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호 2016년 6월호 살림,살림

[ 안녕하세요-《요리 활동》을 낸 공룡공동체의 박영길 씨 ]

밥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서

글 구현지 편집부 _ 사진 김설해

충북 청주의 생활교육공동체 ‘공룡’ 사람들은 요리를 참 잘한다. 협동조합이나 사회단체의 일일주점 같은 행사에서 부엌을 맡아 주고, 고통당하는 이들의 집회 현장에 연대하러 올 때 음식을 해 오곤 한다. 그러니 공룡의 대표 주방장 박영길 씨가 《요리 활동》(2016)이란 책을 냈다는 소식에 ‘올 것이 왔구나’ 할밖에.

 

 

같이 밥 먹고 같이 싸우고
박영길 씨를 만나러 간 청주 사직동의 마을카페 ‘이따’는 공룡의 아지트다. 카페 겸 식당이자 책방이며 도서관이기도 하다. 박영길 씨는 이따의 매니저인 민에스더 씨와 함께 땅콩소스와 연겨자로 맛을 낸 냉라면을 만들어 주었다. 이따에서는 직접 커피콩을 볶고 햄과 맥주도 만든다. 공룡은 어머니 한글학교와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공동체로, ‘공부해서 용 되자’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 7년 전에 박영길 씨를 비롯해 네 명이 시작하여 지금은 여덟 명이 함께한다.
“공룡 전에 한 6년 동안 지역아동센터에서 미디어교육을 했는데,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이 참 잘 자랐어요. 사회적으로 성실하고 착한 아이들이 되었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사회에 순응하는 착한 어른을 키워 내는 게 ‘공동체교육’인가 하는 고민이 생겼어요. 그래서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교육을 해 보자 하고 공룡을 만들었지요.”
공룡은 교육팀과 농사팀으로 이루어지는데, 교육팀에서는 미디어·인문·철학·음악 등의 교육사업을 하고, 농사팀에서는 농사를 짓고 카페를 운영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일’ 자체가 목표라기보다는 활동가들이 지역공동체를 위해 각자 자기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서로 돕는다는 게 특징. 자전거포를 해 보고 싶으면 그걸 하고 또 마음이 바뀌어 지역의 먹을거리를 이용해 햄을 만들고 싶어지면 그 일을 벌인다. 마을카페를 꾸릴 때도 각자 좋아하는 일을 공간에 담았다. 박영길 씨는 음식 만드는 일과 책방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카페 한쪽에 땡땡책협동조합을 통해 ‘야매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 같은 대도시와 달리 지역에서 공동체운동을 하는 데에는 ‘일상’이 중요해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공동체라면 식·의·주 가운데 하나 만큼은 같이했으면 싶었어요. 그중 밥을 함께 먹는 게 가장 쉽고 제가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고, 하루 한 끼는 같이 먹어요. 그러다 보니 일상적인 ‘음식’을 통해 다른 이들과 연대도 하게 되고.”
같이 밥을 해 먹다 보니, 요리를 잘 못하던 이들도 이제 평소 밥상은 물론 손님이 왔을 때 별미 한두 가지는 뚝딱 차려 대접하는 정도가 되었다.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 활동에 연대할 때 영상을 찍거나 기자회견을 같이하는 일 외에 무언가 좀 더 공룡답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음식을 만들어 가고는 한다. 요즈음 다른 단체 활동가들은 공룡 하면 ‘솜씨 좋은 요리사들’을 함께 떠올린다.
그러나 시위 현장은 예상치 못한 일투성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때 부산 영도조선소에서 고공 크레인 농성을 하던 김진숙 씨를 찾아간 ‘2차 희망버스’에 공룡들은 묵밥 60인분에 연잎밥 50인분을 짓고 현장에서 부쳐 먹으면 따끈하고 좋겠다고 부침개 재료까지 싸 들고 갔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행진이 시작되고 곧 경찰과 대치하면서 몸싸움이 일어나 밥때를 놓쳤다. 결국은 처음 집결지에서 오순도순 먹으리란 예상과 달리 새벽녘에야 조선소 출입을 못 하게 막아 놓은 경찰차 벽 앞 8차선 도로에서 밥을 풀고 부침개를 부쳐 먹었다. 그날의 늦은 밥은 희망버스 시위대의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보듬었다.

 

 

《요리 활동》을 쓴 박영길 씨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해 먹기를 좋아한다. 한때 포장마차를 하고 싶어 부산의 어묵 제조업체에서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부모님께 배운 요리, 이제는 내 식대로
요리 좋아하는 박영길 씨가 《요리 활동》의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오랜 세월 ‘식당 찬모’로 생계를 꾸렸던 어머니와 정육점을 하며 마을잔치 때마다 돼지고기 두루치기 50~60인분씩을 기가 막히게 차려 내던 아버지가 박영길 씨 요리의 뿌리다. “부모님이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요리를 통해 가족 이야기를 정리해 봐야겠다”고 혼자 쭉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중 한 편을 땡땡책협동조합 소식지에 기고했는데 조합원인 포도밭출판사의 최진규 대표가 보고 책으로 내자고 권했다. 그러면서 공룡 안팎의 사람들을 위한 음식 이야기를 더하게 되었다.
가족과 함께한 음식 추억이라고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아버지가 정육점을 하셔서만이 아니라 류씨 집성촌인 우리 동네에 타성받이가 우리 집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아버지는 타성받이로서 차별받지 않으려고 굳이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언제나 앞장서서 도맡곤 했던 것 같다.”(《요리 활동》 27쪽, ‘돼지고기 두루치기’) 부모님이 모두 음식 솜씨가 좋고 입맛이 각각이라 종종 맛의 충돌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아버지를 챙길 때는 맑게, 어머니를 챙길 때는 김치를 넣는 식으로 눈치껏 요리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나도 이제 나이를 먹고 그런 것까지 신경 쓰기가 싫어져서 내 식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같은 책 65쪽, ‘콩나물국’)
“밥을 해 먹는 일 같은 일상이 제게 소중한 이유는 그걸 통해 사회와 연결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공동체나 협동조합을 하는 건 우리끼리 잘 먹고 잘사는 게 중요해서는 아니지 않아요? 마을에 갇히지 않고 사회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데, 하루하루의 작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고 그런 공간들에서부터 사람들과 서로 연대하여 새로운 걸 만들어 가고 싶은 거예요.”
박영길 씨는 앞으로 마을금고 같은 대안금융운동도 해 보려 한다. 서울 해방촌의 주거공동체 ‘빈집’ 친구들과 오가면서 공동체은행 ‘빙고’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년 공룡의 과수원에서 사과를 딸 때쯤에는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 《건축 활동》이란 책을 내고 싶다. 지역아동센터 일을 할 때 아이들과 문화재 답사를 다니면서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차곡차곡 모아 놓은 이야기들을 정리해 볼 작정이다.
어쨌든 박영길 씨가 하고 싶은 일은 우리 사회를 좀 더 ‘사람’이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룡 활동가 하나하나를 위해 치유와 위로의 레시피를 만든 것처럼 말이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곤 해요. 조직이나 사업이 성장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그런 활동을 하면서 나 스스로 너무 힘들어서 불행하거나 성장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에요.” 날씨가 더워지니 그는 예전에는 별로 안 좋아하던 냉채요리 개발에도 열심이다. ‘또 놀러 와, 맛있는 거 같이 해 먹자’는 아이 같은 인사가 빈말이 아닌 공룡 사람들. 그래, 밥심으로 같이 잘 살자.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