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호 2016년 8월호 살림,살림

[ 땅땅거리며 살다-강원 양구공동체에서 벼·수박 농사짓는 조규학·박순옥 생산자 ]

“해 볼 거냐고 하면 덮어놓고 했어”

글 이선미 편집부 _ 사진 류관희

 

 

“우리 부모가 농사지을 땐 진짜 논에다 넣을 게 없었어.
그래서 봄에 갈나무 잎을 꺾어다가 논에 뜨문뜨문 붓고 손으로 꾹꾹 누르면서 모를 심었어.
그러면 그게 썩으면서 거름이 돼. 환갑 넘은 사람들은 다 알아. 그렇게 농사짓는 거 보면서 컸으니까.
그래서 나는 공동체 회원들한테 그래. 뭘 그렇게 힘들어하느냐고.
‘그렇게도 했는데 지금 뭘 못 하냐?’ 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유기농은 정부가 할 일을 대신 하는 것
조규학·박순옥 부부는 올해 벼, 수박, 양배추, 양상추를 심었다. 모두 유기농으로 논이 1만 9천800㎡(6천 평), 밭이 6천600㎡(2천 평) 정도. 지난해에는 더 많았는데, 아들 정선 씨가 귀농하면서 농지 일부를 떼어 줬다. “‘네가 해 봐라’ 하고 안 가 봐. 그러니까 좀 한가하지.” 부부가 사는 강원 양구 해안면은 해발 450m 내외, 일교차가 10℃ 이상 나는 분지로, 화채 그릇같이 생겼다고 해서 ‘펀치볼’이라고도 불린다. 주변에 오염원이 없는 청정 지역이어서인지 면내 전체 농지의 반 이상이 친환경 농지이다.
올해 예순두 살인 박순옥 씨는 인제에 살다가 스무 살에 결혼해서 이곳에 왔다. “부모님이 땅 파는 것밖에 못 배웠으니까 농사일 거들다가 시집왔지. 당시엔 농약이 없으니까 호미로만 일했지. 다 그렇게 했어.” 조규학 씨는 올해 예순일곱 살, 1976년 이곳에 와 농사지은 지 40년이 됐다.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는 유기농을 하려고 유달영 박사가 이끄는 한국유기농업협회에 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그러나 당시 유기농을 한다는 건 농약과 비료를 지원하며 식량 증산 정책을 펼치는 정부에 반하는 일이었다. “이장도 하고 마을 일을 하다 보니 현실과 타협했다고 할까, 교육만 받고 유기농은 안 했어.”

 

 

노지에서 속이 꽉 차 가는 양상추와 양배추. “옛날에는 풀만 아니라 버드나무 이런 것도 막 베서 소여물 써는 작두로 썰어다가 땅에다 퇴비로 냈다고. 그러면 밭에서 버섯이 뜨문뜨문 나고 그랬지.”

 


그러다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고 2000년대 초반 친환경농업육성법이 만들어지면서, 친환경 농사를 장려하는 것으로 정부 정책이 바뀌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마을 젊은 사람들이 친환경 농사를 짓자고 조규학 씨를 찾아왔다. “내가 옛날부터 모임을 만들고 뭔가 조직하는 걸 잘했거든.” 그렇게 2003년 조규학 씨를 대표로 해서 14명이 공동체를 시작하여 현재 회원이 30명에 이른다.
한살림은 2006년 우연한 기회로 홍천연합회에 견학을 가서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듬해 콩을 심어 공급해 달라는 의뢰를 받고 자연스럽게 한살림을 하게 됐다. 그리하여 2008년 양구공동체는 홍천연합회에 가입했다가 2012년 분리 독립하여 꾸리고 있다.
처음 친환경으로 벼농사할 때는 쌀겨농법을 썼다. 쌀겨를 논에 살포하여 유용한 토양 미생물을 늘리고 잡초를 억제하며, 쌀겨의 양분이 거름이 되어 화학비료를 대체하는 농법이다. “그런데 주위에 벼를 도정하는 데가 없으니까 무농약 쌀겨를 구할 수가 없어. 그래서 그걸 못 하게 됐지.” 그 뒤로부터는 우렁이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다. “우렁이값만 해도 비싸. 이 지역은 우렁이를 기를 수 있는 곳이 아니거든. 영하 20℃ 내려가는 날이 일주일이 넘는데 어떤 게 살아남겠어? 정부 보조 없이는 안 돼.”
조규학 씨는 정부 지원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친환경 농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에서 유박(깻묵), 미생물제제, 우렁이까지 적게는 50%에서 많게는 80%까지 지원하니까 한살림에 쌀을 낸다고 할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가격을 맞출 수가 없어. 그게 있으니까 된장값이라도 남는 거야.” 그는 “정부가 예전에 화학비료 지원하던 돈을 친환경 쪽에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자연을 살린다
는 할 일을 하는 거고, 우리는 지원을 받아서 정부가 할 일을 대행하는 거지.”

 

 

“더운 날 일하고 들어오면 힘들어 가지고 밥하기 싫다”는 박순옥 씨. 점심상 물리고 빨래도 넌다. “어떨 땐 일하고 들어와 씻지도 못하고 잔다”는 그의 말에 쉴 틈 없는 농부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온난화와 상품화가 바꾸어 놓은 농업
부부가 기르는 수박은 7월 말부터 수확을 시작해 8월 20일경까지 나간다. 일교차가 심한 지역적 특징 때문에 양구 수박은 당도가 높단다. 퇴비로는 유박과 함께 수피(나무껍질)를 발효시켜서 쓴다. “소나무 껍질은 못 써. 솔잎혹파리 방제한 데서 나온 건지 알 수가 없으니까. 모든 식물은 자기가 산 만치 땅속에서 발효된다고 해요. 그래서 풀은 1년이면 끝이고, 나무는 발효를 잘 시켜서 넣으면 거름기가 2~3년 가.”
유박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다 수입되니까 뭘로 기름을 짜고 남은 건지 깜깜한 거지.” 그래서 양구공동체에서 지향하는 건 경축순환농업. “원래 우리 공동체는 2006년부터 경축순환농업을 계획하고 2007년 우사를 지었어요. 우리가 기른 조사료 먹이고 소똥을 퇴비로 쓸 계획을 짜고 출발했거든. 우사에 깔짚을 깔고 소똥을 받아서 주는 게 제일 좋아. 힘도 덜 들고. 그래서 공동으로 소를 한 100마리 유기로 길렀어요.” 그러나 2010년 구제역이 발생해서 다 처분했다. “그러고 나서 우리 공동체가 분리되다 보니 할 게 좀 많아? 그러다 보니까 다시 소를 기를 여력이 없었어.”
다행히 지난해 공동체 일을 얼추 정리해서 올해부터 송아지를 입식하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송아지 한 마리 값이 300만 원이 넘는다고 하는데, 공동 출자도 하고 해서 열 마리라도 일단은 되는대로 시작하자는 게 내 생각이에요. 공동으로 하려는 거니까, 회원들이 같이 골고루 잘살게 되면 좋은 거지.”
초록색 수박은 잎사귀 사이에 있으면 잘 안 보인다. 그래서 알 솎기를 잘한다 해도 놓치는 경우가 있다. “그럼 덜 크는 거야. 한살림은 ‘극소’다 해서 4㎏짜리부터 가져가지만 시중에서는 다 버리지.” 유기농으로 기르면 관행농하듯이 작물을 똑같은 크기로 기를 수 없으니 이런 게 생기는 건 당연하다. 모두 다 귀하
게 기른 것, 작다고 버리기엔 너무 아깝지 않을까.

 

 

지난해 귀농한 아들 정선 씨가 부부의 뒤에 든든히 섰다. 아직 초보 농부라 올해 작물 심는 건 부부가 거들어 줬다고. “내년부터는 저 혼자 해야 하는데, 잘하겠죠.”

 


수확이 얼마 남지 않은 수박에는 물을 많이 주면 안 된다. 당도가 올라가지 않을뿐더러 겉보다 속이 너무 빨리 커서 저절로 갈라지는 열과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박이 조그마할 때는 물을 헛골에 흐를 정도로 많이 줘. 그러다 서서히 줄이는 거지.” 열과 말고 박순옥 씨의 또 다른 걱정은 진딧물. 진딧물 때문에 수박 잎이 새카매졌는데 친환경제제를 뿌려도 좀처럼 잡히지 않는다.
농사짓다 보면 신기한 일이 많다. “짐승이 맛을 잘 알아. 산돼지가 메주콩하고 서리태가 있으면 서리태만 골라 먹는다고.” 참새도 마찬가지. “찰벼를 심을 때는 참새가 엄청나게 덤볐는데, 지난해부터 메벼를 심으니까 참새가 안 덤벼. 찰벼 때는 폭죽을 32만 원어치 터트려도 결국 새한테 졌는데 지난해에는 그런 거 하나도 안 했는데도 새가 안 와. 그거 참 희한하지? 논 있는 데도 그대로인데. 올해도 메벼를 심었으니까 올해까지 그러면 확실한 거지. 동물이 우리하고 뭐가 달라도 다른 것 같아.”
또 지구온난화 때문에 예전엔 하나도 없던 과수가 지금은 포도, 사과, 배 등 안되는 게 없다. 그런데 지역 농사가 바뀐 게 기후 때문만은 아니다. 주민들이 고랭지 채소를 많이 재배했는데, 400m 이상의 고지대에 경사가 있는 고랭지 밭에서 흙이 쓸려 내려가 물이 탁해지는 게 문제인 것. “그림 같은 무가 나와서 서울 가락시장을 휘젓게 상품을 만드려면 해마다 객토(다른 곳에서 흙을 파다가 논밭에 옮기는 일)를 해야 돼. 우리는 그걸 ‘산을 헐어다 집어넣는다’고 해. 그런데 비만 오면 땅이 싹 쓸려서 흙탕물이 엄청나. 그러니까 지자체에서 객토를 못 하게 하고, 그래서 농사를 못 짓게 되는 거지.”
이렇게 농사를 못 짓게 된 땅을 인삼밭으로 줘 버린다고. “원래 여기에는 인삼밭이 하나도 없었어. 주민이 인삼을 심는 건 10%도 안 돼. 다 큰 자본이 들어와서 하는 거지.” 지자체에서는 고랭지 채소 대신 과수를 재배하게끔 지원한다. “‘흙탕물 저감 대책’이라는 게 여기 농사를 바꿔 놨어. 여기 물이 소양강댐으로 들어가. 서울 식수가 시작되는 곳이지. 서울 사람들 식수가 그렇게 중요한 거야.”

 

 

(왼쪽)수박 수정시키느라고 벌 한 통을 빌려다가 일주일만 쓰고 갖다 줬는데, 어디서 벌들이 와서 빈 통에 들어와 살더란다. 그게 신기해 가까이 갔다가 한쪽 눈을 벌에 쏘인 조규학 씨. “저 양반은 벌 안 타니까 괜찮다”고 아내 박순옥 씨가 말했다. (오른쪽)정선 씨가 처음 농사짓는 작물은 미니파프리카. 귀여운 모양새에 맛도 달착지근해 따서 바로 먹기도 한다.

 

 

나보다 우리가 잘되었으면
조규학 씨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고엽제 피해자로 2003년 당뇨 후유증을 진단받았다. 그런데 당시 조규학 씨를 진찰하고 지금까지도 담당하는 의사가 “진짜 몸 관리 잘하신다”고 말한다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가 몸 관리를 잘한 게 아니고 그때부터 친환경 농사를 짓네 하고 좋은 음식을 먹은 덕분이구나 싶어.” 관행농할 때는 메주를 쑤어도 콩을 좀 사서 하지 텃밭에 뭘 직접 심어 먹거나 하지 않았다. “차라리 내다 팔 무를 200평 더 심는 게 낫지, 내가 먹겠다고 조금씩 심는 건 경제성이 없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유기농을 하면서 배추도, 장 담그는 콩도, 마늘도 직접 지어서 먹게 됐다. “내가 먹는 거니까 크
든 작든 내 멋대로 길렀지. 지금 내 밥상은 80%가 유기농이라고 자부해. 또 김치에 설탕 대신 꿀을 넣어.” 그는 병이 더 나빠지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게 다 건강한 음식을 먹은 덕이라고 굳게 믿는다. “내 몸으로 내가 실험했으니 따져 볼 것도 없지. 그래서 농사 더 열심히 하는 거야.”
그는 소 기르는 일만 마무리하고 칠십 살까지만 농사짓고 싶다고 했다. “마누라한테 ‘서비스’를 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서른두 살 때부터 동네 이장 합네, 공동체 대표입네 하고 싸돌아다니면서 집안을 그렇게 비웠지. 또 우리 아버님이 아흔일곱 살, 어머님이 아흔두 살까지 사셨는데 이 사람이 시집와서 다 모셨어. 그것만 해도 내가 잘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어.” 그는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면서 아내와 한 달씩 우리나라 일주를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기농사로 몸은 좀 고단해도 부부는 “선택받았다”고 느낀다. “유기농하면서도 판로가 없어서 그냥 일반 판매하는 사람이 아직도 많거든. 그래도 우리는 한살림과 인연이 되어서 좋지.” 어디 자매결연 맺은 곳도 없고, 터널이 뚫리지 않았을 때는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지금까지 도농교류를 많이 하지는 못했다. 올가을에 한살림춘천생협과 메뚜기 잡기를 같이 하기로 했으니 이를 기회로 만남이 많이 이뤄지면 좋겠다.
“지금같이 경제가 불안한 때는 다 불안하다”는 조규학 씨는 “일반 농사가 안정되어야 친환경 농사도 안정되는 것”이라며, 관행농이든 유기농이든 할 것 없이 한국 농업이 함께 나아지기를 바랐다. 이야기 나누는 내내 ‘나’보다 ‘우리 공동체’를 강조하던 그에게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 갈까 생각한다”며 “그저 곱게 늙고 싶다”고 말하는 부부.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이미 고왔다.

 

 

(외쪽)우렁이농법으로 기르는 벼에 붙은 우렁이 알. 선명한 분홍색이 예상외의 모습이다. 조규학 씨는 “이 정도면 유기농 벼로는 엄청 잘된 것”이라며, 곧게 잘 자라는 벼를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다. (오른쪽)아직 다 익지 않았는데도 7kg가 넘은 수박. “시중에서는 보통 7~8㎏ 나가는 걸 일등품으로 치지. 너무 작아도 커도 안 돼. 한살림은 8㎏ 이상을 ‘특대’라 해서 제일 좋은 것으로 치고.” 위아래를 돌려 줘야 햇볕을 고르게 받아 당도가 고르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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