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호 2016년 4월호 살림,살림

[ 살림의 현장-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있다면

글 김탁환 _ 그림 김병택

 

 김병택, <미안해, 잊지 않을께…>(2015)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순수박물관에 갔던 적이 있다. 오르한 파묵의 동명 소설에 나오는 소품들을 모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여주인공 퓌순이 피운 4천213개비의 담배가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토록 많은 담배꽁초를, 그토록 오래 쳐다보면서 풍경을 그려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숫자는 곧잘 각 존재의 고유한 의미를 지운다. 세월호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미 몇몇 숫자를 알고 있다. 희생자 숫자, 미수습자 숫자, 생존자 숫자 그리고 참사로부터 바로 오늘까지의 시간적 거리까지. 담배꽁초 하나에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어찌 이야기가 없으랴. 세월호 참사엔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과 교사, 일반인 승객, 선원, 아르바이트생, 해경, 어민, 잠수사 그리고 희생자의 유가족, 생존자 가족, 해양수산부장관,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프란치스코 교황에 이르기까지. 그런데 지금 잠시 되짚어 보아도 세월호 참사와 연관된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참사 직후부터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글과 말이 홍수를 이루었지만, 정작 기억할 이야기들을 모아 함께 나누진 못했던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는 팟캐스트 제목을 ‘416의 목소리’로 정한 것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다양한 목소리를 담기 위해서였다. 팟캐스트 준비 팀의 목표이자 자세는 매회 출연하는 세월호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분석하고 주장하기 전에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동거차도 앞 맹골수도에서 일어난 참사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부숴 버렸는지 듣는 시간이 필요했다.
업로드되는 방송은 길어야 한 시간을 넘지 않지만, 녹음은 서너 시간을 넘기기 십상이었다.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두 삶을 떠올렸다. 하나는 4월 16일에 멈춰버린 이들의 나날이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은 열여덟 살에서 삶이 강제로 정지되었다. 너무나도 짧지만 결코 비슷하진 않다. 학생의 부모나 형제자매들은 쉼 없이 18년의 특별한 순간들을 들려준다. 생김생김이 모두 다르듯, 식성도 말버릇도 취미도 친구도 장래희망도 제각각인 것이다.
그리고 4월 16일 이후 지금까지 2년 동안 살아 낸 유가족의 삶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은 자들의 하루하루는 어떠했을까. 절망은 끝이 없고 슬픔은 긴 밤을 눈물로 적시고도 남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세월호에서 희생된 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 대목에서 짧지 않은 침묵과 눈물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다음 이야기로 가기 위한 접속사가 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가족들은 많은 일을 했다. 광화문 농성장을 지키며 단식을 했고,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걸었으며, 전국을 돌며 진상규명을 위한 서명을 받았다. 지금도 동거차도에 머물며 세월호 인양을 준비하는 작업을 감시하고 있다. 이 다양한 말과 행동 속에는 4월 16일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인간’이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먼저 간 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인지 반성하고 결심하는 인간. 내 가족의 행복뿐만 아니라 이 사회, 이 국가가 안고 있는 문제점까지 살피는 인간.
현대사를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참사들이 장소만 달리하여 계속 이어져 왔다. 1993년 서해훼리호가 침몰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붕괴했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가 터졌다. 그때마다 온 나라가 충격과 슬픔에 잠겼지만, 진상이 철저하게 규명된 적은 없었다. 희생자에 대한 애도와 생존자에 대한 치유도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은 흩어지지 않고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416가족협의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활동해 왔다. 올해 1월에는 서울시로부터 사단법인 등록 허가까지 받았다. 여기까지도 대단한 모범을 보인 것이건만, 팟캐스트에 출연한 유가족들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고, 아직까지 진실은 바다 밑에 있다고 말한다. 올 여름 세월호가 인양되면 미수습자도 거두어야 하고, 참사에서 문제가 된 부분들을 더욱 낱낱이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진 지쳐도 지칠 수 없다. 아파도 아플 수 없다.
시간은 힘이 세다고 흔히 말한다. 아무리 큰 상처도 세월이 지나면 잊힌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결코 지워지거나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소설가들은 흔히 이때를 ‘결정적 순간’이라고 칭한다. 팟캐스트에 출연한 유가족과 생존 학생들은 2014년 4월 16일이 인생에서 결정적 순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피해자인 유가족들이 여기까지 버티며 왔으니, 이제 ‘기억하겠다’고 약속한 국민들이 나설 때다. 기억하기 위해선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 그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여 또 다른 이에게 들려줘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정확히 모른다는 것은 시간과 맞서 싸워 이길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며, 몇 개의 숫자 속으로 숨게 된다는 뜻이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선, 읽고 보고 듣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팟캐스트 부제를 ‘내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이 있다면’으로 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함께 움직여 이야기를 들려줄 이를 만나러 가자! 그에게 우리의 귀와 운명을 빌려주자!

 

416의 목소리
팟캐스트 듣기 www.podbbang.com/ch/1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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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facebook.com/416voice

 

↘ 김탁환 님은 장편소설가입니다. 《불멸의 이순신》, 《목격자들》, 《조선마술사》 등의 소설을 썼고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를 진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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