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특집] 살리는 사람, 농부

[ 살림의 칼럼 ]

농부가 살고 세상도 살리는 길

글 천규석

글을 기고하거나 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현직이나 직위 등의 꼬리표를 붙여주는 것이 관례다. 직업이 농사뿐이었을 때는 나도 ‘농부’ 또는 ‘농민’이란 꼬리표밖에 다른 것을 달 수 없었다. 농부와 농민 중에서도 나는 농부라는 꼬리표를 즐겨 달았었다. 농민(農民)은 농사짓는 백성으로 왕조시대의 신민(臣民)처럼 누군가 떠받들거나 아니면 반대로 무엇인가에 저항하는 계급성을 풍기는 말인데 견주어 농부(農夫)는 그야말로 농사짓는 사내라는 무계급성과 자주성이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때는 또 농부야 말로 세상 살리는 주역이라는 생각으로 다른 어떤 직업의 직위보다 더 떳떳하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한살림을 시작하고부터는 농부에다 한살림대구 이사라는 꼬리표까지 두 개를 단 적이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농부라는 꼬리표는 슬그머니 떼어버리고 한살림대구 이사에다 그동안 내가 낸 몇 권의 저서 이름들을 차례로 바꾸어 달기 시작했다. 내 스스로도 그렇게 했겠지만 글을 청탁한 쪽에서 그렇게 하는 것을 내가 그대로 묵인함으로써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내 꼬리표가 바뀌는 데는 이 글에서 모두 쓸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내면의 심리적, 실존적인 변화와 함께 농부에 대한 개념 변화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자고로 농부는 세상을 살리는 살림꾼이다. 여성들이 주로 집안에서 가족의 생명을 살리는 집안 살림꾼이라면 전통적인 농부들은 들에서 농사지어 큰 밥상을 차리는 들살림꾼이다. 물에서 고기를 잡아 가족과 공동체를 살리는 물살림꾼들을 ‘어부’라고 부른다.


그런데 전통적인 소농 농부와 어부들이 해오던 이런 살림 일들을 언제부터인지 다른 어떤 거대한 힘이 야금야금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농부가 아닌 시장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시장을 장악한 대기업이 농부의 영역과 역할을 잠식해간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농부 수가 이제 전체 인구의 6% 이하로 떨어졌고 갈수록 더 떨어져 끝내는 이 땅에서 농부의 씨종자가 마를 날이 머지않았다. 이전까지 여러 농부들이 맡고 있던 그 살림의 역할을 이미 다른 일하는 소수의 사람이나 기구가 독점할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 농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의 절대량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단지 우리 농부가 생산한 농산물의 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국가와 시장의 자본가가 다른 나라의 먹을거리를 수입해서 우리 농부와 지역 농업의 입지와 영역을 거의 다 허물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촛불 저항으로 한때 주춤거렸던 미국산 쇠고기도 세월이 지나자 우선 값이 싸고, 먹어도 당장 광우병 들어 죽지 않으니까 이제는 골목마다 슬금슬금 그 직판장이 들어서며 이 땅에 남은 소수의 축산 농부까지 밀어내고 있다.


유해농약과 첨가물 칠갑을 한 수입 먹을거리도 당장에는 생물학적 건강이나 생명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10년 후 20년 후면 반드시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광우병처럼 잠복기가 끝나 그 발병이 현실화 되어 문제라기보다, 지역 공동체가 자급을 포기하고 외부에 생명을 의존했을 때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그때 가서야 비로소 실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곡물 값이 폭등할 때 중동의 산유국들이 달러를 쟁여 놓고도 쌀을 구하지 못해 소란을 피운 적이 있다. 미국발 카지노 금융자본주의 거품이 꺼지는 통에 석유값과 함께 곡물 값이 잠시 주춤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석유 정점은 반드시 올 것이고, 석유 화학제품이라 해야 할 오늘날의 수출입용 농산물 위기도 석유 위기와 더불어 반드시 올 것이다. 돈은 있는데 쌀은 모자라는 시대가 오고야 말 것이다.

 

마을공동체와 자급자족 정신부터 살려야


더 안타까운 것은 살림꾼으로서의 농부의 역할을 시장과 다국적기업에 빼앗기며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농촌공동체와 농부의 마음인 ‘농심’마저 함께 잃었다는 사실이다. 하긴 농심이란 말조차 이미 잃어버린 말이 되었다. 이 말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말에서 ‘후하고 너그러운 인심’, ‘서로 돕는 호혜정신’ 등을 상기 할 것이다. 물론 그것도 농심의 귀한 덕목이다. 그러나 나는 농심의 알맹이는 마을공동체와 자급자족 정신에 있다고 본다. 농부들이 사는 농촌에는 거의 예외 없이 ‘마을’ 또는 ‘공동체’란 말이 따라 붙는다. 농부들이 사는 마을은 무조건 ‘마을공동체’인 것이다. 지배와 수탈이 없이 호혜적으로 자급자족하는 삶의 단위가 마을공동체인 것이다. 국가에도 공동체란 말을 붙여 쓰긴 해도 그러나 처음부터 비자급적이라서 지배와 수탈이 본질인 국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반대되는 개념이다. 마을공동체는 자급이 기본이다. 자급이 없는 곳에 자립, 자주, 자율, 자치, 자유 등 인간사회에서의 최고의 가치들이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자급자족’ 정신이야 말로 농심의 근본이고 전통적 살림꾼이었던 농부들의 정체성 중의 정체성이다. 자급하는 농민들은, 마치 꿀벌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의 자치조직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잘 꾸려가고 있듯이, 외부의 간섭과 억압만 없다면 자신의 공동체를 잘도 꾸려 왔던 것이다. 타고난 양심으로 일관하며 자율적으로 사는 사람들을 우리는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농부 또한 법 없이 사는 사람들 중의 대종이었다. 법 없이 산다는 것은 나라 없이도 잘 산다는 말의 다른 말이다. 자급공동체적 농심을 가진 농부들에게는 톨스토이의 말처럼 나라는 오히려 고통이고 짐일 뿐이다(톨스토이 지음, 조윤정 옮김, <국가는 폭력이다>, 달팽이 2008년 펴냄 참조). 그런데 요즘은 그런 자급적 마을 공동체적 ‘농부’는 사라지고 모두가 나라 없이는 한시도 못사는 국가의 ‘국민’이 되고 만 것이다.


시장과 한통속인 국가는 자급자족, 자주, 자치를 살리는 공동체를 점차 해체하고 세상 모두를 시장으로 만들고 모든 사람을 국가의 국민으로 종속시키지 않으면 존속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같은 전방위적인 국가와 시장만능주의에서 벗어나는 길은 사라진 자급농촌공동체를 다시 세우는 길뿐이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은 자주적인 삶이다. 하지만 이미 노예로 길들여진 인간이 스스로 주인으로 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시장과 자본과 국가에 길들여진 노예로 사는 것보다 육체적으로는 훨씬 힘든 삶이 주인으로 사는 것일지 모른다. 그래도 인간이라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답게 살기위해 힘들어도 자주적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20년도 훨씬 전부터 농촌공동체와 협동조합 같은 도시공동체가 농산물만이라도 서로 주고받는 직거래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직거래주의자’가 되었다. 그런데 요즘의 ‘농민’들은 잃어버린 자급자족의 농심을 회복해서 이 국가와 시장 체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는 것 같다.


오래전부터의 내 꿈이기도 했던 노동자단체나 협동조합 같은 도시공동체와 농촌마을공동체간의 농산물직거래 준비를 위해 몇 해 전 지역 농민단체와 민주노총 간부들을 오랜 설득 끝에 간신히 만났을 때다. 그때 지역의 한 농민단체장은 “농민은 농사만 잘 지으면 되고 그 판매는 농협 같은 정부기구가 책임을 져야지 왜 우리 농민들이 그 판매 유통까지 걱정해야 하느냐”고 항변했다. 단발성으로 끝나긴 했지만 대구MBC의 도움으로 도농직거래 농민 장터에 참가한 한 농민도 아직 노농 공동체간의 직거래가 시작되기 전인 데도 지역농정 당국에 물류센터 건립을 위한 자금지원을 강력히 주문했었다.


농협과 국가가 그런 것까지 다 알아서 해주거나 해 줄 수 있다면 우리가 왜 국가 상대의 농민운동을 하다가 20년도 더 전부터 자급·자치적인 직거래 공동체운동으로 일찌감치 방향을 바꾸었겠는가? 농부와 국가가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인데 이제 와서 농민지도자란 사람들조차 진보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집권하면 모든 농민문제를 국가가 다 해결해주리라는 국가주의에 빠져 들고 있는지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가에 대한 기대를 버려야 농부가 산다


농사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 신석기시대 이후부터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충북 소로리에서 발굴된 재배용 탄화볍씨가 약 1만5천년 전의 것으로 판명 되고 그에 앞서 중국의 양자강 연안에서도 약 1만3천년 전의 재배용 탄화볍씨가 발굴 되었다. 그래서 이른바 농업혁명은 신석기 이전의 1만5천년 전 중석기시대 후기부터 이미 시작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제까지의 통설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농부는 1만5천년 전이나 어쩌면 그보다 앞선 시대부터 있었던 유서 깊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농업혁명 이전의 시대를 채집, 수렵의 원시공동체 사회라고 한다면 약 1만5천년 전부터의 사회는 농부들의 원시농촌공동체 사회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이전의 농부가 주역이 되는 농업공동체 사회는 적어도 1만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


역사가들은 지금부터 약 5천년 전후를 기점으로 지구상에 국가가 나타나기 이전을 원시사회나 선사시대 또는 야만사회로 칭하고 국가사회 이후부터를 역사사회 또는 문명사회로 서술해 왔다. 이러한 서술도 이미 하나의 움직일 수 없는 역사가 된 이상 그 서술을 다른 말로 바꾸어 다시 서술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국가가 어떻게 탄생했고 국가사회 이후의 국가가 무슨 일을 해왔는지를 잘 살펴보면 국가사회 이전의 농업공동체 사회나 원시공동체사회가 야만사회라서 나쁘고 국가사회 이후가 이른바 문명사회라서 좋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는 당시의 농촌공동체 자신의 필요나 내재적 요청으로 성립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것과는 반대로 농촌공동체로부터 이탈해 간 ‘외세’들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국가가 농업혁명 이후 치수관개 사업을 위한 대중 동원의 필요로 생겨났다거나 농업혁명 결과로 생긴 농산물의 잉여에 따른 사제나 무사의 계급분화로 성립되었다는 통설은 이미 부정되었거나 유지하기 힘든 도전 속에 있다.


예컨대 남미에서는 일찍부터 마야왕국이 성립했던 중미와 같은 농업혁명과 농업기술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모든 지역에 국가가 발생한 것이 아니고, 서구제국주의의 침략 이전까지는 야만 그대로 국가 없이 사는 지역이 더 많았다. 동일한 하부구조임에도 상이한 상부구조로 마르크스류의 동일한 하부구조에 동일한 이데올로기 규정론에 반하는 경우다. 그런데 북미에서는 생태적으로 농경이 적합한데도 농경으로 정착하지 않고 채집과 수렵으로 이동하는 국가 이전의 사회상태(부족연맹단계)를 콜럼버스 침략 이전까지 그대로 유지하기도 했다. 반대로 농경으로 정착하고 있던 공동체는(물론 말과 총이 외부에서 유입되자 이제까지의 정착적인 농경공동체가 다시 사냥으로 되돌아가기도 했지만) 역시 국가는 없는 부족연맹체 단계였다. 상이한 하부구조에 동일한 상부구조의 예다.


우리의 단군신화도 국가 건국이 공동체의 내재적 필요나 요구에서가 아니라 외부세력으로부터 탄생된다는 생생한 실례를 보여준다. 단군신화는 하늘에서 왔다지만 사실은 하늘신을 믿고 조상으로 내세우는 떠돌이 유목부족의 추장인 환웅과 곰의 토템을 섬기는 선주 농경부족의 상징인 곰녀와의 결혼(연맹)이 핵심이다(곰녀족이 선주농경족인 근거는 농경이 채집을 주로 했던 여성들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이 좋아 결혼이고 부족 간의 연맹이지 농경족인 곰녀에게만 쑥 1자루와 쓰디 쓴 20개의 마늘만 먹으며 깜깜한 동굴 속에서 100일 기도 뒤에 사람으로 환생하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시킨 뒤에야 환웅이 허락한 그 결혼이 결코 대등한 결혼일 수 없다. 부족 연맹단계의 고조선의 건국은 천신족 환웅 집단에 의한 선주 농경공동체의 복속과 피지배와 피착취의 시작이자 그 상징인 것이다.


농부의 비극, 농촌공동체의 비극은 이처럼 국가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다. 문명사(역사) 이후 국가의 역사란 농촌공동체의 파괴와 지배와 복속의 역사였다. 그래서 또 그 문명사는 동시에 농촌공동체의 저항의 역사였다. 농촌공동체의 크고 작은 저항이 쌓여 가면 기존의 국가는 더 이상 권력을 유지해 갈 수 없다.


자급하는 마을공동체의 농심을 잃어버린 농부는 생명을 살리는 농부가 아니다. 농업 상품을 생산하는 농기업인이거나 그것을 유통하는 시장 상인일 뿐이다.


그러나 농촌공동체는 태생적으로 반권력적으로 집권과는 관계가 없다. 그래서 또 다른 외부세력이 지금까지 쌓아온 농촌공동체의 저항을 등에 업고 국가권력을 탈취하지만 이 가운데 농촌공동체는 물론 그 구성원 중의 농부가 한 사람이라도 그 권력에 참가한 적은 없다.


역사상에 교체된 수많은 왕조들이 농민저항의 성과를 외부세력이 가로채 간 결과라는 증명은 왕조가 바뀔 때마다 가장 요란스럽게 내세우는 치적이 전제개혁이라는 데서도 드러난다. 물론 그 개혁은 표면적인 명분과는 달리 농촌공동체를 위한 개혁이 아니고 권력을 잡은 새로운 계급끼리의 논공행상으로 새로운 권력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임은 말할 것도 없다.


왜 농촌공동체 밖의 외세들이 대를 이어 기를 쓰고 농부와 농촌공동체를 장악하고 지배하려 했던가? 농부와 농촌공동체는 만생명을 살리는 원천이고 근원이기도 하지만, 다른 산업과 노동자 계급이 없던 당시로서는 지배와 수탈의 유일한 보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지금과는 달리 농본사회였다. 농부와 농촌공동체와 농경관리권의 지배와 수탈 없이 그 공동체 밖의 외세가 생존할 길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처럼 시장과 국가가 농촌공동체를 공격하고 파괴하는 주범인데, 그 주범들에게 모든 농촌문제들을 책임져 달라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니. 자급, 자주, 자치의 공동체적 전망이 없는 국가주의 농민운동은 결국 국가로부터 보조금이나 몇 푼 더 타먹는 경제주의운동, 제 보리 주고 제 떡 사먹는 체제 내 운동으로 마감하고 말 것이다. 요컨대 보통 농민들은 물론 이른바 운동하는 농민일수록 자급자치주의적 농심을 모두 잊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모든 것을 국가에 요구하고 국가에 의존하는 국가주의 운동, 국가의 신민되기 경쟁을 하는 운동에 무슨 희망이 더 있겠는가?


내 이름의 꼬리표에서 ‘농부’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런 국가주의적 ‘농민운동’들에 대한 거듭된 실망과 무관하지 않다. 자급하는 마을공동체의 농심을 잃어버린 농부는 생명을 살리는 농부가 아니다. 농업 상품을 생산하는 농기업인이거나 그것을 유통하는 시장 상인일뿐이다.


농심을 회복해야 산다. 농심을 가진 농부만이 우리 들판의 참농업을 살리고 세상 모두의 밥상을 살리고 미래에도 지속가능한 희망공동체를 살릴 수 있다. 지배와 착취가 본질인 나라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자치공동체로 거듭 살리는 길도 모든 사람들이 법 없이도 잘 살았던 농부들의 마을공동체적 농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만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글을 쓴 천규석 님은 소농두레 자급자치 마을공동체를 꿈꾸며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유목주의는 침략주의다> <소농 버리고 가는 진보는 십리도 못가 발병난다> 등의 책에 이런 꿈이 담겨 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