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호 2016년 6월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백남기 농민의 회복을 기원하는 생명과 평화의 밀밭 걷기 ]

일어나셔요, 올해도 씨를 뿌리셔야죠!

글 _ 사진 권말선

지난해 11월 13일, 백남기 농민은 밀밭에 밀씨를 뿌리고 다음 날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에 참석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었다. 백남기 농민은 밀이 익어 가는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 지난 5월 14일 전남 보성 웅치면의 백남기 농민 자택과 밀밭 일대에서 ‘일어나요 백남기 님! 함께 가요 밀밭으로!’를 주제로 <생명과 평화의 밀밭 걷기> 행사가 열렸다.

 

 

 

6개월이 지나도록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조금 이른 시각, 전남 보성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드문드문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골목에서 펄럭이는 현수막을 보며 마을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차며 한마디한다. “에이구, 우리밀이라며 날더러도 심으라고 하더니 6개월이 지나도록 집에를 못 오구….”
사진으로 몇 번 보아 익숙한 백남기 농민의 집에 도착했다. 입구에서는 백남기대책위에서 준비한 노란 리본과 배지, 스티커 들이 손님을 맞이했다. 마당에서는 테이블을 펼치고 음식과 막걸리를 내오며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마당에 올망졸망 핀 분홍 낮달맞이꽃과 삐죽 솟아오른 죽순, 줄 맞춰 늘어선 장독, 꽃이 막 떨어진 듯한 감나무 어린 열매 들도 일제히 손님을 반기는 듯했다.
서울과 광주에서 ‘밀밭버스’를 타고 행사에 참석하려는 사람들이 도착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밀밭버스를 타고 온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버스 안의 풍경을 들려주었다.
“밀밭버스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탔어요. 저 같은 다큐 감독, 주부, 시민단체 활동가 등 함께 타고 왔지요. 그런데 하는 이야기들은 다 같았어요. 사람이 물대포에 맞아서 쓰러졌고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왜 6개월이나 지나도록 아무도 사과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지, 이래도 되는지 너무 속상하다고요. 기적처럼 나으셔서 다음엔 병상이 아닌 밀밭에서 어르신을 만나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한 아주머니는 백남기 님 부인의 친구인데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잘 견디고 있는 친구를 격려하고 싶어 간다고 했어요. 그때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모두 마당에 모여 점심을 푸지게 먹었다. 막걸리에 흑돼지고기, 우리밀 국수에 딸기. 떡이랑 갓김치랑 된장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입이 까다롭다는 초등학생 아이도 냠냠 맛있게 잘 먹는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정성껏 마련한 갖가지 음식들을 배불리 먹고, 드디어 풍물패를 앞세우고 머릿속으로 그려 보기만 했던 푸름이 넘실거리는 밀밭을 향해 골목길을 나섰다. 국가 폭력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백남기 농민의 회복을 기원하며 걸었던 지난 2월의 도보순례를 떠올리게 하는 짧으나마 의미 있는 행진이었다.

 

 

 

(왼쪽)밀밭걷기를 마치고 보성역에서 <생명과 평화의 밀밭문화제>를 열었다. (오른쪽)밀밭으로 나가기 전, 백남기 농민의 집 마당에서 마을 주민들이 함께 준비한 푸짐한 점심을 나누었다. 주민들은 우리밀에 대한 백남기 농민의 애틋한 마음을 들려주었다. 

 

 

저희끼리 겨울을 난 밀밭의 생명들
얕은 산 아래 밀밭이 있었다. 밀은 가을에 씨를 뿌리면 싹이 올라온 채로 겨울을 난다고 한다. 아마도 이 밭의 어린 밀싹들은 지난겨울이 훨씬 더 추웠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추운 겨울을 돌보아 줄 주인도 없이 저희끼리 보냈을 테니까. 그럼에도 꿋꿋이 자라 벌써 누르스름한 빛을 조금씩 띠고 있었다. 우리밀을 소중히 가꾼 백남기 농민이 있었기에 이렇게 드넓은 밀밭을 볼 수 있는 것이고 해마다 애지중지 가꾸어 주던 주인의 손길을 기억하기에 밀들은 한겨울도 버티며 자란 것이리라. 그 단단한 생명의 기운을 받아 백남기 농민도 저 무거운 병상을 털고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밀밭가에 모인 사람들이 백남기 농민을 기다리는 작은 집회를 가졌다. 시인은 시를 낭송하고 마을 주민은 백남기 농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고 둘째 딸 백민주화 씨는 마이크를 잡고 또 울먹거렸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맛있는 음식 먹고 막걸리 한잔 마시고 하는 걸 좋아하시는 아버지, 오늘이 아버지의 퇴원일이어서 사람들이 축하하기 위해 모인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얘기하는 바람에 눈물이 확 차올랐다.
밀밭을 따라 길게 매어 둔 줄에 염원을 담은 노란 리본들을 걸어 놓고 <생명과 평화의 밀밭문화제>를 위해 보성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백남기 농민과의 인연으로 문화제에 참가했다는 타악그룹 ‘하늘땅’의 공연, 백남기 농민의 사건을 접하고 뭐라도 하고 싶어 ‘밥과 당신’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는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국가권력을 이용해 국민에게 함부로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고 공감하며,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고 합당한 처벌을 받으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 지난해 민중총궐기에서 백남기 농민과 함께 농민들이 외쳤던, 밥쌀 수입을 반대하고 쌀 가격을 보장하라는 절박한 요구를 정부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밀밭 걷기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아버지의 쾌유를 염원하는 발언을 했던 백민주화 씨는 문화제에서는 20대 국회를 향해 구체적인 행동을 주문했다. 야당의 대표들이 이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겠다던 약속을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가족들과 대책위 그리고 함께하는 시민들 역시 ‘백남기법’ 제정을 통해서, 청문회 개최를 통해서 그리고 헌법소원을 통해서, 검찰 조사를 통해서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당선을 위한,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보여 주기식 약속 정도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농민들은 백남기 농민의 꺼져 가는 생명을 하루하루 지켜보며 ‘내가 바로 백남기다’라는 심정으로, 병상에 누운 백남기 농민의 모습을 현재 한국의 농업 실정이라 여기며 이대로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밀이 누렇게 익고 수확을 하고 또다시 가을이 오면 백남기 농민은 얕은 산 아래 밀밭에 올해도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온다면 다시 보성의 밀밭으로 달려가 나도 한 움큼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이 몰려와 춤을 추며 밀밭을 뛰어다닐 것이다. 그런 날이 꼭 오면 좋겠다, 꼭!

 

 

국가 폭력에 의해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운 주인 없이 겨울을 보낸 밀싹들이 어느새 쑥쑥 자라 노릇하게 익어 가며 들녘을 채우고 있다.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 청원 서명
백남기대책위 페이스북
www.facebook.com/baeknamki1114

 

 

↘ 권말선 님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에서 일하며 지난 2월 11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었던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국가 폭력 고발’ 보성-서울 도보순례단에 참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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