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호 2016년 4월호 [특집] 특집-그래도 선거

[ 벚꽃 분홍도시에서 핵 검은도시가 된 후쿠시마 ]

방사능 오염된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글 _ 사진 김복녀

후쿠시마의 말뜻은 ‘복된 섬’이다. 모두 복되게 여겼던 이곳이 5년 전인 2011년 3월 11일,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난 후 불행한 지역이 되어 버렸다. 산과 들이 오염되었고, 사고는 여전히 ‘수습 중’이고 ‘진행 중’이다. 지난 2월 나는 일본 후쿠시마의 한 마을, 도미오카에 다녀왔다. 지금은 인적이 끊긴 곳이다.

 

 

후쿠시마현 도미오카의 '아톰' 초밥집. 아톰은 핵발전소를 홍보하는 만화영화 주인공으로, '플루토늄을 먹어도 괜찮다'며 견학단을 세뇌시키는 데 쓰였다. 핵발전소를 10기나 끼고 있는 도미오카 지역에 어울리는 간판인지도 모르겠다.

 

 

살 수 있는 곳과 없는 곳, 경계는 낮은 울타리
세상에서 가장 성가신 물건, 사용후핵연료. 핵발전 역사가 60년이 넘었지만 아직 이것에 대한 처분은커녕 보관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핵발전소는 마을과 도시가 통째로 피난할 만큼 엄청난 대형 사고를 네 번이나 냈다. ‘초대형 핵발전소 사고 10년 주기설’이라는 말도 생겼다. 미국 쓰리마일, 옛 소련(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일본 도카이무라에 이어 일본 후쿠시마에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후쿠시마의 한 마을 도미오카는 내년부터 이른바 살 수 있는 집과 살 수 없는 집으로 갈린다. 귀환불가 판정을 받은 구역에 살던 사람들은 처음엔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 탄식했으나, 이젠 귀환 예정 구역으로 돌아가라고 통보 받은 사람들이 탄식하고 있다. 생활 기반이 무너진 지 오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심한 오염으로 살 수 없어 ‘귀환 불가’인 집이 바로 앞에 있는데 그를 마주보는 곳에 들어가 살라는 것인가. 경계라고 해봐야 가드레일처럼 낮게 친 울타리가 전부다.

 

핵발전소 폭발사고 한 번에 어쩔 도리 없이 견뎌야 하는 사연들은 차고 넘친다.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하는 젊은이가 부쩍 늘었다. 그리고 비탄과 무상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소식도 끊이질 않는다.


도미오카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산업은 없었지만, 자연이 그만큼 더 풍요로운 곳이었다. 어른 셋이라야 안을 수 있는 거목에 철따라 어김없이 벚꽃이 피었다. 다른 벚꽃들도 봄이면 분홍빛으로 출렁였다 한다. 지금은 방사성 쓰레기를 담은 검은 포대가 여기저기 언덕을 이뤄 검정으로 넘친다. 그야말로 분홍도시에서 검정도시가 되어 버렸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3~4세대가 함께 살았기에 가재도구도 많았다. 그날 이후 귀한 물건조차 대형 방사성 쓰레기 포대 신세다. 경황없어 챙기지 못한 돈과 귀금속은 진즉 도둑맞았다. 피난하라고 배정된 임시 주택에서의 생활이 길어지자 젊은 세대는 대부분 집을 새로 짓거나 얻어 나갔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손자, 손녀들은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하지, 함께 살자고는 하지 않는단다. 다세대가 한 지붕에 함께 사는 사치는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나카야마 히로코 씨가 도미오카에서 살던 집을 보여 주었다. 공원처럼 예쁜 정원이 딸린 드넓은 집이다. 담이 없고, 개울이 흐르는 예쁜 뒷마당은 동네 자랑거리였으리라. 가족이 대를 이어 110년이나 살면서 여기저기 손때를 묻히며 고쳐왔던 그 집은 쓰나미가 일어도, 초대형 지진이 나도 건재했다. 가게를 운영하느라 어디론가 멀리 떠나 본 적 없는 아버지는 정원 가꾸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는 돌아가기를 포기했지만 그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귀환 포기는 위자료와 주택 지원금도 포기한다는 뜻이다. 대를 이어 살아 온 곳, 골목 하나 돌면 축제 때마다 사람들이 모이던 정든 학교가 있고, 봄이면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곳, 조금 걸으면 바다가 보이는 곳. 풍광이며 인정이며 교통까지 빠지는 것 없는 동네. 포기할 수 없지만 돌아가도 답이 없다. 휴대전화와 지갑 정도만 들고 황망히 떠난 피난길에서, 그날 모든 걸 빼앗기리라는 사실을 누구도 예감하지 못했다. 집과 가재도구는 물론 일터와 고향과 일상, 서로 어울려 살던 단란하고 행복했던 관계까지도.

 

귀환정책은 기민정책
동네 확성기에서 오후 3시 전에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계속 안내한다. 제염을 해도 사고 전에 비하면 열 배, 스무 배 오염된 곳이다. 이런 곳에 내년이면 들어와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 정부는 체르노빌에 비하면 별거 아닌 사고라면서 30년 전부터 적용한 체르노빌 기준보다 4배나 높은 오염지에서 살라 한다. 피난민들은 귀환정책을 ‘사지에 버리는’ 기민정책이라 부른다. 깨끗한 고향으로 되돌린 뒤에 살게 하라며 술렁이고 있다. 아니 싸우고 있다.
제염 노동자인 오카자키 히사시 씨는 “방사능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을 연발했다. 어느 농가에서 만난 할아버지 얘기도 들려준다. 집 주변을 제염하면서 입구인 과수원 갓길도 정리하려는 그에게 “풀 한 포기 건들지 마라. 30년 동안 가꾸어서 맛있는 복숭아를 얻어 냈다”고 성을 냈다고 한다. 할아버지 농부의 외침을 바로 앞에서 듣는 것 같아 내가 다 움찔했다. 핵발전소 폭발사고 한 번에 어쩔 도리 없이 견뎌야 하는 사연들은 차고 넘친다. 심근경색으로 돌연사하는 젊은이가 부쩍 늘었다. 그리고 비탄과 무상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 소식도 끊이질 않는다. 방사능만 아니라면 다 되돌릴 수 있는데. 방사능만 아니라면 지진으로 건물 더미에 깔린 사람들도 도와줄 수 있는데. 방사능만 아니라면 밝은 미래도 꿈꿀 수 있다. 방사능만 아니라면 어느 날 갑작스레 모든 것을 빼앗기지는 않았다. ‘핵발전소만 없었다면’이란 유서를 남긴 농부의 무력감, 핵발전소 폭발사고 앞에서 느낀 무력감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또 일본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부의 몰인정한 처사가 원통하다고 했다.

 

 

(왼쪽)문전옥답에 방사성 쓰레기 포대가 쌓여 가고 있다. ‘벚꽃이 아름다운 고장’이라는 표현은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오른쪽)피난도, 가축 살처분도 거부했던 목장이다. ‘치외법권’과 ‘핵발전소에 맞서 봉기’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간 죽은 소 해골도 보인다.

 

 

돈만 벌고 책임 지지 않는 자본
핵발전소 모두 멈춰도 전기는 남아돈다. 일본은 ‘핵발전소 제로 사회’로 4년을 지냈다. 원자로 제조사인 ‘히타치’가 내년까지 풍력발전기 생산을 2배로 늘리려고 공장을 신설한다는 뉴스를 도쿄행 열차 전광판에서 보았다. 자본은 참 얄밉다. 핵발전소 급증 때도 돈을 벌고, 사고 뒤처리할 때도 돈만 벌고, 책임은 지지 않은 채 재생가능에너지 시장에서도 돈을 번다.
오늘 한국에는 고장 나거나 정비하느라 멈춘 것을 빼고 핵발전소 20기가 운전 중이다. 새벽엔 60% 이상, 최대 소비 전력 시간대조차 남는 전기가 29.6%나 되는데, 전력거래소 수급 상황 안내판은 ‘정상’이라고만 나온다. 넘침, 과잉이란 말을 모른다.
핵발전소는 한 번 돌리면 어쩔 수 없이 100% 출력으로 질주한다. 얄궂지만 핵발전소 운명으로는 그게 정상이다. 2천 km 떨어진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나자 방사능 낙진을 걱정했던 우리는 고작 멀어 봐야 200km대 안에 있는 국내의 핵발전소를 용인하고 있다. ‘한국의 핵발전소는 괜찮겠지’라고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은 정상일까? 후쿠시마 제염노동자가 되뇌던 “피할 수 없다”는 말은 “(핵발전소가 도는 한 사고를) 피할 수 없다”는 말로 내게 남아 있다.

 

 

↘ 김복녀 님은 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 소장으로,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났던 후쿠시마에 건너가 고향 잃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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