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호 2016년 7월호 [특집] 특집-다시 시작을 위한 멈춤, 휴식

[ 일에 매인 직장인, 비움과 채움의 균형 찾기 ]

복종과 자율, 책임과 방임, 경쟁과 협동 사이에서

글 _ 사진 정도영

회사가 마냥 에너지만 빼앗아 가는 공간은 아니다. 그 안의 생동감과 열정은 삶에 대한 긍정적인 애착을 부여한다. 다만 한 공간에 오랫동안 머물다 보니 넘쳐나는 에너지와 사그라지는 에너지의 불균형 때문에 휴식이 간절해진다. 깨진 균형을 바로잡는 시간! 그것이 바로 휴식이다.

 

 

고향이 바닷가여서 섬에서 바람 소리 들으며 조용히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 경남 통영의 연대도에서 바라본 만지도. 지금은 두 섬 사이 출렁다리가 놓여 걸어서 건너다닐 수 있다.

 

 

매일 업무 틈틈이 휴식의 달콤함
아침 6시 5분! 윙~윙~윙~ 첫 번째 휴대전화 알람이 울린다. 반사적으로 뻗은 손이 화면의 중지 버튼을 밀어내곤 다시 내려놓는다. 그리고 5분 후. 다시 울리는 알람. 남은 잠을 완전히 쫓으려고 더 경박하게 울어대는 듯하다. 이부자리에 누운 채로 팔다리를 사방으로 쭈욱 뻗어 덜 깬 잠을 억지로 몰아낸다. 하루의 시작이다.
‘도어 투 도어’로 30분이면 족한 출근길이지만, 서둘러 집을 나선다. 출근 시간이 여타의 회사들보다 1시간 더 이르기도 하지만, 만원의 ‘지옥철’을 피하기 위해서다. 아파트형 공장들과 오피스 빌딩이 즐비한 서울의 구로디지털단지역. 아침 7시 10분경. 1시간 후면 수만의 직장인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오겠지만, 아직은 한산하다. 짧지만 출근길 지하철 탑승 구간은 하루 첫 휴식 시간이다. 주로 휴대전화에 저장된 음악을 들으며 소설책을 읽는다. 아침의 짧은 휴식은 오래된 연인의 품처럼 설렘은 없지만 편안하기 그지없고, 방해받으면 하루가 흐트러질 것 같은 소중한 시간이다.
직장에서 오전 시간은 언제나 에너지를 가장 많이 뺏기는 때다. 전날 밀린 일과 새 일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의료기기를 개발·제조·판매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내가 맡은 업무는 직원 복지와 조직문화 개발에 관한 것이라 매출 압박이나 직접적인 상품 개발 스트레스는 없다. 그래도 사무실 곳곳에 직접 손이 가는 소소한 일이 지천이다. 바쁜 오전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하루 중 직장인 대부분에게 가장 달콤한 휴식 시간인 점심시간이다. 대부분의 동료들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식사를 마치고 꿀잠의 시간에 돌입한다. 활기차게 돌아가던 공장이며 사무실은 소등과 함께 고요한 수면실로 탈바꿈된다. 남은 오후 시간 최대의 에너지를 끌어내기 위한 잠깐의 휴식인 셈이다. 말 그대로, 새로운 시작을 위한 멈춤의 시간들이다. 물론 햇살 좋은 날은 너 나 할 것 없이 한 손에 커피며 주스를 들고, 빌딩숲 사이사이를 산책한다. 나 역시 단잠의 유혹보다 네모난 상자를 벗어나 곡선의 길을 걷는 휴식을 주로 택한다. 각진 책상, 그 위에 반듯한 모니터, 네모난 보고서와 각종 결재서류들, 책상달력, 심지어 각티슈까지. 네모난 직선만을 종일 접해 눈동자마저 사각으로 바뀌지 않을까? 눈과 맘에 박힌 직선을 비우고 곡선을 채울 시간이다. 일단 사무실을 벗어나, 둥근 하늘과 동글동글한 동료의 얼굴을 마
주 보며, 맘껏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 수 있는 점심시간. 출근길에 보이지 않았던 거리의 나무와 꽃잎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니, 휴식은 곁에 있어도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는 힘이다.

 

내게 휴식이란, 회사와 집, 도심과 외곽, 복종과 자율, 책임과 방임, 경쟁과 협동 둘 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감각을 비우거나 채우는 것이다. 직장 생활은 대부분 전자의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전자는 비우고 후자는 채워 주어야 직장 생활이 지속 가능하다.


오후 4시 이후. 일주일 중 목요일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 낯빛은 어둠으로, 어깨는 땅으로 향하는 시간들. 계획했던 일 대부분이 아직 미해결로 둥둥 떠 있는 시간. 끝이 보일 듯하나 아직은 좀 더 달려야 한다. 몸과 맘이 쉼을 원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지쳐서 그저 눕고만 싶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로 향해야지, 주말에는 그저 소파와 방바닥만 만나며 잠이나 실컷 자야지 하고 결심했다가도, 막상 사무실을 벗어나자마자 집이 아닌 다른 휴식처를 찾아 기웃거린다.
도시 직장인들은 적어도 일주일에 닷새 이상 일터에 매여 반복적인 업무를 수행한다. 한 공간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보니 넘쳐나는 에너지와 사그라지는 에너지의 불균형 때문에 휴식이 간절해진다. 내게 휴식이란, 회사와 집, 도심과 외곽, 복종과 자율, 책임과 방임, 경쟁과 협동 둘 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감각을 비우거나 채우는 것이다. 직장 생활은 대부분 전자의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전자는 비우고 후자는 채워 주어야 직장 생활이 지속 가능하다. 주중 내내, 아니 연중 내내 한쪽으로 쏠린 감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휴식이 필요하다.

 

 

인스턴트 음식을 싸 들고 가서 고기만 잔뜩 굽고 오는 여행보다 기왕이면 주인집 아주머니가 그 고장 음식을 차려 주는 섬 주민 민박 여행이 좋다. 전남 여수의 금오도에서 바라본 해거름.

 

 

주말·휴가엔 비움의 공간을 찾아
금요일이면 언제나 어디론가 떠날 생각이 앞선다. 특히 요즘같이 무더위가 계속되면 여름휴가를 빨리 가고 싶다. 꽉 채워진 도심의 공간에서 벗어나 비움의 공간, 머리는 비우고 몸은 채울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을 찾는다. 여느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듯 나도 휴가에 주로 여행을 택한다. 낯선 공간이 주는 설렘과 신선함은 회사에서 도심에서 가득 채워진 욕심과 스트레스를 비워내고 방전된 에너지를 채워 주는 최고의 처방이다. 요즘 나는 조용히 걸으며 바람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낯선 길을 찾아 주로 섬으로 휴가를 떠난다. 바닷가에서 태어난 때문인지 바다를 보고 천천히 걷노라면 온갖 잡념으로 가득 차 있던 머리도 답답했던 가슴도 텅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 온전히 비우고 나면 다시 채워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선명해진다.
아마 올 여름휴가도 섬에서 보낼 듯하다. 섬을 걷다 마주치는 수평선은 수직으로만 뻗어 있던 직장인의 뇌를 둥글고 길게 펴 준다. 고개를 좌우로 돌려 수평선을 가만히 쳐다보면 수평선은 반드시 둥글다. 푸르게 빛나는 바다에 뛰어들어 걷고 헤엄치다 보면 책상 아래 갇혀 있던 두 다리가 모처럼 자유롭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차려 준 저녁 밥상은 도시에서 먹던 모양만 근사한 음식들과 달리 내 몸을 한결 건강하게 채울 것 같다. 아직 올 여름 휴가지를 결정하지 못했다면 섬 여행을 추천한다. 단, 온갖 인스턴트 음식을 잔뜩 사 들고 가서 고기 굽는 연기만 날리다 오는 캠핑보다 섬 주민 민박을 추천한다. 이왕이면 주인집 아주머니가 식사도 해 주는 집을 찾아보자. 내륙에서 맛보기 힘든 해초류 반찬과 해산물 요리를 경험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바다에서 섬으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 들으며 걷고 싶다. 휴식을 통해 욕심과 번뇌는 비우고, 마침내 고요와 평온으로 몸과 맘이 가득 차길 희망한다. 비록 지리멸렬한 삶일지라도 그 삶이 계속되길 바라기 때문이리라.

 

 

 

↘ 정도영 님은 의료기기 회사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도시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바닷가에 오두막을 짓고 나무와 풀꽃과 바람을 벗 삼아 더 바랄 게 없는 삶을 살길 꿈꾸며, 지금은 계속 준비만 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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