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특집] 살리는 사람, 농부

[ 소비자의 도시 농사 ]

착한 소비가 땅과 농부를 살린다

글 윤선주

20여 년 전 시골 살이를 끝내고 세 아이와 함께 서울로 이사를 했다. 당시 우리가 제일 마음에 두고 생각한 조건은 지방에 근무하던 남편이 주말에 집에 오기 쉬운 교통의 편리성과 아이들이 학교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당연하게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가까운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촌티가 뚝뚝 흐르던 세 아이들이 똘똘 뭉쳐 학교에 적응해 나가면서 한숨 돌릴 즈음이었다. 아이들이 눈이 따갑다, 머리가 아프다, 목이 잠긴다하며 병원 출입이 잦아졌다. 처음엔 아직도 공주에 있었으면 이 아이들 데리고 시외버스에 시달리면서 대전까지 병원에 다니느라 고생했을 텐데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늘 개운하지가 않았다. 곁에 계시던 어머니가 “시골에선 병원 한 번 안 가던 아이들이 대체 웬일이니?” 하시는데 그때서야, ‘아! 애들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가 문제구나!’ 깨달았다. 


생전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에 종일 버스와 각종 차량으로 붐비는 교통의 요지라니! 공기 맑고 한적한 곳에서 텃밭을 가꾸며, 하는 일이라고는 들로 산으로 뛰노는 일 밖에 없던 아이들을 곧바로 공장 굴뚝같은 서울 도심으로 데려왔는데 무사하리라고 생각한 내 어리석음에 스스로 놀랐다. 대기오염이야 혼자 힘으로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먹을거리를 바꿔보면 무슨 수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생활협동조합을 통해 단번에 밥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 명절이나 제사가 돌아오면 불린 쌀을 이고 오는 엄마 앞장을 서서 떡집에 줄을 서거나 동네마다 있는 두부공장이나 콩나물 움집으로 양동이 들고 심부름을 다니곤 했다. 고기가 귀한 시절이라 고깃간에 갔던 기억보다는 불린 녹두를 맷돌에 갈던 기억이나 뜨거운 여름날 얼음공장에서 잰 걸음으로 사온 얼음을 깨 넣은 콩국수를 말아먹고 자랐다. 장마가 오기 전 뽀얗게 삶아 빤 이불 호청을 마당 가득 널어놓고는 동네 구멍가게로 풀을 사러 가는 일도 내 차지였다. 국수집에 빨래처럼 걸어 말리는 국수를 사서 신문지에 돌돌 말아 가져오거나 손님이 오신 날 주전자 들고 막걸리 집에 술 받으러 가는 일도 햇빛이 하얗게 눈부시던 골목길의 전봇대 긴 그림자와 함께 소중한 추억이다.


매일 먹던 채소는 들에 나가 캐 오거나 옆집 채마밭에서 나누어 주거나 ‘깡’이라 부르던 제법 큰 시장에서 사왔는데 이때도 단골이 있어 정해진 집으로만 다니곤 했다. 그 시절에는 파는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다. 혹 전날 사온 물건이 시원치 않았다고 이야기하면 주인은 물건이 오기까지 사정 이야기를 하며 더러는 바꾸기도 하면서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 꾸준하게 관계를 이어갔다. 물건 하나도 어디에서 어떤 사람이 만들어 여기까지 왔는지를 어린 소견에도 제법 아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이 하루가 멀게 바뀌면서 이웃이 만들어 팔던 물건들이 대단위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고 또 밤사이 고속도로를 달려온 전국 각지의 농산물들로 시장이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제 물건을 통해 서로의 얼굴이 보이는 관계는 더는 만날 수 없는 먼 꿈이라고 여겼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나의 선택권은 이미 차려놓은 물품 중에서 가장 그럴 듯 해 보이는 것을 그저 감으로 집어내는 것뿐이라고 한동안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 건강에서 출발한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이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생협을 통해 만나는 물품들에는 따뜻한 사연이 있었다. 우선, 누가 무슨 생각과 어떤 방법으로 이 먹을거리를 만들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부족하고 힘들지만 소비자가 있는 한 계속 노력하고 애쓰겠다는 다짐까지 늘 따라왔다. 이런 생산자들의 꾸밈없는 이야기들을 함께 하면서 나와 가족 모두 올바른 먹을거리에 대한 생각이 함께 자라났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


처음에는 5명이 공동체를 꾸려 매주 함께 공급을 받고, 물품 대금을 모아서 내고, 다음 주 물품 신청도 함께 하는 일들이 번거롭기도 했다. 그러나 낯선 밥상을 받는 식구들의 꾸준한 투정에 비하면 오히려 그것은 쉬운 일이었다. 간혹 시고도 떫은 사과를 받는 날이면 처음엔 그냥 먹으라고 주었다가, 식구들이 고스란히 물리면 과즙으로도 만들어 보고, 잼으로 졸여도 보면서 설득했다. 물품과 함께 온 생산자의 편지를 가족 모두가 보라고 냉장고에 붙이거나 조금 더 어려움을 과장해서 들려주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내가 먼저 변하기 시작했다. 시중에 아무리 지천으로 깔린 철 이른 농산물이 있어도 생협에서 나오지 않으면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가족들이 ‘파쇼니, 김일성이니’ 아무리 비난을 해도 내가 끄떡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각종 공부모임을 통해 우리 농민과 농업의 현실을 알아나간 덕분이었다. 그 시절 스스로 ‘적당히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돌려 세운 것은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책임진다’는 약속이었다. 생각해보라. 생활과 생명 중에서 어떤 것이 더욱 값진 것인지를. 소비자는 생활을 책임진다는데 생산자는 생명을 주겠다는 약속 아닌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이상하게도 모든 물건 값이 싸다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에도 만약 내가 저 물건을 만든다면 저 값에 만들 수 있을까 늘 생각했다. 그러니 당연하게 모든 물건이 황송할 정도로 싸다고 여겨졌다. 내가 살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서 모든 물건이 대단하고 귀하게 생각되어 엄마 치마꼬리에 매달려 시장을 따라가서도 흥정하며 덤을 더 달라는 엄마를 말리고 싶었다. 빠듯한 생활비에 손님이 늘 많았던 우리 집 살림에 ‘그만 깎고 가자’며 보채는 통에 엄마는 곧잘 나를 떼어놓고 시장을 보시곤 했다. 물론 그때는 대량 생산의 비밀을 모르는 무식의 소치였지만 나는 아직도 그런 내 계산법이 그리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처럼 물품에 정당하게 값을 치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생협을 통해 알게 되었다. 생산자가 정성을 다해 키운 물품을 그 분이 다음 해에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계속 농사지으면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함께 값을 정하고 약속한 물량을 책임지고 소비하며 어떻게 농사를 지을까를 같이 결정한다는 것, 생협이 만든 관계야말로 소비자도 똑같이 농사를 짓는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생산자를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가 “내가 먹을 거라고 생각하며 짓는다”고 한다. 내 자식이, 내 가족이 먹는 것과 같은, 아니 물품을 잘 골라서 보내니 오히려 가족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가득 차있다. 처음에는 내 자식처럼 키웠다거나 여린 자식 돌보듯 한다는 말이 그저 상투적인 말인 줄 알았다. ‘뭐, 좀 정성을 더 들였다는 거겠거니’ 했었다. 그런데, 처음 가 본 일손 돕기 현장에서 마주 잡은 생산자의 나무 등걸 같은 손에서, 일일이 지주를 세우고 순 따기를 하며 손으로 벌레를 잡는 모습에서, 쓰러진 모를 세우며 병들어 골골거리는 모를 솎아내며 애 태우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보면서 진심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있는 그대로 보태거나 줄이지 않고 보이는 모습이 진짜인 생산자가 있구나! 그런 분들이 모여 소비자를 가족이라 여기며 정성을 다해 건강한 생명을 주는 구나’하는 깨달음으로 내 가슴이 떨렸다. 그런 기억이 쌓이면서 가족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하나 둘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물건이 우리 농업의 미래를 결정한다


한때 ‘소비자가 왕’이라는 문구가 유행했다. 처음에는 ‘정말 내가 왕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친절하고 반품이나 교환도 잘 해주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하니 ‘우리의 물품을 주는 대로 소비하는 왕’이라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자신들의 이익이 최대한도로 보장되는 방식으로 만든 물품을 고분고분 소비하는 사람이 어떻게 왕이 되는가? ‘이것은 몸에 해로우니 빼고, 다른 좋은 재료로 바꾸고, 포장도 줄여달라’ 하는 식의 소비자의 참여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데도 여전히 왕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었다. 잘 길들어 점점 더 기업의 말을 잘 듣는 소비자가 되는 것이 왕이라면 기업은 황제겠구나, 하는 자각도 들었다.
 

그런데, 정말 소비자는 왕이 되어야 할까? 만든 사람의 사정이나 형편을 무시하고 그저 값싸고 품질이 좋은 것을 내 마음에 맞게 요구할 수 있을까? 한 번 보고 말 사이라면, 일생에 한 번만 쓰고 다시는 안 쓰거나 평생 안 먹어도 되는 것이 있다면, 내 아이나 그 아이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면 혹시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쓰거나 먹는 것은 약간의 변화가 있을 수는 있어도 몇 천 년 전의 인류가 그래왔듯이 우리의 미래 세대도 거의 비슷한 소비를 하며 살아갈 것이다. 오늘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다 해도 내일도 어김없이 때가 되면 먹어야 할 것이고, 아무리 비싸고 좋은 옷을 입었다 해도 철이 바뀌면 새 옷이 필요할 터이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못지않은 삶의 질을 물려주려면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떤 소비자가 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오늘 내가 장바구니를 들고 식품매장에 들어가 어떤 물품을 담는지에 따라 현재 우리의 건강 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건강, 우리 땅의 건강과 하천과 공기, 온 생태계의 건강이 달려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물품선택의 기준을 무엇으로 하는가에 온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이다. 이미 난치성 질병이나 아토피 질환, 면역력 저하에 성인병까지 지난 세대에 비해 급격하게 늘고 있다. 값 싼 것만 찾는다면 농약과 제초제로 키운 수입 농산물을 밥상에 올리게 되고, 모양이 좋고 번지르르한 것만 찾는다면 수확한 다음 후처리과정을 거친 것일 테고, 유기농이라 해도 먼 길을 돌아 온 것을 고른다면 수송에 따른 대기오염과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주는 일을 내가 한 셈이 된다. 게다가 안보의 수준, 무기의 수준으로 올라간 먹을거리의 생산기반을 스스로 허물어 제 밥상도 지키지 못해 거대 식량 수출국의 허수아비가 된 우리 자신을 만드는 일을 돕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내가 장바구니를 들고 식품매장에 들어가 어떤 물품을 담는지에 따라 현재 우리의 건강 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건강, 우리 땅의 건강과 하천과 공기, 온 생태계의 건강이 달려 있다.

 


요즈음 사과를 사면 상자를 여는 순간 온 집에 사과의 싱그러우면서도 달콤한 냄새가 가득  찬다. 얼른 하나를 꺼내 흐르는 물에 두어 번 씻어 껍질 채 한 입 베어 먹으면 사과의 풍부한 과즙이 목젖을 타고 내 온 몸의 혈관과 세포에 가득 차 마치 내 몸에서 사과향이 나기라도 할 것 같아 행복하다. 사과 한 입에 행복이라니! 호들갑이 지나치다 하겠지만 시고도 떫은, 모양이나 색깔이 제 각각인 사과를 먹어 본 사람은 아마 내 행복을 이해 할 수 있으리라. 꽃은 고사하고 키를 손톱만큼이라도 키울 수 있을까 하고 안쓰럽게 지켜보던 작고 애처로운 풀포기가 어느 날 문득 환한 꽃더미를 들어 올리고 있는 것을 본 기쁨이 이런 것일까. 단순히 제 값을 치르고 사과를 받아먹는 내가 이럴진대, 그 사과나무를 몇 년이나 안고 쓰다듬으며 자신과 나무에게 용기를 주던 농부라면 그 기쁨이 오죽하랴. 그래서 오늘 내가 먹는 사과는 그냥 사과가 아니라 소비자와 생산자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의지하고 격려하며 함께 키워낸 우리의 사과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만나면 서로 늘 “고맙습니다, 덕분에 내가 살아있습니다” 라며 손을 잡고 쉽게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디 사과뿐이랴! 우리 손에 전해지는 모든 먹을거리가 그런 쉽지 않은 역사를 품고 있다.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도시에서도 농부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착한 소비자가 늘어간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생협을 통해 공급받는 물품들은 여전히 시장의 물건보다 겉보기에 볼품이 없고 품목도 적어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꾸준하게 사랑하는 마음, 함께 키우는 마음으로 먹을거리를 선택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그들의 아이들을 위해 차리는 밥상은 온통 보기 좋고 맛난, 우리 몸과 농업, 온 생명을 살리는 착한 먹을거리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자식 입에 밥 먹이는 일이 제일 행복한 일이라고 한다. 먹을거리가 귀한 시절의 이야기지만 지금도 볼이 미어져라 밥을 먹는 아이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즐겁다. 밥을 숟가락 가득 얹고, 반찬도 살펴서 올려 크게 벌린 아이의 입에 넣어주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그 농사가 대를 이어가며 계속하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으로 함께 농사를 짓는 소비자가 있는 한 그런 행복한 풍경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받는 밥상이 우리 가정 뿐 아니라 모든 식당, 단체 급식에 이르기까지 차려지는 그날을 꿈꾸는 착한 소비자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글을 쓴 윤선주 님은 도시살이가 농촌과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초창기부터 한살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한살림 감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웃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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