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특집] 살리는 사람, 농부

[ 農婦 & 農夫 | 귀농 11년차 부부 장영란 · 김광화 ]

따로 또 같이에서 함께 또 같이

글 農婦 장영란

 

지난 해 보관했던 씨감자 상자를 마루로 옮겨놓았다. ‘저 속에 든 씨감자 상태가 어떨까?’ 조마조마하다. 이럴 때 남편이 큰 원군이다. 둘이 함께 상자를 열고 그 속에 씨감자를 보니 싹이 너무 많이 자라 씨로 마땅치 않은 것이 반이지만, 나머지는 그런대로 보관이 잘 된 편이다. 별다른 저장시설이 없는 우리에게 씨감자가 이만큼 보관된 것은 처음이다. 아마도 이 씨감자가 토종감자라 그런 것이겠지 싶으니, 씨감자를 만지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내가 씨감자를 따로 고르는 사이, 남편이 감자 심을 밭에 재를 뿌리러 다녀왔다. 꽃샘바람을 뚫고. 이렇게 둘이서 척척 손발이 맞으니 일이 생각보다 금방 끝날 때가 많다.


하지만 첫 농사를 지을 때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우리가 1996년 서울을 떠날 때는 한마디로 막막했다. 산골에 논밭을 마련한 것이 1998년, 공기와 물이 맑아 농약 치지 않고 농사짓기 좋을지는 몰라도 서툰 실력에 다랑이논은 너무 어려운 조건이었다. 게다가 나는 남편이 원해서, 마지못해 따라나섰으니 작은 일도 힘겹게 느껴졌다. 남편은 더욱 농사일에 매달렸다. 뭔가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내가 도망갈 판이니까 말이다. 사람이 악으로 깡으로 사니 부부 사이는 팍팍할 수밖에. 그러지 않아도 모난 인간 둘이 하루 24시간 붙어 지내려면 거기서 생기는 일만해도 벅찬데, 나는 남편한데 이렇게 함께 살아주는 것이 어디냐고 유세를 떨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싸웠는지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리라.   


그러던 겨울 뒤끝이었다. 하도 답답해 집을 나왔는데 갈 데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간 곳이 귀농 선배네. 그이는 나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자연과 친구 되세요.” 자연과 친구가 된다는 게 무얼까? 그 후 열심히 들로 산으로 다녔다. 고추밭에 가서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추 꽃도 보고, 아기 고추도 보고, 거기 꼬이는 벌레와 바닥에 난 풀도 보았다. 봄에는 산나물을 찾아 산을 헤매고 가을이면 오미자를 찾아다녔다. 어느 날인가는 처녀 혼자서 귀농한 이 집에 놀러갔다. 그이가 살고 있는 집은 마당이 넓은 마을 빈집. 한바퀴 둘러보니 아래채 처마 밑에는 내 손목 굵기의 나무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이가 해다 놓은 땔감이었다. 그 서글픈 땔감마저 내 눈엔 넉넉해 보이지 않건만, 그이는 너무 행복해 했다. 우리 집에 남편이 해 놓은 장작이 쌓여있는데도 나는 늘 고팠는데……. 남편이 없이 나 혼자서도 이 산골에서 과연 살 수 있을까?


그때부터 여기 사는 것은 내 선택이고 내 일이 되었다. 전에는 남편 일을 거들기만 하던 논농사였지만 가장 작은 다랑이논 하나를 손수 맡아보고, 밭농사도 더욱 열심히 했다. 나 혼자 힘으로 자립한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내가 주인이 되니 남편과 나 사이에 일이 자연스레 나뉘었다. 채소마다 토종 씨앗을 구해 모종을 기르고 심어 가꾸는 것은 내가 좋아하고, 논에 가서 힘 써 일하는 것은 남편이 좋아하니 서로의 일을 존중하고 격려하면, 우리 식구 먹을거리가 골고루 자랐다. 


‘십년이면 강산이 바뀐다’더니 우리가 여기 올 때하고는 말 그대로 강산이 바뀌었다. 우리네 농사도 처음에는 해야만 하는 목표였다면, 지금은 안 하면 허전하고 근질거려서 안 할 수 없는 농사. 책보고 따라하는 농사에서 우리 형편에 맞는 농사로 바뀌었다. 처음에 남편이 앞장서서 열심이던 때는 솔직히 내가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면, 요즘 농사는 일을 한 듯 안 한 듯 그렇게 한다. 땅을 갈지 않으니 지난해 가을걷이를 한 밑동 사이사이에 올해 새로운 씨를 심는다. 아직 아무것도 심지 않은 밭에 헛김을 매기도 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우리는 곡식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땅을 가꾸는구나. 그렇게 하면 지난해 감자를 심었던 자리에서 감자 싹이 드문드문 난다. 감자를 새로 심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지난해 캐지 못한 감자 이삭이 살아남아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운 것이다. 하지가 지나 햇감자를 캘 때까지 우리는 그 공짜 감자를 거두어 먹는다. 그러니 감자를 많이 심지 않아도, 넉넉하게 거둘 수 있다. 또 감자 곁에는 냉이, 달래와 같은 나물이 자라고 지렁이는 이들한테 거름을 주고, 두더지는 땅 속을 깊이 갈아 빗물이 잘 빠지게 해 준다.  


땅을 무리하게 갈지 않으니 여성인 나도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내 힘만큼 할 수 있다. 내가 일하는 밭에 아이들이 돌아다녀도 위험하지 않다. 자식도 이렇게 키울 수 없을까? 아이한테서 무슨 결실을 보려고 하기보다 아이가 타고난 모습대로 살아가게 도와줄 길은 없을까? 큰애가 중학교 들어가던 해, 면에 있는 중학교를 다녀보니, 아이는 새벽에 집을 나서 어두워야 돌아온다. 아이랑 한집에 살아도 함께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아이는 학교를 그만 두고 집에 있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홈스쿨링을 하냐고 하는데, 전혀 아니다. 처음 몇 달은 내가 불안해서 아이를 붙잡고 공부한 적은 있지만, 그 뒤부터 저 알아서 자라고 있다. 가만 놔두니 아이는 한동안 잠만 잤다. 그렇게 몇 년을 늘어지게 자더니 뽀지락 뽀지락 움직이며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운다. 늘 중심은 집에 두고서 말이다. 아이 말이 집이 가장 편하고 좋단다.


서울을 떠날 때 초등학교 2학년이던 여자애가 어느 새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하는 성인으로 자랐다. 배밀이를 하던 작은애는 어느덧 여드름이 나는 총각으로 자랐다. 전에는 먹기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아구아구 먹어대더니 이제는 밥상머리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번씩 훌쩍 바깥나들이를 하고 돌아오면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새로운 것은 우리한테 가르쳐 주기도 한다. 나는 아이들 덕에 십대 이십대의 눈으로 이 세상과 만날 수 있다.


산 설고 물 선 산골에 살기 시작한 지 십일 년. 어느덧 부부가 같은 일을 하며 같은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자연에서는 암수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간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른 봄 까치 암수 한 쌍이 함께 집을 짓는 것을 보며 ‘참 보기 좋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닮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겠나. 남녀가 동등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관계가 무엇일까? 그것을 찾아가는 길위에 우리는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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