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호 2016년 6월호 살림,살림

[ 땅땅거리며 살다-충북 단양 별방공동체에서 마늘·양파 농사짓는 권금숙 씨 ]

“가던 대로 쭉 갈 거야”

글 이선미 편집부 _ 사진 류관희

 

 

 

“나 항상 행복해요. 그렇게 살아야지 어떡해. 한살림 농사짓는 사람들 만날 때 제일 좋아. 서울, 대전, 청주에서 모여 안 보던 얼굴 보고, 서로 ‘농사 잘됐냐? 어떻게 하면 되냐?’ 주거니 받거니 할 때 좋지. 한살림은 언제나 다 한 가족이라. 오랜만에 봐도 다 ‘형님, 아우’ 하며 반가워라 하고 다들 잘해요.”

 

 

“육쪽마늘 아니어도 좋은 거라우”
5월 한낮 기온이 30℃를 넘는다니. 때 이른 불볕더위에 땀을 흘리며 충북 단양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지나 구불구불 국도로 꽤 달리다 보니 어느새 단양 영춘면에 들어섰다. 권금숙 씨가 사는 곳이다.
권금숙 씨는 남편 이성기 씨와 함께 약 2만 1천500㎡ 정도의 땅에 마늘, 양파, 콩, 수수, 고추 등을 짓는다. 마늘과 양파를 짓고 난 뒤 뒷그루로 잡곡 농사를 한다. “여기는 주로 그런 거 많이 해. 기후적으로 비닐하우스 재배가 힘들기도 하고.” 요즘 한창 크는 게 마늘과 양파인데, 올해 병이 많이 들어 걱정이다. 수확물은 다 한살림에 낸다.
지금은 마늘종을 수확한다. 뙤약볕에 하루 종일 허지금은 마늘종을 수확한다. 뙤약볕에 하루 종일 허리를 숙이고 해야 하는 일이라 다들 기피한다고. “허리 아프다고 안 해. 사람을 살래도 살 수가 없어. 뽑는 대로 뽑고 마는 거지.” 마늘 캐는 건 기계로 할 수 있지만 마늘종은 다 손으로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마늘종을 뽑고 열흘쯤 마늘이 굵어질 시간을 두고 마늘을 캔다. “올해는 날이 더워서 지난해보다 마늘 캐는 게 열흘 정도 빠를 거예요. 보통 마늘종을 5월 말에서 6월 초에 뽑는데 그것부터 빨라졌거든.”

 

 

(왼쪽)권금숙 씨는 유기농사를 지을 때마다 “이만큼이라도 작물들이 살아 있는 게 감사하다”고 생각한단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더니 “신앙의 힘”이 아닌가 싶다고. (오른쪽)동그라미 친 부분이 마늘의 주아. 일반 마늘을 심는 것보다 이 부분을 심어서 받은 통마늘을 심으면 병충해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여기서 짓는 마늘은 한지형 마늘. 마늘은 크게 난지형 마늘과 한지형 마늘로 나뉘는데 남부 지방에서 주로 나는 난지형 마늘은 장아찌를 담그거나 생으로 먹는 데 좋고, 단양, 경북 의성 등에서 나는 한지형 마늘은 김장용으로 주로 쓴다. 특히 단양 마늘은 맛과 향이 좋아 예로부터 유명했다고. 이곳 단양 영춘면 일대는 석회암 지대로 산성 토양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어, 산성이 강하면 잘 자라지 않는 마늘 농사에 적합하단다. 대부분 밭에서 짓는 밭마늘인데, 알은 작아도 매운맛이 강하고 단단해 저장성이 좋다.
마늘은 주아 재배를 해서 병에 조금이라도 더 강하게 한다. 주아란 마늘종에 매달린 동그란 부분으로, 땅에서 떨어져 있는 주아가 땅속 마늘에 비해 바이러스 감염률이 현저히 낮다. 그래서 일반 마늘 종자를 심는 것보다 더 튼튼하다. 그런데 주아 재배를 하면 마늘 쪽수가 좀 더 많다고. “육쪽마늘이 아니라고 조합원들이 좋아하지 않는대. 이런 점을 잘 이해해 주면 좋겠는데.”
여기 마늘은 저장해 놨다가 11월경 김장용으로 나간다. 그래서 6월에 수확해 잘 말려 8월 초에 꼭지를 자르고, 망에 넣는 작업을 한 뒤 저장고에 넣는다. 마늘은 저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저장 온도도 영하 1℃에서 2℃로 조금씩 낮춰야 한다. “초창기에 한살림에서 마늘을 수매해서 저장했는데, 만져 보니까 마늘 알맹이를 다 스펀지처럼 만들어 놨더라고. 저장고를 사용할 줄 몰라서 그랬던 거지. 마늘은 습기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해.” 저장고도 없을 때에는 사무실 밑 시멘트 바닥 창고에 마늘을 쌓아 놨다고 하니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양반이다.
마늘에 비하면 양파 농사는 훨씬 쉽다는 게 권금숙 씨의 말. “마늘은 심고 캐고 말리고 작업하는 데 손이 가. 하지만 양파는 망에 넣고 무거운 거 드는 일 빼고는 손이 안 가. 캐서 담기만 하면 되거든. 그런데 나이 든 사람들은 무거운 걸 못 드니까 젊은 사람들이 양파를 많이 해.”

 

 

권금숙 씨의 나이를 듣고 놀랐다. 50대 후반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 이성기 씨는 “내가 얼마나 잘해 줬으면 그렇게 보였겠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지는 부부만의 비밀로 남겨 두는 걸로.

 

 

약 안 친 지 30년
스무 살에 결혼해 올해 예순일곱. 결혼해서부터 농사를 지었으니 농사지은 지 50년 가까이 되는 ‘베테랑 농부’이다. 처음엔 관행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남편이 워낙에 농약 치는 걸 싫어해서 “남들 서너 번 칠 때 한 번밖에 안 칠 정도”였단다.
그러던 중 1988년 부부가 다니던 교회에서 한살림생산자협의회 초대회장이었던 김영원 장로를 초빙해 이야기를 들으면서 유기농을 처음 알게 됐다. “그때 다 바꿨어. 우리는 원래 약을 많이 안 쳤으니까 쉬웠지.” 이때를 계기로 생겨난 게 별방공동체. 처음에는 신자들로만 이뤄졌다가 최근에는 생산자를 늘리기 위해 신자가 아닌 사람도 가입할 수 있게 됐다고. 양계하는 회원을 제외하고 총 11가구가 함께하며, 부모에 이어 농사짓는 젊은 생산자도 여럿 있다. “젊은 사람들이 농사 잘 지어요. 요즘 어디에서 연봉을 1억씩 해요? 젊은 사람들은 억대로 지으니까 성공한 거지.” 그러나 이 성공에는 부모가 물려준 땅과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처음 오는 사람은 힘들어. 아무것도 없이 그 정도 하려면 10억 이상 가져야 해. 장비만 얼마야? 트랙터만 5~6천만 원인데, 힘들고 말고지.” 흙으로 사는 농촌에서도 ‘흙수저’는 힘들다.

 

 

(위)수확을 앞두고 양파밭의 풀을 잡는 것도 부부가 요즘 하는 일. 오랫동안 한 농사일에 몸이 예전 같지 않다. “67년 동안을 쓰는 기계 있어요? 없잖아. 이 정도 살았으니까 아플 때도 됐지.” 이성기 씨의 말이다. (왼쪽)저장고에 저장하던 지난해 마늘. 단단한 성질 덕에 여전히 생생하다. (오른쪽)올해 지은 마늘과 양파. 병이 많이 들어 여간 걱정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수확해 봐야 상태를 알겠지만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권금숙 씨는 유기농사로 바꾸고 다소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전에 더 어려운 시절을 견뎠기에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약을 안 쳐도 마늘이 강했어요. 관행 하던 사람들이 3년만 고비를 넘기면 괜찮았다고. 대신 밭에 퇴비를 많이 넣었지. 전에는 소 키우면서 퇴비를 만들어 썼는데 지금은 흙살림에서 나오는 걸 써요. 그걸 넣으면 땅이 참 부드러워져.”
무엇보다 농약 칠 일이 없어서 좋다. “약 안 친 지 30년 되니까 약 친 데를 지나가기만 해도 약이 혓바닥으로 들어오는 듯 대번에 느껴지지. 지나가기만 해도 제초제 냄새가 확 나요. 멀리서 약 치는 것만 봐도 들어와.” 권금숙 씨는 “약 치는 데 면역이 안 되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가끔 병이 크게 돌 때면 농약을 쳐서 병이 없어지는 게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한 게 아까워 그런 생각은 얼른 접는다. “우리가 농사 못 짓게 되면 우리 땅을 남 주는 것도 걱정이에요. 땅을 다 살려 놨는데, 다시 관행농사하면 안 되잖아.” 다행히 이 주변에는 친환경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고, 관행농사를 지어도 친환경 농사짓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잘 배려해 준다고.
남편 이성기 씨는 한살림 생산자라면 농사짓는 땅을 모두 유기농지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생산자가 해야 하는 ‘자기 관리’인 셈이다. “우리도 처음에는 친환경 농사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무농약, 전환기를 거쳐 유기농 인증을 받았지.” 권금숙 씨도 말을 덧붙였다. “모든 농지가 유기농지면 불필요한 오해도 안 받고 제일 편해. 다른 사람들 인정도 받고.”

 

 

부부의 마늘밭 전경. “우리 땅은 토질이 괜찮은 편이에요. 근방에서는 다들 괜찮다고 그래요.” 이곳에서 한창 마늘종 끝이 휘어지고 있다. 마늘종은 1년 중 딱 이맘때만 나는 그야말로 제철 음식. 생으로 먹어도 좋고 데쳐서 고추장에 무쳐 먹어도, 볶아 먹어도 그만이란다.

 

 

“오늘 하다가 못 하면 내일 해야지”
한살림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연수를 다니며 많이 배웠다. “옛날엔 청주나 충남 아산 등을 돌아다니면서 연수를 많이 했어. 전국 각처에서 모인 생산자들이 각자 농사짓는 방법을 교류하고. 그때는 농사짓는 게 정말 짓는 것 같고 좋았어. 지금은 한살림이 커지면서 권역별로 모이니까 멀리 있는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 권금숙 씨는 “그때가 좋았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적은 수의 생산자와 조합원이 똘똘 뭉쳐 어려움을 함께 이기던 때,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던 때를 말하는 듯했다. 사람을 신바람 나게 하는 건 결국 사람. 규모가 커지면서 좋아진 게 많지만 아쉬운 점도 생겼다. 이러한 아쉬움이 다음 세대가 풀어 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한살림이 성장했다는 건 생산자도 늘었다는 것. 생산자가 늘면서 기존의 약정량을 나누어 왔기에 수확량에는 큰 변화가 없다. “서로서로 더불어 사는 거죠. 젊은 사람들 자꾸 끌어들이고.” 이성기 씨는 각자 약정한 만큼만 농사지으면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이다. “자기가 ‘어느 정도 지으면 어느 정도 나오겠다’ 알 수 있거든. 그 외에 더 많이 하니까 처분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겨요.”
권금숙 씨는 몇 년간 공동체 여성대표를 맡아 하다 지금은 내려놨다. “젊은 사람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젊은 사람도 한살림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산자와 소비자가 어떤 관계가 되어야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요즘 아쉬운 일은 풍물을 배우지 못하는 것. “풍물 갖다 놓고도 못 하고 있어. 저녁에 모여서 하면 되는데 잘 안 되네. 하면 참 재밌을 텐데.”
이제 농사에는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렀을 터. 농사를 잘 짓는 권금숙 씨만의 요령이 있는지 물었다. “방법이랄 게 있겠어요? 밭에 병이 나는 건 막을 수가 없어요. 풀 열심히 치고. 그거를 가지고 신경 쓰고 짜증 부리고 하면 일 못 해요. 오늘 하다가 못 하면 내일 해야지. ‘저 집 건 저런데 우리 집 건 왜 이래?’ 이러면 못 지어요.” 30년 동안 농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늘 하던 대로 풀을 잡고,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되면 안되는 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권금숙 씨는 “농사가 천직”이라고 말했다. “한살림하고는 좋아. 재밌어. 생명도 살리고 농업도 살리고 먹을거리도 맘 놓고 먹을 수 있지. 애들도 다 갖다 먹을 수 있고, 자부심을 느끼죠.” “내 농사 안 지으면 먹을 게 없다”는 그는 묵묵히 농사를 이어 갈 것이다. “나이가 드니까 더 쉬운 것 같아. 내가 해 보니 그래. 저기서 이만큼까지 풀을 뽑아도 늘 하던 그 시간 안에 되더라고. 우리는 가던 대로 쭉 갈 거야.”

 

 

권금숙 씨가 마늘 한 망을 가져가라고 주면서, 집에서 까면 번거로우니 같이 까 주겠다고 했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마늘을 심고, 기르고, 다듬었을지. 참 귀한 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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