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호 2016년 7월호 [특집] 특집-다시 시작을 위한 멈춤, 휴식

[ 두 아이의 엄마, 제주도에서 보낸 한 달 ]

돌아다니기보다 머무르기

글 _ 사진 김민경

“엄마, 저것 봐. 구름이 꼭 고래 같아!”
작년 여름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로 나가는데 큰아이가 소리쳤다. 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정말 4~5m는 됨직한 커다란 고래 모양의 구름이 맑고 파란 하늘에 떠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이런 구름을 어디에서 볼 수 있겠어.’ 제주에 온 실감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지나가다가, 아담하고 조용해서 자리를 잡고 머무른 제주의 바다.

 

 

아이들 방학 땐 집안일 덜 하고 싶다
아이와 함께 제주도에 처음 간 건 2008년 초봄이다. 그땐 직장에 다녔는데, 1년 육아휴직이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고 아이 돌을 앞두고 있어서 가족여행 겸 간 것이었다. 그 뒤로 우리 가족은 거의 매년 제주도를 찾았다. 나는 제주도에 가면 늘 무장해제되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고 편안해졌다. 번잡한 제주공항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마치 다른 세상의 문을 열고 나온 것처럼 새로운 기운이 나를 둘러싸는 듯했다. 그래서 매번 일주일 정도밖에 머무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아쉽기 그지없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제주도에서 한 달만 살아 봤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고,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겨울에 여름방학 한 달을 제주도에서 보낼 결심을 하고 덜컥 월셋집을 계약했다. 거창하고 뚜렷한 목적 없이 우리 가족과 제주도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재작년에는 서귀포에서, 작년에는 조천에서 여름을 보냈다.

 

 

화순곶자왈. 방목 중인 토종 소들을 한참 구경했다.

 


나는 다섯 살 터울인 형제를 키우는 주부다.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에 다녀오는 오후 두세 시까지는 나만의 일로 글을 쓴다. 그렇기에 두 아이를 떼놓지 않는 한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휴가는 꿈도 못 꾼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들었던 걱정 중 하나가 긴 방학은 도대체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었다. 온전히 내 책임일 텐데, 맨날 어디 데리고 다닐 수도 없고, 눈 딱 감고 친정이나 시댁에서 보내자니 눈치 보이고….
그래서 엄마인 나도 쉴 수 있는 휴가에 대해 틈틈이 고민을 했었다. 가장 큰 바람은 원래도 대충 살림하고 있지만 아이들 방학 때에도 집안일을 덜 하고 싶다는 것이었고, 그다음은 내 일과 주부로서의 일상 사이에서 자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긴장감을 떨쳐 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힘든 순간이 더 많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학교와 어린이집 등하교 시간에 맞춰진 일과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일상을 보내 보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이를 충족하려면 일단 집을 떠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보니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휴가보다는 한 곳에 ‘머무르는’ 휴가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이런 의미에서 제주도는 최상의 휴가지다. 휴양림과 오름, 올레길, 곶자왈 등의 고즈넉하고 신비로운 숲, 아파트나 고층건물의 스카이라인으로 가려지지 않은 탁 트인 하늘, 언제든 편히 갈 수 있는 아름다운 바다, 마치 원시림처럼 잘 보존되어 있는 숨은 계곡들. 이것만으로도 제주도에서는 휴가를 일상처럼, 일상을 휴가처럼 보낼 수가 있다. 또한 도서관도 적지 않고, 크고 작은 규모의 전통 시장과 마트도 곳곳에 있어서 장보기도 불편하지 않다.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휴가보다는 한 곳에 ‘머무르는’ 휴가를 선호하게 되었는데, 이런 의미에서 제주도는 최상의 휴가지다.
사실 ‘느긋한 마음’만 있다면 아이들과 어디를 가더라도 좋을 것 같다.

느긋한 마음을 갖기까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파도치는 마음을 달래며 도를 닦아야 하지만 말이다.

 


마음만 느긋하면 어디라도 좋다
하지만 재작년 여름 서귀포 월셋집에 도착해서 처음 며칠을 보낸 뒤에는 힘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한 달만 머무르는 곳이지만 간단하게라도 청소해야지, 빨래도 해야지, 애들 밥도 먹여야지, 어디로 놀러 갈 건지 생각도 해야지, 맨날 티격태격하는 아이들도 대면해야지, 도대체 쉴 시간이 나지 않았다. 제주도에 내려가기 전 욕심내지 말자, 놀멍쉬멍 보내고 오자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려가니 가고 싶은 곳이 많았다. 하루에 한 곳만 가자고 해도 매일 어디를 놀러 가는 셈이니 힘에 부쳤다. 우리가 다닌 곳이 숙소에서 반경 20km 내였는데도 말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도 모르게 잠에 곯아떨어졌고 아침에 일어나면(물론 잠을 푹 자니 몸은 상쾌했다) 다시 똑같은 일상이니 여기가 제주도인가, 우리 집인가 싶었다. 게다가 남편은 휴가로 이 주일만 보낸 뒤 일하러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어서 이렇게 매일 놀러 다니다가는 나도 아이들도 몸살 나겠다 싶었다.
이렇게 지낸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내가 왜 아이들 방학을 제주도에서 보내고 싶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 바란 건, 4주간의 방학 동안 내 일을 내려놓고 학교도, 어린이집도 가지 않는 애들하고 그냥 함께 있는 것, 바로 이것이었다. 이렇게 정리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면서 일상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오전에 어디를 다녀오면 햇볕이 뜨거운 오후에는 집에서 쉬었다. 둘째아이는 주로 낮잠을 잤고 첫째는 자거나 놀거나 했다. 나도 이때 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누가 제안해서 오후 늦게 바다를 가서 한두 시간 놀다 오거나 저녁 먹고 바닷가 산책을 나가거나 했다. 아침 일찍부터 바다에 간 날은 오후에 돌아와서 뒹굴뒹굴하며 쉬었다. 일상이 정리되고 별 무리 없이 흘러가니 밤엔 책을 볼 시간도 생겼다.

 

 

삼다수 숲길. 맨날 밉다고만 하는 동생이 힘들다 하니 형아가 손을 잡고 끌어 주었다.

 


작년 여름 제주 조천에 가서는 서귀포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없었다. 대신 또 제주도에서 방학을 보내니 아이들이 지겨워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근처에 교래자연휴양림이 있고, 제주 동북쪽의 바다는 남쪽 바다와 또 다른 풍경을 안겨 주었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바닷가에서 보냈으니 바다 구경은 정말 실컷 했다. 또 월셋집에 마당이 있어서 풀장을 만들어 놀기도 하고 밥도 먹고 하는 등 아이들이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나 또한 고등학생 때까지 마당이나 옥상 있는 집에서 살았던 터라 오랜만에 마당과 옛 집에 얽힌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립고 애틋한 마음을 품어 보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사실 ‘느긋한 마음’만 있다면 아이들과 어디를 가더라도 좋을 것 같다. 느긋한 마음을 갖기까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파도치는 마음을 달래며 도를 닦아야 하지만 말이다. 어차피 자식 키우는 부모는 매일 도를 닦아야 한다. 이 도를 잘 닦기 위해 2년 뒤엔 남편과 애들 다 두고 가는 나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그때는 눈 딱 감고 시댁과 친정에 애들 좀 봐 주십사 부탁, 아니 사정을 하려고 한다. 이제는 ‘주부’가 아닌 나 자신에 오롯이 몰두할 수 있는 완전한 휴가도 절실하기 때문이다.

 

 

 

↘ 김민경 님은 한살림고양파주생협 조합원으로, 소설과 동화를 쓰며, 열 살과 다섯 살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자 주부입니다. 장편소설 《앉아 있는 악마》를 썼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