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특집] 살리는 사람, 농부

[ 만남 1 - 일소 부리는 충북 보은 백록공동체 이철희 ]

워낭소리는 끝나지 않는다

글 우미숙

 

“워~워~, 딸랑딸랑”


읍내에서 산골짜기로 한참 들어가 있는 마을. 밭에서 소를 부리며 일하는 광경이 저절로 떠오를 정도로 외진 산골이다. 차 소리, 사람 목소리도 안 들리는 이곳에 진짜 워낭소리가 울리고 있다.
소를 부리며 농사짓는 일이 신기하게만 보이는 요즘, 영화 <워낭소리>의 인기에 힘입어 소를 이용한 농사가 새롭게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소를 밥상의 먹을거리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겐 일하는 소의 이야기는 영화처럼 특이하고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충북 보은의 농부 이철희(71세) 씨는 옛 어른들이 해온 대로, 소농사를 하고 있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과 맞닿아 있는 충북 보은군 마로면 한중리. 그는 이곳에서 1991년부터 친환경유기농업을 이어오고 있는 백록공동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를 안 뿌리며 시작한 농사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으로 이어졌지만 이에 대한 그이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곳은 산 중턱까지 논이 올라와 있을 정도로 비탈진 산골이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농사짓기 어려운 환경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주변의 영향을 덜 받고 골짜기 전체를 전부 유기농으로 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마을로 한참 들어가니 흙벽돌로 지은 농촌체험관이 눈에 들어온다. 소비자들이 농촌을 체험하면서 머물 수 있는 곳으로, 지난해 겨울에 완공하여 구석구석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 옆에 외양간이 딸린 농가 한 채가 있다. 이철희 씨와 아내 강순이(66세) 여사가 소 7마리, 송아지 2마리와 함께 살고 있는 집이다.


외양간에 나란히 서 있는 암소들과 옆으로 비껴 나온 새끼들이 낯선 손님을 맞느라 “머~머~”하며 시끌시끌하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귀에 번호표도 아직 달지 못한 어린 송아지 한 마리가 한 발짝 한 발짝 다가온다. 선한 눈빛에 끌려 가까이 다가갈 즈음 새끼는 한참 눈을 마주치다가 뒷걸음질 친다. 이 모습에 어미소는 새끼가 염려스러웠는지 몸을 비틀며 “음~머”하며 신호를 보낸다. 새끼를 챙기는 어미는 유일하게 코뚜레를 단 4살배기 일소다.

 


경북 봉화가 고향인 이철희 농부도 얼마 전 영화 <워낭소리>를 보았다. 영화를 계기로 ‘소 농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에  그는 그저 싱거운 웃음을 짓는다.


“어째, 재미있었어요? 우리는 재미가 하나도 없어요. 매일 하는 일인께. 젊은 사람들은 신기할 거예요.”
요즘 우시장에는 부리는 소가 없다고 한다. 소 사육 농가에선 5~6개월 된 새끼를 내다 파는 일이 많다. 농가 수입에 그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집엔 4살배기 암소가 일을 해요. 작년 이맘 때 논밭갈이 한 후에 올해 들어 3일째 일을 하고 있어요. 길이 나지 않아 손이 조금 더 가요.”


지난 봄 이후 너무 많이 놀려 일하는 것이 서툴러서 두 사람이 붙어야 겨우 쟁기를 끌 수 있을 정도다. 그래도 그는 길을 잘 들여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부리고 싶어 한다.


“우리는 소와 기계 둘 다 써요. 평지 논에는 기계를 쓰고 산비탈에는 소 쟁기를 끌지요. 기계로 하면 소보다 낫긴 한데, 기계는 수리할 때 돈 들어가지, 기름 넣어야 하잖아요. 소규모 농사에는 소가 나아요. 소로 하면 새끼 생기죠, 축분으로 거름 나오죠, 소가 일도 하죠, 얻는 게 많아요.”
이 집의 소들은 모두 암소다. <워낭소리>에서 이삼순 여사가 암컷 송아지를 낳은 소한테 “계집애 놓고 유세네.” 하며 핀잔을 주는 장면이 있다. 사람일 같으면 딸 낳은 며느리 구박하는 시어머니 모습이다. 하지만 농가의 ‘소 관습’은 사람과 다르다. 웬만한 사육농가에서는 인공수정을 해 새끼를 낳게 한다. 그러니 암소가 큰 재산이다. 새끼 낳지, 일도 하지, 고기도 암소가 최고다. 적어도 소의 세계에 ‘남존여비’의 관습은 없다.

 

새끼 두고 일하러 가는 어미마음은 하나


매서운 찬바람이 잦아지면 한 해 농사가 서서히 시작된다. 조금 추운 듯한 3월이지만 녹기 시작한 땅을 일궈줘야 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마친 이철희 농부는 4살배기 소와 일하러 갈 채비를 한다. 코뚜레에 고삐를 끼우고 비탈진 길로 올라간다. 작년 밭갈이 이후 많이 쉬어서 그런지 일소가 제 역할을 아직 찾지 못했다. 이틀 전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으니 오죽하랴. 뭐 하러 가는지 벌써 알아챈 듯 발길을 빨리 옮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길을 벗어난다. 고삐를 잡아채며 길을 안내해주지만 자꾸 고개를 돌린다.


“새끼가 생각나서 그래요. 발길이 안 떨어지나봐요.”
몇 년간 길러온 자식 같은 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철희 씨다.
“소는 사람하고 비슷한 데가 많아요. 새끼 배는 날도 285일이에요. 사오 개월 된 송아지를 내다 팔 때가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이틀 전부터 소리 내 울기 시작해요.”

 


그럭저럭 올라가 도착한 곳은 산비탈의 감자밭. 절반 정도는 이미 갈아놓은 터라 절반만 갈면 된다고 했다. 소 등에 멍에를 얹고 쟁기를 이어 붙였다. 나무로 만든 쟁기 틀은 그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요즘엔 쇠로 만들어요. 나무로 만든 쟁기는 이것밖에 없을 거예요.”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라 그런지 꼼꼼하게 엮은 것이 튼튼해보였다. 흠을 잡자면 높이가 조금 낮다는 것. 허리를 수술한 지 1년이 지난 그에겐 조금 무리가 따를 것 같은데 길이가 긴 나무토막을 구하지 못해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마침 한동네 귀농 1년차 젊은 농부가 소몰이를 도와주었다. 이틀 전부터 겨우 몸을 풀기 시작한 소는 아직 일 감각을 찾지 못한 듯, 골대로 똑바로 나아가지 못한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사람의 도움이 당분간 필요해보였다.

 

“기계요? 기계 값도 문제지만 수리비 기름 값이 만만치 않아요. 소는 사는 날부터 퇴비 나오죠, 새끼 나오죠, 일도 하죠. 얻는 게 더 많아요.”

 


이철희 씨는 허리가 아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데, 쟁기질을 하는 모습만으로는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낮에 일할 땐 하나도 안 아파요. 밤이 되면 끙끙 앓지요.”


소가 끌어준다고 해서 쟁기 모는 일이 결코 수월한 것이 아니다. 요령과 힘이 잘 어우러져야 한다. 71세 고령의 농부에게서 젊은이가 못 따라갈 정도의 능란한 손놀림과 힘이 보였다.
“이 소가 일 한 지 얼마 안 돼 속도가 빨라요. 힘이 넘치거든요. 길이 들면 방향도 잘 잡고 천천히 가면서도 일을 잘 하게 되지요.”


<워낭소리>의 주인공 소는 일도 알아서 하고, 차도 피하고, 잠든 할아버지를 모시고 집까지 올 정도로 능숙하다. 이곳의 4살배기 소는 그에 비하면 수습 3일째 신참내기다.


“밭갈이 하고 나서 농사 중간 중간에 골을 파줘야 해요. 만일 비닐을 깔면 그런 일이 없어져 소가 일을 안 하게 되죠. 옛날보다 일하는 양이 많이 줄었어요. 길이 들려면 계속 일을 해야 하는데…….”
소는 대략 15살까지 산다고 하는데, 그는 27살배기 소도 부린 적이 있다.


“일하는 소가 튼튼하고 오래 살아요. 사료 먹고 우사에 편하게 지내는 소는 비실비실하지요.”
일을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나자 소는 지친 듯 입을 벌리고 헐떡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혓바닥을 아래로 길게 축 늘어뜨리며 침을 쉴 새 없이 흘린다.
“워워!”
고요한 산골, 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소를 어르는 ‘워워’ 소리만 정적을 깨고 울려퍼진다.

 

작은 농사가 소도 살리고 사람도 살린다
두 군데 밭을 갈고 난 후 집으로 돌아오니 농부의 아내가 따뜻한 찐 고구마를 내 놓았다. 손님이 전혀 낯설지 않은 듯 강순이 씨는 재미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쉬고 있던 이철희 씨는 슬쩍 일어나 방을 나선다. 마음이 바쁜 모양이다.


“저이는 우직해요. 너무 우직해서 내가 적적하지요. 나 혼자 말하니까.”
남들 앞에서는 이야기도 잘 하지만 집에서는 무뚝뚝한 남편이라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다. <워낭소리> 속 할머니의 모습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남편의 친환경유기농업을 적극 지지하며 모든 일에 뜻을 함께 한다는 점이다.


몸은 성치 않고 나이는 자꾸 들어가는 요즘, 한 해 농사가 시작되는 이 즈음이면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마음으로 본 <워낭소리>는 ‘짠한 이야기’였다. 아픈 다리 이끌고 무릎으로 기어가며 농사일을 하는 농부 최원균의 모습은 이철희의 얼굴이고 결국 우리 농촌의 현실이기도 했으므로.
“친환경농사 시작할 때, 농약 안 치고 일일이 손으로 풀 뜯고 거둬들이던 때 나한테 바보 등신 하던 사람들이 이제 다 우리 회원이 되었어요. 아무리 어려워도 유기농으로 유기축산으로 가야죠. 안 그래요?”

 

"소농으로 가야 기계 대신 소를 부릴 수 있고, 농약이나 제초제를 덜 쓰게 되죠. 농사는 작게 하되 많은 사람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이든 농부의 힘겨운 농사일이 안타까워 <워낭소리>의 장면 하나하나가 차라리 마지막 장면이기를 바라던 것이 떠올랐다. 하지만 소 먹이를 걱정하는 영화 속 농부 최원균 씨와 사람의 먹을거리와 땅을 살리려는 농부 이철희 씨의 모습 모두 앞으로 땅을 일궈갈 젊은 농부들 앞에 오래도록 남아야 할 풍경이다.


더 빠르고, 더 편하게, 더 많이 얻으려는 농업이 땅을 병들게 했다. 뿐만 아니라 에너지 위기는 농촌마저 뒤흔들고 있다. 석유로 짓는 빠른 농사가 아니라 느리지만 땅과 사람과 동물이 한 데 어우러져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따스한 모습이 농부 이철희 씨가 소망하는 농촌 풍경이다.
 

“작게, 많은 사람들이 땅을 일궜으면 해요. 그래야 기계도 덜 쓰고, 약도 안 칠 것 아니에요? 소도 풀을 뜯어먹고 건강하게 일하며 살게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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