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4호 2009년 봄 [특집] 살리는 사람, 농부

[ 여는 이야기 ]

별을 노래하는 아버지, 농부

글 서정홍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부터 사람은 농사지으며 살았습니다.
짐승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살 때에는 땅을 갈고 씨를 뿌리지 않고도 산이나 들에서, 강이나 바다에서 먹을거리를 스스로 구해 살았겠지요. 그러나 집을 짓고 아들딸 낳아 모여 살다보니 가장 먼저 먹을거리부터 걱정이 되었겠지요. 그래서 사철 걱정 없이 먹고살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논밭을 갈고 씨를 뿌렸겠지요.

 


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마른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와 배고픈 자식들 목구멍에 밥 넘어가는 소리’라 할 만큼 먹고사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소중하지요.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을걷이 끝나고 난 뒤, 창고에 가득 쌓인 곡식을 바라보면,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마음 든든하고 배가 부릅니다.  
 

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孔子)에게 물었습니다.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하길, “식량과 무기를 충분히 준비하고 백성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자공이 다시 묻기를, “그 세 가지 가운데 반드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에 공자는 “무기를 버려라.”고 대답했습니다. 옛날부터 ‘식량안보’는 ‘군사안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잘 가르쳐주는 이야기지요. 먹고사는 일이 이만큼 소중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라마다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땅과 기후에 따라 먹고사는 일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 백성이든 먹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천하장사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제 나라 백성들이 목숨을 이어가는 양식을 스스로 마련하지 못하는 나라는 위험하고 불안한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석유나 황금덩어리를 팔아서 먹고사는 나라가 있다해도, 남의 나라에서 양식을 구하지 못하면 모두 굶어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핵전쟁보다 식량전쟁이 더 무섭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외세의 압력과 침략으로 숱한 고난을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까닭은 묵묵히 땅을 가꾸며 씨를 뿌리는 농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없었다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요.


농부를 다른 말로 농사꾼이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보리 국어사전>에 농사꾼을 찾으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농사짓는 일이 직업인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 아래 이런 글도 있습니다.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종자는 베고 죽는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바보가 아니면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농사꾼이 굶어 죽어 가면서도 씨앗은 먹지 않고 남긴다는 뜻으로 앞일을 미리 챙기는 농사꾼의 마음을 높이 사서 하는 말이란 것을.


6·25 전쟁 뒤, 가난해진 나라 살림을 살리는 길은 수출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농촌 젊은이들이 ‘수출 역군’이 되기 위해 낫과 괭이를 집어던지고 도시로, 도시로 밀려왔습니다.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쌀값을 내려 고정하고 올리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쌀값을 올려도 살아가기 어려운데 쌀값마저 제값을 받지 못하니 농부들은 늘 빚에 시달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농부들은 하나 둘 농촌을 뜰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농업 정책은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정책이 도시 경제와 수출 산업 중심으로 이어지다 보니 우리 농업과 농촌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농민단체인 한농연 지도부를 만나 ‘농민은 지난 40년 동안 숨은 공로자이면서 가장 큰 피해자’라며 ‘대통령이 되면 사회정책 차원에서 농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 나서 경남도청에서 열린 경남도민 간담회 날, “시장을 거역하면 그 사람이 손해보고, 지도자가 시장을 거역하면 그 지도자를 따르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 저도 시장을 좋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따라 가지 않으면 많은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농업과 농촌이 무너진 가장 큰 까닭은 많은 사람들이 농업 문제를 시장 논리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농업은 공기, 물, 해와 같이 생명과 이어지는 산업이기 때문에 시장 논리로만 봐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농산물을 개방한 대가로 공산품을 수출해서 나라 경제를 살리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도 돈이 많거나 잘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니 어찌 우리 농업 정책이 바른 길로 나갈 수 있겠습니까. 우선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서 우리 농업과 농촌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이런 사람들이 들끓고 있으니 농부들은 일할 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한 가지 보기를 들면 중국에 휴대전화를 팔아먹는 조건으로 중국 양파와 마늘을 수입하는 바람에, 양파와 마늘을 심은 우리나라 농민들이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를 팔아서 남는 이익금은 당연히 농민들에게 돌아가야 하는데도 욕심 많은 기업가와 간부들이 다 챙겨가고 있으니 누가 농사를 짓겠다고 나서겠습니까? 


1984년에는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이 외국 소를 몰래 수입하는 바람에 우리나라 소 값이 떨어져 소를 키우는 농부들이 폭삭 망해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때 망한 농부들의 빚이 아직도 그대로 있습니다. 빚을 못 갚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고, 이자가 이자를 낳아 눈덩이처럼 불어서 어찌할 줄 모르는 농부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농사는 농부들이 짓는데 그 이익금은 다른 사람이 챙겨가고 있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농부들이 애써 지은 귀한 밥을 먹고도 밥값은 못할망정, 남의 밥그릇까지 강제로 빼앗아가는 못된 사람들이 이렇게 많으니, 어찌 농부들이 기쁜 마음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내린 가난한 사람이 세상을 살린다


잘 알고 지내는 분이 명함을 만들어준다기에 뒤쪽에 이런 글을 넣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무소유는 훔치지 않는 것입니다.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것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것은 훔친 물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훔친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다면 내버려두십시오. 하지만 나는 필요하지 않은 것은 감히 소유하려 들지 않겠습니다.-간디’ 그리고 앞쪽에는 ‘농부 서정홍’ 이라 쓰고 그 아래 주소와 전화번호를 넣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분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농부라 하지 말고 시인이라 하면 고상하고 멋있을 텐데 왜 농부라 하십니까?”
“하하하하! 저는 농부가 더 고상하고 멋있는데요.”
“농부라고 명함을 내밀면 누가 알아주지도 않을 테지만, 시인이라고 명함을 내밀면 그래도…….”
“저는 누가 알아달라고 농사짓거나 시를 쓰는 게 아닙니다. 누가 알아준다고 내 삶이 넉넉해지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내 삶이 초라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나’는 ‘나’입니다. 여태껏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누구한테 잘 보여 승진할 일도 없고……. 농부는 돈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 사람한테 잘 보이는 것보다,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하늘한테 잘 보여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요. 현실은 현실인데…….”


“저는 시를 전문으로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웃들과 논밭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틈틈이 시를 쓰지요. 저는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시만 써서 밥을 먹고 살 수 없는 처지입니다. 또 시를 잘 써서 밥을 먹고 살 수 있다 해도, 땀 흘려 일하지 않고 먹고 놀면서 쓴 시가 어찌 세상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저를 시인이라 부르지 말고 농부라 불러주면 좋겠습니다. 농부라 말하기엔 아직 어설프지만 말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런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러면 농부 시인이라 하면 어떨까요?”
“이웃 마을에 사는 농부 정상평 씨는 별을 노래하는 아버지를 농부(農夫)라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보니 농부가 시인이고, 시인이 농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명함 만들어준다는 그분과 나누었던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저희 집에 찾아온 사람을 가만히 헤아려보니 이천 명 남짓 되었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단체만 해도 많습니다. 경남금속노조, 부산환경운동연합, 진주 YMCA, 살레시오 수녀회, 인천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간디 중학교, 실상사 귀농학교, 전교조 마산 초등지회, 거창 YMCA, 천주교 농부학교, 창원 중동성당, 부산 생협, 한살림경남 …….


마음 편하게 밥 먹을 틈도 없이 바쁜 사람들이 멀고도 먼 산골 마을까지 왜 왔을까요? 시인이 농사짓고 산다니까. 아니면 시인을 만나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어찌 사는지 궁금해서. 찾아온 마음은 다르겠지만, 만일 제가 산골 마을에서 농사짓고 살지 않았다면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도시에서 살았다면 고작 술자리 정도에 저를 불러주었겠지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농촌을 걱정하고 자연을 그리워하는 이분들과 함께 희망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아직 어설픈 농사꾼인 저를 찾아와 무너진 우리 농업과 농촌을 두 눈으로 온 마음으로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도시에 사는 자식들이 물건처럼 두고 간 병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묵혀둔 논밭들, 수십 년 동안 마구 뿌려온 농약과 화학비료에 병든 땅, 폭삭 무너져 내린 빈집, 버리고 떠난 빈집에 돌아다니는 들고양이들, 논밭 가에 쌓여 있다가 바람 불면 날아다니는 비닐새(진짜 새가 아닙니다. 삭고 찢기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비닐을 말하는 것입니다)들이 농촌 풍경을 더욱 슬프게 했을 것입니다.


사료 값, 비료 값, 기름 값, 온갖 농자재 값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올랐는데 농산물 값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거나 오히려 내렸습니다. 농업과 농촌이 살아야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실업대란’이란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돈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농촌은 마음만 먹으면 아주 적은 돈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농촌이 살아 있으면 가난한 백성들은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도시가 무너지고 농촌마저 무너지면 가난한 백성들은 오갈 데가 없습니다. 어떠한 일이 벌어져도 부자들은 돈을 먹고 살았으면 살았지, 땡볕에서 땀 흘리며 농사짓지 않습니다. 그러니 결국 가난한 사람만이 가난한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만이 아이들을 살리고 세상을 살릴 수 있습니다.
농부는 하늘이 내린 ‘가난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가난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글을 쓴 서정홍 님은 경남 합천 황매산 자락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농사지으며 ‘강아지똥 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함께 배우며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 번째 시집 <내가 가장 착해질 때>와 세 번째 동시집 <닳지 않는 손> 을 냈습니다.
 


http://www.salimstory.net/renewal/sub/view.php?post_id=148