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호 2016년 9월호 살림,살림

[ 땅땅거리며 살다-경남 거창 산하늘공동체에서 포도 농사짓는 임혜숙·정쌍은 생산자 ]

반만 거둘 생각으로

글 이선미 편집부 _ 사진 류관희

 

 

“어떤 때는 일반 농민에게 미안해요. 우리는 농사를 힘들게 짓긴 하지만 소비자가 기다리고 있고, 일정한 가격을 정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부자들에게 봉사하는 거 아니냐?’라는 말을 듣고 찔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우리 조합원을 만나고 마음을 바꿨어요. 포도 두 송이 먹을 걸 한 송이 먹으면서 한살림 한대요. 돈이 많아서 호사를 부리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가 아니라 포도가 강한 것”
임혜숙, 정쌍은 부부의 포도밭에 들어서니 봉지를 둘러쓰지 않은 민낯의 포도들이 있었다. “봉지 안 씌우는 게 나아요. 몇 년 전부터 가루깍지벌레라고 막 생겨 가지고 방제해도 잘 안 죽어요. 그런데 걔네들이 봉지 속에 들어가는 걸 좋아한대요. 그래서 지난해부터 봉지를 안 씌웠더니 거의 안 생기는 거예요. 더 숨기 좋은 데로 간 모양이에요.” 해충이지만 봉지씌우는 수고를 덜어 준 건 고맙다고 해야 할까.
부부를 찾아간 8월 중순, 올해 첫 수확을 하고 있었다. 부부가 기른 포도는 한살림경남생협과 한살림부산생협에 지역물품으로 나간다. 상자에 곱게 담긴 포도송이 위로 ‘2016년 첫 번째 포도밭 편지’라는 종이가 보인다. “우리가 편지를 세 번 써요. 첫 번째는 하우스 캠벨 포도 나갈 때, 그다음 노지 캠벨 포도 나갈 때, 마지막으로 청포도랑 거봉 포도 나갈 때요.” 부부의 근황을 짧게 전하는 것뿐이지만 생산자와 소비자의 끈끈한 관계가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조합원들이 정기적으로 일손 돕기도 오고 교류가 활발하단다. “단순히 돈과 물품을 바꾸는 게 아니라는 만족감, 이건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어요. 지역 생협에서 극진하게 대접해 주세요.”

 

 


 

(왼쪽)부부가 포도를 낼 때 함께 써서 보내는 편지. 올해 25년 전 처음 포도를 심었던 밭에 늙은 나무를 베어 내고 휴식을 주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오른쪽) “김치 하나만 놓고 먹어도 ‘집밥’이 낫다”며 임혜숙 씨가 점심상을 차려 주었다. 가운데 다진 고추로 만든 반찬은 경상도 토속 음식이라고. “고추를 어떻게든 잘게 썰어서 물과 간장, 종종 썬 마늘과 멸치를 넣은 다음 후루룩 끓이면 돼요.” 빨리 요리할 수 있어 잘 해 먹는단다.

 

 

“1970년대에 흔하지 않던 ‘운동권 학생’이었다”는 올해로 예순인 동갑내기 부부는 대학을 졸업한 뒤 남편 정쌍은 씨의 고향인 이곳에 왔다. 결혼하고 10년 정도는 농민운동을 하며 생업에 개의치 않았지만, 결국 생계를 위해 뭔가 해야 했다. “전부터 알던 경북 김천 덕천포도원의 김성순 회장님이 ‘포도를 해 보라’고 했어요. 당시 여기에는 포도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1991년에 포도 농사를 시작했죠.” 농민운동을 하면서 ‘생산도 의미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친환경 농사를 결심한 부부에게 포도는 안성맞춤이었다. “어떤 작물보다 강해서 농약을 안 쳐도 잘 안 죽고 열매를 맺었어요. 우리가 강한 게 아니라 포도가 강했죠. 주변에서 ‘유기농은 힘들다’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포도는 가능해요. 단, 반만 수확할 생각을 하면요.” 정쌍은 씨는 “화학비료의 마력이 엄청나다”면서, “화학비료를 쓰면 유기농보다 많게는 50% 증산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상품성이 아주 떨어지는 포도만 나왔다. “공판장에 갖고 나갔는데 최하로 싼 등급을 받았어요. 먹고살지를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못생겼지만 맛있는” 포도를 직거래하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6년에 천규석 선생님을 알게 됐어요. ‘이렇게 농사짓는데 못 팔고 있다’고 하니까 ‘한살림 가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한살림과 인연을 맺었고, 7~8년이 지나자 수확 대부분을 한살림에 내게 됐다.
그러면서 이웃들도 한살림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한살림에서 우리 것도 다 소비 못 할 때에는 누구한테 ‘같이하자’는 소리도 못 했지요. 그러다 2004년인가 조합원이 급격하게 늘면서 공동체를 시작하게 됐어요.” 부부가 속한 산하늘공동체 식구는 20가구 정도.

해발이 높고 일교차가 큰 지역 특성을 살려 사과와 포도를 주로 재배한다. “현재 한살림 생산공동체는 생활공동체라기보다는 농산물을 같이 생산하고 유통하는 ‘작목반’에 가까워요. 단순히 물품을 내는 게 아니라 건강한 문화를 만들어 내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모이면 좋겠죠.” 임혜숙 씨는 “학교 후배이지만 인생의 멘토”인 같은 공동체의 박용준 회장 덕분에 “공동체에 젊은 사람이 늘고 훨씬 좋아졌다”고 말한다.

 

 

“포도는 잔손이 많이 가요. 노동 집약적인 농사죠. 내 일은 포도가 순이 나면서부터 시작돼서 수확하면 끝나요. 남편은 수확한 뒤에도 거름을 주거나 가지치기 같은 일을 하고요.” 정쌍은 씨가 남은 일을 하는 동안 임혜숙 씨는 가사를 돌보고, 11월 20일경부터는 같이 “작정하고 논다.”

 

 

‘50% 농사꾼’이지만 많이 수확할 욕심은 없어
현재 부부가 농사짓는 규모는 1만 1천570㎡(3천500평) 정도. 캠벨 포도를 주로 하고 알렉산드리아 품종의 청포도도 2천645㎡(800평)가량 기른다. “사람들한테 우리 땅 크기를 말하면 몇 억을 버는 줄 알아요. 관행농하면 이 면적에 수확량이 그만큼 나와야 하니까요. 하지만 한살림 사람들은 다 알지.”
부부의 농사 비결은 단순하다. “송이를 작게 달면, 즉 수확량을 적게 하면 맛있고 좋은 포도가 나와요. 두 송이 달 걸 한 송이만 달게 한다든지, 나무 하나에 가지를 20개 정도 둔다고 하면 우리는 많아야 15개만 남기는 거죠.” 식물 생장조절제인 지베렐린도 쓰지 않는다.
임혜숙 씨는 “포도나무를 새로 심으며 ‘유기 인증을 잠깐 포기했다가 나중에 다시 받자’고 남편한테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무를 키울 때는 약 안 치는 게 너무 힘들거든요. 계속 죽는 거예요.” 하지만 남편은 안 듣더란다. 그러나 정쌍은 씨는 나이가 들고 기운이 달리면서 포기한 것도 있다고 말한다. “5~6년 전까지 거름을 직접 만들어 썼어요. 비닐로 덮어 놓은 거름을 뒤집고 하는 게 일이었는데, 지자체에서 지원하는 거름을 받아 쓰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고. 농사꾼이 포대에 든 거름을 쓰면 양심 불량이지. ‘50% 농사꾼’이에요.” 또 예전에는 은행잎을 갈아 뿌려서 방제하곤 했는데 지금은 친환경 제제를 사다 쓴다. “친환경 농사가 늘어나면서 편리하게 농
사지을 수 있게 연구가 많이 됐어요.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농가에서 직접 만들어 쓰는 노력도 해야 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못하네요.”
부부는 철저히 분업한다. “포도를 몇 송이나 달지, 얼마나 크게 달지는 내 소관이에요. 방제하는 건 남편 일이고요. ‘왜 일을 그렇게 해? 같이 하지’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서로의 영역을 나누어야 다툼이 적어요.” 하지만 중요한 결정은 늘 함께 내린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결정적 이유는 이 사람이 ‘한국에서 가장 권위적이지 않은 남자’이기 때문이에요.” 이만한 남편 자랑이 더 있을까.
수확은 9월 20일경까지 이어진다. “포도 수확은 다른 사람한테 잘 안 맡겨요. 겉으로 봐서는 익은 것 같아도 포도알을 만져 보고 감이 와야 하거든요. 알이 약간 말랑하고 완전히 까매져야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까만 거하고 덜 까만 거하고 구분을 잘 못해.” 임혜숙 씨는 “포도밭에서는 쪼그려 앉지 않고 서서 일하는 게 좋다”고 한다. 맛은 수확하고 하루 이틀 뒤가 제일이다.

 

 

“우리 공동체에서 내가 제일 착실히 하는 게 이거, 분리수거예요.” 정쌍은 씨는 집 한편에 ‘쓰레기 처리장’을 만들어 놓고 쓰레기를 꼼꼼하게 분류해 버린다.

 

 

이제는 동네에 신세 갚아야지
직접 기른 포도로 포도주도 담근다. 유기 재배한 포도를 유기 가공한 이른바 ‘정쌍은 포도주’. “남편 인품이 나보다 나아서 남편 이름을 붙였어요. 내가 사장이고 남편이 공장장인데, 생산자 이름을 붙이는 게 맞잖아요.” 임혜숙 씨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버리기 아까운 포도로 우리가 먹으려고 술을 담갔죠. 그러다 면허를 받고 상품화하면서는 수확한 포도 일부를 뚝 잘라서 담가요.” 자연 효모를 쓰고, 보통 포도주의 색깔을 좋게 하려고 쓰는 침전제는 쓰지 않는다. 아스파탐이나 자일리톨 같은 감미료도 넣지 않아 단맛이 거의 없다. 뜻밖의 사실은 완숙한 포도는 포도주를 담그는 데 별로 안 좋다는 것. “약간 신맛이 있어야 돼요. 일정 산도가 돼야 술맛이 유지되거든요. 그걸 모르고 한 해는 ‘당도가 높아서 좋겠지’ 하고 잘 익은 포도로 담갔는데 맛이 없더라고.” 혹시라도 신맛이 부족할 때는 포도잎을 넣어 산도를 조절한다. “포도잎이 되게 시어요.”
보통 2천 병 정도 만들어서 500병은 부부가 마시거나 사람들한테 선물하고, 나머지는 지역물품 등으로 낸다. “한 20년 되니까 수요가 쬐끔씩 늘어요. 그냥 꾸준히 먹는 사람들이 계속 먹는 거죠. 한살림 매장에 들어가면 일정하게 소비가 되니까 한 병 두 병 파는 것보다 크죠. 단골손님들은 명절 때 선물로 가져가요.” 선물 포장에 들어 있는 안내문을 보니 ‘포도주(모든 술)는 신체 건강에 절대로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다만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끈’이 되고 싶을 뿐이라니, 많이 팔 생각은 없이 지나치게 솔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왼쪽)포도주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맥주병에 담고 참기름병 뚜껑으로 막았다는 부부. 멋들어진 지금의 포도주 모습에 아마도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까. (오른쪽)올여름 엄청나게 뜨거웠던 날씨 때문에 송이 윗부분 포도알은 햇볕에 데었다. 하지만 당도는 좋다고.

 


부부는 노후에도 포도주 만드는 일은 지속하려고
한다. “누가 와서 ‘이 포도주 공장은 절대로 망하지는 않는다’고 그래요. 비용이 안 들어서요. 내가 아는 포도주 공장들이 있는데 문을 닫았어요. 꽤 크고 유명했는데 포장상자값도 결제하지 못할 정도였대요. 일단 규모가 크면 운영비가 많이 드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전기료밖에 안 들어요. 전기료도 별로 안 나와.”
오랫동안 일하려면 건강해야 할 것이다. “조금씩 안 좋기는 하지만 뭐 혈압, 당뇨 괜찮고요. 우리 나이면 어딘가 한 군데씩은 안 좋아요. 그래서 어디까지가 노화이고 어디까지가 질병인지 구분해야 해요. 우린 아직 질병 수준은 아니에요.” 임혜숙 씨는 무리하게 일하다가 건강을 해치는 걸 경계한다. “나는 ‘놀면 안 아픈 거는 병이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일하면 아프고 일 안 하면 안 아프다고 하면, 일을 그만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주변을 보면 무릎관절 수술을 하고도 일하러 다녀요. 내가 보기엔 돈을 안 벌어도 되는데도요.”
정쌍은 씨도 “나이 들고 몸이 아파도 돈 되는 걸 보면 일을 못 접는” 사람을 여럿 봤단다. “나는 그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서로 기분 좋게 잘 살 수 있는 동네를 만드는 게 계획이에요. 그동안 내가 이웃들한테 아쉬운 소리를 많이 했거든. ‘이거 해 봅시다 저거 해 봅시다’ 하고. 이제 그 신세를 갚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를 재미나게 해 보려고 해요.” 그래서 지난해부터 동네 소식지도 만들고 있다.
부부는 “한살림 하면서 농약 안 치고 비료 안 주는 게 단순히 개인의 양심을 지키는 차원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큰 몫을 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청년 때부터 가슴속에 품어 온 농민운동의 꿈을 “나 먹고사는 것을 떠나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꾸며” 실현해 온 것 아닐까. “나방이 불을 보고 오듯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 길로 들어서면 좋겠다.

 

 

“ 우리도 못된 마음이 있어요. 손해 안 보려고 하고, 지적 받는 거 싫어하고, 내 포도만 좋고 남의 포도는 나쁘다고 하는. 그걸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 안 하는 버릇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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