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호 2016년 7월호 살림,살림

[ 독자의 글 ]

텃밭 삼매

글 이은송

살 만큼 살았다고 할 수 있는 적당히 나이 먹은 내가 이제 와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가끔 떠올린다고 하면 누군가는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살면 살수록 나는 도대체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겠으니 큰일이지 싶다. 젊을 적에는 ‘살아야 하니까’ 돈도 열심히 벌고 최선을 다해 아이를 양육했다. 그런데 흥청망청하며 풍족한 시대를 누리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요즘은 굶주리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왜 빈곤해지는 걸까? 왜 영혼은 황폐해져 버린 걸까? 내가 잃어버린 것, 잃어버리고 있는 것 그리고 결코 잃어서는 안 되는 것에 대한 반성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옳을까?
나는 식물과 교감하는 것으로부터 반성을 시작했다. ‘내 일상을 어떻게 회복할까?’라는 질문에 골몰해 있을 때, 한살림과 전북 전주 완산구청에서 함께 주관하여 도시텃밭을 가꿀 사람을 모집한다는 문자를 받고 바로 신청하여 텃밭 농사를 시작하게 됐다.
처음 본 텃밭의 모습은 그냥 쓰레기 더미였다. 원룸과 아파트 사이에 버려진 땅이 황폐해진 우리 삶의 일면을 보는 듯했다. 한두 명은 심란했는지 농사를 포기하기도 했다. 며칠 뒤 분할받은 땅을 봤다. 끄트머리에 그늘지고 물기 있는 땅이었다. 그러나 사다리 타기로 순서를 정해 받았으니 군말할 것 없이 고마웠다. 나는 당장 삽, 호미, 괭이와 햇빛을 많이 가리는 큰 모자, 물을 옮길 파란색 양동이도 구입했다. 고랑을 파니 붉은 흙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미로 흙을 다듬어 씨를 뿌릴 채비를 갖추었다. 며칠 동안 햇볕에 흙이 고슬고슬해졌다. 드디어 시작. 상추를 기본으로 조금 심고 내가 좋아하는 풋고추도 심었다. 그리고 깻잎, 가지, 호박 등… 다른 텃밭을 보며 배워 갔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내가 서울로 자주 다니는 편인데, 뜨거운 여름에 서울에 있노라면 텃밭 식물들이 말라죽어 가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혔다. 내가 있으면 양동이에 물을 담아 가서 식물에 나누어 줄 텐데. 그래서 서울에서 돌아와 제일 먼저 텃밭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식물들이 아무 일 없이 잘 자라고 있었다. 지치지 않고 올곧게 자라고 있는 식물들이 대견하고 신기하여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별빛 환한 밤, 난 비밀을 알았다. 더위에 지친 식물들이 어둠 속에서 더위를 식히고 목을 축이는 것이었다. 어둠이 주는 시원함을 온몸 가득 채워 이슬까지 촉촉이 맺히게 했다. 이 자연의 위대함을 뭐라 말할까? 이 모습을 보고 내 안도 식물 같은 부드러움으로 천천히 회복되었다. 이름하여 ‘텃밭 삼매’를 경험했다. 텃밭을 통해, 식물과의 교감을 통해 새로움을 얻었으니 그저 한량없이 고맙다.

 

 

↘ 이은송 독자는 시인으로, 전북 전주에서 인문고전학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집 《붉은 매듭을 풀며 울다》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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