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특집] 살리는 사람, 농부

[ 학교에서 만난 농부 | 제천 간디학교 농부 수업 실험기 ]

아이들에게 농사 교육이 필요한 이유

글 최성훈

농사라는 것을 접한 지 8년째 접어든다. 하지만 말이 8년이지 2년은 줄곧 누군가로부터 주어진 계획에 따랐고, 2년은 개점휴업을 했으니 직접 작물을 계획하고 밭을 일구어 심고 거둔 것은 고작 3년밖에 되지 않은 초보농부다. 게다가 천여 평의 땅을 간신히 짓고 있으니 어디서 농사짓는다는 명함을 내밀기도 힘든 형편이다. 그게 교사이자 농부라는 엉성한 명함을 지닌 나의 한계이자 현실이다.

 

지금의 제천시 덕산면에 오게 된 것은 4년 전이다. 농사를 짓고 싶은 마음과 교직에 대한 미련이 어설프게 공존해 그 접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하던 때였다. 마침 이곳 학교에서 농사 교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큰 고민 없이 지원을 했다. 사실 그때는 학교라는 곳보다 농사를 마음껏 지어볼 수 있다는 것이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일단 학교라는 틀에 속하게 되었으니 ‘학교’에 충실해 보자는 것이 제천 간디학교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심정이었다.

 

제천 간디학교의 교과는 크게 지식교과, 감성교과, 자립교과로 나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인간의 생활에 가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자립교과는 필수로 지정되어 있다. 자립교과는 다시 의식주로 세분화되어 옷 만들기, 음식, 농사, 목공으로 구성된다. 4년 전 학교에서는 농사의 중요성을 인식해 농사를 전 학년이 수강해야 할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어설픈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기에는 큰 부담이었지만 그만큼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따분하고 폼도 안 나는 농사 수업을 졸며 듣는 아이들

아이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재미있게 풀어나갈까’가 당시 내가 가진 화두였다. ‘먹을거리 오염 실태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이야기 해야겠고, 그 오염된 먹을거리가 우리 몸에 얼마나 안 좋은지 말해주는 것은 필수겠지. 더 나아가 그 먹을거리가 다음 세대, 현재 지구 반대편에 있는 또래의 친구들에게 엄청난 폭력이 된다는 이야기도 빼놓으면 안 되지. 눈앞의 폭력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폐된 폭력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폭로하는 것도 중요하고……. 자원과 물질의 순환이 유기농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안인데, 화장실 이야기도 해서 생태화장실 이용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지.’

 

일주일에 4시간이나 할애된 수업이었지만, 수업 시간은 짧기만 했고, 이야기할 내용은 늘어만 갔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지쳐 나간 것은 아이들보다는 나였다. 아이들에게 농사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존 로빈스의 섬뜩한 증언도, 프란시스 무어 라페의 도덕적 외침도, 장일순 선생의 나직하지만 날카로운 가르침에도 젖어들지 않았다.

 

외출을 나가면 식품첨가물에 찌든 과자를 사먹는 아이들, 정신없이 육식에 몰두하는 아이들, 학교가 학생들의 노동력을 갈취하는 것 아니냐고 서슴없이 발언하는 아이들, 수업시간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드는 아이들, 단지 수업 이수를 위해 수업에 참여하는 아이들……. 그것은 내가 기대한 모습은 아니었다.

 

농사는 내게 큰 변화의 전환점이자 소중한 삶의 방식이었다. 머리와 몸이 단절돼 따로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생활, 파편화 된 개인의 욕구만이 중시되어 다른 이와 함께 사는 것을 잃어버린 시대, 자연을 단지 정복하고 파괴하는 대상으로 보는 시선들, 그것이 도시문명이 내게 준 가르침이었다. 20여 년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살아낸 도시였지만 막상 그 한복판으로 뛰어들어야 할 순간이 왔을 때, 희망이란 없어 보였다. 실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답도 없는 우문만으로 생활한 시기가 있었다. 도시에서 답은 없어 보였다. 내 동료를 동지가 아닌 경쟁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야하는 사회에서 희망이란 움틀 수 없었다. 상황은 명료했고 그 곳에서 해야 할 행위 역시 명확했다. 그것은 도시를, 정확히는 도시문명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농사는 그 대안이었다.

 

농사는 기본적으로 몸을 쓰는 일이다. 농사가 단지 책상에 앉아 머리만 쓰는 일이 아님은 명확하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그 모든 상황을 몸으로 대면하고 견디는 것이 농사를 대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그러나 농사라고 해서 머리를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가을걷이가 끝난 황량한 들판을 보며 농부는 다음해에 심을 작물을 구상한다. 땅의 성질, 기후의 변화, 작물의 특성을 고려해 가까이 심어야 할 것과 떨어져 심어야 할 것, 다음에 심어야 할 작물을 생각한다. 농부는 머리와 몸(손)을 함께 사용하는 전인적 인간상의 표본인 셈이다.

 

농사는 혼자 지을 수 없다. 특히 때를 놓치면 수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벼농사는 이웃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한 대표적인 노동집약적인 농사이다. 자연스레 내가 아닌 ‘우리’, ‘지역’, ‘공동체’의 상이 요청된다. 더욱이 그 공간에선 아무도 내쳐지지 않는다. 모자라는 사람은 모자라는 대로, 어리숙한 사람은 어리숙한 대로, 잘난 이는 잘난 대로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은 우열이 아닌 상호필요불가결한 관계를 형성한다. 그 관계는 상대를 경쟁과 우열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상대를 돕고 상대로부터 도움을 받아 스스로 설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대안적인 사회, 대안적인 문화의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농사는 자연의 일부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농(農, 曲+辰 별을 노래하다)이란 말의 어원은 시기를 좇아 시절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자연의 순리를 따라 작물을 파종하고 가꾸고 거두는 것이 농사인 셈이다. 당연히 농사를 짓는 농부는 자연을 수탈과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연이 준 혜택에 고마움을 가질 뿐이다.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는 것은 인간의 일이지만, 싹을 틔우고 키우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니다. 자연 앞에 겸허하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처음 농사를 배울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흙을 밟을 때의 포근함. 구름 위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던 볏짚 덮기. 파릇한 싹과 대면한 손끝의 감촉. 김매기 후에 한바탕 땀을 쏟아내고 맞는 바람의 여운. 아직 밤의 기운이 어스름히 남았을 때 맞이하는 새벽 기운. 그 속을 고요하게 흐르는 새소리. 도시에서는 만나지 못한 감흥이자 살아있는 나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평화라는 것, 행복이라는 것은 그 일순간의 감정일지 모른다. 농사란 적어도 내게 그런 것이었기에 아이들의 반응이 참담하기만 했다. 아이들에게 농사 ‘교육’은 필요 없다.

그렇게 결론 내리는 데 필요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몸으로 가르치고 가슴으로 배우는 살림의 수업

그러나 그런 결론을 내리고 나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뭔가 감정이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기분이었다. ‘내게 소중한 경험이 다른 이에게도 소중한 것일까?’, ‘어떤 이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내게도 소중해야만 하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절실하게 느낀 것이 아닌, 단지 알고 있는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전달했는지 모른다. ‘옳음’이란 명목으로 미사여구를 동원해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꼰대’의 모습으로 아이들을 만났는지도 모른다. 그건 분명 가르침도 배움도 아니었다.

 

아이들은 스승이다. 아이들은 어떤 가르침을 몸으로, 눈으로, 입으로 적극적으로 표현했는지 모른다. 그 가르침을 깨닫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것은 오히려 내가 아니었을까?

 

농부로도 교사로도 어설프게 1년을 지낸 뒤 농사 교과에 대한 교육과정을 새롭게 정비할 것을 학교에 제안했다. 농사를 다른 자립교과와 같이 기초와 심화 과정으로 나누고 기초는 학교의 철학 상 필수로 지정되어야 한다면 심화는 아이들에게 선택할 수 있게 했다.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부담되는 수업에서 자신의 의지가 반영되는 것으로 선택의 폭을 늘린 것이다.

 

사실 아이들에게 농사는 재미없는 과목이다. 몸을 써야하고 옷이 더러워진다. 재미없는 과목을 재미있게 할 능력도 요량도 내게는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공언했다. 그제야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농사는 수업이라는 틀 속에서 말로, 이야기로, 글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다. 흙을 만져야하니 옷이 더러워지고, 신발 밑창엔 늘 흙이 엉겨 붙는다. 남들이 보기에 투박하고 지저분하게 보이는, 아이들 말로 소위 ‘간지’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타인의 시선은 지옥이지만 그 지옥이란 것 역시 내가 만든 환영일지 모른다.

 

농사 수업의 심화과정을 선택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제안은 했지만 반신반의 했다. 다른 과목과 달리 1년을 수강해야 하고 멋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을 누가 선택할까? 오히려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더 확보했다고 자위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예상했던 대로 첫해 농사심화를 선택한 학생 수는 적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노작으로 흥겹고 풍요롭게 채워졌다. 내가 말하는 시간을 줄이고,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더 늘렸다. 고무적인 것은 해가 갈수록 농사 심화를 선택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안정적이 되어간다는 사실이다(물론 여전히 그 수는 많지 않다). 이유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더불어 다른 친구들에게도 미묘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발적인 손모내기, 벼베기 행사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식당에서 소비되는 학교 생산물에 관심을 기울이고,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분들에게 고마움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지저분하고 무섭다며 잘 가지 않던 생태화장실 사용이 잦아졌고 거름의 양이 늘어갔다. 자급, 자치, 자립과 연대에 대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타인에게는 근사한 언어와 논리로 무장된 달변이 오히려 호소력을 지니지 못할 때가 많다. 달변은 달변일 뿐 범접하기 어렵고, 거부감을 갖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호소력을 갖는 것은 말이 아닌 행위이자 행동이다. 더욱이 농사란 입으로 짓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거친 바람을 맞고, 흙을 밟고, 햇볕에 몸을 그을리며 땀을 쏟아내는 것이 농사가 아닌가? 아이들에게 농사에 대한 인식과 행동을 변하게 한 요인은 나의 말이 아닌 나의 행위였을 것이다. 에너지를 조금은 적게 사용하려는 고민, 투박하고 거칠지만 늘 일을 하고 그 일에서 즐거움을 갖는 모습, 밭에서 흥겹게 바람과 햇빛과 흙을, 그리고 작물을 만나는 모습,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려는 모습, 아마도 아이들은 그런 행동을 보고 배움을 좇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난 늘 부끄럽기만 하다. 행동보다는 말을 앞세우는 것은 아닌지, 나 역시 확신하지 못하는 것을 확신시키려는 것은 아닌지, 흙 앞에서 자연 앞에서 거만한 모습으로 다가서려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 부끄러운 마음들이 지금의 나를 이곳에 아직 붙잡아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연단하고, 조금 더 반성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농사 교육은 필요하다. 경쟁만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상생과 화해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 분절되고 파편화된 개인을 중시하는 분위기에서 다른 이를 배려하고 이해하며 공동체의 이념을 되살리는 데 농사 교육은 필요하다. 머리로만 자연(사물)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손으로 대면하고 느끼고 받아들이기 위해, 자연을 수탈의 대상이 아닌 만물의 근원이자 우리 역시 그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농사 교육은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말과 글이 아닌 몸으로 손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삶 속에서 생활이 되어야 한다. 버겁고 힘겨운 ‘살이’가 아닌 즐거운 ‘놀이’여야 한다. 아침 해를 기다리며 밭으로 나갈 채비에 설렘으로 충만한 아이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제서야 농사는 절실하게 필요한 하나의 배움이 될 수 있다.

 

 

 

글을 쓴 최성훈 님은 8년 전 도시를 떠나 풀무환경농업전문과정에서 농사를 배우고, 지금은 제천 간디학교에서 농사 수업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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