족하여 숨이 차거나 목이 아프거나 가슴과 옆구리에 통증이 오는 걸 치료하는 데 쓰는 약재다. 한방에서는 도라지를 길경이라고 한다. 성질은 약간 따뜻하고 약간 맵고 쓴맛을 지녔으며, 그 특유의 아린 맛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으니 그 독성이 우리 몸에서 아픈 것을 치료하거나 부족한 것을 채우는 약성으로 작용한다. 도라지의 아린 맛은 기침을 멎게 하고 폐와 기관지에 생긴 염증을 치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꼭 몸에 탈이 났을 때에라야 도라지를 먹을 일은 아니다. 평소에 밥상에 자주 올리면 좋다.

도라지를 밥상에 올릴 때는 굵은 소금으로 빡빡 치댄 뒤 물에 담가 아린 맛을 조금 빼고 조리하면 아이들도 싫다고 하지 않고 잘 먹는다. 이 밖에 도라지를 배와 함께 청으로 만들어 두고 물에 연하게 희석해서 자주 마시면 가을에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를 부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소고기우엉밥
재료

쌀 2컵, 물 2컵, 소고기 150g, 우엉 150g, 들기름 1큰술, 간장 1큰술, 청주 1큰술
만드는 법
1 쌀을 씻어 30분간 불린다.
2 소고기는 한입에 쏙 들어가게 썰거나 다진다.
3 우엉은 흐르는 물에 박박 문질러 씻고, 껍질째 길게 반으로 갈라 얇게 어슷썰기한다.
4 압력솥에 불린 쌀과 밥물을 넣고 소고기와 우엉을 쌀 위에 올린다.
5 들기름과 간장, 청주를 분량에 맞춰 넣는다.
6 흰쌀밥을 하는 방법으로 밥을 짓는다.

 

 

 

미역된장국
재료

미역 10g, 멸치맛국물 8컵, 된장 2큰술, 마 300g
만드는 법
1 미역을 충분히 불리고 깨끗이 씻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2 마는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고 큼직하게 썬다.
3 냄비에 멸치맛국물을 넣고 된장을 푼다.
4 국물에 미역을 넣고 처음엔 센불로 20분간 끓인다.
5 마를 넣고 마가 익을 때까지 중불로 더 끓여 낸다.

 

 

 

 

 

 

표고버섯장아찌
재료
표고버섯 20개(약 100g), 간장 1컵
만드는 법
1 표고버섯을 깨끗하게 씻어 미지근한 물에 불린다.
2 불린 표고버섯을 꼭 짜서 물기를 뺀다.
3 표고버섯을 용기에 담고 간장을 부어 놓는다.
4 표고버섯에 간이 배면 건져 간장기를 빼고 냉동해 둔다.
5 필요할 때마다 꺼내 다진 파와 마늘, 참기름, 깨소금에 무쳐 낸다.

 

 

 

 

 

도라지배청
재료

도라지 200g, 배 4개, 설탕 1kg
만드는 법
1 배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없애고 껍질째 얇게 나박썰기한다.
2 도라지는 껍질째 깨끗이 씻어 물기를 없애고 얇게 어슷썰기한다.
3 썬 배와 도라지를 설탕과 함께 버무린다.
4 용기에 꼭꼭 눌러 담아 공기에 노출되지 않게 한다.
5 하루에 한두 번 위아래를 섞어 주어 설탕이 잘 녹게 한다.
6 설탕이 다 녹고 재료가 설탕에 잘 절여지면 걸러서 냉장보관한다.
7 설탕 양이 적어 빨리 발효되고 산미가 있으므로 한번에 많이 담그지 않는다.

 

 

↘ 고은정 님은 약선식생활연구센터 대표로, 식생활교육에 힘쓰는 음식문화운동가입니다. 《장 나와라 뚝딱》과 《집 주변에서 찾는 음식보약》, 《반찬이 필요 없는 밥 한 그릇》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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