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특집] 살리는 사람, 농부

[ 다른 나라에서 만난 농부 | 영국 기독교공동체에서 만난 농부 존과 마틴 ]

평화를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할까요

글 원충연

 

그리운 벗에게.


연락 너무 반갑게 받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그곳에서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생각나던 참이었거든요. 서울에 있는 동안 형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곳에는 키 작은 봄꽃들이 피어나고 있어요. 도시에서 살다가 이런 꽃들을 보니까 자연에 이런 색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아들 녀석은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내요. 꽃 보러 산책을 가고, 염소, 돼지, 양을 보러 가고 때로는 세탁소에 일하는 할머니들, 공장에서 일하다가 차 마시고 있는 아빠들을 만나러 가요. 저희들 모두 잘 지내는 데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서울에서 만났던 분들이 생각나요. 어떻게들 지내시는지 하고요. 자연 속이라 아이들이 뛰어 놀 곳이 있고, 여러 사람과 함께 아이 돌보고 일할 곳이 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는 그리운 사람들이 있어요.


저희 공동체의 농부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셨죠. 사실 이백 명이 조금 넘게 사는 이곳에서 저희들은 나무로 어린이 가구와 장난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일이에요. 농장이 있기는 해요. 밭에 양파, 상추, 브로콜리, 피망, 당근, 감자 같은 것들을 심고, 마을 구석구석 남은 땅에는 사과나무, 자두나무 등을 심어 가꾸고, 사철 초록인 들에는 양과 소들을 풀어 놓고 길러요. 우리에는 닭과 돼지들이 있고요.


농장일은 단 두세 명의 경험 많은 농부가 도맡아서 해요. 나머지는 가구 공장 일을 하면서 일을 거드는 서너 명의 젊은이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교실 공부를 마치고 와서 돕지요. 일 많은 여름에는 아이들은 농장에서 살다시피 해요. 닭과 돼지는 아이들이 많은 두세 가족이 아침저녁으로 돌봐요. 그러니까 땅에 삶을 걸고, 생존을 위해, 가족을 보살피기 위해서 땅을 일구고 가축을 돌보는 농부는 없는 셈이에요. 농장에서 나오는 것들은 모두 공동체 식구들이 먹고 조금은 이웃들에게 돌아가요.


농사를 직업으로 하는 농부는 없지만 그래도 농부라고 부를 수 있는 두 분이 계세요. 사실 이 두 분의 삶을 들여다보면 땀 흘려 땅을 일구고, 가족과 이웃들을 돌보고,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꿋꿋하게 가는 농부의 모습이 보여요. 사실 직업이 아니라 그분들의 삶이 더 특별한 것이잖아요. 그래서 두 분의 삶에 대해 적어 보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때 평화를 찾아 농부가 된 할아버지들


백발의 영국 신사 존 할아버지는 우리 마을의 온갖 꽃들과 나무들을 책임지는 분이세요. 나이가 구십 살인 할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해서 젊은이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마을 곳곳, 비탈진 곳, 비가 자주 와서 진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니면서 나무를 심고, 가지치기를 하고, 거름을 주세요.


존 할아버지가 농부가 된 이유는 2차 세계대전 때문이에요. 열여섯 살에 할아버지는 납으로 페인트와 파이프를 만드는 회사의 실험실에서 일을 하면서 저녁에는 런던의 학교에 가서 과학 공부를 했대요. 그런데 열아홉 살이면 군대에 등록해야 했답니다. 하지만 전쟁에 찬성하지 않았던 할아버지는 스스로 양심적 병역 거부자로 등록을 했대요. 그리고 그 얘기를 직장의 윗사람에게 했더니 “그럼 존은 여기에서 일 하는 게 안 어울리겠네요. 우리 회사는 이제 총탄을 만들게 되거든.” 그때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던지 지금도 그 생각이 나신다네요. 아무튼 오랜 시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을 보낸 끝에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정을 하고, 직장을 포기 했답니다. 그리고 전쟁과 관련이 없는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여러 달 동안 찾지를 못했대요. 하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결정을 후회한 적은 없었답니다.

 

 

빈센트 반 고흐 (1853-1890) <씨 뿌리는 사람> 1888, 캔버스에 유채
 


그런데 할아버지는 ‘전쟁에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화를 살려 내는 길을 찾아 헤매기 시작 하셨어요. 그때 얘기를 하시는 데 할아버지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히더군요. 그러다가 영국에 있는 우리 공동체를 알게 됐고, 전쟁 통에 공동체가 파라과이, 미국으로 옮겨 다니는 동안 농사일을 하셨어요. 지난 겨울부터 할아버지는 집 지하실에 꽃 씨앗을 뿌려 가꾸고 계세요. 저도 한 번 할아버지 휠체어를 밀고 갔다가 지하실에 내려가 본 적이 있어요. 모판의 흙을 손으로 만져 보고, 어린 싹이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물을 주고, 형광등 빛의 방향을 조절하시는 모습이 마치 어린 아이를 돌보시는 것 같았어요. 공동체에는 팔십 명 정도 되는 손자, 증손자뻘 아이들이 있으니 자식 농사도 잘 지셨죠?


다른 농부 한 분은 야생의 사나이 마틴 할아버지예요. 위아래가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는 오래된 파란색의 작업복에 긴 장화를 신고, 잘 다듬지 않은 하얀 머리를 날리며 들에 서 있는 할아버지는 문명보다는 자연이 어울리는 분이시죠. 이분은 주로 양들과 소들을 돌보시고, 채소 심은 밭을 돌보세요. 요즘 같은 봄이면 존 할아버지와 함께 새로 나무 심는 일을 하시죠. 양치는 개를 훈련하는 것도 할아버지 일이에요.


할아버지가 농부가 된 사연은 이래요.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 미친 듯이 빠져 있었죠. 연합국의 비행기들이 자주 독일을 폭격했는데 그때 다섯 살이던 할아버지는 폭격의 혼란 속에 어머니와 헤어지게 됐어요. 다섯 살의 어린 아이가 갑작스럽게 거리로 내몰린 것이죠. 그때는 그런 일이 흔했다는군요. 할아버지는 삼 년 넘게 길에서 살다가 비슷한 처지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독일에 있던 우리 공동체에 입양이 됐어요. 그때 공동체는 농장을 운영하면서 살림을 꾸려가고 있었어요. 젖소를 기르고 양도 쳤죠. 할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백오십 마리 되는 소들의 젖을 짜는 일을 돕기 시작했고 가축을 돌보는 일을 배우게 됐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농부가 된 셈이죠. 그리고 젊어서 공동체를 떠났다가 당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돌아오셨어요.


할아버지는 생각이 거침없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말씀하시는 분이에요.
“너무 많이 먹으면 벌을 받게 돼. 흥청망청 하면 머지않아 끝을 보게 돼. 자연과 함께 사는 걸 배워야지 오히려 망치려고 하면 돼? 그런 건 쓰레기야!”
할아버지는 요즘 우리네 삶이 너무 풍족하고, 사람들은 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삶을 살고 있다며 걱정을 하세요.


할아버지는 늘 검소하게 입고, ‘먹고 마시는’ 자리에는 좀처럼 끼지 않으세요. 하지만 그 분에게서는 따뜻함이 느껴져요. 호통을 치실 때도 얼굴에는 미소가 깔려 있어요. 그리고 끝에는 ‘씨익’ 하고 웃으면서 어깨를 살짝 치세요. 그리고 조용히 마을 사람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먹을거리를 길러 내고, 식사시간 때에는 늘 아이들에게 곁에 앉으라고 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시간 할아버지를 보고 싶으면 들로 나가면 돼요. 그러면 양들의 먹이 확인하는 일이며, 울타리 확인하는 일이며 농장 일의 마무리를 꼼꼼히 하시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어요. 물론 헝크러진 머리 위에는 마른 풀잎들이 꼭 붙어있죠. 어제 할아버지는 마을 식구들이 모두 모여 저녁을 먹는 시간에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불러 주었어요. 피아노는 아들이 쳤고요. 노래는 길을 가는 어느 젊은이에게 바람이 보리수 나뭇잎을 통해 무엇인가를 얘기하는 노래였는데 할아버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마치 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껴졌죠.

 

여전히 전쟁 같은 삶을 사는 농부들에게 미안해요


이분들께 한국의 농부들, 뼈 빠지게 일을 하고도 늘 빚더미에 깔려 있고, 농촌에 눌러 앉아 자식들을 위해 그리고 도시 사람들을 위해 먹을거리를 길러내지만 늘 외로운 한국의 농부들에 대해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고개를 떨구시면서 “우리는 너무 운이 좋은 거야”라고 말씀하세요. 더 말씀은 안 하셨지만 씁쓸해하고, 미안해하시는 표정이었어요. 마틴 할아버지는 “내가 젊었을 때는 큰 땅을 가진 어떤 사람의 농장을 맡아서 일을 했어. 양과 소를 돌보고 농장 시설과 땅 관리도 했지. 그 농장에서 나오는 수익이 10이라고 하면 나에게는 1밖에 안 주어졌어. 그래도 생활하기는 괜찮았어.”라고 말씀하세요.


농부 얘기를 해 달라는데 존과 마틴 할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분들의 삶이 제게 많은 생각들을 자라게 도왔기 때문이에요.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저 분들처럼 용기를 내고, 삶을 바칠 수 있을까?’ 물론 지금은 전쟁 중에 있지는 않지요. 하지만 이라크, 가자 지구, 콩고에서는 지금도 죄 없는 아이들, 어머니들이 목숨을 잃고 있잖아요.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집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쫓기다시피 망루에 올라 테러 진압하는 특공대에 밀려 불길에 휩싸인채 목숨을 잃고, 남과 북의 사람들은 아직도 전쟁 소문으로 걱정하고 있잖아요. 사실 이것이 전쟁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리고 세계적인 경제 위기 때문에 미국과 영국 등에서도 많은 사람들, 특히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사람들의 어깨가 움츠러든 모습을 보면 우리가 지금 평범한 때를 살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 사람들의 마음이 돈 때문에 각박해지고, ‘남을 해쳐야 내 안전이 지켜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전쟁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두 할아버지는 모두 전쟁을 경험하고, 왜 사람들이 서로를 죽여야 하는지, 왜 전쟁에 반대하면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지, 왜 다섯 살짜리 어린 아이가 거리로 내몰렸어야 하는지 물으면서 살아오셨어요.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을 바꾸고, 무언가를 하는 거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분들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을 위해 채소를 기르고, 가축들을 돌보면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식구처럼 사는 일에 작은 일부가 되면서 깊은 평화를 맛보고 있는 분들이에요. 공장에서, 들에서 정성을 다해 일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 부끄러워져요. 그리고 나는 할아버지들이 지닌 진정한 용기와 삶에 대한 정직함을 갖고 있는지 되묻게 돼요.


아무튼 봄은 왔어요. 수선화, 앵초, 크로커스, 아네모네 같은 들꽃들이 피어나고, 갓 태어난 양들은 이리 저리 뛰어 다니고, 등이 간지러운 말은 풀밭 위에서 뒹굴고, 종다리는 사랑의 노래를 부르며 하늘 높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올라가요. 오늘은 토요일인데 하늘이 파랗고, 봄볕이 아주 따뜻하게 비추고 있어요. 차로 십오 분 거리에 있는 도버항에 사는 갈매기들은 들에 떨어진 낟알들을 주워 먹으러 오늘도 날아왔어요. 할아버지들은 오늘도 바람을 맞으며 나무들이 심겨진 곳으로, 양들이 풀을 뜯는 곳으로 가세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생각해봐요. 큰 일은 모르겠지만 작은 일이라도 시작해야겠다.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들여서 하고, 옆의 이웃을 돕는 일부터 해야겠다. 그리고 지금 해야겠다라고요.


몇 년 전에 비가 많이 와서 이웃 마을이 물에 잠긴 적이 있었대요. 그런데 존 할아버지는 자녀들에게 휠체어를 타고 마을로 가야한다고 주장하셨대요. 할 수 없이 딸과 사위 그리고 손자들은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밀고 길을 나섰지요. 그런데 더 이상 갈 수가 없게 됐어요. 길에 물이 차서 휠체어와 할아버지가 물에 젖지 않고서는 갈 수 없게 됐거든요. 하지만 할아버지는 마을에 있는 외로운 할머니에게 꽃을 가져가야 한다고 재촉을 하셨어요. 결국 나머지 가족은 남고 사위가 휠체어를 타고 가서 그 할머니에게 꽃을 배달하게 됐지요. 저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어린 아이처럼요.
2009년 봄날, 너도밤나무 숲 마을에서.  


글을 쓴 원충연님은 영국 동남부 켄트에 있는 한 기독교 공동체에서 아내 아일린, 아들 동경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부르더호프 공동체’로 알려져 있는 이 공동체는 예수의 산상 수훈을 삶으로 실천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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