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호 2016년 7월호 살림,살림

[ 독일댁의 생태적인 삶-전기 안 쓰고 음식 보관해요 ]

냉장고가 뭐 대수라고

글 _ 사진 김미수

예전 집에는 전에 살던 사람이 두고 간 한 칸짜리 미니 냉장고가 있었다. 그러나 3년간 이 냉장고는 가동된 적이 없다. 결국 이 냉장고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며 나는 ‘선진 부엌 문명을 향한 끈질긴 집착’도 함께 버렸다. 여름이라도 집 안 서늘한 곳을 활용하거나 병조림하는 방법으로 음식을 잘 보관할 수 있다.

 

 

서늘한 공간만 있으면 충분해
내가 독일로 온 2005년, 남편도 그때까지 살던 학생 공동 주거지를 벗어나 우리 부부는 우리 둘만의 셋집에 살게 됐다. 그래서 집에 어떤 가전을 두고 살아갈지 모든 결정을 오롯이 우리 손으로 하게 됐는데, 남편이 냉장고 없이 살아 보자고 대뜸 제안했다. 당시 냉장고를 문명화된 부엌의 대표 기기쯤으로 생각하던 나는 뭔가 원시적이고 고달픈 생활이 펼쳐질 것만 같아 말도 안 된다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편의 추구와 생태적인 삶’에 대한 기나긴 논의 끝에 결국 우리는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냉장고를 쓰기로 타협을 봤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냉장고 없이 살면 좋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끊임없이 나를 설득하는 남편의 노력에 눈 딱 감고 ‘설득당해’ 줬는데, 논의가 길어지던 중 문득 냉장고 사용을 고집하는 내 모습이 ‘생태적으로 살겠다고 말만 하고 행하지 않으려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구나’ 싶어 남편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전에 살던 사람이 두고 간, 한국에서라면 부엌 안 달린 잠만 자는 자취방에서나 쓸 법한 한 칸짜리 미니 냉장고가 있었다. 그러나 이 냉장고를 실제로 쓴 기간은 우리 부부의 결혼식 참석차 한국의 가족들이 방문한 일주일이 전부고, 그때도 이미 식재료 대부분을 독일식 반지하 저장고인 ‘켈러’에 보관하고 있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로 다른 도시로 이사 가기 전까지 3년간 우리 집 미니 냉장고는 가동된 적이 없고, 이사를 핑계로 결국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이때쯤엔 내게도 냉장고는 ‘자리만 차지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라, 별 미련 없이 부엌에서 냉장고를 완전히 몰아낼 수 있었다.

 

 

우리 집 켈러의 모습. 상점에서 버려지는 나무상자를 층층이 쌓아 호박·감자·사과 등을 보관한다.

 


사실 독일은 지리적으로 한국보다 위도가 높아 기후가 서늘하고 건조한 편이라 냉장고 없이 사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에서 냉장고 없이 사는 게 결코 일반적이진 않다. 한국처럼 대형 냉장고를 많이 쓰진 않지만, 일반 냉장고에 냉동고를 따로 갖추고 사는 가정이 많다. 그런데 독일 집 대부분에는 켈러라고 하는 지하나 반지하 저장고가 딸려 있다. 독일 사람들은 이곳을 다용도실이나 창고처럼 쓰는데, 잡동사니를 보관하고 잼이나 피클 같은 병조림 식품이나 감자·양파 등 채소를 두기도 한다.
우리는 그동안 켈러를 대체 냉장 공간으로 활용해 왔기 때문에 집을 새로 구할 때마다 식품 보관에 적합한 서늘하고 깨끗한 켈러가 있는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지금 우리 집 켈러는 약 8㎡의 길쭉한 공간으로, 벽면 한쪽에는 철제 선반 서너 개를 놓고 다른 쪽에는 상점에서 버려지는 납작한 나무상자를 층층이 쌓아 공간을 체계적으로 나눠 쓰고 있다. 선반에는 유리병에 담은 김치·장·야생초 허브 효소 등 발효 식품
부터 각종 병조림, 과일 주스·와인 등 음료, 밀봉한 건조식품이 있다. 나무상자에는 상점에서 구입한 감자·양파·당근과 텃밭에서 수확한 주키니호박·야콘·돼지감자, 가을에 집 주위 여러 곳에서 직접 따 보관하는 다양한 종류의 사과·서양배와 호두·개암 등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채소를 소금물에 병조림해 두면 무더운 날 가열 조리 기구를 쓰지 않고 짧은 시간에 밥상을 차릴 수 있다. 특히 여름과 가을철 채소와 과일이 많이 날 때 병조림을 만들어 두면 보관 장소와 병조림 종류에 따라 꽤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채소도 찬밥도 병조림하면 문제없다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온으로 독일도 최근 몇 년간 한국의 한여름에 견줄 만한 35℃ 이상의 땡볕 더위가 심심치 않게 찾아들었다. 물론 그런 날에도 우리 집 켈러에 보관된 각종 먹을거리는 더운 날의 열기를 식혀 주기에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켈러가 아무리 시원하다고 해도 외부에 비해 15~20℃ 정도 온도가 낮다는 것이지 전력을 사용하는 냉장고처럼 연중 내내, 심지어 한여름에도 0~5℃ 사이의 저온을 유지하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냉장고 없이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 애용하는 방법은 병조림이다. 병조림은 뜨거운 내용물을 병에 채워 뚜껑을 닫으면, 병 내부에서 고온으로 팽창되었던 공기가 식으며 수축하는 원리를 이용해 밀봉하는 방법이다. ① 사과 무스처럼 첨가물 없이 재료 100%만으로 병조림하거나 ② 과일 잼이나 조림처럼 당을 첨가해 병조림하거나 ③ 채소와 버섯을 소금을 넣고 병조림하거나 ④ 오이 피클처럼 식초를 이용해 병조림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과즙이나 전통 음료 또는 토마토소스나 페이스트를 병조림하는 방법도 있다.

 

 

집에서 쉽게 병조림 만드는 법
① 유리병에 식품을 담기 전 뜨거운 물을 1/3쯤 붓고 헹궈 병을 한 번 소독한다.
② 유리병 병목까지 내용물을 꽉 채운 뒤 뚜껑을 닫아 밀봉한다.
③ 중탕냄비에 면포나 스테인리스로 된 낮은 소쿠리를 깔고 그 위에 유리병을 놓는다.
④ 내용물과 비슷한 온도의 물을 병목까지 붓고, 물이 끓기 시작하면 재료에 따라 10~20분 정도 중탕한다. 과일은 잠깐만, 채소는 과일보다 좀 더 오래 중탕한다.
⑤ 유리병을 베란다 바닥처럼 시원한 곳에서 식힌 뒤,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보관한다. 병조림 종류에 따라 6개월에서 1년 이상 보관할 수 있다.

 

 
마트에서 가끔씩 떨이로 파는 유기농 버섯이나 텃밭에서 많이 나는 깍지째 먹는 콩 등으로 만들어 둔 소금물 병조림은 바빠서 요리할 시간이 넉넉지 않거나 가열 조리 기구를 쓰기 싫을 정도로 무더운 날 특히 빛을 발한다. 그 외에도 남은 밥과 국 등을 한 번에 먹을 양만큼 유리병에 담아 밀봉하면 한여름에도 이틀 정도는 문제없다.
많은 사람이 도시에 살고 그중 대부분이 마당도, 지하 저장고도 없는 빌라나 아파트에 사는 한국에서 냉장고 없이 살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쪽으로 발달해 온 건 아닌가’란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매일 30℃를 넘나드는 뜨거운 여름에는 냉장고를 사용하는 게 불가피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덥다고 에어컨을 틀면서 따뜻한 한 끼를 위해 전기밥솥을 온종일 켜 놓거나 한겨울에 난방하면서 음식이 상하지 않게 냉장고를 가동하는 일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생각해 본다. 한겨울만이라도 냉장고 없이 사는 걸 시도해 보는 건 어떨까? 또 여름이라도 베란다 한구석이나 집 안의 그늘지고 서늘한 곳에 음식을 보관할 자리를 만들어 본다면? 시작이 어렵지 해 보면 그냥 생활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게다가 덤으로 대폭 ‘홀쭉해지는’ 전기료도 쏠쏠한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다.

 

 

↘ 김미수 님은 2005년 독일로 건너가 ‘조금씩 더 생태적으로 살아가기’에 중심을 두고 냉장고 없는 저에너지 부엌을 시작으로 실내 퇴비 화장실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또 먹을거리를 직접 가꾸는 등 좀 더 지속 가능하고, 좀 덜 의존적인 생태 순환의 삶을 실천해 나가고 있습니다. my-ecolife.net에 이런 경험을 나누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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