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호 2016년 8월호 살림,살림

[ 슬로카페 달팽이를 운영하는 최영미 씨 ]

느릿느릿 살고 싶어요

글 구현지 편집장 _ 사진 류관희

서울 북쪽 북한산 아래 자리한 성북구 정릉동, 서울에서는 보기 드물게 개울이 흐른다. 송사리도 살 만큼 맑은 물이 흐르는 정릉천이다. 평범한 동네 시장 정릉시장에서 정릉천을 따라 산을 향해 조금 걸어 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눈앞에 ‘슬로카페 달팽이’라는 제법 거창한 간판을 단 한옥이 나타난다.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전기를 끄고 촛불을 켜는, 느리고 아담한 공간이다.

 


7월 19일, 달팽이의 밤은 다른 날보다 한결 고즈넉하다. 매달 하루씩 보름달이 뜨는 즈음에 열리는 ‘캔들나이트’다. 이날은 전기 대신 촛불을 켜고 에너지 과소비와 지구 환경에 대해 생각한다. 냉장고와 온수기를 제외한 모든 전원을 끈다.
“슬로카페란 슬로푸드의 생각을 알리고 나누는 공간이죠. 야생 채집한 아라비카 원두로 만든 커피와 직접 키우고 채집하거나 농장과 직거래해서 만든 수제차를 팝니다. 토종 앉은뱅이밀로 구운 빵이나 직접 담근 잼도 팔아요.”
달팽이는 2014년 7월 경기 고양시에 처음 문을 열었고, 지난해 10월 이곳 정릉으로 옮겨 왔다. 카페 가까이에 있는 나이 지긋한 느티나무가 마음에 들어 이 골목에 자리 잡았다는데, 한적한 동네지만 은근한 입소문에 인근 대학교의 학생들도 많이 오고 동네 문인들도 찾는 명소가 되었다.

 

 

 

빨리빨리 살던 잡지 기자, 느리게 살기로 결심하다
카페를 운영하는 최영미 씨는 15년 넘게 줄곧 잡지를 만들어 온 잡지 편집장 출신이다. 여성잡지로 시작해 일을 그만두기 직전에는 건강전문잡지를 만들었다. 잡지를 만드는 동안에는 자신이 카페 주인이 될 줄은, 그것도 슬로푸드운동에 참여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빠른 트렌드를 따라잡아야 하는 잡지업계에서 자타공인 일 중독자였다. 기사뿐 아니라 광고나 프로모션 기획 등에도 탁월하여 잡지 매출도 크게 키웠다. 또 사람을 좋아해 동료와 후배 기자들을 챙기는 데도 빠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다. 건강에 몇 번 적신호가 왔지만 그때 잠깐 병원에 다니고 “한 달만이라도 휴가를 내라”는 의사의 권유도 귓등으로 들었다.
그런 그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노제 행렬에 서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그때까지 삶에 꽤 자신이 있었거든요. 하고 싶은 일이라면 다 할 수 있고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고,
그때 그랬어요. 잡지 기자로서도 알 만큼 알고 일도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갑자기 질문이 확 들어오는 거예요. 세상은 어떻지? 우리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일하고 있나? 또 개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 나는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잡지 기자로서 전문적인 역량을 쌓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기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건 아닐까? 최영미 씨는 자신의 일을 되돌아보았다. 건강전문잡지 편집장으로서 기사를 기획할 때 관련 업계에 깐깐하게 ‘레퍼런스’를 요구하곤 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 또한 기업 측 근거에만 휘둘린 게 아니었나 싶었다. “그전까지 내가 ‘MSG는 안전하다’ 이런 일 년짜리 기획기사를 내고 그랬다니까요? 근거를 내놓으라고 하면 또 근거가 다 있어요. 그쪽 업계 자료들이 얼마나 방대한데요. 기업에서 연구 용역 줘서 다 만들어 낼 수 있는 거예요.”
마음의 갈등이 몸으로도 나타나 그동안 쌓였던 피로 때문에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병원 진단을 받아 보아도 딱히 어떤 병에 걸린 것은 아닌데 몸이 붓고 쉽게 피곤해졌다. 더는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일단 무조건 쉬기로 했다. 어떤 약도 소용이 없었다. 그때 최영미 씨는 ‘음식’으로 눈을 돌렸다. 달걀과 유제품을 포함하여 육류를 전부 끊고 채식으로 식단을 바꾸었다.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고 전통적이고 소박한 요리법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식재료를 주의 깊게 보다 보니 가까운 먹을거리, 생산자의 얼굴을 아는 먹을거리가 중요하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슬로푸드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다. 식생활을 바꾸며 빨리빨리 대신 천천히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최영미 씨는 슬로푸드를 알리고 슬로라이프 문화를 함께 만들고 싶어 달팽이를 운영하고 있다.

 

 

함께 ‘슬로’하게 살고 싶어서 달팽이를 열다
“좋은 걸 혼자만 알면 재미없잖아요. 가까운 사람들에서부터 같이하고 싶고 그러자니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서 놀이터 겸 모임 공간으로 슬로카페를 생각했죠. 처음에는 차와 음료 등만 판매했는데, 가끔 지인들이 찾아와서 배가 고프다고 하니 밥을 차려 주게 되고 먹어 본 이들이 맛있다고 카페 메뉴로 내라고 해서 식사도 내게 되었어요.”
최영미 씨 부모님은 경기 김포에서 농사를 짓고 닭이나 염소도 키워 웬만한 먹을거리는 자급해 왔다. 최영미 씨도 어려서부터 그런 삶에 익숙했다. 지금도 부모님이 직접 키운 식재료와 텃밭에서 직접 키운 채소와 허브들, 직접 생산자를 만나 얼굴을 알고 직거래하게 된 농작물 등으로 카페의 음식과 음료를 만든다. 특히 장류를 중요하게 여겨서, 고추장·된장·간장·매실청·멸치액젓 등은 어머니와 함께 직접 담가 쓴다. 식초는 100% 현미식초만 쓴다. 이처럼 재료 준비하고 만드는 데 시간과 공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음식은 꼭 미리 예약해야 먹을 수 있다.
“그동안 카페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사람들과도 우여곡절이 많았죠. 그렇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만나서 놀고 함께 삶의 방식을 나누는 게 참 좋아요. 그래서 수공예하는 동네 친구들과 ‘수상한가게’라는 브랜드도 만들어서 정릉천 개울장이나 마포 늘장에도 가고, 카페에서도 벼룩시장도 하고 행사나 모임을 자꾸 만들고는 해요.”
앞으로 주력하고 싶은 일은 ‘농사’. 직접 농작물을 키우는 농사가 아니라 슬로카페를 매개로 좋은 농사를 짓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일을 계속 더 규모 있게 해 나가고 싶다. 그러자면 지금 달팽이 같은 공간들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 그동안 달팽이를 꾸려 온 노하우를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 주어 공간을 만들도록 돕고 싶다. 또 정릉시장 가까이에 있다 보니 먹을거리뿐 아니라 여러 가지 생활품을 파는 ‘동네 구멍가게’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동네에서 만들어 동네에서 사고파는 자급마을을 꿈꾸기 때문이다.
달팽이에서는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자유롭게 책을 골라 함께 읽는 ‘느리게 읽기’ 모임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캔들나이트를 연다. 이달의 캔들나이트는 8월 17일(수)에 열린다.
“저는 ‘생각해 보자’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어떤 일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에게 먼저 ‘생각해 보자’라고 해요. 사람들은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서 문제라고들 하는데, 실제로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면, 의외로 평소에 생각을 잘 안 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스스로 같이 생각하다 보면 안 풀리는 문제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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